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점필재길 27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화암을 찾아서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화암을 찾아서 ▣ 일 시 : 2020년 10월 16일(금) ▣ 코 스 : 학사루-팥두재(팥치재)-화암-화장사-당두재-엄천사-화계-용유담-신농산삼약초원 ▣ 인 원 : 2명(曺박사님) ▣ 날 씨 : 맑음 지난 추석 연휴에 이철우 전 함양 군수님께 화암(花巖)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들었다. 함양군 유림면 유평리에 화암(花巖) 마을이 있다는 것이다. 이 군수님은 화장사(花長寺)를 찾고 계셨는데, 혹시 자료를 찾을 수 있느냐고 물어오셨다. 내가 천령지에 나오는 화장사(花長寺)에 대한 자료를 보내드리고, 이 군수님께서 사숙재의 내 고향(吾鄕, 원제 : 送金修撰宗直作宰咸陽 二首) 시를 보내오셨다. 이 시는 김종직 선생이 함양군수로 부임할 때 사숙재가 한양에서 전송 시로 지은 것이..

점필재의 아홉 모롱이 길 트랙(고열암~구롱~쑥밭재)

점필재의 아홉 모롱이 길 트랙(고열암~구롱~쑥밭재)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아홉 모롱이 길'이 원문에는 구롱(九隴)으로 나온다. 隴(언덕롱)은 일반적으로 壟(언덕롱)이 많이 쓰이는데 그 대표적인 용례로 壟斷(농단, 높이 솟은 언덕.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익이나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있다. 壟斷(농단)은 《맹자(孟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농단(壟斷)’이 유래하였다. 그러나 맹자 원문에 龍斷(농단)으로 나와 있다. ‘龍(언덕롱)’과 ‘壟(언덕롱)’은 음과 훈이 같은 통자(通字)이다. 결과론적이지만 隴(언덕롱)은 파자(破字)를 하면 阜(阝, 언덕부)+龍(용용, 언덕롱)으로 용처럼 구불구불한 언덕 모롱이 길(사투리로 모랭이, 모래이, 모..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지장사와 지장사 갈림길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지장사와 지장사 갈림길 3년 전 지장사의 위치에 대한 논란이 잠시 있었다. 김경렬 선생은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코스를 의탄에서 고열암으로 올라온 것으로 추정하였지만, 지리 99의 탐구팀은 김경렬 선생의 의탄설을 바로잡아 엄천에서 고열암 루트로 수정하였다. 그러나 엄천을 건너 당산나무-구시락재(구슬박재)-거머리재까지는 잘 넘어와서 엉뚱하게 한쟁이골로 진입하여 상대날등에서 지장사로 들어간 것으로 오판하여 경로를 이탈하였다. 이런 논리를 펼친 것은 유두류록 국역본에 지장사 부분의 구두점 오류로 지장사에 들른 것으로 국역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불교에 대해 아무런 상식도 없는 문외한이지만, 2008년 처음 지장사 터라는 곳을 답사하였을 때, 암자터가 아님을 직감하여 유두류록 원문을 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동부(洞府)와 구롱(九隴)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동부(洞府)와 구롱(九隴)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답사를 하면서 대부분의 지명을 이해하였는데, 오랫동안 유독 동부(洞府)와 구롱(九隴)을 풀지 못하였다. 지난번 박여량 길인 상류암에서 초령을 연결한 후에 지리 동부에서 마지막 남은 숙제이기도 하다. '천 번을 갈아야 비로소 거울이 밝아진다.(千磨鏡始明)'라는 퇴계 선생의 말씀대로 지난 10여 년 동안 아마도 수백 번 가까이 생각한 어휘일 것이다. 내가 아둔해서 글자만 알고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그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고 그것은 곧바로 답사 산행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하여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은 내 삶의 충전재이기도 하다. 점필재 길과 박여량 길에서 마지막 벽에 부딪혀 시간을 보낼 즈음, ..

1472년 김종직 유두류록의 점필재길 길라잡이(5)

1472년 김종직 유두류록의 점필재길 길라잡이(5) 5. 산에서 내려오다[영신사-함양관아] ○ 18일, 임오일. 영신사를 출발하여 칠선봉 쪽으로 영신봉과 영신대를 조망할 수 있는 나지막한 바위가 곧은재 능선(한신능선×) 갈림길이다. 그 초입에 1-39 표지목이 있다. 나는 처음부터 유두류록에서 '徑由直旨而下'의 문구를 '곧바로 지름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로 이해했다. 김종직 선생은 하산길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나무뿌리를 잡고 돌 모서리를 디뎌 가며 내려가는데 수십 리의 길이 이와 같았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얼굴을 돌려 바라보니, 천왕봉이 바로 지척에 있는 듯하였다.』실제로 이곳으로 가파른 길을 내려오다 보면, 천왕봉은 물론 중봉 하봉 영랑대까지 한눈에 들어오고, 계곡이 가까워 올수록 물소리가 우렁차..

1472년 김종직 유두류록의 점필재길 길라잡이(4)

1472년 김종직 유두류록의 점필재길 길라잡이(4) 4. 여러 산과 봉우리들을 살피다[천왕봉-영신사] ○ 17일, 신사일. 향적사에서 일출을 보고 새벽밥을 재촉하여 먹고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에 오른다. 그날의 기온은 '신에 밟힌 초목들은 모두 고드름이 붙어 있었다,' 라고 하였으니 영하의 날씨였다. 성모묘에 들어가 예를 올린 후 북루(정상)에 올라가 사방을 조망한다. 반야봉을 바라보고 고개를 돌려 함양과 진주의 남강, 남해와 거제의 군도까지 보인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유두류록에 28개의 주변 산들을 모두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 그날의 가시거리가 매우 좋은 쾌청한 날씨였음을 알 수 있다. 점필재가 주변의 산 이름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동국여지승람 편찬에 참여했기 때문이다.(최석기 교수님) 또 '천왕봉..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 점필재길 길라잡이(3)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 점필재길 길라잡이(3) 3. 향적사에 머물다[천왕봉-향적사] ○ 8월 16일 경진일, 천왕봉 성모당에서 아침에 일어나니 비바람이 거세므로 종자들을 향적사로 보내고, 정오 무렵 비가 조금 그쳤을 때, 통천문을 지나 향적사로 내려온다. 날이 저물 무렵 구름이 걷히기 시작해 남해 바다와 섬까지 조망되고, 천왕봉 성모당의 흰 깃발이 펄럭이는 것까지 보였으며, '한밤중에는 별빛과 달빛이 모두 환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모사에서 1박을 하고 일기로 인해 추석 달맞이를 못하고 안갯속을 내려온 선생은 을씨년스러운 향적사에서 1박을 하게 되는데, 당시의 정황과 풍경이 시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사람의 발길이 없어 출입하는 길에 혜란초는 웃자라 있고, 샘터와 홈통, 타다 남은 향이 쌓여..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 점필재길 길라잡이(2)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 점필재길 길라잡이(2) 2. 천왕봉에 오르다[고열암-천왕봉] 8월 15일 날씨 흐림, 고열암 요주(寮主)(*)가 '오늘은 필시 비가 오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여 담부(擔夫, 짐꾼)를 일부 돌려보내고 고열암 중에게 시 한 수를 남기고 출발한다. * 요주(寮主) : 선사(禪寺)의 소임(所任). 요원(寮元)을 보좌(補佐ㆍ輔佐)하는 소임(所任)으로, 한 달ㆍ반 달ㆍ10일씩 교대함. 贈古涅僧(고열암 중에게 주다) 求名逐利兩紛紛 : 명예를 구하고 이익을 좇는 일 둘 다 어지러우니 緇俗而今未易分 : 지금은 승려와 속인을 분간하는 것이 쉽지 않구나 須陟頭流最高頂 : 모름지기 두류산의 최고봉 천왕봉에 올라보게나 世間塵土不饒君 : 세간의 흙먼지는 그대를 배부르게 하지 못한다네 紛紛 : 어지..

1472년 김종직 선생 유두류록의 지장사터(180901~02)

1472년 김종직 선생 유두류록의 지장사터(180901~02) ▣ 일 시 : 2018년 09월 01일(토)~02(일) ▣ 코 스 : 적조암 - 노장동 - 지장사터 - 환희대 - 선열암터 - 독녀암(노장대) - 신열암 - 의논대 - 고열암 - 향로봉삼거리 - 벽송사능선 - 장구목 - 어름터 - 광점동 ▣ 인 원 : 2명(조박사님) ▣ 날 씨 : 구름, 안개비 나는 폐암자에 대한 識見도 없거니와 불교에 대해 門外漢이다. 다만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암자터를 찾아 여러 차례 답사를 하였다. 10여 년 전 영신암 터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기행시 '영신암'에서 '방장의 노선사가 석문을 열어주네.[老禪方丈石門開]'라는 시구를 근거로 '영신암과 영신대는 하나다.'라는 의견을 낸 일..

玄石 이호신 화백님의 점필재길 이야기II(180805~06)

이호신 화백님의 점필재길 이야기II(180805~06) 2017년 2월 25일 촛불 시위로 나라가 어수선하던 시절, 무작정 집을 나서서 차를 세운 곳이 남사 마을이다. 매화가 아직 피지 않았으나 혹시 하는 기대에 남사마을을 찾았는데 이호신 화백님이 어떤 손님을 안내하고 계셨다. 화백님이 말씀을 하시는 중간에 끼어들어 '저도 화백님의 해설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하고 불고염치(不顧廉恥) 따라붙었다. 사양정사의 정씨매, 전주최씨 고가의 최씨매, 원정구려의 원정매는 보았지만, 문이 잠긴 성주이씨 고가의 이씨매를 처음 감상하였고, 이사재의 박씨매를 둘러본 후, 이화백님에게 '지금은 꽃자리(時芳齋)'에서 茶를 얻어 마시다가 이 화백님의 지리산 산수화를 접하고 다짜고짜 1472년 점필재 길을 화폭으로 복원하자는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