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불산 미타봉 소림선방 가는 길
▣ 일 시 : 2022년 06월 25일(토)~26일(일)
▣ 코 스 : 송대마을-은병암-미타봉샘-미타봉 소림선방-고열암-의논대-선녀굴-송대마을
▣ 인 원 : 2명
▣ 날 씨 : 맑고 흐림
주말 장맛비 예보를 듣고도 며칠 전 曺교수님이 보내온 사진을 보고 미타봉을 향했다. 선녀굴 석문 아래에 암자터 3개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녀굴로 오르지 않고 ''ㅊ'' 석각에서 곧바로 미타봉 샘으로 진행했다. 이 길은 지금도 주민들이 사용하는 생활길이다. 이렇게 산길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집터에서 집터, 샘터에서 샘터, 숯가마터에서 숯가마터, 암자터에서 암자터, 기도터에서 기도터로 길이 이어진다. 미타봉 샘 100m 직전 큰 바위 앞이 삼거리이다. 이곳이 선녀굴에서 오는 길과 합류되는 지점이다.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바위에 오르면 미타봉이 지척에 있다. 미타봉은 은병암, 선녀굴, 고열암과도 연결된다. 의논대에서 미타봉까지의 직선거리는 600여 m이다. 김종직은 1472년 8월 14일 해가 질 무렵 의논대에서 7언절구를 읊는다.
議論臺(의논대) - 김종직(1431~1492)
兩箇胡僧衲半肩 : 참선승 두 사람이 장삼을 어깨에 반쯤 걸치고
巖間指點小林禪 : 바위 사이 한 곳을 소림선방이라고 가리키네.
斜陽獨立三盤石 : 석양에 삼반석(의논대) 위에서 홀로 서있으니
滿袖天風我欲仙 : 소매 가득 천풍이 불어와 나도 신선이 되려 하네.
注 胡僧 : ① 호승 ② 선(禅)의 어록 등에서, 달마대사(達磨大師)를 가리켜 참선승으로 국역함. ③ 호국(胡国)의 중 ④ 서역이나 인도에서 온 중. 소림 선방 : 중국 숭산의 소림사에 있는 한 동굴로 달마대사(達磨大師)가 9년간 면벽 참선수행을 했다는 소림굴을 말함. 三盤石 : 넓은 반석, 의논대를 가리킴. 天風 : 하늘 바람, 가을바람.
"의논대 1구에서 호승(胡僧)은 달마대사입니다. 소림선(少林禪)을 참선 수행하는 소림굴로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미타봉을 함께 답사한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조용헌 선생의 의견이다. 趙선생은 능엄경(楞嚴經)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분이다. 지리산은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은 물론 학력의 차별도 없다. 산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그래서 덕산(德山)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미타봉 샘에 닿았다. 미타봉에서 영랑대를 바라보니 먹구름에 휩싸여 있다. 아홉 모랭이 길에 얽힌 스토리는 무궁무진하다. 답사팀은 처음부터 지도에 미리 선을 긋고 구롱 길을 이어나갔다. 청이당 터에서 방장문을 지나 주막터, 주막터에서 사립재골 치조의 집터까지 연결했다. 2020년 3월 28일 역으로 고열암을 출발하여 일강을 넘어 사립재골 습지까지 개통했다. 이날이 미타봉에서 석굴을 발견한 날이다. 구롱 길은 완성되었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2020년 5월 16일 여덟 번째 답사에서 방장문 석각을 찾아낸 후에 비로소 아홉 모랭이 길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제야 케른을 쌓기 시작했다.
창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몰입이 중요하다. 선인들의 유람록은 답사하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답사할 때마다 생각이 바뀐다. 수정과 보완을 거듭해야 한다. 집중하지 않고 답사를 한다면 입과 발이 산행하는 것이다. 口足 산행이다. 유람록을 정독하고 답사를 하더라도 몰입하지 않으면 격화소양(隔靴搔癢)이다.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 것과 같다. 함께 답사한 사람과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톡을 활용한다. 남의 의견을 수용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나와 다른 의견도 소중하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압력솥에 푹 익혀서 녹여내야 한다. 혼자만의 생각은 통관규천(通管窺天)이다. 대통으로 하늘을 엿보는 격이다. 자기주장이 강하면 대화는 단절된다. 귀가 열려야 비로소 눈이 보인다. 의문이 들 때 구롱 길에서 케른을 쌓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나는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끝.
▶ 은병암(隱屛岩)
주자(朱子, 1130~1200)의 이름은 희(熹), 자는 원회(元晦), 호는 회암(晦庵). 중국 송대의 유학자. 주자학을 집대성함. 54살 되던 1183년에 무이구곡(武夷九曲) 중 다섯 번째 구비에 해당하는 은병암(隱屛岩) 밑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세우고 제자를 가르쳤다. 그가 터를 잡고 신진들을 가르친 무이구곡(武夷九曲)은 예전부터 중국에서 신선이 살았던 곳으로 이름난 명승지이다. 중국 복건성 숭안현에 있다.
▶ 강시영[姜時永, 1788년(정조 12)-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량(汝亮, 汝良). 1819년(순조 19)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수찬을 지내고, 1829년 진하사(進賀使)의 서장관으로 정사 이광문(李光文)과 부사 한기유(韓耆裕) 등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다. 1838년(헌종 4) 부수찬을 거쳐 1843년 충청도관찰사, 1846년 행호군(行護軍), 1848년 한성부판윤·형조판서, 1854년(철종 5) 대사헌을 지냈으며, 1859년 예조판서가 되었다.1866년(고종 3) 조대비가 수렴섭정(垂簾攝政)을 철회하고,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아 인사배치를 할 때 남인으로 기용되어 홍문관제학을 거쳐 이조판서로 승진되었다. 글씨에도 뛰어났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은병암의 강시영이라는 인물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 향로봉(상내봉)에 대한 문헌의 기록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 혼자 지팡이를 짚고 삼반석(三盤石)에 올랐다. 향로봉(香爐峯), 미타봉(彌陀峯)이 발아래 있다."라는 문구이다. 유두류록에 있어서 유일한 오류로 보인다. 안내한 승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은 듯싶다. 결과적으로 점필재의 기록은 혼란을 준다. 안개비 내리는 어느날 오뚝이 바위가 내 눈에 향로의 형상으로 보였다. 향로봉의 이름도 오뚝이 바위 모양에서 취한 듯하다. 송대에서 바라보면 미타봉은 부처님의 얼굴이고, 향로봉은 부처님의 단전(배꼽)이다. 1193.3봉은 와불의 발에 해당한다. 본래 동쪽에 향로봉이 있고 서쪽이 미타봉이다.
강계형(姜桂馨, 1875-1936)의 「양화대산수록(陽和臺山水錄)」에 향로봉(香爐峰)에 대한 기록이 있다. 또한 동시대에 의탄 의중마을에 살았던 탄수(灘叟) 이종식(李鐘植, 1871~1945)의 「비결명문논집」에는 "동이 트면 해가 일찍 뜨는 상로봉(霜老峰)"으로 기록하고 있다. 향로봉(香爐峰)이 경상도 방언으로 상내봉이다. 상내봉은 경상도 사투리에서 향로봉의 구개음화 현상이다. 와불 형상을 한 불두(佛頭)에서 발끝까지 전체가 와불산이다. 와불산의 주봉(1213.9봉)이 향로봉(상로봉, 상내봉)이다. 불두의 형상인 1164.9m 봉이 미타봉이다. 양화대산수록(陽和臺山水錄)을 국역한 분의 상내봉에 대한 어물쩡한 논리는 결과적으로 아는 사람들의 웃음만 살 뿐이다.
1. 1472년 김종직(金宗直)의 「유두류록」
○ 1472년 8월 14일 서쪽 능선을 따라 조금 가서 고열암(古涅庵)에 다다르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의론대(議論臺)가 서쪽 봉우리에 있었다. 유호인 등이 뒤에 처져 있어 나 혼자 지팡이를 짚고 삼반석(三盤石)에 올랐다. 향로봉(香爐峯), 미타봉(彌陀峯)이 발 아래 있었다.
2. 강계형(姜桂馨, 1875-1936)의 「양화대산수록(陽和臺山水錄)」
산의 여세가 잘게 나눠지고 흩어져 천 봉우리 만 골짜기가 되었고, 힘을 쏟아 큰 줄기가 되어 멀리 아득히 치달리고 뛰어 올라 그 기교를 다하였다. 사립재에 이르렀다가 향로봉(*지금의 상내봉 3거리 옆 봉우리인 듯)이 되었고 정수를 뽑아 우뚝 솟았으니, 이는 군 남쪽 엄천 남녘의 조산(祖山)이 된다.(이재구 선생 譯)
3. 이종식(李鐘植, 1871~1945)의 「비결명문 논집」
金鷄避亂豫標點 : 금계가 피난처라고 미리 표점하니
一姓一步遠傳昊 : 한 성씨 한 걸음씩 널리 전해졌네.
同胞戰亂自足殺 : 동포들은 전란에서 스스로 죽일 수 있다고
灘叟未來秘訣布 : 탄수 공이 앞으로의 일을 비결로 퍼트렸네.
晨明早日霜老峯 : 동이 트면 해가 일찍 뜨는 상로봉은
陽色眺會避難處 : 양기가 빠르게 모여드는 피난처네.
洞民功德追尊碑 : 동민들은 추존비를 세워 공덕을 기리고
灘叟創始金鷄洞 : 탄수 공은 이곳에 금계동을 창시하였네.
일강길에서 행동팀 시그널을 보았는데, 선녀굴에서 수야님을 만났다. 곧은재의 지명을 정확하게 짚어낸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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