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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국립공원 내 '大'자 석각에 대하여

지리산국립공원 내 '大'자 석각에 대하여 지난 3월 초암능선에서 '大'자 석각을 발견하였다. 석각 아래에 아라비아 숫자가 있다. 6월에는 선녀굴 아래에서, 7월 말에는 선녀굴골 은병암(隱屛岩)에서 '大'자 석각을 찾았다. 8월 6일에는 우수청골 주막터(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525번지)에서 '大'자 석각을 만났다. 여러 곳에 문의하였으나 아직 오리무중이다. 산림청에 '大'자 석각에 대해 문의했지만, 환경부나 국립공원 관리공단에 문의하라는 답(答)을 받았다. 지적도를 확인하니 대학 연습림(국유림)과 사유지의 경계에 있다. 1917년 일제가 제작한 조선의 지형도를 살펴보자. 일제는 지리산의 식생과 생태 연구를 명목으로,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지리산을 일본에 있는 국립 제국대학의 연습림으로 분할한다. 조선의 ..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나오는 마천성과 군자사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나오는 마천성과 군자사 마천면에 ‘馬’ 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마천성(馬川城), 마천소(馬淺所, 馬川所), 마천(馬川), 금마대(金馬臺, 금대), 외마(外馬), 내마(內馬), 도마(都馬, 桃馬), 마이봉(馬耳峰), 마암(馬巖), 말봉 등이 그렇다. 마천의 유래는 이렇다. ‘① 임천(瀶川)이 말처럼 뛰면서 빠르게 흘러내려 마천이라고 하였다. ② 금대산(금마대)이 갈마음수(渴馬飮水)의 형국이라 마천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마적동과 송대에서 금대산을 바라보면 말안장의 형상이다. 두 가지 설이 다 말과 관련이 있는 공통점이 있다. 《신동국여지승람(1530)》 卷 三十一 慶尙道 形勝條에 ‘임천(瀶川) 마천소(馬淺所)에 있다. 지리산 북쪽 골물이 합쳐서 임천(瀶川)이 되었다. [瀶川 在馬淺..

[특별기고] 지리산 유람록을 통해 본 선인들의 산행

[특별기고] 지리산 유람록을 통해 본 선인들의 산행 글·최관 경북대학교 농생대 임학과 교수, 한상열 경북대학교 농생대 임학과 교수 외(입력 2012.01.11 13:27) 절에서 유숙하며, 천왕봉은 꼭 올랐다. 지리 산행은 양반 사대부나 가능했던 사치… 술은 매일 마셔 자연을 찾는 여행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양하지만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정화한다는 공통된 경험을 갖는다. 옛 선인(先人)들 역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하여 심신을 단련하고자 여행을 했다. 지금처럼 다양한 형태의 여행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주로 산과 강, 바다를 벗 삼아 대자연을 여행했다. 과거 봉건사회에서는 일반 백성들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려웠고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있는 양반 사대부 계층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학자로서 ..

세석평 소지와 청학연(靑鶴淵)·학연(鶴淵)에 대한 선인들의 기록

세석평 소지와 청학연(靑鶴淵)·학연(鶴淵)에 대한 선인들의 기록    세석의 ‘청학연못설'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다. 호사가들이 청학연못에 대한 논리를 펼칠 때마다 그 근거로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1539~1601)의 겸암일기를 앞세운다. 겸암일기에 나오는 돌샘(石泉)과 이 연못을 연결시킨다. 촛대봉에 있는 고려낙운거사이청련서(高麗樂雲居士李靑蓮書) 석각도 등장한다. 미수 이인로와 고려낙운거사 이청련을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세석평전의 인공 연못(細石坪小池)은 어느 날 청학연못으로 둔갑(遁甲)하였다. 이름이야 어찌되었든, 세석 고원의 신비한 이 인공연못은 이제 세석의 명소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注 세석평 소지(細石坪小池) : 1879년 송병선 두류산기(頭流山記)에 처음 보임. ..

지리산 촛대봉과 삼신봉 힐링 산행

지리산 촛대봉과 삼신봉 힐링 산행 ▣ 일 시 : 2022년 08월 13일(토)~14일(일) ▣ 코 스 : 거림-세석연못-삼신봉-촛대봉-세석연못-거림 ▣ 인 원 : 산친들과 ▣ 날 씨 : 흐림(국지성 소나기)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지명을 고증하려면 첫째, 발이 되어야 하고, 둘째, 글이 되어야 하고, 셋째, 산에서 숙식이 되어야 한다. 내가 가장 자신이 있는 것은 숙식이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비화식이 주류이다. 배낭의 중량도 무거우면 구세대이다. 대개는 검은 옷을 입고 바리바리 짊어지고 와서 까마귀에게 반포지효(反哺之孝)를 한다. 생존 식량과 최소 장비로 산행할 수 없을까. 그것이 과제이다. 내가 아는 분은 미리 밥을 해서 말린다. 산에서 물에 불려서 먹는다고 한다. 동계에 6박 7일을 가스 한 통..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도솔암(兜率庵)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도솔암(兜率庵) ▣ 일 시 : 2022년 08월 12일(금) ▣ 코 스 : 양정마을-영원사계곡-도솔암(원점회귀) ▣ 인 원 : 산친들과 ▣ 날 씨 : 흐리고 맑음 지난해 12월과 금년 2월 초 마천면 창원리 청매암을 찾은 일이 있다. 청매암 정견(正見) 스님은 30여 년 전 도솔암을 중창하신 분이다. 스님께서 마천 3대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금대(金臺), 도솔대(兜率臺), 무주대(無住臺)이다.' 지금은 정견 스님의 사질(師侄)인 적능(寂能) 스님이 도솔암을 지키고 있다. 지난 2월 초 눈 내리는 도솔암에서의 하룻밤은 잊을 수가 없다. 수행 중인 스님께서 물을 길어다가 목욕물까지 데워놓으시고, 저녁과 아침 공양 대접을 받았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다음날 아침 눈이 그치지 ..

벽소령 소금길과 중북부능선(220806~07)

벽소령 소금길과 중북부능선(220806~07) ▣ 일 시 : 2022년 08월 06일(토)~07일(일) ▣ 코 스 : 자연휴양림-우수청골-주막터-소금쟁이능선-벽소령-삼각고지-중북부능선-영원령(갈월령)-영원사 ▣ 인 원 : 산친들과 ▣ 날 씨 : 흐리고 맑음 소금이라는 어휘는 농경사회에서 꼭 필요한 '소(牛)'와 '금(金)'처럼 귀하다는 뜻으로 '작은 금' 즉, 소금(小金), 또는 하얀 금, 소금(素金)이라고도 불렸다. 고려 시대 이전의 소금에 대한 기록이 있는 문헌은 많지 않다. 「삼국지위지동이전」에 의하면 고구려가 소금을 해안지방에서 운반해 왔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는 태조 때 설치된 도염원(都鹽院)에서 소금 전매제가 시행되었다. 또한 국가가 소금가마솥을 소유하여 소금을 제조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서..

淸信女己未生李菩提性 故淑夫人桂陽李氏之壇

淸信女己未生李菩提性 故淑夫人桂陽李氏之壇 교사는 퇴직 후 평균 수명이 15년, 교수는 8년이라고 한다. 퇴직 후 4대 장애 요인이 있다. 첫째는 건강, 둘째는 빈곤, 셋째는 고독, 넷째는 무료이다. 퇴직을 하고 2년 차가 되었으니 평균 수명에 대비하면 남은 시간이 13년이다.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겠지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퇴직 후 건강 검진을 하니 당 수치가 올라가 당뇨약과 전립선 약을 먹고 있다.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한다. 확실하게 저승으로 가는 버스를 환승한 셈이다. 지난 1년을 바쁘게 보냈다. 능력도 되지 않는 사람이 마천면지를 집필한다고 180일을 지리산에서 보냈다. 많은 석각과 비문을 만났고 지명의 유래와 전설을 접했다. 지리산 마천대학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기..

추억의 기화식 석유버너 수리(SI-56, SI-57)

추억의 기화식 석유 버너 수리(SI-56, SI-57) 교직 생활 33년 중 학생과에서 10년 넘게 보냈다. 당시 학생회 간부수련회(2박 3일)를 춘장대로 갔는데, 학생들 취사와 생활지도가 문제였다. 그래서 자비로 석유 버너와 취사장비를 구입했다. 해수욕장은 학생들 생활지도(?) 관리에 문제가 있어 전북 진안군 정천면 운장산 계곡으로 장소를 옮겼다. 남부군 전북도당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그곳 산속은 술과 담배를 파는 가게가 없다. 슈퍼가 있는 정천면까지 4km가 넘는다. 주요 메뉴는 백숙과 돼지고기 수육을 삶았다. 모두 합하면 백숙은 500마리는 된다. 돼지는 서너 마리는 족히 삶은 것 같다. 삼계탕을 해준 기억도 있다. 요령이 생기다 보니 밥은 방앗간에서 맞추고 소머리도 삶았다. 임병천 체육부장은 소..

마적사터와 미타봉 소림선방 힐링 산행(220729~31)

마적사터와 미타봉 소림선방 힐링 산행(220729~31) ▣ 일 시 : 2022년 07월 29일(금)~31일(일) ▣ 코 스 : 세진대-천진전-마적사터터-송대마을-미타봉샘-미타봉-무명암자터-송대마을-단옥재 ▣ 인 원 : 3명, 토요일 + 1명 ▣ 날 씨 : 흐리고 비 지리산길 지도에 대종교 시설인 천진전을 마적사지로 표기하고 있다. 선답자들이 천진전에 있는 석불 대좌 하대석을 보고 판단한 듯하다. 천진전은 전답 자리로 물이 표출되어 지표수가 흐른다. 대종교에서 복토를 하였지만 용출되는 수맥을 잡지 못했다. 또한 천진전에서 용유담은 보이지도 않는다. 절터가 될 수 없다. 석등 하대석도 이름이 틀린다. '석불 대좌 하대석'이다. 1980년 무렵 천진전 단군 교당 강길룡 처사가 마적사터 위 소나무가 있는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