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实踐人文 59

최치원이 1200여년전 쓴 것으로 추정되는 ‘완폭대 석각’ 발견

최치원이 1200여년전 쓴 것으로 추정되는 ‘완폭대 석각’ 발견 【산청=뉴시스】정경규 기자 = 최치원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완폭대 석각을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직원이 살펴보고 있다.2018.05.10.(사진=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 제공) photo@newsis.com 【산청=뉴시스】정경규 기자 = 국립공원관리..

청학의 비밀과 불일폭포 이야기

청학의 비밀과 불일폭포 이야기 1558년 4월19일 남명 조식은 불일암과 불일폭포를 유람하고 청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서쪽으로 푸른 벼랑을 깎아내어 만 길 절벽으로 우뚝 솟은 것은 비로봉(毘盧峯)으로 청학 두세 마리가 그 바위틈에 깃들여 살면서 때때로 날아올라 빙빙 돌기도 하고 하늘로 솟구쳤다가 내려오기도 한다.' 남명 선생이 청학을 직접 목격한 것인지 안내한 승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 이후에 불일암을 다녀간 선인들의 유산기에는 청학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청학을 직접 목격한 기록은 없다. 동쪽으로 높고 가파르게 솟아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것은 향로봉(香爐峯)이고, 서쪽으로 푸른 벼랑을 깎아내어 만 길 절벽으로 우뚝 솟은 것은 비로봉(毘盧峯)으로 청학 두세 마리가..

1923년 개벽 제34호 지리산보의 망해정

1923년 개벽 제34호 지리산보의 망해정 진주 사람 강위수가 지었다는 망해정에 대한 기록은 개벽 제 34호 지리산보(1923-04-01)와 김학수의 유방장산 기행(1937-05-18)에 등장한다. '바위 사이에는 가옥 하나가 있었는데 수십명을 수용할 수 있다. 진주사람 강위수가 세운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 개벽 제 34호 지리산보(1923년 4월 1일) 姜渭秀씨는 遊山하는 人의 편리를 圖키 위하야 山上에 望海亭을 건축하고, 朴魯翊 及 靈源寺僧 一同은 帝釋堂을 건축하얏스며, 李璡雨 及 碧松寺僧 一同은 馬岩堂을 건축하야(兩處皆中峯) 2. 1937년 5월18일의 유방장산 기행 바위 사이에는 가옥 하나가 있는데 수십 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진주(晉州)의 강위수(姜渭秀)가 세운 것. 3. 다큐멘타리..

내원골 장원암(狀元巖)

내원골 장원암(狀元巖)​아래로 내려와 청학동 하류에 도착하니 수석(水石)이 더욱 기이하여 정신이 상쾌해짐을 갑절이나 깨달았다. 계곡 주위를 배회하다가 [갑자기 시 한 수가 바위 사이]에 있음을 보았다. 청학봉 앞 길 / 靑鶴峯前路맑은 못에는 파란 삼나무가 어른거리네 / 澄潭影翠杉우선(羽仙)이 경치 좋은 곳을 찾은 곳이라고 / 羽仙探勝處장원암(狀元巖)이라고 부른다네 / 仍號狀元巖 이 시는 계부(季父 : 오핵)께서 직접 쓰신 시이다. 그리고 우선(羽仙 : 오숙)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호이다. 선인(先人 : 돌아가신 아버지인 오숙)께서 숭정(崇禎) 신미(辛未, 1631)에 남쪽에 관찰사로 계시면서 이곳에 유람한 적이 있으며, 그리고 작은 숙부도 또한 병술년(丙戌, 1646)에 장원급제하여 두루 구경을 다니러 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