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작업실 43

화학동천(花嶌洞天)과 梅村鄭先生遊憩所 운학정(雲鶴亭)

화학동천(花嶌洞天)과 梅村鄭先生遊憩所 운학정(雲鶴亭) 마천면 소재 마애석각 명문을 조사하면서 문헌과 지역민들의 세보를 통해 옛 지명을 더러 확인할 수 있었다. 개암선생 유허비의 구송정(九松亭)과 삼괴정(三槐亭), 해주석씨세보의 두류암(頭流巖), 나주임씨세보의 공달비산(蚣達飛山)과 청주한씨세보의 공달산(蚣蟽山), 도화곡(桃花谷, 견성골), 한조봉(鷴鳥峰, 황새봉)과 학조봉(鶴鳥峰), 택리지의 벽소운동(碧宵雲洞), 와유강산(臥遊江山)의 칠성동(七星洞)과 천진폭포(天津瀑布) 등 여러 곳이다. 구전과 일치하는 곳도 있지만 잊혀지거나 와전된 지명도 있었다. 마천면 덕전리 소재 화학동천(花嶌洞天) 암각 명문도 그중 하나이다. 嶌는 본래 자전에 '섬도(嶋)'의 이체자인데, 겸암일기(유운룡)와 와유강산(임응택)에서 '..

遊頭流山百韻[두류산유람 백운]

어우집 후집 제2권 / 시(詩) 두류록(頭流錄) 遊頭流山百韻[두류산유람 백운] 太虛無閡煦氳氤 : 막힘없는 하늘은 온화한 기운 보내고 品物咸由二氣甄 : 음양의 조화로 모든 만물 이루어지네. 融作川流非决導 : 녹아서 흐르는 시내는 만든 물길 아니요 結成山嶽孰陶勻 : 맺혀서 이루어진 산악은 누가 빚어내었나. 穹窿五有寰中秀 : 천하에는 우뚝하게 빼어난 산 다섯이요 縹緲三稱海外神 : 바다밖엔 아득하게 신선산이 셋이라네. 箕國頭流輿地別 : 우리나라 두류산이 땅은 다르지만 仙家方丈號名眞 : 선가의 방장산과 이름이 부합하네. 飫聞南紀雄爲鎭 : 남방의 웅장한 진산을 익히 들었으니 踔遠中華隔幾塵 : 중화와는 저 멀리 까마득히 떨어졌네. 之者擧嫌途道絶 : 가는 자들 모두 길이 끊어짐을 꺼리니 於乎虛作狖鼯隣 : 아, 원숭이와..

마천면 군자리 도마마을 은적암터

마천면 군자리 도마마을 은적암터 ▣ 일 시 : 2021년 11월 22일(월) ▣ 장 소 : 도마사터 은적암터 외 ▣ 인 원 : 3명(문회장님, 도마마을 한오식 님) ▣ 날 씨 : 맑음 ▶ 도마사터 : 군자리 도마안길3 도마사(都馬寺)에 관한 기록은 마천 의중마을에 살았던 삼송(三松) 임응택(林應澤, 1879~1951) 선생의 와유강산이 유일하다. '운학정을 잠깐 지나 도마사와 군자사의 옛터를 찾아드니 세월이 흘러 매우 오래된 옛 절터가 속가의 마을이 되었다. '亭子(雲鶴亭)를 暫間지나 都馬寺와 君子寺에 옛터를 찾아드니, 年久歲深 古寺터가 俗家成村 되었으니...'라는 내용이다. 전하는 말에 사진 배나무가 있는 곳이 우물터라고 하는데 동자가 우물에 빠져죽는 사고가 있어 우물을 메웠다고 한다. 마을 뒤에 소나..

탄수이종식선생금계동창시기념비(灘叟李鍾植先生金鷄洞創始紀捻碑)

탄수이종식선생금계동창시기념비(灘叟李鍾植先生金鷄洞創始紀捻碑)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금계길 13-8(의탄리 902번지) 행적자 : 탄수 이종식 연대 : 한말과 일제강점기 석각시기 : 2004년(甲申) 10월 10일 [개요] 이종식(李鐘植, 1871~1945)공의 본관은 경주 호는 탄수(灘叟), 마천면 의탄리 의중 마을에서 호군가선동추(護軍嘉善同樞)지낸 이규현(李圭玹, 1848~1935) 公의 三男으로 태어났다. 죽포 이규현(李圭玹) 공과 장형(長兄) 이종순(李鐘純 1866~1913) 공이 정미(1907년) 의병장 석상용 의진에 총과 군자금을 지원했다가, 장형(長兄) 이종순(李鐘純) 공이 붙잡혀가자, 탄수(灘叟)공이 실상사에 주둔한 일본군을 찾아가 처형 직전의 장형(長兄)을 구명하였다. 이후 탄수공이 금대..

花嶌(鶴)洞天(화학동천)

花嶌(鶴)洞天(화학동천)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 산 52-5 번지 행적자 : 미상 연대 : 미상 석각시기 : 미상 [개요] 嶌는 島(섬도, 嶋)의 이체자이다.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1539~1601) 선생의 겸암기(謙菴記)와 임응택(林應澤, 1879~1951) 선생의 와유강산(臥遊江山)의 필사본에 靑鶴洞(청학동)을 靑嶌洞(청학동)으로 쓴 예가 있다. '꽃이 피고 학이 날아드는 신선의 세계'로 이해가 된다. 실제로 실덕마을에 꽃밭머리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꽃밭머리(실덕마을)는 화학동천으로 들어가는 초입이라는 의미이다. 嶌(학)은 䳽(학)에서 우측 鳥(새조)를 생략하고 隹(새추) 대신 鳥를 썼다. 注 嶌 : 山+鳥, 䳽, 鶴, 섬도의 이체자를 鶴으로 씀.

恥菴自矜韵(치암자긍운)외

恥菴自矜韵(치암자긍운) 頭流北麓自生鄕 : 두류의 북록은 我生의 고을이요 獨擅豪華八十霜 : 독천으로 호화로이 팔순이 되었네 宏壑瀑潭雄鼓笛 : 큰골의 폭담은 북소리 웅장하고 竹林禽譟奏笙簧 : 죽림의 새소리는 생황의 연주로세 春園寂寞鶯歌囀 : 춘원은 적막한데 앵가를 울리고 秋景美風畵幅張 : 가을 경치 고운 단풍 화폭을 펼쳤네 莫道書生骨相薄 : 서생의 골상이 박하다 말을 마오 自矜淸福享無量 : 자신의 자랑 청복 누림이 무량하오 槍岩山將軍大坐訣(창암산장군대좌결) 方壺屹立脉流連 : 방호산 높이 서서 맥이 흘러 연했고 淑氣灵棱壙席圓 : 맑은 기운 신령스런 능맥 천광 자리 둥글다. 縱閱滄桑猶不変 : 비록 창상을 겪었으나 오히려 변함이 없고 槍岩大坐孰能穿 : 창암산 장군대좌 누가 능히 찾으리 甑蛮庚兌三峯揖 : 시루봉은 ..

1593년 진주성 함락과 의병장 변사정의 부장 이잠(李潛)

1593년 진주성 함락과 의병장 변사정의 부장 이잠(李潛) 1. 燃藜室記述卷之十六 宣祖朝 晉州城陷阴兵撤還 ○ 二十九日賊陷晋州。倡義使金千鎰與其子象乾。慶尙右兵使崔慶會。忠淸兵使黃進。(以上三人三忠祠于晉陽) 全羅復讎大將高從厚。右義兵副將高得賚。左義兵副將張潤。義兵副將李潛。靈光義將沈友信。泰仁義將閔汝雲。海南義將任希進。陶灘伏兵將姜希甫。義兵將李繼璉。金海府使李宗仁。泗川縣監金俊民。藍浦縣令宋悌。本州府使徐禮元。義兵將姜熙說。金海縣令曹慶亨。判官崔琦弼。佐郞梁山璹(숙)。主簿柳復立等。皆死之。(忠淸守令之從兵使死者多不記) 1593년 6월 29일(음) 왜적이 진주성을 함락하였다.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1537-1593)과 그의 아들 김상건(金象乾), 경상도우병사 최경회(崔慶會, 1532-1593), 충청병사 황진(黃進, 1550-1593), ..

1686년 정시한 산중일기의 묘적암 전대(前臺)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묘적암 전대(前臺)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은 상헌수필(橡軒隨筆)에서 '만물을 잘 관찰하는 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만물이 없다.(善觀物者 無物不爲助)'라고 하였다. 유람록 답사는 암자터와 암자터, 샘터와 샘터, 돌포장과 축대, 숯굴과 숯굴을 연결하는 퍼즐 맞추기 놀이이다. 1686년 9월 2일 정시한은 무주암에서 아침 식사 후에 아들 도항(道恒)이와 혜철(惠哲) 수좌와 함께 묘적암으로 가는 도중에 계학(戒學) 스님을 만나 서암(西庵) 터에 들른다. 여기에서 서암은 서동고암터를 가리키는 듯하고, 묘적암터는 회암당 승탑터로 추정한다. 정시한은 무주암에서 서암(西庵) 터를 다녀온 후 묘적암으로 돌아와 묘적암 전대에 올라갔다가 방으로 들어간다. 선..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혈암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혈암 1.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지난 고려 말 왜장 아기발도(阿只拔都)가 많은 병사를 거느리고 영남 지방을 침략하였는데, 그가 향하는 곳은 모두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 나라의 참위서(讖緯書:비결서)에 “황산에 이르면 패하여 죽는다.”라고 하였는데, 산음(山陰) 땅에 ‘황산(黃山)’ 이란 곳이 있어 그 길을 피해 사잇길로 운봉 땅에 들이닥친 것이다. 그때 우리 태조(太祖) 강헌대왕(康獻大王)께서 황산(荒山)의 길목에서 기다리다 크게 무찌르셨다. 지금까지 그 고을 노인들이 돌구멍을 가리키며, ‘옛날 깃발을 꽂았던 흔적’이라고 한다. 적은 군사로 감당하기 어려운 적과 싸워 끝없는 터전을 우리에게 열어주셨으니, 어찌 단지 하늘의 명과 인간의 지모 이 둘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