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병들 ★영국 기자 매켄지( Frederic Arthur Mckenzie)의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 "중에서(Korea's Fight for Freedom)★ 나는 그들이 휴대하고 있는 총을 살펴보았다. 여섯 명이 가지고 있는 총 중에서 다섯 가지가 제각기 다른 종류였으며, 그 중에 하나도 성한 것이 없었다. 나는 의병들의 조직을 물어 보았다. 그의 말에.. ♣ 崇祖惇宗/독립운동 2006.08.19
독립유공자 피탈재산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 제정촉구 서명운동 독립유공자 피탈재산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 제정촉구 서명운동 제안이유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민국은 3 .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의 법통을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는 민족적 중흥과 세계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번영을 이루어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때 일.. ♣ 崇祖惇宗/독립운동 2006.08.19
止山遺稿 三(의병장 止山 李起璨선생의 창의 일기) 義兵將 止山 李起璨先生의 倡義 日記 燕巢齋 學人 李 永 揆 譯 止山遺稿 卷三(日記 丙申二月 仗義時 建陽 二年) 邦運不幸 奸臣弄權 賣國通商 開門納賊 島夷侵犯 不止一再 而至於乙未八月二十日之變 而極矣 國運(국운)이 불행하게도 奸臣(간신)이 권세를 제 마음대로 휘둘러 나라를 팔아 통상을 하고, 문을 열러 도둑을 맞아들여 섬 오랑캐(일본)가 침범하기를 한 두 번에 그치지 아니하더니 乙未(을미:1895년)년 팔월 이십일의 변(명성황후 弑害)에 이르러 극에 달하였도다. ·明成王后(명성왕후1851∼1895):高宗皇帝(고종황제)의 비. 을미사변으로 45세의 나이로 일본 浪人(낭인)들에게 시해됨. 害我國母 勒削我君父 是可忍也 孰不可認也 우리 국모를 시해하고 군부(임금)의 머리를 억지로 깎았으니 이것이 참을 수 있는 일인가.. ♣ 崇祖惇宗/창의일기 2006.06.21
[스크랩] 내가 葛嶺에 가야하는 까닭은... * 일 시 : 2006년 4월 9일 * 경유지 : 대전 - 영동 - 상주 - 의성 - 길안 - 청송 - 길안 - 의성 - 상주 - 화북 - 갈령 - 청계사 - 화북 - 보은 - 옥천 -대전[13시간(차량운행 7시간 포함)] * 인 원 : 4명(이원규, 이성규, 이영규, 이범규) 지산유고를 읽으며 온몸을 전율하였던 것은 충과 역의 혼돈이었다. 그리고 50년간 .. ♣ 崇祖惇宗/지산유고 2006.06.09
[스크랩] 을미의병운동 지산 유고에 나오는 갈령 ▶丙申年(1896년) 三月 二十七日 二十七日 踰葛嶺 抵高橋 問宗人秉禧 居喪中 大于壯岩李交河家 堤川召募將李華榮 執富人吳進士 與金都事 載前載後 余心不樂 先發至松面 松面近地 無一人 安業者細細 探得前到十輩 不知何許無名 而逢人必討逐戶 而索可駭 分付中營 捕捉不得 且聞 殺尙州首吏與申 .. ♣ 崇祖惇宗/지산유고 2006.06.09
[스크랩] 5대 조부 조비 고조부 백씨 緬禮 5代祖·高祖 墓所 緬禮 및 床石建立 1. 방향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 羅湖洞에 모신 상의공(五代祖考 五代祖비) 후손들이 청흥문중 종회를 구성한지 어언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본래의 목적대로 임야를 매입한 후 이장하려고 하였으나 제반 여건이 마땅치 않아 宗賢 廷稷氏의 양해를 얻어 대전 유성구 .. ♣ 崇祖惇宗/지산유고 2006.06.07
靑興門中의 家族史 靑興門中의 家族史 ■ 일 시 : 2006. 06.06 ■ 장 소 : 함각산(대덕구 마산동), 백운봉(유성구 성북동) ■ 인 원 : 이동, 이남, 이영규, 이범, 당숙어른 부부 靑興門中의 家族史 1912년은 우리 가족에게는 비극의 해였다. 한일합방이 되어 일본 경찰의 압박이 심해지자 長子 휘康夏는 1912년 아버지인 지산의 유.. ♣ 崇祖惇宗/지산유고 2006.06.07
부질없는 일... 나는 지산할아버지의 묘를 종실 스님과 찾았다. 일제 50년 넘는 세월을 지나, 1979년 충북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에서... 그분의 유해는 없었다. 이미 아들인 강하 할아버지가 1912년 초강(금강) 변에서 그 분의 둘째 아들 강은 할아버지의 유해와 함께 화장되었다는 기록을 확인하고, 나는 그분의 아버지와.. ♣ 崇祖惇宗/지산유고 2006.05.05
丙申年(1896년) 四月 初四日 ▶丙申年(1896년) 四月 初四日 初四日 與二侄裝束將歸 只一空褓短杖而已 緩步下山之際 忽有 聲四起 必是敵兵來 追義陣不可以已 辭而恬然獨退四視 陣處將卒 皆登山矣 往餞于葛嶺而還 사월 초사일 두 명의 조카와 옷차림을 하고 장차 돌아가려 하였는데 다만 빈 봇짐에 短杖(단장)뿐이었다. 느린 걸.. ♣ 崇祖惇宗/창의일기 2006.05.04
丙申年(1896년) 四月 初二日 - 初三日 ▶丙申年(1896년) 四月 初二日 初二日 儒生還 姑無定 사월 초이틀 化嶺(화령)에 보냈던 儒生(유생)이 돌아 왔으나 잠시 계책을 정하지 못하였다. · :산가지산, 계책산 ▶丙申年(1896년) 四月 初三日 初三日午刻 聯投三單于本陣 則士卒有呼泣者 軍官有等訴者 豈可以呼訴爲哉 傳任于趙進士東奭 退宿.. ♣ 崇祖惇宗/창의일기 2006.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