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崇祖惇宗/창의일기

丙申年(1896년) 四月 初二日 - 初三日

도솔산인 2006. 5. 4. 20:20

▶丙申年(1896년) 四月 初二日
 初二日 儒生還 姑無定

 
 사월 초이틀 化嶺(화령)에 보냈던 儒生(유생)이 돌아 왔으나 잠시 계책을 정하지 못하였다.

 

· :산가지산, 계책산

 

▶丙申年(1896년) 四月 初三日
 初三日午刻 聯投三單于本陣 則士卒有呼泣者 軍官有等訴者 豈可以呼訴爲哉 傳任于趙進士東奭 退宿于大院庵 時有康模·康羲二侄來侍


 사월 초사흘 오시 연이어 세 개의 單子(단자)를 本陣(본진)에 보냈다. 곧 사졸 중에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우는 사람이 있었다. 군관 중에 같이 호소하는 자가 있으나 어찌 호소하여 될만한 일인가? 大將職(대장직)을 進士(진사) 趙東奭(조동석)에게 傳任(전임)하고 물러나 大院庵(대원암)에서 묵었다. 때에 康模(당질) 康羲(강희) 두 조카가 와서 모셨다.

 

·康模(1862∼?):止山(지산)의 堂姪(당질)이며 德庵公(덕암공)의 長孫(장손) 당시 35세로 止山(지산)과는 9세 年下(연하)로 止山(지산)의 학문과 사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됨.
·康羲(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