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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정유도의 부응경에 나오는 천우동(天羽洞)

갱정유도(更定儒道)의 부응경(符應經)에 나오는 천우동(天羽洞)    부응경(符應經)은 갱정유도(更定儒道, 일명 一心敎) 제1대 교조 강대성(姜大成, 1890~1954)의 어록이다. 갱정유도(更定儒道) 교조 강대성이 39세 때인 1928년에 순창 회문산 금강암에 입산, 처자와 더불어 금식·고행을 하다가 1929년 7월에 득도하였다. 1930년 송목(松木)에 결항이사(結項而死)한 부인과 아들 삼인(三人)이 생사교역(生死交易)을 한 뒤, 천어문답(天語問答)한 도덕경전과 시가문을 교조가 직접, 또는 제자들이 필사해 놓은 것이다. 부응경(符應經)은 천부경에 응답한다는 의미인 듯하다.   얼마전 임○○님이 부응경에서 지리산 관련 내용을 발췌하여 보내주셨다. 벽설령(벽소령), 천황봉(천왕봉), 영신대 등 여러 지명이..

조경남의 『난중잡록』에 나오는 황류동과 향로봉

조경남의 『난중잡록』에 나오는 황류동과 향로봉 조경남의 『난중잡록』에 나오는 향로봉은 반야 중봉, 투구봉, 『남원산하』의 향로봉 중 한 곳으로 좁혀진다. 정유재란 때에 조경남이 피난온 '은신암 옛터'는 향로봉의 북쪽 기슭에 있고, '수백 명이 피난할 수 있는 곳'이다. 투구봉을 향로봉으로 보면 지리산길 지도의 망바위봉이 향로봉의 북쪽 기슭에 해당된다. 그곳의 평지가 피난하기 가장 안전하고 따스하며 적이 오는 것을 살피기도 좋고 도망가기도 좋다.(산영님) 조경남의 『난중잡록』에 "1594년 12월 초5일 임걸년(林傑年)이 향로봉에 주둔했다가 운봉 군사에게 밤에 습격을 당하여 패하여 달아났다." 향로봉 북쪽 기슭 은신암 옛터에 도적 임걸년의 산채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注 참고로 지리산길 지도의 망바위봉..

영랑대에서 의신 산불 소식을 듣다

영랑대에서 의신 산불 소식을 듣다 ▣ 일 시 : 2023년 03월 11일(토)~12(일) ▣ 코 스 : 광점동-어름터-청이당-영랑대-두류능선-광점동 ▣ 날 씨 : 흐리고 비 月夜 달밤에 姜翼(1523~1567) 仰天慙白月 : 하늘을 쳐다보니 밝은 달에 부끄럽고 臨水愧淸流 : 물을 바라보니 맑은 물에 부끄러워라 多少身心累 : 내 작은 몸과 마음에 허물이 너무 많아 何能刮盡休 : 어떻게 해야 닦아내어 그칠 수 있을까

1655년 김지백의 「유두류산기」에 나오는 파근사 I

1655년 김지백의 「유두류산기」에 나오는 파근사 I ▣ 일 시 : 2023년 03월 03일(금) ▣ 코 스 : 내기마을회관-승탑재-파근사지-물방아골-비폭포 ▣ 인 원 : 산친들 ▣ 날 씨 : 맑음 파근사(波根寺)의 창건과 폐사에 관련한 문헌은 확인되지 않는다. 파근사에 관한 최초의 문헌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남원도호부 불우조에 지리산에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정유재란 때의 의병장 조경남(趙慶男)이 지은 『난중잡록(亂中雜錄)』에 등장한다. 1597년 9월 남원 선비 조경남(趙慶男)이 지리산 파근사(波根寺)에 피난하고 있다가 의병을 일으킨다. 1655년 담허재(澹虛齋) 김지백(金之白, 1623~1671) 일행은 남원부 동쪽 원천원(元川院)에서 만나 대흥사(파근사)에서 하룻밤을 ..

황령(黃嶺)과 황령암(黃嶺庵) 터를 찾아서 II(230226)

황령(黃嶺)과 황령암(黃嶺庵) 터를 찾아서 II ▣ 일 시 : 2023년 2월 26일(일) ▣ 코 스 : 버드재-황령암터-황령-달궁성터-매막봉-달궁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영하 7도) 황령암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87년 남효온의 「지리산일과」이다. "만복대 북쪽에 보문암이 있는데, 일명 황령암이라고도 하였다.[臺北有普門庵 一名黃嶺庵]" 1545년 서산대사의 「황령암기(黃嶺庵記)」는 마한의 역사를 기록한 사료적 가치는 있지만, 황령의 위치는 혼란을 준다. '반야봉의 좌우에 두 재가 있으니 황령과 정령'이라는 문구이다. 원문을 확인했으나 분명 '반야봉 좌우에 황령과 정령이 있다.[峯之左右 有二嶺 名黃與鄭也]'라는 내용이다. 황령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1818년 정석구(鄭錫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