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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과 박회성 관련 고문헌의 기록

도솔산인 2022. 2. 1. 23:14

추성과 박회성 관련 고문헌의 기록

 

1. 추성과 박회성의 개요

 

1530년 편찬된《신동국여지승람》제31권 「경상도(慶尙道) 함양군(咸陽郡)」편에 추성(楸城)과 박회성(朴回城)에 대한 기록이 있다. 추성리 두류능선 기슭 성안마을 부근의 추성과 영랑대 아래 초암능선의 박회성을 언급하고 있다. 주민들의 구전에 추성은 가락성(가야성)이라고 전한다. 추성 주변에 국골, 어영골, 대궐터, 말달릴 평전, 두지터 등의 지명이 남아 있어 금관가야 구형왕의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구전과 세전(世傳)을 기록한 《신동국여지승람》으로 축성의 시기와 성격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함양문화원에서 발간한 함양의 성곽(2019)》에 추성의 위치(지리산 하봉 아래 칠선계곡 방향)에 대한 설명은 오류로 보인다. 지리산 하봉 아래 초암능선에 있는 고성은 박회성이다.

 

 추성(楸城)은 방어성, 박회성(朴回城)은 피난성으로 성격이 다른 산성이다. 일각에서는 추성을 마천성으로 보고 있다. 《삼국사기》에 무왕 33년(632) 무왕이 개축했다는 마천성(馬川城)은 내마와 외마마을의 지명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무왕이 생초의 들판에서 사냥을 했다는 내용도 흥미롭다. 백제의 무왕이 친정(親征)을 하여 마천성(추성)과 생초 일대를 점령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박회성은 전형적인 여말선초의 축성 양식의 피난성으로 초암능선의 1200m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에 피난을 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추정한다. 추성과 박회성은 가야의 전설이 있는 국골 가까이에 있다. 이미 가야 구형왕이 쌓았던 성을 삼국시대와 고려말, 조선조 임진왜란 때에 다시 보수했을 수도 있다. 

 

 정경운의 《고대일록(1596)》에는 임진왜란 때에 산음에 사는 박회성 성주 송업(宋嶪, 1526~?)이 성을 비우고 거창에 다녀왔다가, 도체찰사 이원익에게 곤장의 징벌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임진왜란 발발 후 4인의 도체찰사(유성룡, 이원익, 정철, 윤두수)가 임명되어 전시행정을 맡았다가, 남과 북을 각 총괄하는 2인으로 감하였다. 남부의 4도(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는 도체찰사 이원익이 지휘했고, 북부의 4도(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경기도)의 도체찰사 유성룡은 후방에서 지원했다. 당시 남부의 4도(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체찰사는 이원익이다. 송업(宋嶪, 1526~?)은 본관 김해이다. 명종 16年(1561) 사마시에 합격한 인물로 산음 사람이다. 고대 정경운과 교유한 인물로 고대일록에 상사(上舍) 송업(宋嶪)이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2. 추성과 박회성 관련 문헌의 기록

 

가. 1530년《신증동국여지승람》제31권 / 경상도(慶尙道) 함양군(咸陽郡)

 

지리산(智異山)은 군 남쪽 40리 지점에 있다. 산 북쪽은 온통 이 고을 지경이며, 천왕봉(天王峯)이 진주와 경계로 되었다. 산속에 옛 성이 있는데 하나는 추성(楸城)이고, 하나는 박회성(朴回城)이라고 일컫는다. 의탄소(義呑所)와 5ㆍ6리 거리인데 우마가 능히 가지 못하는 곳이나, 창고 터가 완연히 남아 있다. 세간에서 신라가 백제를 방어하던 곳이라 전한다. 

 

智異山 在郡南四十里 山之北面 郡專據焉 天王峯與晉州分界 山中有古城 一稱楸城 一稱朴回城 去義呑所五六里 牛馬所不能到 倉庫遺基宛然猶在 世傳新羅防百濟之地

 

나. 고대 정경운의《고대일록(1596)》제2권

 

○ 1596년(병신) 12월 19일 신사(辛巳)

성주(城主)가 거창(居昌)에서 돌아왔다. 산음(山陰)에 사는 송업(宋嶪)과 단성(丹城)에 사는 이유훈(李惟訓)이 도체찰사(都體察使)에게 폐단을 진술하였는데, 논의가 박회성(朴回城)의 일에 미치자 도체찰사가 크게 노하여, 그가 산성(山城)에 들어가지 아니한 죄를 따져 곤장(棍杖) 30대를 때렸다는 말을 들었다.

 

○十九日辛巳城主回自居昌 聞山陰居宋嶪丹城居李惟訓 陳弊于體相 議入朴回城 體相極怒 數其不入山城之罪 刑訊三十棍

 

注 송업(宋嶪, 1526~?) 본관은 김해 명종 16年(1561) 사마시에 합격함. 고대 정경운과 교유한 기록이 고대일록에 나온다. 1596년 당시 박회성 성주이다. * 體相(체상, 도체찰사) : .남부의 4(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의 도체찰사 이원익, 북부의 4(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경기도)의 도체찰사 유성룡

 

다. 어우당 유몽인의《어우집》詩「두류록(1611)」 유두류백운(遊頭流山百韻)

 

楸城凈界開蓮塔 : 추성의 깨끗한 경내엔 사찰이 세워졌고
甕石神坊簇榦杶 : 옹석의 신묘한 마을엔 참죽나무 모였네.

 

라. 반계 유형원의《동국여지지(1656)》

 

一稱楸城 一稱朴回城 去義呑所五六里 牛馬所不能到 倉庫遺基宛然猶在 世傳新羅防百濟之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일치함)

 

마. 고산자 김정호의《대동지지(大東地志, 1861~1866)》

 

一云楸城 一云朴回城 去義呑所五六里 牛馬所不能 內有倉庫遺址

 

바. 김부식의  《삼국사기(1145)》 卷第二十七 의  「백제본기(百濟本紀) 第五

 

무왕 33년(632) 춘 정월 맏아들 의자를 책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2월 마천성을 개축하였다. 추 7월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정벌하였으나 이롭지 못하였다. 왕이 생초의 벌판에서 사냥을 하였다. 12월 사신을 보내 당에 들어가 조공을 하였다.

 

武王三十三年 春正月 封元子義慈爲太子 二月 改築馬川城 秋七月 發兵伐新羅 王田于生草之原 冬十二月 遣使入唐朝貢

 

 

3. 초암능선 박회성(朴回城) 기초조사

 

가. 조사일시 : 2018년 04월 10일

나. 자 원 명 : 함양 추성 초암능선 朴回城(麗末鮮初에 축성된 피난성)

다. 소 재 지 :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 100번지

라. 해발고도 :학계에 보고 된다면  우리나라에서 최고 높은 고도(1,238m)에 위치한 山城임. 

마. GPS좌표

  경도 : 127-71814, 위도 : 35-35841

바. 조사자 : 3명(정혜종외 2인)

사. 조사내용

 1) 자연지형을 이용한 전형적인 포곡식 산성(包谷式山城)

 2) 해발 1238m에 위치하며 하봉 아래 초암 능선에 위치함.

 3) 잔존 성벽이 남아 있으며, 망루로 추정되는 자연바위 위에 석축을 쌓았음.

 

 

4. 추성(楸城)과 박회성(朴回城)에 대하여

 

 추성(楸城)과 박회성(朴回城)은 성격이 전혀 다른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신라가 백제를 방어하던 성'은 추성(楸城)을 가리킨다. 정경운의 고대일록에 박회성(朴回城)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고대 정경운은 감수재 박여량과 함께 함양지역 의병운동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그의 기록은 임진·정유재란 때에 박회성이 피난 성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지리산 역사문화 조사단에서 성곽의 길이와 면적을 측정하고 샘터를 발견함으로써, 조·일전쟁의 역사에 묻힌 사료 하나를 발굴하였다. 박회성(朴回城)은 기록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축성된 산성이다. 

 

 

위치
성곽 길이 1410.9m
면적 94,101.02㎡(28,565坪)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제31권 / 경상도(慶尙道) 함양군(咸陽郡)

- 고대 정경운의《고대일록(1596)》제2권

- 유형원의《동국여지지(1656)》

- 김정호의《대동지지(大東地志, 1861~1866년)》

- 김부식의  《삼국사기(1145)》 「백제본기(百濟本紀) 」

 

 

 출처 : 지리산국립공원 역사문화조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