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작업실

1586년 양대박의 「두류산기행록」에 나오는 두모담(頭毛潭)

도솔산인 2024. 6. 30. 10:25

1586년 양대박의 두류산기행록에 나오는 두모담(頭毛潭)

 

 

  양대박은 4회에 거쳐 지리산을 유람한다. 1560(경신) 봄에는 화개동천의 일원인 쌍계사·청학동 및 신흥사·의신사(擬神寺), 1565(을축) 가을에는 운성(雲城, 운봉)을 거쳐 황산(荒山)을 돌아 백장사(百丈寺)에 투숙하고 천왕봉을 유람한다. 1580(경진) 가을에는 연곡사(燕谷寺) 일원을, 1586(병술) 가을 92일부터 12일까지 1011일 천왕봉을 유람하고 두류산기행록을 남긴다.

 

  1586년 양대박의두류산기행록 94일 일정(백장사변사정 구거지도탄실상사두모담군자사)에서 두모담(頭毛潭)을 지나간다. 「두류산기행록」에 "바위 가운데는 절구처럼 우묵하게 들어간 것도 있고, 가마솥처럼 움푹 팬 것도 있었다. 두모담(頭毛潭)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중에는 밑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절구 같은 바위도 있고, 수레바퀴가 들어갈 만큼 큰 가마솥 같은 바위도 있었으니, 어쩌면 신령스런 용이 구슬을 감춘 굴이거나 옥녀가 머리를 감은 대야가 아닐까?"라고 묘사하고 있다. 두모담(頭毛潭)은 지금의 부연정(釜淵亭) 아래 부연(釜淵)를 가리킨다. 지금은 콘크리트 보(洑)가 있어 원형을 잃었지만, 가마솥 모양의 부연(釜淵)에서 옥녀가 머리를 감았다는 전설에서 두모담(頭毛潭)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당시 함께 지리산을 유람한 춘간(春澗) 오훈중(吳勳仲)의  頭毛潭(두모담) 시를 차운한 양대박의 시(次春澗頭毛潭韻)가 있다. 부연(釜淵)의 옛이름은 두모담(頭毛潭)이다. 참고로 부연(釜淵)에서 (釜)는 '가마솥부' 자이다. 끝.

 

 

 

 

1586년 양대박의두류산기행록

 

  ○9월 초4(을미) <중략>말을 타고 떠나, 도탄(桃灘) 하류를 건너 실상사(實相寺) 옛터를 찾았다. 절은 폐허가 된 지 1백년이 지나, 무너진 담과 깨진 주춧돌이 가시덤불 속에 묻혀 있었다. 오직 깨진 비석이 길옆에 쓰러져 있고 철불(鐵佛)이 석상(石床) 위에 우뚝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한 승려가 말하기를 이 절은 고려조에 창건한 대가람으로, 그 뒤 병화에 소실되었습니다. 지난날 화려하게 단청했던 불전이 지금은 시골 사람들의 농경지가 되고 말았으니, 또한 산가(山家)의 불행입다. 흥망성쇠는 석가여래라 하더라도 면할 수 없는 것이지요.”라고 하였다. 나와 오춘간은 말을 세우고 서성이다가 길을 떠났다.

 

  시내를 따라 5리쯤 가서 두모담(頭毛潭)에 닿았다. 일행은 모두 말안장을 풀고 쉬었다. 웅장한 두모담(頭毛潭)은 맑고 푸르러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바위 형세가 들쭉날쭉하여 그 기괴함을 형용할 수 없었다. 바위 가운데는 절구처럼 우묵하게 들어간 것도 있고 가마솥처럼 움푹 팬 것도 있었다. 두모담(頭毛潭)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중에는 밑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절구 같은 바위도 있고, 수레바퀴가 들어갈 만큼 큰 가마솥 같은 바위도 있었으니, 어쩌면 신령스런 용이 구슬을 감춘 굴이거나 옥녀가 머리를 감은 대야가 아닐까? 우리 세 사람은 두모담 가에 둘러앉아 실컷 구경하고, 주거니 받거니 술을 몇 순배 돌리고서 일어났다. 날이 저물어 군자사로 들어갔다.

 

 

次春澗1)頭毛潭韻 - 양대박(梁大樸, 1543~1592)

춘간(春澗)의 두모담(頭毛潭) 시를 차운하다.

 

吳勳仲積時同遊 : 오훈중(吳勳仲) 적(積)은 마침 같이 (지리산을) 유람함

 

靈禽救霜葉 : 영험한 새(靈禽)2)가 단풍잎을 지키고3)

灝氣生淸風 : 호기(灝氣)4)가 맑은 바람을 일으키네

激觸兩崖坼 : (黃江이) 격렬히 부딪쳐 두 절벽이 갈라지고

泓渟千古同 : 깊은 연못(泓渟)5)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네

縱橫女媧石 : 종횡으로 여와(女媧)6)가 돌을 다듬으니 

隱見馮夷宮 : 숨었던 풍이궁(馮夷宮)7)이 나타나네

願乘毒龍睡 : 독룡(毒龍)8)을 타고 잠들기를 바랬더니

驪珠求此中 : 여주(驪珠)9를 이속에서 찾았다네

 

출처 : 청계집(靑溪集)

 

 

注 1. 春澗 :  吳勳仲(오훈중)의 號 이름은 積. 1586년 양대박(梁大樸) 양광조( 梁光祖)와 지리산을 유람함.

2. 靈禽 : 영험한 새. 봉황

3.  소동파 시구에 坐看驚鳥救霜葉, 知有老蛟蟠石甕[앉아서 놀란 새들이 단풍잎을 지키는걸 보니. 오래된 용이 들어 있는 돌 항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겠네]

4. 灝氣 : 천지에 가득한 바르고 큰 기운

5. 泓渟 : 깊은 연못

6. 女媧 : 중국 신화에 나오는, 중매인(仲媒人) 수호 여신. 전설적인 황제 복희(伏羲) 아내로, 중매인의 규범과 결혼의 규범을 세우는 데에 이바지하였고 남녀 사이의 올바른 행실을 규정하였다. 예) 오색돌을 찾아 기둥으로 다듬어 무너진 하늘을 고침. 女媧煉石補天(淮南子 覽冥篇)

7. 馮夷宮 : 전설속에 풍이가 사는 궁을 말한다. 馮夷 : 황하의 신인 하백(河伯)’ 이름. 

8. 毒龍 : 독이 있는 용으로, 毒龍은 佛家에서 佛法에 대항한 괴물을 지칭하는데, 후에 욕망이나 망념을 상징하는 개념

9. 驪珠 : 용의  아래에 있다고 전해지는 구슬. 사람이 이를 얻으면 온갖 조화를 마음대로 부릴  있다고 한다.

 

 

※ 양대박(梁大樸, 1543~1592)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사진(士眞), 호는 송암(松巖죽암(竹巖하곡(荷谷청계도인(靑溪道人). 1592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학관(學官)으로서 아들 양경우(梁敬遇)와 가동(家僮) 50명으로 의병을 일으켰다.같은 해 6월 고경명(高敬命)이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고경명을 맹주로 추대하고 유학(幼學) 유팽로(柳彭老)와 함께 종사관(從事官)으로 활약하였다. 같은 달 7일 군대를 정비하고, 이튿날 출정에 나서자 전주로 가서 의병 2,000명을 모집하기도 하였다.

 

이때의 과로로 발병하여 진산(珍山)의 진중에서 죽었다. 1786(정조 10) 10월 전라도 진사 이진희(李鎭熙) 등의 상언(上言)에 의하여 병조참의로 추증되었으며, 17969월 보국숭록대부 판중추부사 겸 병조판서(輔國崇祿大夫判中樞府事兼兵曹判書)로 개증(改贈)되었다. 저서로는 청계집(靑溪集)이 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부연정기(釜淵亭記)

 

  시내가 마천(馬川) 동구에 이르러 기이한 바위의 등이 오목한 곳을 따라 67척 아래로 쏟아져 내려 떨어지는 포말이 백설을 뿜어내는 듯한 못을 이루었다. 세속에서 전하기를, 두류산맥(頭流山脈)이 동쪽으로 현해탄(玄海灘)을 건너 흑치(黑齒:)의 터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관청에서 큰 가마를 이 못에 가라앉혀 그 기()를 누르고자 하였다. 못이 부연(釜淵)이라 부르게 된 것은 실로 이를 말미암은 것이다. 이 못이 깊고 넓은 것은 보통 못이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川至馬川洞口 從奇岩背凹 瀉下六七丈 瀑沫噴雪成潭 俗傳 頭流山脈 東渡玄海 入黑齒之墟云 故自官府 沈巨釜于此淵 以厭厭其氣 淵之得名以釜寔由此 而其深且廣 非尋常淵湫可

 

時乙未上巳[때는 1955(을미)년 3월 3일)] 月城 金鍾嘉 記(월성 김종가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