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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錫佐(1777~1853)의 『重隱集』 卷1 遊錦山記

姜錫佐(1777~1853)의 『重隱集』 卷1 遊錦山記(1,204자) 아직 발굴되지 않은 남해 금산 유람록이다. 강석좌(姜錫佐, 1777~1853)는 조선 후기 하동에서 활동한 학자이다. 기묘년(1819, 순조 19년) 가을 남극 노인성을 보기 위해 중직(仲直) 강경운(姜景雲), 박원종(朴願從), 박필권(朴必權) 등과 금산을 유람한다. 우리나라에서 노인성을 볼 수 있는 곳은 제주도와 금산 보리암, 지리산 법계사이다. 1896년 8월 천왕봉에서 노인성을 보기 위해 지인들과 함께 산행한 두산(斗山) 강병주(姜柄周, 1839~1909)는 두류행기(頭流行記)에 「"옅은 구름이 문득 개여 별이 남쪽에 나타났다. '크기는 계명성(啓明星)만하고 빛깔은 약간 붉으며, 춘분과 추분에 땅으로부터 30길 정도 떨어진 곳에 나..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도솔암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도솔암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의 산중일기(1686년)는 62세 때인 1686년(숙종 12) 3월부터 1688년(숙종 14) 9월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일대의 명산 고찰 및 서원 등을 여행하면서 기록한 유람기이다.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은 1686년 3월 어머니 3년상을 마친 후, 62세부터 3년 동안 전국의 사찰을 순력(巡歷)하며 산중일기를 남겼다. 우담이 산과 산사를 탐방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첫 유람은 1648년 스물네 살 때였는데, 아버지 임지인 강원도 회양(淮陽)에서 금강산을 유람하였다. 회양은 금강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선생은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산수벽(山水癖)에 ..

비천오공 오공능선 바른재에서 도촌마을까지

비천오공 오공능선 바른재에서 도촌마을까지 ▣ 일 시 : 2022년 10월 30일(일) ▣ 코 스 : 벽소령 작전도로-벽소령대피소-바른재-오공능선-오공산-도촌(島村) ▣ 인원 : 2명 ▣ 날 씨 : 맑음 오공산(蜈蚣山)의 지네 바위 부근에 의령(宜寧) 여씨(余氏)(1864~1939)의 묘가 있다. 의중마을에 살았던 청송 '임영택(林暎澤, 1866~1925) 공 부인의 무덤이다. 의중마을 나주임씨세보에 무덤의 위치가 공달비산(蚣達飛山)으로, 도마마을 청주한씨세보에는 공달산(蚣蟽山)으로 기록하고 있다. 마천면사편찬위원회 문호성 회장님은 '곰달비산'으로 알고 계셨다. 의탄리 의중마을 출신 치암(恥菴) 이용근(李榕近) 翁은 웅달비산비천오공결(熊達飛山飛天蜈蚣訣) 제목에서 웅달비산(熊達飛山)이라고 하였다. '곰달비산..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묘적암과 전대(前臺)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묘적암과 전대(前臺) ▣ 일 시 : 2022년 10월 29일(토) ▣ 코 스 : 무량굴-정자터-샘터-석굴암자터-암자터-회암당부도터-묘적암전대-서동고암-상무주암 ▣ 인 원 : 2명 ▣ 날 씨 : 맑음 1686년 윤 4월 11일 우담 정시한의 동선을 좇아 무량굴에서 암자터와 석굴→묘적암터→서동고암터→상무주암까지 진행하였다. 1686년 9월 2일 정시한은 무주암에서 아침 식사 후에 아들 도항(道恒)이와 혜철(惠哲) 수좌와 함께 묘적암으로 가는 도중에 계학(戒學) 스님을 만나 서암(西庵) 터에 들른다. 여기에서 서암은 서동고암터를 가리키는 듯하고, 묘적암터는 회암당 승탑터로 추정한다. 정시한은 무주암에서 서암(西庵) 터를 다녀온 후 묘적암으로 돌아와 묘적암 전대에 올라갔다가..

지리산 항일 의병장 석상용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

지리산 항일 의병장 석상용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 ▣ 일 시 : 2022년 10월 21일(금)~23일(일) ▣ 코 스 : 강청교-부연정-도마마을-약수암-도마마을-실상사 백무동-세석-삼신봉-장터목-창암능선-장구목-고점동(인민군사령부터)-백무동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5도)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운명은 기울어가고 있었다. 2년 뒤 1907년 7월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킨다. 군대 해산은 8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일본은 이에 앞서 군대 해산의 저항과 항일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보병 14연대를 한국에 파병한다. 이들은 부대 업무일지인 『진중일지』를 남긴다. 『진중일지』는 명치 40년(19..

영천군

永川君(영천군) 정(定) 字安之 世宗4年 1422년 壬寅生 天性跌宕 詩畵俱妙 陞興祿 景泰贈諡胡安公 保民耆艾曰胡 好和不爭曰安 효령대군 다섯째 아들 영천군(永川君, 1422~1452) 정(定), 字는 안지(安之) 세종 4년 임인생(壬寅生, 1422년) 천성(天性)이 질탕(跌宕, 자유분방함)하고 시·화에 묘함을 갖추었다. 벼슬이 흥록대부(조선시대 종친 문산계의 하나.정1품)에 올랐다. 경태(명나라 대종의 연호 1450~1456)연간에 호안공(胡安公)에 추증되었다. 백성을 보호하고 오래 산 것〔保民耆艾〕을 ‘호(胡)’라 하고. 화합을 좋아하여 다투지 않은 것〔好和不爭〕을 ‘안(安)’이라 한다. 耆艾(기애) : 나이가 많이 들어 늙은 사람. 묘 상초리 선산의 묘지 구역 안 미좌(未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