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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면 의탄리 우락대와 구암대 석각

마천면 의탄리 우락대와 구암대 석각 ▶ 마천면 의탄리 우락대(牛樂䑓) 석각 ▶ 우락대(牛樂䑓) 인명 석각(34명) 상단 12명 : 金基○, 李相基, 河在○, ○○○, 郭泰○, 趙正基, 金鍾根, 鄭永斗, ○碩容, 朴奉甲, 李德根, 朴福守 중단 3명 : 盧益相, 林炳采, 朴基鉉 하단 19명 : 林甫相, 朴亨奎, 朴五龍, ○應水, 李○○, 金鍾顯, 金永燮, 李㑓廈, 河在燮, 崔相○, 郭泰春, 郭○○, 郭○煥 金鍾太, 李石雨, 金玉根, 金遠奎, 林命根, 李相哲 서기 一九七三년 三月 日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 883번지 행적자 : 박복수외 33명 연대 : 1970년대 석각시기 : 1973년 3월 [개요] 우락대(牛樂䑓) 바위를 옆에서 보면 모양이 위가 뾰족하고 아래는 퍼져 있어 주민들은 "갈바우" 또는 ..

비리내 계곡과 구시소 병렴곡 석각

비리내 계곡(飛離嬭溪谷)과 구시소(槽沼) 병렴곡(屛簾谷) 석각 ▼ 비리내 계곡(飛離嬭溪谷)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음정길 97(한일리조트) 행적자 : 없음 연대 : 미상 석각시기 : 현대 [개요] 비린내골의 유래는 ① 선녀와 나무꾼 전설, ② 생선 장수 설, ③ 빨치산 피비린내 설, ④ 비연래(飛燕來) 설 등이 있다. 석각 명문의 '비리내(飛離嬭)'는 "날개옷을 입고 날아서 하늘로 떠난 선녀"라는 의미로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에 의거해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마천면 의탄리 의중마을에서 태어난 함양의 한학자 치암(耻菴) 이용근(李榕近, 1938) 옹의 '비린내골의 유래는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의 비리내(飛離奶)에서 유래했다.'라는 주장과 일치한다. 嬭(㚷)와 奶는 동자로 '어미'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한국..

함양군 마천면 소재 정자와 누각

함양군 마천면 소재 정자와 누각 1. 마천면 군자리 부연정(釜淵亭)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 1067번지 건립자 : 우석(愚石) 한진석(韓鎭錫) 건립일 : 1955년 3월 3일 [개요] 춘정(春汀) 한일택(韓日宅, 1765~1844) 형제가 1800년경 함양읍에서 도마 마을로 이거함. 1933년 증손 우석(愚石) 한진석(韓鎭錫, 1900~1946)이 부연정을 건립하고, 1955년 후손들이 부연정을 중수한 것으로 추정됨. 도마 마을에서 태어난 한금순 할머니(1934년생)가 뱃속에 있을 때 어머니가 인부들에게 밥을 날라다 주었다고 함.[후손 한오식(1950년생)의 전언] 釜淵亭記 釜淵亭在天嶺縣南頭流山之釜淵淵上 韓公愚石諱鎭錫 與其族黨諸彦 遹追其先志而成焉者也 愚石之曾王父 春汀公 諱日宅 與其弟諱有宅 尋頭流..

가야국 천년의 비밀정원 관음습지와 사명대사길

가야국 천년의 비밀정원 관음습지와 사명대사길 ▣ 일 시 : 2020년 02월 08일(화)~09(수) ▣ 장 소 : 가야산 천년의 비밀정원 관음습지 ▣ 코 스 : 관음암-관음습지-홍제암-거덕사지-관음습지-관음암 ▣ 인 원 : 4명 ▣ 날 씨 : 맑음, 영하 5도 지난해 11월 16일에 이어 두 번째 산행이다. 가야산 해발 800m~900m 고원에 국내 최대 면적의 고산습지가 있다. 철저히 출입이 통제되어 거의 외부에 알려져 있지 않다. 가야산 국립공원에서 군데군데 모니터링 카메라를 설치하였다. 야생동물과 식생의 보고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존이라는 미명(美名) 하에 적송 소나무 군락과 잡목이 울창하여 육지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답사에서 해인사 홍제암에서 거덕사지→관음습지까지 가야시대 옛길을 확인하였다..

벽소령 소금길과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220202~06)

벽소령 소금길과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220202~06) ▣ 일 시 : 2022년 02월 02일(수)~06일(일) ▣ 코 스 : 하정마을-벽소령-선유정-구시쏘-영원사-도솔암-황석산 봉전산방-축령산 휴휴산방 ▣ 인 원 : 1~2일차(3명), 3~5일차(2명) ▣ 날 씨 : 맑음, 영하 5도 선유정기와 선유정 유래의 내용은 약간 상이하다. 선유정기는 한문, 선유정 유래는 한글로 쓴 문장이다. 글쓴이도 다르다. 전설은 글을 쓰는 사람에 따라 살이 붙기도 하고 각색이 되기도 한다. 전설은 입에서 풀려나오는 비단같은 구라(口螺)가 아니던가. 전설이니까 그건 그렇다고 치자... 선유정과 석문암, 구시쏘와 부자암, 벽소령은 실물을 보았지만, 벽소명월과 무지개 다리(홍예교, 虹霓橋)도 미확인이다. 「옛날 선녀 몇 사람..

추성과 박회성 관련 고문헌의 기록

추성과 박회성 관련 고문헌의 기록 1. 추성과 박회성의 개요 1530년 편찬된《신동국여지승람》제31권 「경상도(慶尙道) 함양군(咸陽郡)」편에 추성(楸城)과 박회성(朴回城)에 대한 기록이 있다. 추성리 두류능선 기슭 성안마을 부근의 추성과 영랑대 아래 초암능선의 박회성을 언급하고 있다. 주민들의 구전에 추성은 가락성(가야성)이라고 전한다. 추성 주변에 국골, 어영골, 대궐터, 말달릴 평전, 두지터 등의 지명이 남아 있어 금관가야 구형왕의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구전과 세전(世傳)을 기록한 《신동국여지승람》으로 축성의 시기와 성격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함양문화원에서 발간한 《함양의 성곽(2019)》에 추성의 위치(지리산 하봉 아래 칠선계곡 방향)에 대한 설명은 오류로 보인다. 지리산 하봉 ..

1611년 유몽인의 촉도난 검각과 덕평마을 천우동 석각

1611년 유몽인의 촉도난 검각과 덕평마을 천우동 석각 ▣ 일 시 : 2022년 01월 29일(토)~30일(일) ▣ 코 스 : 의신-당산나무-숙부인달성서씨묘-능선-도덕봉-덕평마을(천우동)-파란움막터-상철굴암-중철굴암-하철굴암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 영하 5도 ▶ 1611년 유몽인의 하산길 촉도난의 검각 영신암에서 40리쯤 내려갔는데 산세가 검각(劍閣)보다 더 험하였다. 108번 굽이친 형세가 아니라 수직으로 떨어지는 비탈길이었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은 마치 푸른 하늘에서 황천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넝쿨을 부여잡고 끈을 잡아당기며 이른 아침부터 저녁 무렵까지 걷고 또 걸었다. 푸른 나무숲 틈새로 내려다보았는데, 어두컴컴하여 아래가 보이지 않아 이맛살을 찌푸리며 크게 한숨을 쉬었..

마천면 섬말(도촌리) 짚신문학 기념비

마천면 강청리 섬말(도촌) 짚신문학 기념비 소재지 : 경남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 도촌 571-3 행적자 : 오동춘 박사 창립 연대 : 1999년 3월 1일(제80주년 3.1절) 건립 시기 : 2019년 10월 9일 제573돌 한글날 세운이 : 짚신문학회 회원 일동 [개요] 오동춘 박사는 1937년 부 오문달 님과 모 하정임 님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1944년 8살 때에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서 귀국하여 아버지의 고향인 마천면 도촌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천초등학교와 함양중학교 졸업하고, 1954년 서울 용문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하였다. 연세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하여 외솔 최현배(1894-1970) 박사, 한결 기윤경(1894-1969) 박사에게 한글사랑 나라사랑 정신을, 청록파 시인 박두진(1916-1..

김종직의 유두류기행시 영신암(靈神菴) 복원

김종직의 유두류 기행시 영신암(靈神菴) 복원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이세본기(秦二世本紀)〉에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마천은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해도 침묵하는 사람」, 「사슴을 말이라고 해도 아첨하고 동조하는 사람」, 나처럼 상황 파악도 못하고 「사슴을 사실대로 사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2006년 10월 중순 세석산장 앞 습지의 영신사지라는 곳을 다녀온 후, 의문이 들어 김종직의 유두류록과 유두류 기행시를 읽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2008년부터 점필재길 답사를 시작하였다. 영신암 시 1, 2구 "창불대와 거상곡을 산책하고 돌아오니/노선사의 방장은 석문이 열려있네"에서 1472년 8월 17일 창불대에서 영신암 석문까지 점필재의 ..

주유천하 조용헌의 방랑 고수기행I(220117~19)

주유천하 조용헌의 방랑 고수기행(220117~19) ▣ 일 시 : 2022년 01월 17일(월)~19일(수) ▣ 코 스 : 내원수행처-피아골 봉산금표-연곡사-청매암-신농산삼약초원-금대암 ▣ 인 원 : 2명 ▣ 날 씨 : 맑음 마천에 내려가 있는 것을 어찌 알고 연락이 와서, 조용헌 교수와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내원수행처에 동행하였다. 출발 전 자봉 스님께 미리 방을 덥혀놓으라고 부탁을 드렸다. 구례구역에서 픽업을 하여 내원골로 들어갔다. 주민들이 길을 막아 철조망을 통과하고 능선을 넘어 템플스테이관에 겨우 닿아 산길로 접어들었다. 쌍계사에서는 내원골 초입에 대문을 세우고, 주민들은 사유지 출입금지 팻말과 윤형철조망을 설치했다. 강호의 동양학을 창시한 조용헌 교수와 자봉 스님의 만남은 어렵게 이루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