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공산 지리동부 영랑대와 구롱길
▣ 일 시 : 2022년 06월 18일(토)~19일(일)
▣ 코 스 : 광점동-어름터-방장문-쑥밭재-청이당터-마암-영랑대-소년대굴-청이당터-방장문-미타봉-어름터-광점동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
2008년 10월 14일 적조암에서 고열암으로 올라가 세석을 거쳐 백무동까지 1박 2일을 걸었다. 그때 고열암에는 숙고열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선열암도 건너뛰고 능선을 따라 새봉으로 쑥밭재까지 진행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구롱을 고봉준령의 아홉 고개로 생각했다. 청이당의 위치도 정확하게 몰랐다. 세석 대피소 앞 영신사 터라는 곳에서 지리 99 ○○님이 두고 간 미사일 한 발(소주 1.8리터)을 비우고, 야간에 백무동으로 내려갔다. 하산 후에 '徑由直旨而下'의 문구를 '곧바로 지름길을 따라 내려오는데...'로 이해했다. '직지봉'이 오역이라고 생각했다. 영신사터와 김종직의 하산 길에 대한 의문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10월 14일 밤 동부능선에서 달빛 아래 파도소리를 들었다. 숙고열암시에서 '松濤沸明月(소나무 물결 명월 아래 들끓으니...)'라는 싯구가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날이 음력으로 9월 16일이다. 그 후 숙고열암 시의 오자에 대한 의견을 올렸다. 영신암 터와 점필재의 하산 길에 대한 의견도 냈다. 일부러 '소년대는 하봉이다.'라는 의견도 냈다. 예상대로 모두들 냉담했다. 2017년 7월 2일 남사마을의 이호신 화백님 댁에서 하룻밤 유(留)하고 다음날 아침 단사천 님과 새재 마을에서 마암으로 올라갔다. 그날따라 100mm가 넘는 폭우가 내렸다. 마암에서 비를 피하며 한동안 서있다가 마암이 박여량의 행랑굴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단사천 님과의 몇 차례의 산행은 잊을 수가 없다. 영신봉을 계족봉이라고 하고 좌고대에 처음 오른 분이다. 석가섭도 읽어냈다. 내가 만난 최초의 선관물자(善觀物者)였다. 이때를 전후하여 바위의 형상이 부처로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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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읽는 힘도 10년이 넘으면 쇠(衰)한다. 그래서 방전이 되면 충전을 해야 한다. 충전소는 영랑대이다. 영랑대에 들어 달빛 아래 파도소리를 듣는다. 가끔은 칠선계곡에서 운해가 해유령을 넘어 동으로 달린다. 바닷물이 넘치고 순식간에 영랑대는 섬으로 변한다. 영랑도가 된다. 산행의 종류에는 여러 장르가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나는 병과가 박 산행이다. 당일 산행은 힘들어서 못한다. 다행스럽게 유람록 답사와 박 산행은 코드가 일치한다. 배불리 먹는 것과 편안하게 자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비가 내리고 눈이 많이 와도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차 길이 위험하다. 부족함과 불편함을 감수하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다. 불법 산행에 수업료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 선계에 드는데 입장료가 없을 수 없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숙고열암 시를 보자. 2008년 10월 "엄천골 칠암자 고열암의 점필재 <宿古涅庵>내용에 오류가 있어 원문 확인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라는 의견을 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지나갔는데, 영신사지, 소년대, 행랑굴, 청이당에 대한 의견을 자꾸 내서 화를 자초했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생각이 넓고 속이 깊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과 내가 최고라는 자만에 빠진 사람이 많다. 한마디로 밴댕이 속에 고집불통이다. 그러나 선수는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귀를 기울인다는 사실이다. 와유강산(臥遊江山)이나 하고 과거를 들먹이면서 방구석에서 인문학을 논할 수는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곧은재이다. 나는 머리가 복잡하면 무주공산 영랑대를 찾는다. 영랑대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머릿속을 탕척(蕩滌)한다. 5년 뒤에도 영랑대에 올라 하봉과 중봉과 천왕봉, 지리 주능선과 반야봉, 서북능선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을까에 집중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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