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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서원 목간당에 게판된 용호구곡십영(龍湖九曲十詠) 제영시

도솔산인 2023. 4. 25. 16:42

용호서원 목간당에 게판된 용호구곡십영(龍湖九曲十詠) 제영시

 

 

  용호서원(龍湖書院)의 목간당(木澗堂)에 용호구곡십영(龍湖九曲十詠)이 게판(揭板)되어 있다. 용호구곡십영(龍湖九曲十詠)은 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남원 지역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덕행을 펼쳤던 영송(嶺松) 김재홍(金在洪, 1867~1939)이 지은 것이다. 용호구곡십영을 통해 용호구곡(龍湖九曲)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명명된 것인지 유추할 수 있다. 1수에 "회옹(晦翁) 선생이 무이구곡(泉石)에 은거한 뜻을 알아/천년 뒤에 무이도가(武夷櫂歌)를 차운하여 읊는다."라고 하여 용호구곡의 연원을 밝히고 있다. 용호구곡(龍湖九曲)은 용호서원이 설립된 1927년을 전후하여 원동 향약계(源洞鄕約契)에 소속된 유림들과 영송(嶺松) 김재홍(金在洪)에 의해 설정되었다.

 

  용호구곡십영 말미에 호상병수(湖上病叟)는 '용호동에 은거한 병든 늙은이'라는 의미로 자신의 겸칭이다. 낙관의 영송(嶺松)은 김재홍의 아호, 수오재(遂吾齋)는 당호이다. 용호구곡의 각석도 용호서원이 건립된 시점으로 추정한다. 제7곡을 용호구곡십영에는 비폭동(飛洞)이라고 하였고, 석각은 비포동(飛洞)으로 새겼다. 로 새긴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각석을 하기에 획이 복잡한 폭(瀑)포()로 빌려 쓰고 폭으로 읽었다.

 

  ▶ 김재홍(金在洪,1867~1939) : 조선 말기 유학자. 호는 영송(嶺松)·수오재(遂吾齋)이고, 전라북도 남원(南原) 두동(杜洞)에서 출생하였다. 가은공(稼隱公)의 7세손으로, 조부는 강암공(剛庵公)과 모친 조씨(趙氏) 사이에 태어났다. 처부는 이승갑(李承甲)이다. 7세 때 취학(就學)하여 한 번 보면 오래도록 기억하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 조부 강암공이 기뻐하며 반드시 학문에 성취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14세에 이미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마치고, 이후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서책을 두루 섭렵하였다. 부인은 양녕대군(讓寧大君) 이제(李禔)의 후손 완산이씨(完山李氏)이다. 저술로는 시문집 『수오재선생문집(遂吾齋先生文集)』 목활자본 19권 10책이 있는데, 1951년 아들 김종가(金種嘉) 등이 편집 간행하였으며, 권말에 김종가의 발문이 있다. 묘지는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팔덕면(八德面) 청계리(淸溪里) 연대산(蓮臺山)의 곤좌간향(坤坐艮向)에 자리하였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용호서원 목간당에 게판된 용호구곡십영(龍湖九曲十詠)

 

출처 : 고문헌과 바위글씨로 조명한 지리산 용호구곡(龍湖九曲)의 입지 및 경관특성(노재현, 강병선)

龍湖品題

 

龍湖品題

己巳春松察與諸司□游湖

上選次九曲地名刻平石年

八斗孫待行三月望日

 

品題 : 사물의 가치나 우열을 문예적으로 평가하는 일, 己巳 : 1929년, 九曲地名 : 구곡의 지명

 

 

석각을 다시 확인해야 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