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实踐人文 59

칠성동의 유래와 진평왕 태자 태실지를 찾아서(201205)

칠성동의 유래와 진평왕 태자 태실지를 찾아서(201205) ▣ 일 시 : 2020년 12월 05일(토) ▣ 코 스 : 함양초교-화암마을-산지골펜션-마천 당흥부락-백무동-군자사터-도마사터-벽송사-신농산삼약초원-천진암-마적사터 ▣ 인 원 : 나 홀로 ▣ 날 씨 : 맑음(포근함) 함양에서 창원마을 출신 박영일 교수와의 점심 약속 때문에 출발을 늦췄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하여 함양초등학교 정원에 방치된 배례석(拜禮石)을 확인하였다. 불교를 모르니 불구(佛具)를 알리가 없고 명칭 또한 생소한 용어이다. 눈을 부릅뜨고 정 맞은 돌을 찾았지만 장님이나 다를 바가 없다. 선과님에게 여러 번 통화를 한 후에야 겨우 배례석(拜禮石)을 찾았다. 오랫동안 화단에 디딤돌로 사용하여 연꽃 문양이 많이 훼손되었다. 함양에서 박 교..

매화는 도리행화와 봄을 다투지 않는다

매화는 도리행화와 봄을 다투지 않는다. 나는 불교도 역학도 명리도 풍수도 모르는 데다가 대학에서 10.26과 5.18을 겪었으니 겨우 교과서 수준만 이해하는 고등학교 선생이다. 본래 아는 것이 없으니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궁금한 것도 없는 사람이다. 옛말에 '도끼로 닭을 잡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꼭대 님은 어찌하여 그림 속의 닭을 잡는데 도끼를 휘두르는지. 이재구 님이 옆에서 거드는 모습도 재미있다. 병충해를 붓으로 잡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현대판 묵희(墨戱)가 아닌가. 영업장이 이렇게 시끄러우면 매출이 떨어지고 손님이 떠나는 법이다.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하고 손익 계산을 못한다. 注 묵희(墨戲) : 신참 과거 급제자에게 선배 급제자들이 행하던 일종의 신고식 때 붓으로 얼굴에 먹칠을 하..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묘정암은 어디인가?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묘정암(묘정사)은 어디인가? 묘정암에 대한 기록은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2회 등장한다. 지난 일요일 조박사님에게 카톡으로 사진 몇 장 날아왔다. 의중 마을과 금계동에 살았던 '탄수 이종식(李鐘植, 1871~1945) 선생의 비결문 명문 논집'에 상내봉(향로봉)에 관한 이런 기록이 있다. '晨明早日霜老峯 : 동이 트면 해가 일찍 뜨는 상로봉은 陽色眺會避難處 : 양기가 빠르게 모여드는 피난처네' 이재구 선생은 향로봉(상내봉)에 대하여 행로봉이 셋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지만, 어느 정도 결론이 난 듯하다. 얼마전 조박사님과 향로봉 동쪽의 등고선과 항공 사진을 보고 대화를 나눈 일이 있다. 점필재의 아홉 모랭이 길과 감수재의 초령길, 어우당의 유몽인길, 일제강점기의 강계형과 권..

일수불퇴 한번 상내봉은 영원한 상내봉인가?

일수불퇴 한번 상내봉은 영원한 상내봉인가? 점필재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향로봉(상내봉)은 어디인가? 2017년 4월 초파일 점필재길 전 구간을 답사하기 위해 동강마을을 출발하였다. 아침에 산지골 펜션에 들러 차를 한 잔 얻어마셨다. 유진국 사장님이 고맙게도 대봉 곶감을 한 봉지 내주셨다. 적조암에서 아침 공양을 하고 삼열암, 독녀암, 의논대에 들렀다가 안락문을 지나 능선에 올라섰다. 이 능선길은 옛길이 아니고 마적동의 대종교 사람들이 천왕봉에 오르기 위해 만든 길이라고 한다. 진달래가 피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날이라 햇살은 따스했다. 나만의 착시현상일까. 이때 오뚝이 바위가 향로로 보이는 것이다. 유람록 답사는 가끔 이적 체험을 하기도 한다. 이때가 부처가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

마천면 의탄리 금계동과 새별들 덕암의 성혈 이야기

마천면 의탄리 금계동과 새별들 덕암의 성혈 이야기 지난 11월 6일 탄수(灘叟) 이종식(李鐘植, 1871~1945) 선생의 손자 이○○ 의원에게 '방장산 제일문이 금대사에 있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삼송(三松) 임응택(林應澤, 1879~1951) 선생의 와유강산(臥遊江山)에 방장산 제일문에 대한 기록이 있다. 금대사에 '數間石室 정케지어 方丈山 第一門을 門上에 새겼다.'라는 내용이다. 이 의원의 말에 따르면 금대사에 있던 방장산 제일문은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재 방장제일문은 탄수(灘叟) 공의 유언에 따라 사후 6.25가 끝날 무렵 후손들이 새긴 것이다. 탄수(灘叟) 공의 아버지 죽포(竹圃) 이규현(李圭玹, 1848~1935) 공이 정미(1907년) 의병장 석상용(石祥龍, 1870~1920) ..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영신대의 아리왕탑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영신대의 阿里王塔 김종직의 유두류록과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영신사의 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영신사 서북쪽 높은 봉우리에는 조그마한 탑이 있는데, 그 돌의 결이 아주 곱고 매끄러웠다. 그 중심에 철을 꿰어놓았는데 두어 개층이 유실되었다.(김종직)' '아리왕탑(阿里王塔)은 서쪽에 서 있다.(유몽인)'라고 설명하고 있다. 탑의 위치가 서북 쪽과 서쪽이 방향이 일부 일치하나 같은 탑을 설명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현재 남아 있는 서쪽에 있는 돌무더기가 있는 곳을 아리왕탑 지로 추정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아리왕탑에서 좌고대와 추강암이 보인다. 탑의 형태에 관한 기록은 '조그마한 탑이 있는데 그돌의 결이 아주 곱고 매끄러웠다.(김종직)'라는 것이 유일한 단서이다. 혹..

마천면 당흥부락에서 바라본 좌고대와 칠선봉

마천면 당흥부락에서 바라본 좌고대와 칠선봉 마천면 당흥부락 마애석각 명문에는 어떤 스토리가 들어있을까. 석각 명문에 태실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마을 향계에서 세운 진평왕 태자의 금표일 가능성이 높다. 왕위에도 오르지 못하고 역사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으니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다만 1530년 편찬된 신동국여지승람과 1873년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군자사에서 출생 기록만이 남아있다. 이덕무의 기록은 1684년 작성된 군자사 사적기를 간략하게 옮긴 내용이다. 이덕무는 '동사(東史)를 상고하건대, 진평왕(眞平王)은 후사가 없는데 지금 '이곳에서 태자를 낳고 인하여 군자사라고 명명하였다.' 하였으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적기에 의문을 나타낸 것이다. 김수태(1929년..

지리동부 쑥밭재와 청이당의 어원에 대하여

지리동부 쑥밭재와 청이당의 어원에 대하여 ​ 1. 문헌에 나타난 쑥밭재의 명칭 쑥밭재의 명칭은 1871년 배찬의 유듀류록에는 애현(艾峴), 1877년 박치복 남유기행과 허유의 두류록, 1937년 김학수의 유방장산기행에는 애전령(艾田嶺), 1887년 정재규의 두류록과 1956년 함양군지에는 봉전령(蓬田嶺)으로 1933년 석전(石顚) 박한영의 석전사문에는 봉전치(蓬田峙)로 나타난다. 애현, 애전령, 봉전령, 봉전치는 쑥밭재를 한역한 명칭이나 쑥과는 연관이 없는 듯하다. 쑥은 1,000m가 넘는 고지대에서 자라지 않는다. 2. 쑥밭재, 일명 애전령(艾田嶺), 초령(草嶺)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쑥밭의 '쑥'은 원시어소 [슬/sur]의 변이음이고 '밭'은 [불/bru]의 변이음이다. 기슭을 가리키는 [슬/s..

아홉 모랭이 길의 일강(一岡) 바위

아홉 모랭이 길의 일강(一岡) 바위 구롱(아홉 모랭이) 길은 고열암에서 시작하여 미타봉의 일강(一岡)을 넘어 동부를 지나 쑥밭재까지 이어지는 길을 말한다. 일강(一岡)은 고열암을 출발하여 첫 모랭이[일롱(一隴)]로 미타봉 능선을 가리킨다. 소림선방으로 가는 일강(一岡)에 특이한 바위가 있는데 빛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천왕봉의 망해정과 제석봉의 제석당과 중봉의 마암당

천왕봉의 망해정과 제석봉의 제석당과 중봉의 마암당 천왕봉의 망해정과 제석봉의 제석당 중봉의 마암당에 대한 기록은 1923년 '개벽 제34호 지리산보(1923년 4월 1일)'에 자세한 내용이 실려있다. '함양 군수 민인호가 함양명승고적보존회(보승회)를 조직하여 동군 유지 강위수(姜渭秀)는 등산객들의 편리를 위하여 天王峯에 망해정(望海亭)을 짓고, 박노익(朴魯翊)과 영원사승(靈源寺僧) 일동은 제석당(帝釋堂)을 건축하였으며, 이진우(李璡雨)와 벽송사승(碧松寺僧) 일동은 마암당(馬岩堂)을 건축하였는데 두 곳이 모두 중봉이다.[兩處는 皆 中峯 : 마천에서 오르는 자들은 제석봉을 中山이라고 하고, 엄천으로 오르는 사람들은 중봉을 中山이라고 함.(김종직의 유두류록)]이다.'라는 내용에서 천왕봉의 망해정과 제석봉의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