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崇祖惇宗/창의일기

止山遺稿 三(의병장 止山 李起璨선생의 창의 일기)

도솔산인 2006. 6. 21. 16:38

義兵將 止山 李起璨先生의 倡義 日記

 

                                                                                          燕巢齋 學人 李 永 揆 譯

 

止山遺稿 卷三(日記 丙申二月 仗義時 建陽 二年)

 邦運不幸 奸臣弄權 賣國通商 開門納賊 島夷侵犯 不止一再 而至於乙未八月二十日之變 而極矣
 國運(국운)이 불행하게도 奸臣(간신)이 권세를 제 마음대로 휘둘러 나라를 팔아 통상을 하고, 문을 열러 도둑을 맞아들여 섬 오랑캐(일본)가 침범하기를 한 두 번에 그치지 아니하더니 乙未(을미:1895년)년 팔월 이십일의 변(명성황후 弑害)에 이르러 극에 달하였도다.

 

·明成王后(명성왕후1851∼1895):高宗皇帝(고종황제)의 비. 을미사변으로 45세의 나이로 일본 浪人(낭인)들에게 시해됨.

 

  害我國母 勒削我君父 是可忍也 孰不可認也


 우리 국모를 시해하고 군부(임금)의 머리를 억지로 깎았으니 이것이 참을 수 있는 일인가? 누구든 인정할 수 없는 일이다.

 

· :죽일장. ·勒:굴레륵. 억지로할륵.

 

 謂天孔昭弘集允中之輩 次第授首 謂天難諶永孝吉濬之徒 猶尙假息也

 

 폐하께서 '金弘集(김홍집)과 魚允中(어윤중)의 무리를 매우 밝다'라고 생각하시고 차례로 품계의 앞자리 除授(제수)하였고, 폐하께서 '朴永孝(박영효)와 유길준의 무리를 믿기 어렵다' 생각하시고 오히려 잠시 쉬게 하였다.

 

·孔昭 : 매우 밝다 ·弘集允中之輩 :김홍집 어윤중의 무리
·次第:차례, 순서 ·難諶(난심) : 믿기가 어렵다 ·猶尙:오히려

 

 春秋有復 之義 何代無勤王之師 所以八關擧義十室有忠 湖嶺列鎭擧 皆樹風而鄙微如某者 徒費添室之憂矣


 春秋(춘추)에 復讐之義[복수지의(원수를 갚는 의리)]라는 말이 있는데 어느 대에 임금에게 충성하는 군사가 없겠는가? 여덟 역참에서 의병을 일으킨 까닭은 열 집마다 충신이 있고 영호남의 列鎭(열진)에서 일어나 다 風敎(풍교)를 세워서 식견이 좁은 나 같은 사람이 헛되이(다만) 가족에게 근심을 더할 것이다

.

·勤王之師:임금에게 충성하는 군사 ·八關 :여덟역참, 팔관문
·樹風:風敎(풍습을 잘 교화시킴)를 세움 ·徒費:허비함. 돈을 헛되이 씀.
·添室之憂:가족의 근심을 더하다.

 

▶丙申年(1896년) 二月 八日
 與木川族人起夏 適往甘川 訪許旺山蔿慷慨士也 憤不顧身魯 與數三同志  有措備於金山等地 而方在啓行中 余不敢辭 與諸益偕往趙進士東奭 柳兄道燮 實左右之


 이월 팔일 木川(목천)에 사는 族人(족인) 起夏(기하)와 함께 甘川(감천)으로 가서 旺山(왕산) 許蔿(허위)를 찾아가 倡義(창의)의 일을 논의하였는데 허위는 悲憤慷慨(비분강개)하는 선비이다. 분하고 원통하여 자신의 둔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서너 명(數三)의 동지들과 대략 金山(금산) 등지에서 준비를 조처하여 바야흐로 倡義(창의)를 시작하는(길을 선도하는) 가운데 내가 감히 사양(사퇴)하지 못하고 여러 돕는 사람들과 함께 趙進士(조진사) 東奭(동석)과 柳兄(유형)道燮(도섭)에게 갔는데 진실로 서로 의지하여 좌우에서 돕는 사람들이었다.

 

·啓行 : 길을 선도함. 출발함. 여행을 떠남  ·左右 : 서로 의지하여 돕다
·起夏 : 字는 岐卿 號는 小山 甁窩(병와) 嗣孫 木川(목천)에 살았으며 경술년(1910년) 止山先生의 長子 康夏와 함께 義兵將 雲岡 李康秊(1908년 9월 19일 교수형)의 아들 承宰 明宰 肯宰와 함께 활동함[庚戌倡義 通文 李康秊(이강년) 後孫(후손) 所藏(소장)]

 

▶丙申年(1896년) 二月 九日
 宿塘村
 이월 구일 倡義擧兵(창의거병) 전일 塘村(당촌)에서 묵었다

 

▶丙申年(1896년) 二月 十日 乙亥(양력 3월 23일)
 入金泉 同日會員三十餘人 許盛山·姜石圃·梁碧濤·金鳳超·諸益皆與焉 火 軍三百名素所約束者也 而爲人所沮 中途回  卒難復 合然旣發之 論誓死不  爰擧六丁火  立定條約


 이월 십일(장날) 金泉(김천)에 들어갔다. 同日 회원 삼십여명과 許盛山(허성산) 姜石圃(강석포) 梁碧濤(양벽도) 金鳳超(깁봉초) 등 여러 돕는 사람들이 다 참여하였다. 화포군(소총수) 삼백명은 본래 약속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沮止(저지)를 당하여 중도에서 기를 돌려 마침내 돌아가기 어려워 혼연일체로 다 일어났다. 함께 죽기를 맹서하고 변하지 않을 것을 논하며 이에 육정의 화승총을 들고 일어서 조약을 정하였다.

 

·注 : 金泉(김천)역은 바로 三南(삼남)의 큰 도시로 서쪽으로 湖南(호남)으로 통하는 要衝(요충)이다. 험한 곳을 거점으로 삼아 수비하기 좋은 요충지형을 먼저 얻기 위하여 이곳에서 착수하였다(止山先生年譜) · :달라질투. 변할투

 

▶丙申年(1896년) 二月 十一日
 夜未半入金邑 騎步從者幷三十餘人 戒勿放  諭以安堵鄕人 從者衆 呂永昭·李尙(相?)卨·金騏 ·諸人爲一鄕望士也 以本邑防守事 適時鄕會 竟爲同聲之應 此亦一期會也 爲多士所推 冒居首任 任大責重已 無可言


 이월 십일일 이른 새벽에 金邑(금읍)에 들어갔다.
말을 타고 걸으며 따르는 사람(騎兵, 步兵, 從者)들이 아울러 삼십여명에게 空 (공포)를 쏘지 말라' 라고 경계하고 향리 사람들에게 安堵(안도)할 것(마음을 놓을 것)을 타일러 깨우쳤다. 따르는 사람의 무리는 呂永昭(여영소)·李相卨(이상설)·金騏 (김기력) 등 諸人(제인)들은 한 마을의 名望있는 선비이다. 呂永昭(여영소)는 本邑(본읍)의 防守事(방수사)로 때에 鄕會(향회)에 가서 마침내 같은 목소리로 호응을 하였다. 이것이 또한 한번의 기회였다. 많은 선비들에게 推戴(추대)되어 무릅쓰고 대장의 자리에 앉게 되니 소임이 크고 책임이 무거울 뿐, 말을 할 수 없었다.

 

·放  : 軍中(군중)의 號令(호령)으로 空砲(공포)를 놓아 소리를 냄.
·安堵 : 편안한 울타리 속이란 뜻으로 제사는 곳에서 편하게 지냄. 마음을 놓음 ·諭:깨우칠유 인도할유 ·爲A 所B : A에게 B를 당하다 ·冒居首任:무릅쓰고(앞뒤를 돌보지 않고 나아가다) 대장의 자리에 차지하다

 

 邑宰李範昌 卽嶺伯李重夏之至親侄也 自知其罪 前已棄城 亦甚難處 勢不獲己 乃發邑


 邑宰(읍재) 李範昌(이범창)은 곧 경상도 관찰사(嶺伯) 李重夏(이중하)의 아주 가까운 친척 조카이다. 스스로 그 죄를 알고 우리의 입성에 앞서 이미 성을 버렸는데 또한 남아서 성을 지키기가(처신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의병들에게 (자기가) 잡히지 않으려고 바로 읍을 떠났다.


·侄:姪(조카질) ·嶺伯:경상도관찰사

  軍四十名 與藥丸數十封 擧義犯公 豈所樂爲待 軍制成 軍還本鎭 藥還本庫之 意修文簿一置 義陣 一置本邑 爲文通于列邑


  軍 사십 명에게 탄약과 탄환 數十封(수십봉)을 지급했다. 의병을 일으켜 관청을 범한 일들이 어찌 기뻐하며 기다린 일인가? 
 군의 체제를 만들고 군을 본 진영으로 돌려보내고 화약은 본 진영의 창고로 돌려보냈다. 意修文簿(문서를 취급하는 부서)를 하나 설치할 것을 생각하고, 의진 한 부대를 本邑(본읍)에 배치하고 글(通文)을 지어 여러 고을의 義陣(의진)에 통고하였다.

 

▶丙申年(1896년) 二月 十四日
出宿于金泉 天將降旱餘之雨   饋訖適晴


 이월 십사일 金邑(金陵)에서 나와 金泉(김천)에서 묵었다. 하늘에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음식을 보내 군사들을 위로하고 음식을 다 먹었을 즈음 날씨가 조금 개였다.

 

·旱餘之雨 : 단비(가뭄 끝에 내리는 봄비)
· 饋 : 음식을 보내 군사를 위로하고 먹이다 ·訖:이를흘. 마칠글
·適(적):마침. 겨우. 조금. 약간

 

▶丙申年(1896년) 二月 十五日
 十五日將向龜城 耆月居呂永根 卽金山稅務主事也 其從子承東 卽本鎭運粮都監也 以其叔罪犯化黨而幸得容貸 自納軍需代二千金 又以龜城之行路 出其門 爲兵設饋


 이월 십오일 장차 龜城(구성)으로 향하여 하였다. 기월에 사는 呂永根(여영근)은 곧 金山(금산)의 세무주사이다. 그 사촌의 아들(당질) 呂承東(여승동)은 곧 本鎭(본진)의 運粮都監(운량도감)이다. 그 셋째 동생이 개화당의 죄를 범하였으나 운 좋게 관대하게 처리한 까닭으로 스스로 군자금 二千金을 납부하고 또한 龜城(구성)의 行路(행로)에 그 문을 나와 군사들을 위하여 음식을 대접하며 베풀었다.

 

·耆月:지명. 김천과 거창 사이 송죽휴게소 근처
·粮:糧의 속자  ·運粮都監:군량을 운반하는 총책임자
·容貸(용대):죄나 잘못 등을 관대하게 처리함

 余甚佳其意 而鄙其貨三鼓 日 踰石峴上 上子院時雨下 山川紆  顧許參謀旺山曰 美哉 可養兵 乘夜入郡 郡有野 之 約操兵夾道而待者 千餘人 十步一炬光奪桂魄意 謂此地此人 庶幾有辭 而未知義理何如耳 及到入見主 李在夏責 以宗室巨卿之家 當此主辱臣死之日 觀望逼 於一片孤城 寧寒心哉 以年老 薄辭


 내가 그 뜻을 매우 가상하게 여겼으나 그 재화는 인색하여 여러 번 북을 울렸다.
 날이 저물 석양 무렵 石峴(석현)의 정상 上子院을 지날 때 비가 내렸다. 산천에 紫 (탱알)이 얽혀있어 許참모 旺山(왕산)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아름답지요? 가히 군사를 기를만합니다』라고 하였다.
 야음을 타고 고을에 들어갔다. 관아에는 거칠게 떠드는 소리가 있었고 군사를 잡아 묶어 놓고 길을 끼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천 여명이었다. 십보에 하나의 횃불을 밝혀 달의 뜻을 빼앗았다. 생각건대 이 곳 이 사람들이 거의 하소연함이 있으나 의리가 어떠한가를 알지 못할 뿐이었다. 院에 도착하였을 때 고을 원님 李在夏(이재하)가 들어와 알현하니 꾸짖기를 '종실이며 큰 벼슬을 한 집안으로 이 임금이 욕을 당하고 신하가 죽는 날을 당하여 관망하다가 一片孤城(일편고성)에 황급하게 남아있으니 어찌 寒心하지 않은가?' 라고 하였다. 나이가 연로한 까닭으로 녹미가 적다고 하소연하였다.

 

·자완(탱알):국화과의 다년초 줄기의 높이는 1.5∼2m이고 잎은 긴 타원형임. 7∼10월쯤 둘레는 자줏빛 가운데는 노란빛의 두상화가 핌. 우리나라와 일본의 산야에 분포함. 관상용이나 뿌리는 약용이고 어림 잎은 식용. 紫 (자완)


·桂魄:달의 딴이름 ·庶幾:①가까움, 가까울 것임 ②거의 ③바라건대, 바람
·耳:矣 · :버금쉬 원쉬 백사람졸  ·逼  : 황급하게 머무르다

 

▶丙申年(1896년) 二月 十六日
 知禮李周弼來見 以其子不堪運粮 縷縷懇辭之際 邑人三四十突入陣中 稱以渠亦倡義 以主將無人來迎 周弼云而其實困我也 乃責之曰 名以士子而越犯義陣禮乎


 이월 십육일 知禮에서 李周弼이 와서 접견하였다. 그 자식이 運粮(운량)을 감당하지 못한 까닭으로 자세하고 간곡하게 말을 하는 즈음 邑人(읍인) 삼사십 명이 진중에 돌입하여 그 사람이 또한 창의한 것을 칭찬하며 주인이 거느린 사람이 없으니 맞이하러 왔다고 하니. 周弼(주필)이 이르기를 '너희들이 진실로 나를 곤란하게 하는구나' 라고 하니 이에 꾸짖어 말하기를 '명망 있는 사림의 자제들이 義陣(의진)을 범한 것이 禮(예)인가?'라고 하였다.

 

·渠:그 사람

 

 托以迎將 强迫登壇義乎
 必是 宰與周弼 謀所以害我 驅民犯陣者也 旣知其不能沮義 而辭窮自退然 昇乎數百年 民不知兵 兵不鍊戰 本陣士卒 魂奪魄 虎 復稍稍而集士曰 歸而募兵 兵曰有寇在垣鎭定不得矣


 '등을 밀어 장수를 맞이하고 억지로 다그쳐서 단에 오르는 것이 義인가?'
 '필시 邑宰 李在夏李周弼은 나를 해칠 것을 도모하여 백성들을 몰고 와서 義陣(의진)을 범한 사람이다. 이미 義兵(의병)을 막을 수 없음을 안다면 말을 마치고 스스로 端雅(단아)하게 물러나라.'
 나라가 태평한지 수 백년 백성들이 전쟁을 알지 못하고 군사들이 전투를 훈련하지 아니하여 本陣(본진)의 士卒(사졸)들이 혼을 잃고 두려워하여 다시 점점 줄어들어 군사를 모아놓고 말하기를 '돌아가서 군사를 모병 하라'라고 하니 병졸이 말하기를 도둑이 담장 안에 있으니 진압하여 평정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必是:필시, 반드시, 어김없이 ·退然:단아한 모양. 온화한 모양
·昇平(승평):세상이 조용하고 잘 다스려짐. 나라가 태평함.
·稍稍:①조금, 약간, 얼마 ②점점, 차츰차츰
·魂奪魄 虎 :혼을 빼앗기고 넋을 잃고 두려워함

 

▶丙申年(1896년) 二月 十七日
 平明寇大至 余囑二三同志曰 旣無親兵腹背 受賊計將 安出法曰 陷之死地 而後生如有同我者幾人 鼓鼓行出 若將向然 彼必不走 爲我禽矣


 이월 십칠일 동틀 무렵 도적(관군)이 크게 이르러 내가 두 세 명의 동지에게 부탁하여 말하기를 '이미 임금의 군대는 앞뒤에 없으니 도적을 맞이하여 나아가도록 꾀하시오' 편안하게 나아가는 방법으로 말하기를 '사지에 빠진 이후에 살아 나가서 나와 같이 있을 사람이 몇 사람 같은가? 북을 울려 나아갈 격려하여 만약 전진하여 나아간다면 저들이 반드시 달아나지 않으면 우리에게 포로가 될 것이다.'

 

·平明:동틀 무렵, 새벽녘, 平旦(평단) ·親兵:임금이 직접 거느린 군사
·腹背:①배와 등 ②앞과 뒤. 근접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전후 ③가까운 친척 ·鼓鼓:부축이다, 격려하여 분발하다 ·將: 나아갈장, 전진할장, 함께할장

 

 諸君以爲何如 未幾有曰 義將徒有死之心 起兵日淺 軍膽未堅 賊國尙在桑楡不遠 不如退而復振 俄而無幾人存者 余乃督發輜重 身帶刀釗 鼓向賊 儒從者四人 金騏 ·呂永昭·呂在龍·李相卨諸人也 兵不滿五十而 咸有退縮之意 噫兵固不得已用者也 而釋兵尤所不已者也 天步國運將若之何 於是付輜重於本兵 而還輸金邑 與四人投宿於金谷柳叔咸家


 諸君(제군)들은 생각은 어떠한가? 오래지 않아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義將(의병장)들은 다만 죽을 마음이 있으나 군사를 일으킨 지 얼마 되지 않아 군사들의 담력이 아직 견고하지 못하여 나라를 훔친 자들이 아직 남아있으나 저녁 무렵의 해 그림자가 멀지 아니하니 물러나서 다시 떨치고 일어나는 것만 못합니다.' 이윽고 몇 사람 밖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이에 군대의 荷物(하물) 수레를 내보낼 것을 재촉하고 몸에 칼을 차고 힘껏 북채로 북을 두드리며 적을 향해 나아갔는데 따르는 선비들은 네 사람 金騏 (김기력) 呂永昭(여영소) 呂在龍(여재룡) 李相卨(이상설) 등이요. 군사들이 채 50명도 차지 않았으며, 다 뒤로 물러나 움츠리는 마음이 있었다.
 '아! 군사들이 진실로 부득이하여 쓰는 자들이다. 군사들이 흩어진 허물은 용서하지 않을 수 없는(용서해야 하는) 일이다. 하늘의 운행과 국가의 운명을 장차 어찌하겠는가?' 이에 군대의 荷物(하물)을 이 병사들에게 주어서 金邑(금읍)으로 돌려보내고 네 사람과 함께 金谷(금곡) 柳叔咸(유숙함)의 집에서 투숙하였다.

 

·桑楡 : ①뽕나무와 느릅나무 ②저녁 무렵의 해 그림자. 日暮(일모) 저녁해의 그림자가 뽕나무와 느릅나무 가지에 비쳐 있다는 뜻에서 온 말 ③서쪽의 해 지는 곳 ↔扶桑(부상) ④동에 대한 서, 또는 아침에 대한 저녁. ⑤늙은 때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晩年(만년). 老年(노년) ·日淺:얼마 되지 않다.
·督(독):꾸짖을독, 가운데독, 맏아들독, 통솔할독. 권할독, 재촉할독
·釗(소, 쇠):①힘쓸소 ②밝을소 ③멀소 ④깎을소, 모를 죽이어 뚜렷하게 하다 ⑤쇠뇌고동소 ⑥볼소, 만나보다 ⑦사람이름소 ⑧쇠쇠(國)
· 鼓(부고):①북채와 북. 곧, 상응함을 이른다. ②북채로 북을 침. 전쟁을 할 때, 또는 시가지에서 민중들을 경계할 때 친다. ③북의 한가지. ·未幾(미기):오래지 않아. ·退縮(퇴축):뒤로 물러나 움츠림. 꽁무니를 빼고 움츠림.
·噫(희):탄식하다, 아! ·不得已:마지못하여, 하는 수 없이, 불가부득
·已:이미이, 말이, 버릴이, 뿐이, 매우이, 조금있다가이, 나을이, 용서하지않을이, 써이, 이이(이, 이것), 아이(감탄사), 반드시이
·天步:①하늘의 운행. 때의 순환 ②국가의 운명
·輜重(치중): 군대의 하물. 輜駕(치가)

 

▶丙申年(1896년) 二月 十八日
 十八日 與柳叔咸 同宿新村店

 이월 십팔일 柳叔咸(유숙함)과 新村(신촌:새말)의 여관에서 함께 묵었다

 

·店:여관점, 여인숙점


▶丙申年(1896년) 二月 十九日
 十九日 抵尙州蘇亭 與柳道燮 略定再擧之約
 이월 십구일 尙州(상주) 蘇亭(소정)에 이르러 柳道燮과 다시 倡義(창의)하는 약속을 대략 정하였다.

 

▶丙申年(1896년) 二月 二十日
 二十日 還山告于祠
 이월 이십일 山으로 돌아와 祠堂(사당)에 告하였다

 

▶丙申年(1896년) 二月 二十一日
 二十一日 入高橋 與宗兄秉禧 講討復之策
 이월 이십일일 高橋로 들어가 宗兄(종형) 병희(秉禧)씨와 討復之策(적을 토벌하여 국운을 회복시키는 계책)을 의논하였다.

 

▶丙申年(1896년) 二月 二十二日
 二十二日 還至錦川
 이월 이십이일 錦川(금천)으로 돌아왔다

 

▶丙申年(1896년) 二月 二十三日
 二十三日 宿九雲趙進士家
 이월 이십삼일 九雲 趙進士의 집에서 묵었다.

 

▶丙申年(1896년) 二月 二十四日
 二十四日 再到甘川
 凡周行數百里  有所得諸益 稍稍復進時 則聖上播越俄館 削令頒行列邑 孰不欲一死圖報
 이월 이십사일 다시 甘川(감천)에 이르렀다. 널리 數百里(수백리)를 두루 巡行(순행)하며 대략 여러 동지(諸益)들을 얻은 소득이 있었으며 차츰 차츰 다시 나아가는 때 聖上(성상)께서 러시아 공관으로 파천을 하고 斷髮令(단발령)을 頒布(반포)하여 列邑(열읍:많은 고을)에서 행하여지게 하니, 누가 한번의 죽음으로 보답을 꾀하고자 하지 않으리요?

 

·周行:두루 돌아다님. 巡行(순행). 巡遊(순유)
·稍稍:①조금, 약간, 얼마 ②점점, 차츰차츰
·播越(파월):①먼 곳으로 유랑함. ②임금이 도성을 떠나 난을 피함.(파천)

 

▶丙申年(1896년) 二月 二十五日
 二十五日 與同志行 到板溪 遇姜兄林仲·李兄世叔 皆非草間求活之士也 半 論心 叩鄭友武卿家 不謀同參者 四十餘人乘夜疾馳 至直指寺洞口 時宿務漫天日已數竿矣


 이월 이십오일 同志(동지)들과 함께 가서 板溪(판계)에 이르러 姜兄(강형) 林中(임중)과 李兄(이형) 世叔(세숙)을 만났는데 다 民間(민간)에서 욕되게 삶을 구하는 선비들이 아니었다. 반나절 생각을 이야기하고 친구 정무경의 집을 두드렸으나 동참을 도모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四十餘人이 밤을 틈타 빠르게 달려 直指寺 洞口(동구)에 이르러 때에 宿所(숙소)에서 하늘의 태양에 넘쳐흐를 정도의 여러 개의 장대를 마련하는데 힘썼다.

 

·板溪:상주시 모동면 판계리
·草間:풀이 무성한 들판 사이. '민간'을 이르는 말.·草間求活:민간에서 삶을 구함. '욕되게 한갓 삶을 탐냄'을 이르는 말. ·半 :잠깐, 반나절 ·天日:해, 태양. ·已:以∼을, ∼를

 

▶丙申年(1896년) 二月 二十六日
 二十六日 入黃岳寺 呂永昭諸人 已宿招提而待
 이월 이십육일 黃岳寺(황악사)에 들어갔다. 呂永昭(여영소) 등, 여러 사람들이 이미 절에서 묵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招提:①사방의 중들이 모여 사는 곳. 절. 寺院(사원). 伽藍(가람)② 官府(관부)에서 賜額(사액)한 절

 

▶丙申年(1896년) 二月 二十七日
 二十七日 開坐於鐘閣 以梁濟安爲中軍 趙東奭爲都摠 姜懋馨爲贊劃 許蔿爲參謀 李時佐·呂永昭爲書記 尹鴻采以先鋒兼組練將 編伍儒兵三十餘 火 兵五十餘.
 運粮官朴鳳汝 私囑守門官文在善 以二百金納交於中營  中營笞而却之 其廉如此


 이월 이십칠일 鐘閣(종각)에 앉아 대회를 열고 梁濟安(양제안)을 中軍(중군)으로 삼고, 趙東奭(조동석)을 軍門都摠(군문도총)으로 삼고, 姜懋馨(강무형)을 贊劃(찬획)으로 삼고, 허위를 參謀(참모)로 삼고, 李時佐(이시좌) 呂永昭(여영소)를 書記(서기)로 삼고, 윤홍채를 先鋒(선봉)겸 組練將(조련장)으로 삼아 隊伍(대오)를 儒兵(유병) 삼십여 명 火 兵(화포병) 오십여 명으로 편성하였다.
 運粮官(운량관) 朴鳳汝(박봉여)가 守門官(수문관) 文在善(문재선)에게 私的(사적)으로 부탁하여 二百金(이백금)을 中營(중영)에서 주고받으니, 中營(중영)에서 볼기를 쳐서 물러나게 하였다. 그 청렴함을 이와 같이 하였다.

 

·中軍:삼군의 중앙 대장군이 있는 곳. 장군의 명칭.
·都摠:군무를 총괄하던 최고 군직. ·贊劃:도와서 꾀함.

 

▶丙申年(1896년) 三月 初吉日
 三月初吉日 柳梁山寅睦書角來到 亦以急救之意 冒雨發程 峽路間關水漲不得渡 宿店村


 삼월 초하루 梁山(양산) 柳寅睦(유인목)의 글이 다투어 도착하였는데 또한 급히 구원해 달라는 뜻이었다. 비를 무릅쓰고 길을 출발하여 골짜기 길 사이의 關水(관수)가 넘칠 정도로 불어 건널 수 없어서 店村(점촌)에서 묵었다.

 

·吉:음력 초하루길
·急救之意:급하게 구해달라는 뜻

 

▶丙申年(1896년) 三月 初二日
 初二日 直入龜城
 晉州都摠官李玄宇來見言 與柳仗擧義於陜川 見敗投晋陣 得一枝兵到居昌 收四十餘 到此 智城爲邑人所沮 將不知其卒之星散 云聞甚慨然
 邑吏知本陣之已動 自嫌前日之失 謂有屠戮之患矣 及到撫循無侵 智人相聚 而語再造之恩 實由本陣云 留一日發邑  二十人付義


 삼월 초이틀 곧 바로 龜城(구성)으로 들어갔다.
 晉州(진주) 都摠官(도총관) 李玄宇(이현우)가 와서 接見(접견)하였는데 李玄宇(이현우)가 말하기를 '柳寅睦(유인목)과 함께 陜川(협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패배를 당하고 晉州(진주)의 義兵陣(의병진)에 들어가서 한 줄기의 군사를 얻어 居昌(거창)에 이르렀다가 사십여명의  軍(포군)을 거두어 여기에 도착하였습니다. 智城(지성)에서는 邑人(읍인)들에게 沮止(저지)를 당하여 장차 그 군사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의병들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이야기를 들으니 매우 슬픕니다.'
 邑吏(읍의 벼슬아치)들이 本陣이 이미 움직였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전날의 잘못을 불만스럽게 여겨 '屠戮(도륙)의 재난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龜城(구성)에 도착하여 邑人(읍인)들을 어루만져 좇게 하고 범하지 않으니 지혜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죽게된 것을 살려준 은혜를 말하였다. 드디어 本陣(본진)에 이르기를 '하루만 머물렀다가 龜城(구성) 邑(읍)을 출발한다. 화포군 20인에게 義陣(의진)을 부탁한다.

'

·星散:새벽 하늘의 별과 같이 흩어짐. 또는 뿔뿔이 헤어짐
·撫循(무순)사랑하여 좇게 함. ·再造之恩(재조지은):죽게된 것을 구해준 은혜. 죽게 된 경우에 살려준 은혜. 再生之恩(재생지은) ·實:드디어 마침내(여씨춘추). 由:∼에

 

▶丙申年(1896년) 三月 初四日
 初四日 抵春川騎從者 數十人麾下 士百餘人 精 百餘人 鄭先達瀚來見
 삼월 초사일 春川(춘천)에서 말을 탄 從者(종자) 수십인 麾下(휘하)에 士卒(사졸) 百餘人(백여인) 精銳(정예) 火 兵(화포병) 百餘人(백여인)이 도착하였고 鄭先達(정선달) 翰(한)이 와서 접견하였다.

 

▶丙申年(1896년) 三月 初五日
 初五日 入三道峰下紅心洞 卽李台容直山庄也 有積百苞租 自願付義 亦過手也


 삼월 초닷세 黃澗(황간) 三道峰(삼도봉)아래 紅心洞(홍심동)으로 들어가 李容直(이용직) 公의 山莊(산장)에 나아갔다. 온갖 돌 콩과 쌀이 쌓여 있는 것을 자원하여 義陣에 주었는데 또한 지나칠 정도의 큰손이었다.

 

·台(태):별이름태. 三公(삼공)의 자리나 남의 높임말로 쓴다.
·庄(장):莊(장)의 俗字(속자).·苞:돌콩포 ·租(조):쌀저

 

▶丙申年(1896년) 三月 初六日
初六日 推前郡守柳寅睦 爲軍門執禮畢 李福永·李秉一·李義九來見 特帖贊劃 李都摠驕軍食人一鷄 使之逐出境外


 삼월 초엿세 전군수 유인목을 추천하여 軍門都摠(군문도총)으로 삼고 執禮(집례)를 마치고 李福永(이복영)·李秉一(이병일)·李義九(이의구)가 와서 접견을 하였고 특별히 贊劃(찬획)으로 임명장을 주었다. 李都摠(이도총) 轎軍이 다른 사람의 닭 한 마리를 잡아먹어서 地境(지경) 밖으로 내쫓게 하였다.

 

·帖:표제첩. 임명장체 ·驕軍:가마를 메는 사람.

 

▶丙申年(1896년) 三月 初七日
 初七日 副長前郡守 李周弼來見 參謀將前參奉 曺奭永來見 前後助用軍需代錢 不滿千金 鄙吝如此


 삼월 초이레 副長(부장) 前郡守(전군수) 李周弼(이주필)이 와서 접견하였다. 參謀將(참모장) 前參奉(전참봉) 曺錫永(조석영)이 와서 접견하였다. 앞뒤에서 도와주어서 사용한 군수대전(軍資金)이 千金(천금)을 넘지 않으니 인색함이 이와 같았다.

 

▶丙申年(1896년) 三月 初八日
 初八日 本邑前防守將李周善來見 有風力可堪人也 仍帖參謀 得野 兵三百餘人 軍容稍成 前茂州府使李倬 遣人有願從之意 送火藥三百斤 是日午刻 伏路塘來報 達兵七十人 犯本邑 一陣士卒 皆示可用


 삼월 초파일 本邑의 前防守將(전방수장) 李周善(이주선)이 와서 접견하였다. 남을 감화시키는 힘이 있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뛰어난 사람이었다. 이에 參謀(참모) 任命狀(임명장)을 주고 野 兵 삼백 여명을 얻어 군대의 모습이 차츰 만들어지고 전 무주부사 李倬(이탁)이 사람을 보내어 '從軍(종군)을 원하는 뜻이 있다'고 하며 火藥(화약) 삼백斤을 보냈다. 이날 午時(오시) 正刻(정각) 길과 堤防(제방)에 埋伏(매복)해있던 군사들에게 보고가 들어왔다. 達兵(달병:대구부의 관병) 七十名이 本邑(본읍)을 공격하여 일진의 士卒들에게 알려 가히 방비할 수 있었다.

 

·風力:사람의 위력. 남을 감화시키는 힘.
·堪:견딜감. 뛰어날감. 하늘감. 천도감. 실을감. 낮을감. 즐길감.
·堪能(감능):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 기예나 재능이 뛰어난 사람.
·野 兵:? ·軍容:군대의 모습. 곧무장을 이름. 군대의 사기·기율.
·用(용):방비용, 준비용

 

▶丙申年(1896년) 三月 初九日
 初九日 鷄鳴 兩路出兵 未至龜城 十里止舍 二路兵合 以野 軍爲後應 昧爽襲擊 一枝山上發  一枝 三面 而開一路曰 噫彼敵兵 亦吾君之赤子  雖不分義逆 豈有 殺底殘命也


 삼월 초아흐레 닭이 울 무렵 두 길로 出兵(출병)을 하였다. 龜城(구성)에 이르지 않고 십리 밖에서 멈추어서 두 길에서 군사가 연합하여 野 軍을 후미의 응원군으로 삼아 동이 틀 무렵 達兵(달병)을 습격을 하였다. 한줄기는 산 위에서 발포하고 한줄기는 삼면을 포위하고 한길을 열어놓고 말하기를 '아! 저 적병도 또한 우리 임금의 백성이다. 비록 義(의)와 逆(역)으로 구분하지 않을지라도 어찌 무찔러 죽이는 생명을 해침이 있겠는가?'

 

·昧爽:동틀 무렵. ·赤子:①갓난 아이. 젖먹이.  兒(영아) ②제왕에 대하여 그 치하에 있는 백성. 국민 · 殺:죄다 무찔러 죽임 ·底 : 어찌저. 어조사저=的

 

 彼果棄曳而逃 或十里或五里而止 吾軍倡不旬餘 不習旗鼓進退之令 迫彼窮寇傷者 數三而至 有反 之志 百戰百勝 固非善者 乃斂軍而退至本營時 直以陣一破 京軍四至


 저들이 과연 갑옷을 버리고 무기를 질질 끌며 달아났다. 어떤 사람은 십리, 어떤 사람은 오리를 달아난 뒤에 멈추어 섰다. 우리 군이 倡義(창의)한지 십여 일이 지나지 않아 깃발 신호와 북소리로 진퇴의 명령을 익히지 못하였으나 상대를 다그쳐서 궁지에 빠진 도적들중 상한 사람이 수삼명에 이르렀다. 또한 곰곰이 생각을 되풀이해 보니 백전 백승이 진실로 좋은 것이 아니었다. 이에 군을 거두고 물러나 본영에 이르렀을 때 바로 의진으로 한번 깨지고 京軍(경군)이 사방에서 도착하였다.

 

·迫:닥칠박. 다그칠박. 좁혀질박. 궁할박. 다급할박. 줄어들박. 허둥거릴박. 조를박
·窮寇:궁지에 빠진 도적. ·有:어조사유. 또유
·反 :곱씹다. 말이나 생각 따위를 곰곰이 되풀이하다.

 

▶丙申年(1896년) 三月 十日
 十日 移陣過月村  丁一人取民一鷄施罰給價 移宿小亭李倬 觀勢逼 避而不見 數以罪犯公私
 삼월 십일 진을 옮겨 月村(월촌)을 지날 때에  丁(포정) 한 사람이 민가의 닭 한 마리를 취하여 꾸짖어 벌을 주고 값을 물어주게 하였다. 陣(진)을 옮겨 小亭(소정) 李倬(이탁)의 집에서 묵었다. 형세를 보며 다그치고 머무르고 피하고 하면서 나타나지 아니하고 여러 차례  公(공)과 私(사)를 죄인을 벌하였다.

 

·施:꾸짖을시. 나무랄시
·逼:닥칠박. 다가올박. 협박하다. 황급하다. 강제하다. 좁을박. 몰을박.
· :머무를류

 

▶丙申年(1896년) 三月 十一日
 十一日 抵茂朱縣內 有峻宇 墻 是閔丙奭馮公 營私之所也 留一日 取十餘石租給軍餉
 삼월 십일일 茂朱(무주) 縣內(현내)에 이르니 높은 처마에 환한 담장의 훌륭한 집이 있었는데 이곳은 閔丙奭(민병석)공이 지은 개인소유의 집이었다. 하루를 머물러 십여 섬의 쌀을 취하였고 군자금을 보태었다.

 

·峻宇:높고 훌륭한 집.
· :새길조. 독수리조. 시들조. 사물의 모양조(명백한 모양)
·馮:이름풍(벼슬이름에 붙임) ·私:사사로이 하다.
·餉:군량향. 군자금향

 

▶丙申年(1896년) 三月 十三日
 十三日 抵北洞宿南原宗人 新寓者來見
 삼월 십삼일 北洞(북동)에 이르러 南原(남원) 尹(윤)씨 齋室(재실)에서 묵었다. 새로 몸을 맡기는 사람들이 와서 접견하였다.

 

 ·宗人:同族(동족)의 祠院(사원)

 

▶丙申年(1896년) 三月 十四日
 十四日 抵月田 所謂某家人 皆隱避不見 定山居華山金道士 與其弟子元也來見
 십사일 月田(월전)에 이르렀을 때 所謂(소위) 某집안 사람들이 다 숨고 피하여 보이지 않았다. 定山(정산)에 사는 華山(화산) 金道士(김도사)와 그 弟子(제자) 元(자원)이 와서 接見(접견)하였다.

 

▶丙申年(1896년) 三月 十五日
 十五日 宿三道峰下 民家
 삼월 십오일 三道峰(삼도봉) 아래 民家(민가)에서 묵었다.

 

▶丙申年(1896년) 三月 十六日
 十六日 入永同邑 宰亦削者 聞風逃去 小吏輩迎餉之節 猶恐不給而自願付義者 火 七人也
 邑人所謂鄭主事 咸陽盖坪人也 以五百年衣冠之族  主事職 父死不奔 喪追還掩土 虞卒才畢 卽復起身 若此輩人 反不如墨者 夷之之思ㅇ天下而厚其親也 捉置軍中


 삼월 십육일 永同邑(영동읍)에 들어갔다. 邑宰(읍재)는 또한 머리를 깎은 사람으로 소문을 듣고 도망을 갔고, 지위가 낮은 관리들이 군량을 주는 예절로 맞이하였는데 오히려 군량을 주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였고 자원하여 義兵陣(의병진)에 합류하는 사람이 화포병 일곱 명이었다.
 邑人(읍인) 중 이른바 鄭主事(정주사)라는 사람은 咸陽(함양) 盖坪(개평)사람이다. 오백년 門閥(문벌)이 좋은 집안으로 主事職(주사직)을 얽었으나 아버지가 죽어서 달아나지 못하였다. 喪中(상중)이라 돌려보내 대강 장례를 치르게 하니 虞祭(우제)를 편안하게 겨우 마치고, 곧 다시 몸을 일으켜 이 무리의 사람들과 같이 하였다.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붙잡아 군중에 두었다.
·聞風:바람에 들음. 풍문에 들음. 소문을 들음. ·追還:되돌려 보냄. 쫓아 냄.
·掩土(엄토):시체를 흙으로 겨우 가릴 정도로 묻는 매장.

 

▶丙申年(1896년) 三月 十七日
 十七日 早起視務 軍緖 就
 삼월 십칠일 일찍 일어나 사무를 보고 군의 系統(계통:부서)을 대략 마쳤다.

 

▶丙申年(1896년) 三月 十八日
 十八日 還至黃澗 堤川召募將 李華榮前已到此邑 凡百擧行實先戒飭也 邑人大小民吏 迎謁于郊外 火 三十人 依例等待 周馳三道 背化向義者無此邑 人比也 水石里李容直 齎送二百金 請 軍
 삼월 십팔일 永同(영동)에서 돌아와 黃澗(황간)에 이르렀다. 堤川(제천) 召募將(소모장) 李華榮(이화영)이 앞서 이미 이 邑에 도착하였다. 모든 사람의 행동과 행실을 먼저 訓戒(훈계)하여 정신을 가다듬게 하였다. 邑人(읍인)의 대소민과 관리들이 교외에서 맞이하여 알현하였다. 화포병 삼십인이 法式에 따라 기다렸다.
 三道(삼도)를 두루 달려 개화를 반대하고 의를 향한 사람들이 이 邑에는 없었다. 사람들의 도움에는 水石里(수석리)의 李容直(이용직)이 二百金(이백금)을 보내고 군사를 위로하여 음식을 베풀 것을 청하였다.


·凡百:모든 사람.
·戒飭:경계하여 타일렀다. 훈계하여 정신을 가다듬게 함. 훈계하여 정신을 차리게 함.
·大小民:관민을 이르던 말. 반상을 가리지 않은 모든 백성.
·齎:가저올재. 줄재. 보낼재
·齎送(재송):물품을 보냄
· 軍:호궤하다. 군사를 위로하여 음식을 베풀어주다.

 

▶丙申年(1896년) 三月 十九日
 十九日  軍
 삼월 십구일 군사를 위로하여 음식을 베풀었다.

 

▶丙申年(1896년) 三月 二十日
 二十日 本鄕會員十餘人 來見 請受制防守 選私 五十名 許施是夜
金華山弟子元也 請劒舞於軍中 誦呪踊躍 極爲怪亂 一軍駭聽 須臾中軍來請付罰 余謂中軍曰 弟子之惑 雖先生之誤不可 先施其師元也 改付之 鳴鼓之律爲當 諸將 請 妖言動衆 罪不得已師弟二人 俱勘重罪囚本郡獄


 삼월 이십일 이 마을 회원 십여 명이 와서 접견하였는데 制防守를 받을 것을 청하여 마음에 드는 화포병 50병을 뽑아서 이날 밤 시행할 것을 허락하였다.
 김화산의 제자 元(자원)이 軍中(군중)에서 劍舞(검무)를 한다고 청하여 呪文(주문)을 외우며 춤추는 것이 지극히 괴이하고 어지러워 모든 군사들이 해괴하게 받아들였다. 잠시 후에 中軍(중군)이 와서 벌을 줄 것을 청하였다. 내가 中軍(중군)에 일러 말하기를 '제자의 미혹함은 비록 선생의 잘못이 아닐지라도 먼저 그 스승인 원에게 벌을 줘 고쳐 줘야한다.  軍律(군률)을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러 장수들이 나란히  청하기를 '괴이한 말로 군중을 선동하였으니 부득이 스승과 제자 두 사람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 고 하여 함께 重罪(중죄)로 죄인을 詰問(힐문)하여 本郡(본군)의 獄(옥)에 가두었다.

 

·制防守:수비를 전담하는 직책
·鳴鼓:①북을 이름. ②북을 울림. ③죄를 꾸짖어 몰아세움을 이름.

 

▶丙申年(1896년) 三月 二十一日
 二十一日 名不知曺哥 假稱義兵 討索於鄭主事家 主事先已逃去 門無尺童 凶彼曺也 突入內庭 困靡不到 聞甚可駭 猛着梟警 以懲魚混 人皆曰 死猶餘罪


 삼월 이십일일 이름을 알지 못하는 조가 성을 가진 사람이 거짓으로 義兵(의병)이라고 일컫고 정주사 집에 토색질을 하였는데 鄭主事(정주사)는 먼저 이미 도망가고 門(문)에는 어린 아이조차 없었다. 흉한 저 조가 놈이 안뜰로 돌입하여 괴롭힘이 극도에 이르러(이르르지 않는 곳이 없어) 소문이 매우 놀랄 만 하여 날쌔고 용감하게 붙잡아 효수를 하여 경계로 삼으니 한 마리 물고기가 온 강물을 흐리게 한 것을 징계하였다. 사람들이 다 말하기를 '죽여도 오히려 남을 만한 죄다'라고 하였다.

 

·討索:돈이나 물품을 억지로 달라고 함. 困:괴로울곤. 난처할곤.·靡:괴롭힐미, 없을미
·靡不到: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梟:목을베어 매달효.


▶丙申年(1896년) 三月 二十二日
 二十二日 閔陜川致純不惟唆民 自肥共於復 之師 隨在逃避 究厥所爲惟錢而已 執八十石租以給軍餉
 金山兼官 曺時永書到云 達兵塘報 惟我在若心 口不同 天日在彼 可謂停筆 而無憂疑於東矣 誰知 人之巧 坐失陰坪之路


 삼월 이십이일 陜川(협천) 閔致純(민치순)은 오직 백성들을 부추겼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살진 말을 복수의 군사들에게 바치고 따라서 도피하고 있으며 끝까지 그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돈일 뿐이었다. 八十石의 쌀을 가지고 軍餉(군향)을 공급하였다.
 금산의 兼官(겸관) 曺時永(조시영)이 편지가 도착하여 이르기를 '達兵(달병:대구감영의 군사)의 동향을 살펴보니 오직 나만이 같은 마음이 있고  입이 같지 않습니다. 황제가 저쪽에 있으니 停筆한다고 말할 만 하고 동쪽에 대한 의혹을 근심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누가 간사한 사람의 計巧(계교)를 알겠는가? 앉아서 陰坪(음평)의 길을 잃었다.

 

·兼官:조선시대에 한 고을의 원의 자리가 비어 있을 때 이웃 고을의 원이 임시로 그 직무를 겸하여 맡아보는 일. ·塘報:지난날 塘報手(당보수)가 旗(기)를 가지고 높은 곳에 올라가 적의 동정을 살펴 알리는 일. ·停筆(정필):붓을 멈춤. 쓰기를 중지함. ·到:이를도. 빈틈없이 칭찬할도. 속일도 거꾸로도. ·天日:천자. · 人(영인):간사한 사람.

 

▶丙申年(1896년) 三月 二十三日
 二十三日 天明 敵兵一哨已火沒 臺煙 漲天 宥人媒藥復有一 無傷於曺家也 邪謀奇計 不無義家之所用 而兵刃相接於本國隊丁 吾所不忍 且戰且退 移住于尙州西雀川 討尹領官先退之罪


 삼월 이십삼일 날이 밝자 적병의 한 哨所(초소)에는 이미 불빛이 없어지고 墩臺(돈대)에는 연기 속을 치솟는 불꽃이 하늘에 가득하였다. 사람들을 용서한다고 하고 유도하여 함정에 빠진 사람이 다시 한사람 있었으나 曺(조)씨 집안에 상한 사람이 없었다. 속이는 술책과 기이한 계략은 義家(의가)에서 쓴 적이 없는 것은 아니나 자기가 태어난 나라의 병사·장정들과 병장기와 칼날이 서로 接(접)하니, 나는 차마 할 수가 없어 또한 싸우고 또한 후퇴하여 상주 서쪽 雀川(작천)으로 陣(진)을 옮겨 머물렀다. 尹領官(윤영관)이 먼저 후퇴한 罪(죄)를 꾸짖었다.

 

·煙 (연염):연기와 불꽃. 연기 속을 치솟는 불꽃.
·媒藥(매얼):죄를 짓도록 유도하여 함정에 빠뜨림.
·本國隊丁:자기가 태어난 나라의 병사와 장정.

 

▶丙申年(1896년) 三月 二十四日
 二十四日 入報恩馬充 摘發本邑探吏梁哥 縛置軍中 送梁中軍於靑山 有所指揮而不反 更鼓三鳴 軍官來
 先梧川·月南等地 火色耀遠 往往驚訛 余堅臥 諭衆曰 軍機虛實 縱有臨時變更 豈有進兵之擧 火自照者乎 正行間出住本軍 還白執炬而來 云 是亦以駭軍嚴懲
 朴都事家 軍需代錢 三百兩來納 梁中軍 以軍需愆期事 捉靑山小吏以來


 삼월 이십사일 報恩(보은) 馬充(마충)으로 들어갔다. 本邑(본읍)의 探吏(탐리) 梁哥(양가)를 적발하여 軍中(군중)에 포박하여 두었다. 梁哥(양가)를 청산에 있는 中軍(중군)으로 보냈다. 지휘한 것이 있어서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북을 세 번 울려 군관이 왔다.
 먼저 梧川(오천)·月南(월남)등지에서 불빛이 먼 곳에서 빛나니 이따금 군사들이 놀라 움직이며 動搖(동요)하여 내가 단단하게 바짝 엎드려 깨우쳐 말하기를 '군사 機密(기밀)의 허실이(거짓과 참) 비록 때에 따라 변경됨이 있으나 어찌 군사를 움직이는 행동에 불을 스스로 비추는 사람이 있는가?' 라고 하고, 바로 軍中(군중)의 行列에서 나와 本軍(본군)에 머무르는데 다시 날이 샐 무렵 횃불을 들고 왔기에 내가 이르기를 '이것 또한 군을 놀라게 하였으니 엄하게 징계하겠다'라고 하였다.


 朴都事(박도사)의 집에서 군수대금 三百兩(삼백량)을 와서 납부하였다. 梁中軍(양중군)이 軍需代金으로 약속한 일을 어겼다. 靑山(청산)의 小吏(소리)를 잡아 가지고 왔다.

·探吏(탐리):奉命使臣의 길을 探問(탐문)하는 衙前(아전).
·驚訛:놀라서 움직이다. 동요하다.
·都事:조선시대 각 도의 監營에 두었던 從五品 벼슬.
·愆:허물건, 잘못할건, 어그러질건, 어길건, 병건, 잃을건

 

▶丙申年(1896년) 三月 二十五日
 二十五日 移陣于俗離下書院 院卽帳內 內洞一經東擾 燒戶未復 傷者甫起 不可住底
 삼월 이십오일 陣(진)을 俗離山 아래 書院으로 옮겼다. 書院은 곧 帳內里이다. 內洞(안골)은 東學(동학)의 騷擾(소요)가 한번 지나가 집이 불타서 아직 복구되지 아니하였고 다친 사람들이 겨우(근근히) 일어나(거동하여) 맨 바닥에서 머무를 수 없었다.

 

·底:밑저, 맨바닦
·帳內里(장내리) :보은군 외속리면 장내리(현재지명)

 

▶丙申年(1896년) 三月 二十六日
 二十六日 入妙幕 未至數里 聞敵兵追 後三路伏兵 而親監初項 追者不知幾何 而先入者 數十輩 若大隊當頭 則豈有殺 兵數十人 成功者哉 使之奪魄而走 因宿于妙幕


 삼월 이십육일 妙幕(묘막)으로 들어가 아직 몇 리 이르지 아니하였을 때 敵兵(적병)이 追擊(추격)한다는 보고를 듣고, 뒤 세 길에 군사를 매복케 하고 몸소 첫 요해 처(목)를 살피니 추격하는 사람들이 몇 사람인지 알지 못하겠으나,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수십 명의 무리였다. 大隊(만약 많은 적병)가 들이닥치면 어찌 偵探兵(정탐병) 수십 명을 죽여 공을 이루는 자가 있겠는가? 적병들로 하여금 넋을 잃고 달아나게 하였다. 인하여 妙幕(묘막)에서 묵었다.

 

·項:요해처. 요충지 ·大隊:군사 50명의 한 떼
·當頭:가까이 들이닥침.· 兵(점병):정탐병

 

▶丙申年(1896년) 三月 二十七日
 二十七日 踰葛嶺 抵高橋 問宗人秉禧 居喪中 大于壯岩李交河家 堤川召募將李華榮 執富人吳進士 與金都事 載前載後 余心不樂
 先發至松面 松面近地 無一人 安業者細細 探得前到十輩 不知何許無名 而逢人必討逐戶 而索可駭 分付中營 捕捉不得 且聞 殺尙州首吏與申   中房云耳 進宿仙遊洞


 삼월 이십칠일 葛嶺(갈령)을 넘어 高橋(고교)에 이르렀다.
宗人(종인) 秉禧(병희)를 찾아갔는데 喪中(상중)에 있었고 장암 李交河(이교하)의 집보다 컸다. 堤川(제천) 召募將(소모장) 李華榮(이화영)이 부자인 吳進士(오진사)와 金都事(김도사)를 잡아서 곧 앞서거니 곧 뒤서거니 하니 내 마음이 즐겁지 못했다. 먼저 출발하여 松面(송면)에 도착했다. 松面(송면) 근방에는 한사람의 인적도 없었고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 먼저 도착한 10여명의 무리를 찾아서 잡으려 했으나 어느 곳 사람인지도 모르고 이름도 없으나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집에서 벌하여 내 쫓고 돈이나 물품을 억지로 취하니 가히 놀랄만한 일이라 중영에 분부하여 잡도록 하였으나 잡지 못하였다. 또한 尙州(상주) 首吏(수리)와 申守令(원님)을  殺(총살)하였다고 中房(중방)이 말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다. 전진하여 先遊洞(선유동)에서 묵었다.

 

·首吏:이방아전.
· :원. 守令. 牧使. 府使. 郡守. 縣令등 지방 관아의 長.
·中房수령을 따라 다니며 시중을 드는 사람.


▶丙申年(1896년) 三月 二十八日
 二十八日 移陣于聞慶大井 去倭站才五十里 招諭諸將曰 吾輩用兵出於不已 而志在撥反 撥反不得 則非徒無益 此去彼站不遠 諸軍其從我進取乎 皆曰 彼强我弱 鋒不可當 俄而濃雲密布 雨下如注 非進趨之時也


 삼월 이십팔일 陣(진)을 聞慶(문경) 大井(대정)으로 옮겼다. 倭(왜)의 驛站(역참)과의 거리가 겨우 五十里(오십리)였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깨우쳐 말하기를 '우리들이 그만 둘 수 없음에 의병으로 나왔고,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정도로 돌아감에 뜻이 있으니, 난세를 바로잡아 태평한 세상으로 돌릴 수 없으면, 다만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곳과 저들(倭軍) 驛站(역참)과의 거리가 멀지 않으니, 제군들이 나를 좇아 나아가 왜적들을 취하겠는가?' 諸將(제장)들이 다 말하기를 '저들(日本軍)은 强(강)하고 우리(義兵)는 弱(약)하여 날카로운 기세를 당해낼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갑자기 짙은 구름이 빽빽하게 널리 퍼지고 비가 내리는데 마치 물을 퍼붓는 것과 같아 군사가 前進(전진)할 때가 아니었다.

 

·已:그만둘이
·撥反:撥亂反正의 준말.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정도로 돌아감.
·撥亂反正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다스려 치안을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함.
·反正:정도로 돌림. 태평한 세상으로 돌이킴. 정도로 돌아감.

 

 余乃仰天歎曰 自八月以後 忠憤所激 有出位之思 而提兵數朔內 自相攻   小賊容在垣墉 其於十八强國 何且乘輿播越 逼於外夷
 哀痛之詔 反爲飭諭 有志之士 陷於無名 功成之前 措躬無地 顧此不 欲赴鬪以死 則人不從我 欲歸家安業 則生不如死 寧 海竄林 待諸君報捷之日 是所望也
 此間有子房 願諸君往見之 乃投書于柳兄建一 全付士卒 則建一以其從祖梁山丈 仗義一門 兩擧有所如何云 固不可强


 내가 이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여 말하기를 '팔월 이후부터 충성심과 분개함으로 소용돌이치는 바 자리에서 나올 생각이 있어서 군사를 거느리고 數朔(수삭) 안에 몸소 다스린 일들이 보잘것없이 매우 적다. 작은 도적들의 모습은 그 十八强國의 담 안에 있으며, 어찌 또한 임금의 수레가 도성을 떠나 난을 피하여(俄館播遷) 오랑캐에게 핍박을 당하는가?
 애통한 詔書(조서:詔勅)는 도리어 勅諭(칙유:임금이 몸소 타이르는 말)가 되었다. 뜻이 있는 선비는 명분이 없음에 빠지게 되었고 성공하기 전에는 몸 둘 곳이 없다. 이곳을 돌아보고 내(재주가 없음:자기의 겸칭)가 나아가 싸워서 죽자고 하면 사람들은 나를 따르지 아니하고, 집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하자고 하면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고 하니 차라리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돌아다니듯 流浪(유랑)을 하고 숲 속에 숨어서 제군들이 원수를 갚고 승리하는 날을 기다리는 것, 이것이 바라는 바이다.'
 이 사이에 子房(자방?)이 있어 諸君(제군)들을 가서 만나기를 희망하여 이에 柳兄(유형)建一(건일)에게 글을 보내 '사졸들을 전부 부탁한다. 곧 건일은 그 從祖(종조:할아버지의 형제)가 梁山(양산) 어른으로 義兵(의병)을 일으킨 一門(일문)으로 두 사람의 이름을 높이 들어 올림이 어떠한가?' 라고 하였다. 진실로(굳이) 억지로 권할 수 없는 일이다.

 

·忠憤:충성심에서, 또는 진실한 마음에서 그 일의 옳지 않음을 분개함.
·相攻(상공):다스리다(春秋左氏傳)
·  (요마):쓸모 없음. 보잘것없음. 매우 작고 미미함.
·垣墉(원용)담. ·乘輿:임금의 수레. 거둥 때의 임금을 이르는 말.
·播越(파월)임금이 도성을 떠나 난을 피함.
·詔:임금의 선지를 일반에게 널리 알릴 목적으로 적은 문서.
     詔命(조명). 詔勅(조칙) 詔(조)는 준말.
·飭諭:임금이 몸소 타이르는 말.
·不 :①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재주가 없다는 뜻. ②구변이 없음.
· 海:乘 浮于海[論語]
·仗義(장의):義에 의지함. 義에 따라 행동함.

 

▶丙申年(1896년) 三月 二十九日
 二十九日 移住葛谷
 삼월 이십구일 陣(진)을 옮겨 葛谷(갈곡)에서 머물렀다.

 

▶丙申年(1896년) 三月 三十日
 三十日 宿書齋 柳兄與趙進士偕枉
 삼십일 書齋(서당)에서 묵었는데 柳兄(柳道燮)과 趙進士(趙東奭)이 함께 들렸다.

 

▶丙申年(1896년) 四月 初吉日
  初吉日 同到淸溪寺 盖周馳八百里 不騎一馬 如干吹打起坐等 節以國哀廢人固安 余之拙 而從者亦不能騎 送儒生三人 於化嶺義陣 通辭歸之意


 사월 초하루 柳道燮(유도섭)·趙東奭(조동석)과 같이 淸溪寺(청계사)에 이르렀다. 대략 두루 八百里(팔백리)를 달려 한 마리 말도 타지 않고 웬만하면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일어나 앉는 등, 나라를 위하여 절개를 지키고 폐인을 불쌍하게 여기니 진실로 편안하다. 내가 졸렬하여 종자 또한 말을 탈 수 없어 儒生(유생) 세 명을 化嶺(화령)의 義陣(의진)에 보내어 大將職(대장직)을 사퇴하고 돌아간다는 뜻을 알렸다.

 

·吉:초하루길. ·盖:대략(추측, 상상)
·吹打(취타):군중에서 나팔·소라·대각 따위를 불고 징·북 따위를 치던 군악.
·如干:보통의 것. 웬만한 것 어지간한 것.
·通:전할통, 알려줄통.

 

▶丙申年(1896년) 四月 初二日
 初二日 儒生還 姑無定 
 사월 초이틀 化嶺(화령)에 보냈던 儒生(유생)이 돌아 왔으나 잠시 계책을 정하지 못하였다.

· :산가지산, 계책산

 

▶丙申年(1896년) 四月 初三日
 初三日午刻 聯投三單于本陣 則士卒有呼泣者 軍官有等訴者 豈可以呼訴爲哉 傳任于趙進士東奭 退宿于大院庵 時有康模·康羲二侄來侍


 사월 초사흘 오시 연이어 세 개의 單子(단자)를 本陣(본진)에 보냈다. 곧 사졸 중에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우는 사람이 있었다. 군관 중에 같이 호소하는 자가 있으나 어찌 호소하여 될만한 일인가? 大將職(대장직)을 進士(진사) 趙東奭(조동석)에게 傳任(전임)하고 물러나 大院庵(대원암)에서 묵었다. 때에 康模(당질) 康羲(강희) 두 조카가 와서 모셨다.

·康模(1862∼?):止山(지산)의 堂姪(당질)이며 德庵公(덕암공)의 長孫(장손) 당시 35세로 止山(지산)과는 9세 年下(연하)로 止山(지산)의 학문과 사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됨.
·康羲(강희):?

 

▶丙申年(1896년) 四月 初四日
 初四日 與二侄裝束將歸 只一空褓短杖而已 緩步下山之際 忽有 聲四起 必是敵兵來 追義陣不可以已 辭而恬然獨退四視 陣處將卒 皆登山矣 往餞于葛嶺而還
 사월 초사일 두 명의 조카와 옷차림을 하고 장차 돌아가려 하였는데 다만 빈 봇짐에 短杖(단장)뿐이었다. 느린 걸음으로 산을 내려올 때에 문득(갑자기) 총성이 사방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있었다. 필시 적병이 와서 義陣(의진)을 추격한 것은 용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인사를 하고 편안하게 홀로 물러나 사방을 둘러보니 진을 친 곳에서 將卒(장졸)들이 다 산을 오르고 있었다. 葛嶺(갈령)에 가서 전별을 하고 錦川으로 돌아왔다.

 

·裝束:옷차림을 하고 띠를 매다. 몸을 꾸며 차림. 몸차림.
·恬然:마음이 아주 평안한 모양. 마음이 아무런 생각도 없는 상태.
·已:용서하지않을이

이천이년 십이월

 

                                                               燕巢齋 學人 止山先生 仲氏 高孫 李 永 揆 譯

 

                                                     ·

止山遺稿 三.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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