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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칼럼니스트와 지리산 남유기행 II

조용헌 칼럼니스트와 지리산 남유기행 II  ▣ 일 시 : 2022년 07월 23일(토)~25일(월)▣ 코 스 : 음정-벽소령 대피소-덕평마을 천우동-도덕봉-벽소령-음정마을▣ 인 원 : 3명(일정 민병태님, 조용헌님)▣ 날 씨 : 첫날 둘째날 흐림, 셋째날 맑음    지난해 10월 9일~10일 일정 민병태 선생과 영신암에서 의신사까지 유몽인의 하산길을 답사하였다. 덕평 마을에서 의신사의 하산 길은 갈림길이 많아서 어느 길이라고 특정하기 어렵다. 답사 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을 다시 읽게 되었고 '영신암에서 40리쯤 내려갔는데, 검각(劒閣)보다 더 험하였다.'라는 문구에 주목하였다. 유몽인은 험한 하산길을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 詩에 나오는 검각(劒閣)에 비유하였다. 먼저 답사한 曺규완 교수님은 '지세..

조용헌 칼럼니스트와 지리산 남유기행 I

조용헌 칼럼니스트와 지리산 남유기행 I ▣ 일 시 : 2022년 07월 22일(금)~23일(토) ▣ 코 스 : 구룡폭포-와룡정-기담-소년암-목압서사-고불사-만월암 ▣ 인 원 : 2명(조용헌님) ▣ 날 씨 : 맑음 1. 구룡폭포 이 계곡은 지리산 국립공원 북부지소가 있는 주천면 호경리에서부터 구룡폭포가 있는 주천면 덕치리까지 펼쳐지는 심산유곡이다. 수려한 산세와 깍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으로 이어지는 이 계곡은 길이가 약 3㎞이다. 정상에 오르면 구곡경의 구룡폭포가 있다. 남원 8경 중 제1경인 구룡폭포 아래에는 용소라 불리는 소가 형성되어 있는데, 옛날에 이곳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지리산 관광도로가 개설되어 구룡계곡의 스카이웨이는 한층 편리하게 이곳 경치를 구경할 수 있게 해준다. 계곡을 따라 ..

남두육성이 조림한 삼정산 능선을 찾아서

남두육성이 조림한 삼정산 능선을 찾아서 ▣ 일 시 : 2022년 07월 17일(일) ▣ 코 스 : 삼화실마을-소동폭포-삼정골 우골-삼정산능선 습지-집터-1183.6봉-1156.2봉-무명봉-삼정골 좌골-임도-삼화실마을 ▣ 인 원 : 2명 ▣ 날 씨 : 맑음 삼정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삼정산(三政山)도 삼정(三丁) 마을의 유래도 모른다. 뇌전(磊田) 마을은 글자 그대로 골짜기 상단에 가득한 너덜 지대에서 유래한 듯하다. 사전에 자료를 읽고 몇 차례 삼정산을 답사하였지만, 통발에 걸리는 눈 먼 물고기가 없었다. 회암당 부도터를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묘적암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폐암자터에 이름표가 없으니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다. 답사 후에는 안광지배(眼光紙背)할 정도로 자료를 문드러지..

지산유고에 나오는 선유동(仙遊洞)과 대정(大井)

지산유고에 나오는 선유동(仙遊洞)과 대정(大井) ▣ 일 시 : 2022년 07월 12일(화) ▣ 코 스 : 대정(한우물)-선유동-문경 왕능종가 터 ▣ 인 원 : 3명(청권사 부이사장 학용(學容) 종현님, 청권사 문화위원 학용(學用) 종현님) ▣ 날 씨 : 흐림 2002년 지산유고 창의일기를 초역하면서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겨우 고등학교 교과서만 보던 사람이 지산유고 초고를 국역한다는 것이 무리였다. 단국대학교에서 간행된 한한대자전 16권에 의지했다. 창의 일기에 나오는 목천 족인 이기하라는 인물이 가장 궁금했다. 1896년 2월 8일 지산(止山) 이기찬(李起璨) 선생과 동행하여 감천(甘川)을 찾아가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을 만날 때 동행했던 인물이다. 김산의진(金山義陣)이 탄생하는데 가장 중..

止山遺稿와 庚戌通文에 나오는 李起夏

止山遺稿와 庚戌通文에 나오는李起夏 지산유고에서 이기하(李起夏)라는 인물을 처음 접한 것은 20년 전의 일이다. 지산유고 창의일기를 보면 1896년 2월 8일 지산(止山) 이기찬(李起璨)이 창의를 하기 위해 구미 甘川으로 왕산(旺山) 허위(許蔿)를 만나러 갈 때 동행했던 인물이다. 소산(小山) 이기하(李起夏)는 지산(止山)과 왕산(旺山)을 연결해준 상주 지역과 김산 지역의 가교 역할을 하였다. 1910년 7월 경술통문에도 동지인으로 서명한 기록이 있다. 2018년 07월 27일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하였을 때 박갑로 선생과 권대웅 교수에게 이기하(1862~1909)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이기하의 둘째 동생 이기상(1871~1915)은 왕산 허위의 비서실장이고, 셋째 동생 이기영(1874~1918)은 ..

결자해지(結者解之) 아홉모롱이길을 찾아서

결자해지(結者解之) 아홉모롱이길을 찾아서 ▣ 일 시 : 2022년 07월 10일(일) ▣ 코 스 : 세진대-신농산삼약초원-송대마을-은병암-미타봉샘-미타봉 소림선방-사립재골 습지-방장문-강계형 장구목-송대마을 ▣ 인 원 : 3명 ▣ 날 씨 : 맑고 흐림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산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산에 대한 취향도 가지각색이다. 산을 바라보는 시각도, 지명에 대한 해석도 제멋대로이다. 최근 들어서는 산행인구도 급감하여 지리 동부에 들면 만나는 사람도 없다. 사람들이 없으니 옛길은 자연적으로 묻히고 사라진다. 맞는 말이다. 선인들의 유람록길 복원도 요원하다. 시간과 비용 투자에 비해 가성비도 적다. 관심이 있는 사람도, 나서는 사람도 없다. 남들이 발굴한 자료를 보고 후답하는 것..

법계사(法界寺)의 문창대(文昌臺)와 세존봉(世尊峰)

법계사(法界寺)의 문창대(文昌臺)와 세존봉(世尊峰) 문창대(文昌臺)는 사람마다 위치를 다르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6월 초 법계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법계사 서쪽 문창대(文昌臺)를 원 문창대(文昌臺)라고 하고, 세존봉 아래 문창대(文昌臺)를 신 문창대(文昌臺)라고 한다. 반대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장에 가보니 문창대(文昌臺)가 두 곳이다. 그러다 보니 구별하기 위해서 편의로 붙여진 이름이다. 문창대(文昌臺)는 아직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법계사와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 故 최화수 선생은 법계사 옆 문창대(文昌臺)를 문창대(文昌臺)라고 하고, 세존봉 아래 세존암은 문창대(文昌臺)가 아닌 것으로 입장을 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리99에서는 세존봉(1386봉) 아래 세존암을..

와불산 미타봉 소림선방 가는 길

와불산 미타봉 소림선방 가는 길 ▣ 일 시 : 2022년 06월 25일(토)~26일(일) ▣ 코 스 : 송대마을-은병암-미타봉샘-미타봉 소림선방-고열암-의논대-선녀굴-송대마을 ▣ 인 원 : 2명 ▣ 날 씨 : 맑고 흐림 주말 장맛비 예보를 듣고도 며칠 전 曺교수님이 보내온 사진을 보고 미타봉을 향했다. 선녀굴 석문 아래에 암자터 3개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녀굴로 오르지 않고 ''ㅊ'' 석각에서 곧바로 미타봉 샘으로 진행했다. 이 길은 지금도 주민들이 사용하는 생활길이다. 이렇게 산길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집터에서 집터, 샘터에서 샘터, 숯가마터에서 숯가마터, 암자터에서 암자터, 기도터에서 기도터로 길이 이어진다. 미타봉 샘 100m 직전 큰 바위 앞이 삼거리이다. 이곳이 선녀굴에서 오는 길과..

무주공산 지리동부 영랑대와 구롱길

무주공산 지리동부 영랑대와 구롱길 ▣ 일 시 : 2022년 06월 18일(토)~19일(일) ▣ 코 스 : 광점동-어름터-방장문-쑥밭재-청이당터-마암-영랑대-소년대굴-청이당터-방장문-미타봉-어름터-광점동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 2008년 10월 14일 적조암에서 고열암으로 올라가 세석을 거쳐 백무동까지 1박 2일을 걸었다. 그때 고열암에는 숙고열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선열암도 건너뛰고 능선을 따라 새봉으로 쑥밭재까지 진행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구롱을 고봉준령의 아홉 고개로 생각했다. 청이당의 위치도 정확하게 몰랐다. 세석 대피소 앞 영신사 터라는 곳에서 지리 99 ○○님이 두고 간 미사일 한 발(소주 1.8리터)을 비우고, 야간에 ..

사단법인 청권사 종친 문경 유적지 순례

사단법인 청권사 종친 문경 유적지 순례 ▣ 일 시 : 2022년 06월 16일(목)~17일(금) ▣ 코 스 : 모심정-오태영당-근암서원-STX리조트-운강묘소참배-STX리조트(숙)-개바위-운강기념관-청운각-문경새재도립공원 ▣ 인 원 : 209명 ▣ 날 씨 : 맑음 사단법인 청권사 종친 문경 유적지 순례에 다녀왔다. 청권사는 효령대군을 모시는 사당 이름이고 종친회 명칭이다. 청권사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효령로에 있다. ‘청권(淸權)’은 옛날 중국 주(周)나라의 우중 왕자가 아버지 태왕의 뜻을 헤아려 아우에게 왕위를 양보한 미덕을 칭찬하면서 공자가 청권이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효령대군은 아버지 태종대왕의 의중을 헤아려 아우인 충녕대군(세종대왕)에게 왕위를 양보했다. 그 미덕을 세종대왕은 나의 형이 곧 청권(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