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 1190

난사(蘭史) 김사문(金思汶) 의 용호구곡 경승안내

난사(蘭史) 김사문(金思汶)의 용호구곡 경승안내 용호구곡(龍湖九曲)은 용호서원을 건립한 원동향약계와 사림에 의해 일제 강점기에 설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용호서원 목간당(木澗堂)에 게판되어있는 용호구곡십영(龍湖九曲十詠) 제영시는 영송(嶺松) 김재홍(金在洪, 1867~1939)이 지은 것이다. 용호구곡 석각 시기 또한 용호서원이 건립된 시점(1927년) 이후로 본다. 「용호구곡 경승안내」에 남원 군수 李東漢(1923~25)과 白定基(1926~27)가 군수 재임 시 이곳을 다녀갔을 당시에는 용호구곡의 이름이 없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1948년부터 약 4년간 호경리에서 호운(湖雲) 서당 훈장을 하였던 난사(蘭史) 김사문(金思汶, 1889∼1978)은 「용호구곡 경승안내(龍湖九曲景勝案內, 1940)」를 남..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에 나오는 송림사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에 나오는 송림사 ▣ 일 시 : 2023년 05월 07일(일) ▣ 코 스 : 구룡계곡 주차장-여궁석-석녀골-송림사지 ▣ 인 원 : 3명 ▣ 날 씨 : 비 ■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 "청류를 거슬러서 남쪽으로 1리를 나아가면 일원의 폐사지에 패탑(敗塔)과 잔와(殘瓦)가 지나간 역사를 증(證)하나니 송림사(松林寺)의 유허이다. 절은 고려시대 고찰인데 한때는 자못 부유하고 번성하였던바, 용호의 명승을 이웃한 탓으로 소인(騷人, 시인과 문사)과 풍류객(風客)의 등림(登臨)이 매우 많은지라, 스님들(衲子輩)이 고통을 당하였더니(喫) 저들의 불례(不禮)를 마음에 품은 어떤 지관(一地師)이 객을 막을(防) 묘(妙)한 방법(道理)이 있음을 말하여, 절의 남쪽의 석퇴(石堆)를 부파(斧..

지리동부 영랑대 진달래 화신(花信)을 듣고

지리동부 영랑대 진달래 화신(花信)을 듣고 ▣ 일 시 : 2023년 04월 22일(토)~23일(일) ▣ 코 스 : 광점동-어름터-방장문-청이당-영랑대(원점회귀)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영상 5도) 月夜聞子規(달밤 두견새 울음소리를 듣고)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 寂寞殘宵月似派 : 적막한 밤 달빛은 물결처럼 잔잔한데 空山啼遍奈明何 : 텅 빈 산 곳곳에서 두견새 울음소리 날이 새면 어이하나 十年痛哭窮途淚 : 십 년을 통곡한 궁한 자(*)의 눈물 與爾朱脣血孰多 : 그대의 붉은 입술과 핏빛 중에 어느 것이 짙은가. ☞ 殘宵 = 殘夜 새벽녘, 새벽 4시경. 遍 ; 두루, 온통, 곳곳 窮途 : 끊긴 길. 막다른 길, 곤궁한 처지. 곤경에 처한 사람. (*)옛날 중국 촉(蜀) 나라의..

용호서원 목간당에 게판된 용호구곡십영(龍湖九曲十詠) 제영시

용호서원 목간당에 게판된 용호구곡십영(龍湖九曲十詠) 제영시 용호서원(龍湖書院)의 목간당(木澗堂)에 용호구곡십영(龍湖九曲十詠)이 게판(揭板)되어 있다. 용호구곡십영(龍湖九曲十詠)은 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남원 지역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덕행을 펼쳤던 영송(嶺松) 김재홍(金在洪, 1867~1939)이 지은 것이다. 용호구곡십영을 통해 용호구곡(龍湖九曲)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명명된 것인지 유추할 수 있다. 1수에 "회옹(晦翁) 선생이 무이구곡(泉石)에 은거한 뜻을 알아/천년 뒤에 무이도가(武夷櫂歌)를 차운하여 읊는다."라고 하여 용호구곡의 연원을 밝히고 있다. 용호구곡(龍湖九曲)은 용호서원이 설립된 1927년을 전후하여 원동 향약계(源洞鄕約契)에 소속된 유림들과 영송(嶺松) 김재홍(金在洪)에 의해 설정되었다. ..

1655년 김지백의 「유두류산기」에 나오는 파근사 II

1655년 김지백의 「유두류산기」에 나오는 파근사 II ▣ 일 시 : 2023년 04월 일(일) ▣ 코 스 : 선유폭포-오강바위-월계재-상허리길-암자터1,2-파근사터-암자터-광속단-1401봉-암자터-차돌바위-대장간터-선유폭포 ▣ 인 원 : 5명(답사팀) ▣ 날 씨 : 맑음 1655년 10월 8일 김지백은 원천원(元川院, 현 지리산둘레길 남원 주천 안내 센터)에서 일행들을 만나 용추(龍湫)를 거쳐 파근사에서 묵고, 10월 11일까지 나흘간 화개동천 일원을 유람한다. 나흘간의 유람에서 일행들이 지은 100여 편의 한시를 1권의 시집으로 만들면서 김지백이 기문(유두류산기)을 짓는다. 용추동(용호구곡)에서 파근사로 가는 길은 ① 제1곡 松瀝洞(송력동)에서 제9곡 교룡담(交龍潭)까지 협곡으로 가는 길, ② 제6곡..

1655년 김지백의 「유두류산기」에 나오는 용추(龍湫)

1655년 김지백의 「유두류산기」에 나오는 용추(龍湫) ▣ 일 시 : 2023년 04월 16일(일) ▣ 코 스 : 1곡 松瀝洞(송력동)-2곡 옥룡추(玉龍湫)-3곡 학서암(鶴捿岩)-4곡 서암(瑞岩)-5곡은 유선대(游仙坮)-6곡 지주대(砥柱坮)-7곡은 비폭동(飛瀑洞)-8곡 경천벽(擎天壁)-9곡 교룡담(交龍潭) ▣ 인 원 : 2명(지리산아님) ▣ 날 씨 : 흐림 1655년 김지백의 「유두류산기」에 용추(龍湫)라는 지명이 나온다. 용추(龍湫)는 용호구곡의 옛이름이다. 용호구곡은 근세에 붙여진 이름으로 이전에는 원천(元川). 용호동(龍湖洞), 용추동(龍湫洞)이라고 하였다. 1752년(영조 28)에 발간된 『용성지』의 '산천조(山川條)'에 용추동(龍湫洞)으로 소개하고 있다. 용호동 입구에 창암(蒼巖) 이삼만 (李三..

쌍계석문 정태현(鄭泰鉉) 인명 석각

쌍계석문 정태현(鄭泰鉉) 인명 석각 ▣ 일 시 : 2023년 04월 09일(일) ▣ 장 소 : 쌍계사 쌍계석문 ▣ 사 진 : 칠성님 얼마전 남해에 계신 송장섭 선생님께 쌍계 석문에 정태현(鄭泰鉉) 인명 석각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죽헌(竹軒) 정태현(鄭泰鉉, 1858~1919) 공은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1450~1504) 선생의 14대손으로, 1885년 천왕봉에 일월대(日月臺) 석각을 새긴 주인공이다. 마침 칠성님이 석각 이야기를 듣고 쌍계석문 석각 사진을 보내왔다. ☞ 지리산 천왕봉 일월대(日月臺) 석각 정태현서 : https://lyg4533.tistory.com/16488797 ▶ 정태현(鄭泰鉉, 1858~1919) 대한제국기 충북관찰사, 가선대부 등을 역임한 관료. 본관은 하동(河東)...

황령(黃嶺)과 황령암(黃嶺庵) 터를 찾아서 III

황령(黃嶺)과 황령암(黃嶺庵) 터를 찾아서 III ▣ 일 시 : 2023년 4월 10일(월)~11일(화) ▣ 코 스 : 정령치-개령암 마애불-황령-달궁산성-매막봉-황령암지-황석산막 ▣ 인 원 : 5명 ▣ 날 씨 : 맑음 서산대사의 「황령암기」에 "마한(馬韓)의 왕이 피신하여 달궁에 도성을 쌓을 때, 黃·鄭 두 장군을 시켜 공사를 감독하였으므로, 두 사람의 성을 따서 황령(黃嶺)과 정령(鄭嶺)이라고 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반야봉의 좌우에 황령과 정령이 있다."라는 문구는 오히려 혼란을 준다. 그래서 관련 자료를 읽어보고 지리산길 지도에 표기된 황령암 터를 답사하게 되었다. 황령암지는 있으나 황령이 없다. 관련 기록을 요약하면, ① 황령 남쪽에 황령암이 있다. ② 황령암 앞에는 황계수가 흐른..

월출산 용암사지에서 하룻밤(230331~0401)

월출산 용암사지에서 하룻밤(230331~0401) ▣ 일 시 : 2023년 03월 31일(금)~04월 01일(토) ▣ 코 스 : 대동저수지-용암사지-향로봉능선-구정봉-마애석불-용암사지-대동저수지 ▣ 인 원 : 5명(산친들과) ▣ 날 씨 : 맑음 월출산 용암사지 주변 정밀지표조사 ■ 용역보고서 주요내용 월출산 용암사지 주변 정밀지표조사 용역보고서가 나왔다. 영암군의 의뢰로 (재)나라문화연구원(원장 박태홍)이 맡아 추진한 이번 용역은 1995년 지표조사를 통해 용암사가 고려시대 초반 조성된 것으로 확인되고, 가람의 규모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법당과 남쪽에 작은 요사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일원에 대한 지표조사를 통해 용암사지를 복원하기 위해 이뤄졌다. 이번 용역은 용암사지를 포함해 대동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