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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정유도의 부응경에 나오는 천우동(天羽洞)

도솔산인 2023. 3. 22. 16:53

갱정유도(更定儒道)의 부응경(符應經)에 나오는 천우동(天羽洞)

 

 

  부응경(符應經)은 갱정유도(更定儒道, 일명 一心敎) 제1대 교조 강대성(姜大成, 1890~1954)의 어록이다. 갱정유도(更定儒道) 교조 강대성이 39세 때인 1928년에 순창 회문산 금강암에 입산, 처자와 더불어 금식·고행을 하다가 1929년 7월에 득도하였다. 1930년 송목(松木)에 결항이사(結項而死)한 부인과 아들 삼인(三人)이 생사교역(生死交易)을 한 뒤, 천어문답(天語問答)한 도덕경전과 시가문을 교조가 직접, 또는 제자들이 필사해 놓은 것이다. 부응경(符應經)은 천부경에 응답한다는 의미인 듯하다.

 

  얼마전 임○○님이 부응경에서 지리산 관련 내용을 발췌하여 보내주셨다. 벽설령(벽소령), 천황봉(천왕봉), 영신대 등 여러 지명이 나오는데, 오자·탈자도 가끔 눈에 보인다. 1931년 12월 강대성 교조가 아들 용학과 함께 덕평마을의 천우동(天羽洞) 경태임오춘(庚泰壬午春) 이청련서(李靑蓮書) 석각을 보고, 崔처사의 집에서 하룻밤 묵어갔다는 내용이 있다. 천우동(天羽洞) 석각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天羽洞 景泰壬午春 李靑蓮書(천우동 경태임오춘 이청련서)

 

 천우동 경태임오춘 이청련서(天羽洞 景泰壬午春 李靑蓮書)

 

  움막터 샘터 바위에 천우동 경태임오춘 이청련서(天羽洞 景泰壬午春 李靑蓮書) 석각이 세로로 새겨져 있다. 경태(景泰)는 명나라 대종(代宗)의 연호이다. 경태제(景泰帝)는 중국 명나라 7대 황제(재위 1449~1457)이다. 경태제(景泰帝)는 명나라 황제 영종(英宗, 정통제正統帝/天順帝)의 이복 아우이다. 정통제(正統帝)가 몽골의 포로로 잡혀갔을 때, 잠시 왕위에 올랐다. 영종(英宗)이 풀려나면서 왕위에서 쫓겨났다. 임오년(壬午年)은 대종(代宗)의 재위하였을 때가 아니고, 영종이 복위한 천순(天順) 6년으로 1462(세조 8년)이다.

 

  이청련(李靑蓮)은 촛대봉의 고려낙운거사 이청련서 석각과 「청학 동결(靑鶴洞訣)」을 남긴 인물이다. 천우동 석각의 주인 이청련이 지리산 속에서 중국의 황제가 바뀐 것을 모르고 경태제(景泰帝)의 연호를 새긴 것은 아닐는지. 청련(靑蓮)은 이백(李白, 701~762)의 고향으로 이백의 별호이다. 이백을 흠모하는 인물이 이백의 별호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기 이후백[李後白, 1520년(중종 15)~1578년(선조 11)]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호가 청련(靑蓮)이고 그의 문집이 청련집(靑蓮集)이다. '후백(後白)은 뒤에 태어난 이백(李白)'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천우동 석각 이청련(李靑蓮)과는 다른 인물로 보인다.

 

   注 우화등선(羽化登仙) : 소동파(蘇東坡, 소식蘇軾, 1037~1101)는 송(宋) 나라 신종(神宗) 때 소식은 호북(湖北) 황주(黃州)로 좌천되었다. 그는 틈나는 대로 주변의 명승지를 유람하였는데, 적벽을 찾아 〈적벽부〉 2수를 지었다. 〈전적벽부〉에서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이 나온다. ‘우화(羽化)’는 원래 번데기가 날개 달린 나방으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르다. 번잡한 세상일을 떠나 마음이 평온하고 즐거운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천우동(天羽洞)은 번잡한 세상일을 떠나 마음이 평온하고 즐거운 신선의 세계인 덕평동천(德平洞天)을 일컫는 의미이다.

 

 

 

1. 갱정유도(更定儒道)의 부응경(符應經) 중 지리산 관련 글

 

함양(咸陽) 안의거창(安義居淸)안의거昌(安義居昌) 다 다녀 벽설령(碧雪嶺)→벽소령(碧霄嶺) 당도(當到)하야, 부자상봉(父子相逢) 기룬 마음 서로 알고 통곡(痛哭)하며 낙루(落淚)하니, 누락성우(淚落成雨) 분분(紛紛)이라. 한숨에 어린 눈물 벽산설백(碧山雪白) 되어 있고, 창창(蒼蒼)한 저 창천(蒼天)은 운거운해(雲去雲海) 아닐런가.

 

무산십이(巫山十二) 운외흘(雲外屹) 동정칠백(洞庭七百) 월하추(月下秋) 산립동동(山立童童) 푸렀는데, 반야봉(盤若峰)의 반고씨(盤姑氏)는 천황봉(天皇峰)의 천황씨(天皇氏). 영신대(靈神臺)라 중입(中立)하야 삼태육경(三台六卿) 군신봉조(君臣奉朝) 승어중업(勝於中業) 칠십이인(七十二人) 다회처(多會處).

 

백운산(白雲山)의 저 삼봉(三峰)은 뉘를 보고 읍()하는고. 남해(南海)가 당정(當正)하니 만방지토(萬方之土) 귀근일리(歸根一理) 춘원춘색(春園春色) 하남지동(河南之東) 조자선(朝自先)을 인생어인(人生於寅) 알지어다.

 

곡심심봉(谷深谷峰) 고고(高高). 다곡다봉(多谷多峰) 많은 산수(山水) 처처(處處) 마당 호경개(好景介)요. 고목천년(枯木千年) 녹각고(鹿角高)라. 석립암간(石立岩間) 저 석굴(石屈)은 도통암(道通庵)이 어디런고()에 보고 이제 보니 낙루석간(落淚石間) 유수(流水)로다.

 

옥룡자(玉龍子)야 나를 아냐.

겸암(謙菴) 불어 친시(親視)하니

갈처사(葛處士) 내가 왔네.

최고운(崔孤雲)은 무슨 일로 입가야산(入伽倻山) 하였던고.

 

고사(古事)를 생각하니, 비인언이(非人言而) 진천언(盡天言)이라.

고천(古天)이 금천(금天)커늘,

고인(古人)이 금인호(今人乎),

심의일발(心意一發) 보보루(步步淚).

 

천봉만학(千峰萬壑) 독폐문(獨蔽門)하니,

견폐객도(犬吠客到) 엄시비(掩柴扉)라.

한 골짝을 다다르니 산고광활(山高廣闊) 한가운데 견폐성(犬吠聲)이 들리거늘, 찾아가서 엄시비(掩柴扉)가 되였더라.

 

주인(主人)을 찾아 일야(一夜) 잠간(暫間) 유숙(留宿)하기를 청(請)하니, 불청(不聽)이더라.

차사(此事)를 내하(奈何)하오.

앙천심호(仰天心呼) 싫어하니, 우리 새끼 용학(龍鶴)이가 나를 따라 가옵시다. 하기로 따라간 즉 백석암상(白石岩上)에 한 천연정(天然井)이 있으되, 천우동(天羽洞)이라하고, 경태(庚兌)→경태(景泰)  임오(壬午) 춘(春)이청련(李靑蓮)(書)하노라 하였거늘, 그를 다 본 후에 네이놈 용학(龍鶴)아 이게 누가 한 글이냐?

서로 말 못하고 혈루성우(血淚成雨) 암천홍(岩天紅)이라.

 

암상(岩上)에서 과야(過夜)하여 하니, 심신(心神)이 자연(自然)하여, 한 집을 찾아가니 이 사람은 최처사(崔處士)라 하는 사람의 집이라, 자기를 청()한 즉 한 노인(老人)이 나와보고 물어 왈 어떠한 사람이냐 하거늘, 나는 밥을 빌어 먹으러 다니는 사람인데, 어찌 길을 잘못들어 하루저녁 자고 갈까 바래나이다.

그 노인(老人)이 성음(聲音)을 듣더니, 한참 두룬두룬 말을 않고 들어가며, 방안에서 한참 빙빙돌며 아이고 소리 나거늘, 들어간즉 깜짝 놀래 앉는지라, 그제야 그 노인(老人)과 전()에 한 번 봤단 말을 하니, 그 노인(老人)은 알지 못한다 하여라.

 

저녁을 먹고 노인(老人)과 함께 자다가 노인(老人)을 대책(大責) ,

네 들어라. 네가 무슨 처사(處士). 네 비록 신력(神力)이 있으면 나를 어찌 모르느냐. 이놈 이놈 무수(無數)한 호령(號令)을 하며 네게 있는 요귀(妖鬼)도 다 잡아 죽이자 하고 칼을 내어 시험(試驗)하니, 저 노인(老人)의 거동 보소. 벌떡 일어나 문을 차며 하는 말이 내 누구를 기다리며 있는 놈이 아닌데, 나를 칼로 그와같이 베어 죽이냐 하며 한참을 야단 후에 도로 잠을 자는지라.

 

그 방에서 천지도수(天地度數) 음양오행(陰陽五行) 하도낙서(河圖洛書) 기박(箕博)이며, 윷판꼰이판까지 부자(父子) 앉아 서로 뒤고 서로 승부(勝負)를 말하며, 서로 하도낙서(河圖洛書)된 말이며, 기박이치(箕博理治)를 말하야 왈 이치(理治)는 다 한가지요. 이치(理治)는 다 한가지다.

 

서로 말하며 대병(大兵)을 조발()하여 동서남북(東西南北)으로 빈틈없이 접접(接接)이 둘러 세우고 기치창검(旗幟創劍)을 진() 밖에 다치(多置)하고, 뇌고(雷鼓) 함성을 이루어 천지(天地) 벼락을 내리어 삼척검광(三尺劍光) 삼만리(三萬里)를 냅떠치니, 대정일국(大定一國) 태평배(太平盃).

 

대군행차(大軍行次) 벽설령(碧雪嶺)→벽소령(碧霄嶺)을 지리산(地理山)의 복병(伏兵)하고, 유연칠일(留連七日)한 연후(然后)에 글 지어 곡곡(谷谷)에 맡기어 놓고, 용약(用藥)하는 법()을 일러 삼신산령(三神山靈) 이른 후에 악양루(岳陽樓) 고소대(高沼臺)→고소대(姑蘇臺)를 잠간(暫間) 지내어 진주(晉州) 단성(丹城) 다 돌아서 하동(河東) 땅 지내 갖고 구례(求禮)를 당도(當到)하여, 유연삼일(留連三日) 정병(停兵)하고, 남원(南源) 땅 돌아오니, 이 때는 신미년(辛未年, 1931년) 십이월(十二) 이십오일간(二十五日간) 이니라.

 

 

2. 부응경(符應經)

 

  갱정유도(更定儒道, 일명 一心敎)의 기본경전.

 

  갱정유도(更定儒道, 일명 一心敎) 교조 강대성(姜大成, 1890~1954)의 어록을 모아 상·2권으로 1980년에 발행되었다. 교조의 뜻을 살리기 위하여 현행 한글 문법을 따르지 않고 당시의 문체 그대로 발행되어 있다. 원래는 교조 강대성이 1929년에 득도하고 1930년에 생사교역(生死交易)을 한 뒤 천어문답(天語問答)한 도덕경전과 시가문을 교조가 직접, 또는 제자들이 낱권으로 필사하여 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과 6·25전쟁을 거치는 동안 많은 양이 소실됨에 따라 남아 있는 365권을 한데 모아 발행한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주요경전은 해인경(海印經)·신화경(神化經)·축사경(逐邪經)·천사안위경(天思安尉經)·만민해원경(萬民解寃經)·전세경(傳世經)·시운기화경(時運氣化經)·도덕실기(道德實記)·평화문(平和文)·춘심경(春心經)·언전집포덕천하(言傳集布德天下)·위천신성문어(爲天辰星文語)·의서정리제세경(醫書正理濟世經)·천우신조귀래경(天佑神助歸來經)·부응경(符應經)정기안심가(定基安心歌)·신자가(信字歌)·상로가(像路歌)·가요집(歌謠集)등이다.

 

  그 내용은 천지운행에 따라 인간세상이 건설되는 모습과 제선(諸仙제불(諸佛제성(諸聖)이 가르친 충효열(忠孝烈)의 도덕을 밝혀 인간을 해원(解寃)시키고, 하늘이 곧 인간(天乃人)인 이념을 바탕으로 신천(新天신지(新地신인(新人) 세계를 창조, 동서학을 합일시켜 유도(儒道)를 다시 드러낸다는 것이다. , 우주의 원리에 따라 유··3도의 도리와 동서양의 사상을 하나로 합하여 지상천국을 건설하되 유교를 주체로 삼는다는 입장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응경 [符應經]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갱정유도(更定儒道)

 

  정식 명칭은 시운기화유불선동서학합일대도대명다경대길유도갱정교화일심(時運氣和儒佛仙東西學合一大道大明多慶大吉儒道更定敎化一心)이며, 줄여서 '일심교'(一心敎)라고도 한다. 갱정유도의 교리는 유··선에 근거하고 동·서학을 합일하되 그를 다시 유도로 구세한다는 기본 골격을 갖고 있다. 경전으로 부응경 符應經이 있는데, 이는 강대성이 쓴 영서(靈書)와 토설(吐說)을 모은 것이다.

 

  또 생사교역은 천지가 거꾸로 지천(地天)이 되었다가 다시 천지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선천세계가 운이 다하고 노쇠하여 혼돈의 세계로 화한 것을 본래의 세계로 돌려 놓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갱정유도에는 3대 기념일과 24절후 치성의 의식이 있다. 3대 기념일은 음력 48일의 지제(地祭), 86일의 영신당주임화생일(迎新堂主任化生日), 108일의 천제(天祭)가 있는데, 천제와 지제를 합쳐 '천지대제'(天地大祭)라고 부른다. 또 신자들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영선도인법(嬰仙導引法)을 행한 뒤 두발을 손질한다.

 

  신앙대상으로는 선당궁(仙堂宮)이 있는데, 이는 만선(萬仙)이 강림한 곳으로 제성제불제선(諸聖諸佛諸仙)과 충효열(忠孝烈)의 일기(一氣)가 모인 상징적 공간이다. 신자들은 이 선당궁 앞에서 치성을 올리고 신인합일(神人合一)을 빌고, 지상천국의 도래를 염원한다. 또 신자들은 치성 드릴 때 한복에 푸른 조끼를 입으며, 성인은 갓과 망건을 쓰고 아이들은 머리를 기른다.

 

  교세는 강대성이 중흥국 사건의 여파로 사망한 다음 많이 위축되었으며, 강대성이 법통을 전하지 않은 관계로 교단에 분열이 일어났다. 그결과 한때 남원본부파와 원평파(院坪派), 그리고 계룡산 신도안의 김옥기파(金玉基派) 등으로 분열되기도 했으나, 이중 남원본부파가 주류를 이루어 2대 교주로 김창석(金昌錫)이 선출되어 교단을 이끌었다. 1965년에는 신도 200여 명이 서울로 올라와 통일과 외세경계를 내세운 시위를 벌이다 입건되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1963년에 문화공보부에 공식 등록했으며, 현재는 포교보다 내수도(內修道)에 치중하고 있다.

 

출처 : 다음백과

 

 

4. 강대성(姜大成, 1890~1954) : 유도계 신종교인 갱정유도의 창시자.

 

  조실부모한 그는 17세 때에 결혼한 다음 청년기를 평범한 농사꾼으로 지냈다. 막일도 하고 방랑생활도 하다가 정읍에 들어가 초막을 짓고 수련의 기초를 쌓은 다음, 순창에서 오낙중(吳洛中)으로부터 음부경 陰符經을 전해 받으면서 본격적인 수행을 시작했다. 39세 때인 1928년에 순창 회문산 금강암에 입산, 처자와 더불어 금식하면서 고행하다가 19297월 신비적 체험을 통해 도각을 했다. 그후 아내 및 아들 용학과 더불어 세상사에 시달리는 창생을 구하고자 세 식구가 서로 붙잡고 슬피 울며, 그 눈물을 수건으로 닦아내어 나누어 마시고 '누건수'의 교리를 터득했다.

 

  이는 세 사람이 만민의 죄를 속죄하여 구원을 성취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그는 부인이 죽은 다음 그 시신과 6개월간 동거하며 자신, 죽은 부인, 아들의 삼부부자가 서로 영혼을 바꾸는 이른바 생사교역을 치렀다. 그후 강대성은 여광여취의 상태로 전라도·경상도를 방랑하며 치병과 이적을 행하였으며, 8·15해방 후 본격적인 포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점차 따르는 교인이 늘어나고 교세가 팽창하던 1954년 국가를 전복하고 중흥국을 세우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으며, 병보석 후 죽었다.

 

출처 : 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