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实踐人文 59

智異山 天王峯의 偉容

국한문 혼용체로 문단을 끊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음. 깊은강님에게 카톡으로 받은 자료입니다. 智異山 天王峯의 偉容 출처 : 네이버 블로그 깊은강님 ※1933년 07월호 신동아에 수록된 "조선의 오대 명산 최고봉 등척기" 다섯 꼭지 중 하나 石顚沙門(석전사문) 北山(북산)의 盤據(반거)는 嶺湖間(영호간)에 九郡(구군)의 지역이 相沿(상연) 하얏고 특히 雲峰(운봉)의 六面(육면)되는 一郡(일군)이 山內(내산)에 藏點(장점)하였다. 然(연)한데 內山(내산)의 水는 般若奉(반야봉)과 天王奉底(천왕봉저)에 源出(원출)하야 漸流愈汎(점유유범)하야 山淸(산청)의 換鵝亭(환아정)을 들러 丹城 赤壁(단성 적벽)인 白馬江(백마강)을 滙成(회성)하고 西谷(서곡)의 德山(덕산)과 新川(신천)이 合流(합류)하야 晉陽矗石褸(진양촉..

세석평전의 명소 청학연못에 대하여(200106)

세석평전의 명소 청학연못에 대하여(200106)    처음 세석의 '청학연못'이라는 곳을 처음 답사한 것은 2006년 6월 24일이다. 선인들의 유람록과 옛 지명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던 시기였다. 그해 10월 14일~15일(1박 2일)에 청학연못을 다시 찾게 되었고, 세석산장 앞 영신사지라는 곳도 답사하였다. 청학연못은 인공연못이고 영신사지는 냉천이 솟는 습지이다. 두 곳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가, 2007년 10월 12일~14일 2박 3일간 다시 청학연못과 영신사지와 영신대를 찾았다. 한 해를 넘기고 2008년 9월 26일~27일 적조암으로 들어가 지장사터와 환희대, 독녀암을 확인하였고, 2008년 10월 10일~12일(2박3일) 적조암에서 출발하여 환희대와 삼열암, 독녀암과 의논대를 확인하고,..

1651년 오두인 두류산기의 수국사(水國寺)

1651년 오두인 두류산기의 수국사(水國寺) ○ 11월 5일 己卯 (양력 12월 17일)아침에 은정대에서 출발하여 다시 동쪽으로 올라가 수국현(水國峴)을 넘어가려고 했다. 돌 길이 험하고 시냇물이 겹겹으로 얼어 있어 열 걸음 가면서 아홉 번은 쉬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벼랑을 부여잡으며 나아갔다. 가다가 길가에 허물어져 있는 세 곳의 암자 터를 보았다. 승려에게 물으니 상수국사(上水國寺)·중수국사(中水國寺)·하수국사(下水國寺)라고 하였다. 그곳에서 곧장 동쪽 고개로 올라갔는데 여기가 바로 수국현(水國峴)이다. 수국현(水國峴)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니, 아름다운 봉우리 하나가 하늘 가운데 우뚝 솟아 준엄한 기상으로 여러 골짜기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천왕봉으로, 두류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

다시 읽어보는 영신대에 숨어있는 석가섭의 비밀

다시 읽어보는 영신대에 숨어있는 석가섭의 비밀    김종직선생의 유두류록과 기행시를 좇아 전 구간을 3박4일간 여러번 답사를 하고, 그동안 이해가 되지 않았던 원나라 고승 몽산화상이 그린 가섭도에 안평대군이 쓴 찬을 다시 읽어보았다. 글자만 알고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대둔산 석천암 천산 스님과 대전 보광사 원명 스님(인도유학)께 도움을 청하고, 불교에 조예가 깊은 熊乭선생과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을 완독한 단사천(丹砂泉)님의 도움을 받았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는 몽산화상이 그린 가섭도 탱화(족자)에 안평대군이 쓴 贊이 실려있다.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에는 몽산화상의 영정인지, 가섭도인지 혼란이 있다. 탁영 김일손 선생의 속두류록(續頭流錄)에는 분명하게 가섭도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가섭도에 대한..

불일폭포의 학담과 학연 그리고 용추에 대하여

불일폭포의 학담과 학연 그리고 용추에 대하여 청학연(靑鶴淵)에 대한 명칭은 1487년 추강 남효온의 기록에 유일하게 등장한다, 다른 유람록에는 학연, 학담, 용추, 학추 등 다양한 이름이 보이는데 동소이칭(同所異稱)으로 생각된다. 선인들은 분명 불일폭포를 학의 형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청학동 이름의 유래도 불일폭포에서 출발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불일폭포의 다른 이름이 청학폭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치원의 청학 설화와 청학동은 불일폭포가 그 시발점(始發點)이라는 것이다. 학연과 학담에 대해서는 20여 편의 유람록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남명 조식 선생의 기록이 가장 구체적이다. 얼마 전 블친의 블로그에서 불일협곡에서 용추와 학연, 학담으로 직등한 사진을 보고 그동안 궁금했던 학연의 비밀을 확인할 수 있었..

頭流庵(두류암) 관련 유람록과 기행시(181006)

頭流庵(두류암) 관련 유람록과 기행시(181006) 두류암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느날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 나오는 두류암 관련 자료를 읽고 쑥밭재 아래 '두류암 승탑'을 찾게 되었는데, 선인들의 유람록과 천령지의 기록과 부합(符合)하지 않았다.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을 좇아 용유담-마적동-송대-장구목-두류암 코스를 답사하고, 승탑 연구가 임병기(善果님) 선생의 답사 자료를 보고 자문을 구하니, 부도의 형태는 조선 후기의 양식이고 어떤 유람록에도 부도에 관한 기록이 없다. 승탑이 있는 곳은 유람록에 나오는 두류암 터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곳이 두류암 터는 아니다. 승탑은 있지만 기록에 나오는 두류암터는 아니다. '라는 말씀을 들었다. 두류암 관련 선인들의 유람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