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 1194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묘정암은 어디인가?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묘정암(묘정사)은 어디인가? 묘정암에 대한 기록은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2회 등장한다. 지난 일요일 조박사님에게 카톡으로 사진 몇 장 날아왔다. 의중 마을과 금계동에 살았던 '탄수 이종식(李鐘植, 1871~1945) 선생의 비결문 명문 논집'에 상내봉(향로봉)에 관한 이런 기록이 있다. '晨明早日霜老峯 : 동이 트면 해가 일찍 뜨는 상로봉은 陽色眺會避難處 : 양기가 빠르게 모여드는 피난처네' 이재구 선생은 향로봉(상내봉)에 대하여 행로봉이 셋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지만, 어느 정도 결론이 난 듯하다. 얼마전 조박사님과 향로봉 동쪽의 등고선과 항공 사진을 보고 대화를 나눈 일이 있다. 점필재의 아홉 모랭이 길과 감수재의 초령길, 어우당의 유몽인길, 일제강점기의 강계형과 권..

북두추성이 조림하는 칠성동을 찾아서(201128~29)

북두추성(北斗樞星)이 조림(照臨)하는 칠성동(七星洞)을 찾아서 ▣ 일 시 : 2020년 11월 28일(토)~11월 29일(일) ▣ 코 스 : 백무동-두지터-칠성동 ▣ 인 원 : 4명(문 회장님, 임사천님, 반야님) ▣ 날 씨 : 맑음 영하 1도 지난 4월 21일 대둔산 석천암 천산 스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천산 스님은 약관에 통도사에 입산한 분이다. 천산 스님의 소개로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조용헌 박사를 만났고, 5월 16일 점필재의 영랑대로(永郞大路) 구롱(九隴) 길에서 방장문 석각을 찾았다. 그 후 함양 서복연구회 문 회장님의 안내로 방장 제일문을 답사하고 탄수 공과 삼송 공을 만났다. 나는 불교도 역학도 명리도 풍수도 모르는 데다가 대학에서 10.26과 5.18을 겪었으니 겨우 고등학교 ..

일수불퇴 한번 상내봉은 영원한 상내봉인가?

일수불퇴 한번 상내봉은 영원한 상내봉인가? 점필재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향로봉(상내봉)은 어디인가? 2017년 4월 초파일 점필재길 전 구간을 답사하기 위해 동강마을을 출발하였다. 아침에 산지골 펜션에 들러 차를 한 잔 얻어마셨다. 유진국 사장님이 고맙게도 대봉 곶감을 한 봉지 내주셨다. 적조암에서 아침 공양을 하고 삼열암, 독녀암, 의논대에 들렀다가 안락문을 지나 능선에 올라섰다. 이 능선길은 옛길이 아니고 마적동의 대종교 사람들이 천왕봉에 오르기 위해 만든 길이라고 한다. 진달래가 피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날이라 햇살은 따스했다. 나만의 착시현상일까. 이때 오뚝이 바위가 향로로 보이는 것이다. 유람록 답사는 가끔 이적 체험을 하기도 한다. 이때가 부처가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

가객님의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 발간을 송공합니다.

가객님의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 발간을 송공합니다. 지리 99 가객님이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를 발간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가객님보다 유두류록 답사를 늦게 출발했지만, 그 과정의 노고를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은 저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한시도 머릿속에서 유두류록이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거기에 대전의 이 아무개가 수년 동안 이곳저곳을 이러쿵저러쿵했으니 많은 부담이 되었을 겁니다. 탐구팀에 유두류록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습니까. 노를 젓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배를 타고 선장이 되어 15년을 넘게 항해한 것입니다. 유두류록 탐구는 강산이 변하고도 또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선생이 노년의 대부분을 쏟아부은 열정과 집념의 결정체라고 생각합니다. 그 노고를 누가 속속들이..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을 좇아서(201121~1122)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을 좇아서(201121~1122) ▣ 일 시 : 2020년 11월 21일(토)~11월 22일(일) ▣ 코 스 : 삼화마을-소통폭포-영대-흑담-황계폭포-남부종복원센터-황석산 오두막 ▣ 인 원 : 4명(산영님, 하늘바위, 정선생) ▣ 날 씨 : 맑음 1611년 3월 28일 어우당 유몽인은 남원(용성) 관아를 출발하여 재간당에서 일행들과 만나 하룻밤을 留하고, 3월 29일 요천을 거슬러 반암→황산 비전→인월을 지나 백장암에 이른다. 유몽인의 4월 1일의 일정은 백장암을 출발하여 →황계 하류→영대촌→흑담→환희령→내원→정룡암에서 1박을 한다. 2020년 1월 7일 재간당에서 반암, 황산 비전과 백장암을 찾아가 보기로 하고, 산동면 목동에 있는 재간당을 향했다. 목동 마을 앞에 도착하니..

마천면 의탄리 금계동과 새별들 덕암의 성혈 이야기

마천면 의탄리 금계동과 새별들 덕암의 성혈 이야기 지난 11월 6일 탄수(灘叟) 이종식(李鐘植, 1871~1945) 선생의 손자 이○○ 의원에게 '방장산 제일문이 금대사에 있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삼송(三松) 임응택(林應澤, 1879~1951) 선생의 와유강산(臥遊江山)에 방장산 제일문에 대한 기록이 있다. 금대사에 '數間石室 정케지어 方丈山 第一門을 門上에 새겼다.'라는 내용이다. 이 의원의 말에 따르면 금대사에 있던 방장산 제일문은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재 방장제일문은 탄수(灘叟) 공의 유언에 따라 사후 6.25가 끝날 무렵 후손들이 새긴 것이다. 탄수(灘叟) 공의 아버지 죽포(竹圃) 이규현(李圭玹, 1848~1935) 공이 정미(1907년) 의병장 석상용(石祥龍, 1870~1920) ..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영신대의 아리왕탑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영신대의 阿里王塔 김종직의 유두류록과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영신사의 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영신사 서북쪽 높은 봉우리에는 조그마한 탑이 있는데, 그 돌의 결이 아주 곱고 매끄러웠다. 그 중심에 철을 꿰어놓았는데 두어 개층이 유실되었다.(김종직)' '아리왕탑(阿里王塔)은 서쪽에 서 있다.(유몽인)'라고 설명하고 있다. 탑의 위치가 서북 쪽과 서쪽이 방향이 일부 일치하나 같은 탑을 설명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현재 남아 있는 서쪽에 있는 돌무더기가 있는 곳을 아리왕탑 지로 추정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아리왕탑에서 좌고대와 추강암이 보인다. 탑의 형태에 관한 기록은 '조그마한 탑이 있는데 그돌의 결이 아주 곱고 매끄러웠다.(김종직)'라는 것이 유일한 단서이다. 혹..

점필재의 의논대 기행시에 나오는 소림선방

점필재의 의논대 기행시에 나오는 소림선방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방로(이하 점필재 길)'의 개방을 앞두고 여러 가지 논란과 오해가 빚어지고 있다. 탐방로의 명칭은 탐방로 개방의 계획 단계에서 함양군이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나머지 몇몇 오해는 수락석출로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드러나 오해가 풀릴 것이다. 함양군에서 한신 지곡, 두류 능선, 점필재 길 세 가지 안을 놓고, 추진하는 분들이 이해관계가 있는 주민들을 설득하여 백무동과 추성동에서 점필재 길로 양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 탐방로 명칭에 대해서는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방로’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다. 지리 99가 맞는 말이다. 서부 경남 신문에 ‘김종직의 유두류록에는 소림 선방이 없다. 유두류 기행시 의논대의 국역이..

점필재 길 의논대 시에 나오는 소림선방(201113~1115)

점필재 길 의논대 시에 나오는 소림선방(201113~1115) ▣ 일 시 : 2020년 11월 13일(금)~11월 15일(일) ▣ 코 스 : 송대-선녀굴-의논대-고열암-미타봉(소림선방)-향로봉-안락문-독녀암-신열암-고열암-의논대-선녀굴-송대마을 ▣ 인 원 : 2명(김산님) ▣ 날 씨 : 포근함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방로(이하 점필재 길)'의 개방을 앞두고 여러 가지 논란과 오해가 빚어지고 있다. 탐방로의 명칭은 탐방로 개방의 계획 단계에서 함양군이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나머지 몇몇 오해는 수락석출로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드러나 오해가 풀릴 것이다. 함양군에서 한신 지곡, 두류 능선, 점필재 길 세 가지 안을 놓고, 추진하는 분들이 이해관계가 있는 주민들을 설득하여 백무동과 추..

삼송(三松) 임응택(林應澤) 선생의 와유강산(臥遊江山)

삼송(三松) 임응택(林應澤) 선생의 와유강산(臥遊江山) 임응택(林應澤, 1879~1951) 본관은 羅州林氏 선생의 호는 삼송(三松) 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 의중 마을에 살았던 인물. 三松 家門에 三兄弟 有하온바 長孫은 長松 仲孫은 二松 季孫은 三松이라 號를 定하였음. 마암당을 지은 은계(隱溪) 이진우(李璡雨, 1897~1954) 선생의 앞집에 살았고, 현재는 그분의 손부가 살고 있음. 젊었을 때 지리산을 유람하고 말년에 읽어보기 위해 와유강산을 저술함. 저술 시기는 산청의 지명으로 미루어 1914년 이후로 추정함. 내용은 지리산 10勝地와 9奇, 18景을 읊은 3(4).4조의 4음보 가사 형식임. 펜으로 쓴 필사본으로 마천 읍내 당흥 부락 김수태(92세 1929생) 어르신이 17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