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환희령
▣ 일 시 : 2023년 2월 19일(일)
▣ 코 스 : 반선-환희령-상부운
▣ 인 원 : 4명
▣ 날 씨 : 오후 맑음
환희령은 1580년 변사정의 「유두류록」과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등장한다. 변사정과 유몽인은 같은 4월 초에 지리산을 유람한다. 백장사를 출발하여 황계폭포를 지나 환희령을 넘어 반선(내원)으로 들어가 뱀사골 정룡암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2021년 6월 24일 一丁 민 선생님, 산영님과 함께 반선에서 올라가 환희령을 확인한 일이 있다. 상부운 마을에서 환희령 초입을 확인했지만 상부운과 반선을 연결하지 못했다. 지난 1월 14일은 환희령 초입에서 등산화가 계곡에 빠져 산행을 포기했고, 2월 4일은 길을 놓쳐 세걸산 동릉을 헤매다가 반선으로 내려왔다.
유람록 답사는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듭한다. 지명 하나를 고증하기 위해서는 끝없이 발품을 팔아야 한다. 환희령만해도 처음에는 내령에서 하부운으로 오는 사면 고갯길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운 마을 공한수 님에게 반선에서 상부운마을로 연결되는 고개를 '화느재'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한수 님은 부운마을 토박이로 계곡가든 펜션(전북 남원시 산내면 부운길 49)을 운영하는 분이다. '화느재'는 반선 사람들이 부운치를 넘어 운봉 장을 보러 다니는 고개이다. 주민들이 부르는 '화느재'가 유람록에 나오는 환희령으로 추정한다. 『운성지(1997)』에는 이 고개를 '하노재'라고 기록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권45(新增東國輿地勝覽 卷45)』 「강원도 불우조」에 환희령에 대한 설명이 있다. "노루를 본 곳을 장항(獐項)이라고 하고, 종소리를 들은 곳을 환희령(歡喜嶺)이라고 하였다. [見獐之地曰獐項 聽鍾之地曰歡喜嶺也]"라는 문구이다.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내원(內院)에 이르니 두 줄기 시냇물이 합쳐지고, 꽃과 나무가 산을 이룬 곳에 절이 세워져 있었다." 여기에서 내원은 내원암을 가리킨다. 현재 위치는 지리산 국립공원 뱀사골 탐방센터 부근이다. 환희령과 내원암을 연결하면 환희령은 내원암의 종소리가 들리는 고개가 된다.
하부운 마을에서 차단기를 지나 조금 오르면 물탱크 직전이 환희령 초입이다. 계곡에 들어서면 작은 경작지가 이어진다. 지금은 고사리밭이다. 드문드문 감나무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화전민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계곡을 초입에서 조금 올라가면 오래된 감나무 두 그루가 나온다. 이 지점에서 왼쪽 골짜기를 건너 환희령을 넘는 모랭이 길로 접어든다. 경사가 그리 완만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급하지도 않다. 너덜지대는 축대를 쌓은 흔적이 있다. 북사면 길은 흙이 흘러내려 길이 비좁다. 대여섯 번 모롱이를 돌면 고개가 나오는데 삼거리이다. 내원암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개 해발 650m 환희령이다.
환희령에서 반선 방향을 바라보니 숲에 가렸지만 반선교가 보이는 것 같다. 반선에서 환희령을 넘어 상부운 가는 길을 왕복하니 묵은 숙제를 한 듯 감회가 새롭다. 길의 폭이 넓은 곳은 약 2m나 된다. 남쪽 사면 길은 S자로 구불구불 이어지는데 길이 깊게 파여있어 과거의 통행량을 짐작할 수 있다. 길 가운데 굵은 소나무는 오랜 기간 길을 사용하지 않은 것도 알 수 있다. 내려가면서도 길은 확연하다. 마른 계곡을 두 번 건너면 곧바로 반선 도로에 닿는다. 시간은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 유몽인은 편한 길을 두고 왜 환희령을 넘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유몽인이 변사정의 길을 따른 것은 아닐까.
1. 1580년 변사정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환희령(歡喜嶺)
○ 만력(萬曆) 8년(선조 13년, 1580) 음력 4월 초3일 군회(君晦) 정염(丁焰), 사중(士重) 김천일(金千鎰), 계평(季平) 양사형(楊士衡) 대재(大哉) 하맹보(河孟寶) 등 여러 친구들이 백장사(白丈寺)에서 나를 찾아왔다. 나는 기쁘게 그들을 맞이하여 접대하였고 옛정을 모두 풀었으며, 친구들은 이틀을 머물러 잤다. <중략> (음력 4월 초5일) 이에 각자 대나무 지팡이 들고 짚신을 신고는 마침내 길을 나서 산을 내려가 논도랑이나 밭두둑을 따라 고불고불한 길을 가서 황계 폭포(黃溪瀑布)를 지나 환희령(歡喜嶺)을 넘었다. 지금껏 쭉 이어진 길이 20리인데, 모두 푸른 솔과 초록빛 넝쿨이었다. 밝은 바람이 옷깃 속으로 들어오고 정룡암(頂龍庵)에 도착하니 바위 사이로 이름 모를 꽃들이 피었다 떨어지고 골짜기엔 이름 모를 새가 오고 갔다. 눈으로 경관을 바라보고 귀로 숲의 소리를 들으니 참으로 이곳은 신선이 사는 세계였다. 서로를 돌아보며 담소를 나누는데 날이 장차 저물려고 하였다. 여러 친구들과 함께 이 암자의 북당(北堂)에서 잤다.
2.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환희령(歡喜嶺)
○ 4월 1일 <중략> 황계 폭포(黃溪瀑布)를 지나 환희령(歡喜嶺)을 넘어 이어진 30리 길이 모두 푸른 노송나무와 단풍나무였으며, 비단 같은 날개를 가진 새들이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날아다녔다. 내원(內院)에 이르니 두 줄기 시냇물이 합쳐지고, 꽃과 나무가 산을 이룬 곳에 절이 세워져 있었다. 마치 수를 놓은 비단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였다. 소나무 주변의 단(壇)은 숫돌처럼 평평하였고, 금빛과 푸른빛의 단청이 숲 속 골짜기에 비추었다. 또 천 번이나 두드려 만든 종이에 누런 기름을 먹여 겹겹이 바른 장판은 마치 노란 유리를 깔아놓은 듯, 한 점 티끌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 허연 늙은 선사(禪師)가 승복을 입고 앉아 불경을 펴놓고 있었다. 그의 생애가 맑고 깨끗하리라 여겨졌다. 이에 머무는 대신 시를 지어놓고 떠났다.
注 1. 내원암(內院庵) : 지리산 반야봉 아래에 있으며 동서의 시냇물이 합류한 위에 있다. 그윽하고 깊으며 맑아서 사람들은 지리산 제일의 명찰이라고 한다. 시승 처능의 시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목줄기 뒷봉우리 석양빛이 밝고 골짜기 바람은 살포시 구름을 흩는다.' 『운성지』 구지(舊誌) 상권(乾) 8권 사찰. 2. 내원寺(內院寺) : 내원사는 지리산에 있다. 또한 대암난야(臺巖蘭若)라고 일컫는다. [內院寺 在智異山 又稱臺巖蘭若]『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卷五下 寺刹.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의 내원사는 현 정진암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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