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崇祖惇宗/지산유고

[스크랩] 을미의병운동 지산 유고에 나오는 갈령

도솔산인 2006. 6. 9. 08:52

▶丙申年(1896년) 三月 二十七日
 二十七日 踰葛嶺 抵高橋 問宗人秉禧 居喪中 大于壯岩李交河家 堤川召募將李華榮 執富人吳進士 與金都事 載前載後 余心不樂
 先發至松面 松面近地 無一人 安業者細細 探得前到十輩 不知何許無名 而逢人必討逐戶 而索可駭 分付中營 捕捉不得 且聞 殺尙州首吏與申   中房云耳 進宿仙遊洞


 삼월 이십칠일 葛嶺(갈령)을 넘어 高橋(고교)에 이르렀다.
宗人(종인) 秉禧(병희)를 찾아갔는데 喪中(상중)에 있었고 장암 李交河(이교하)의 집보다 컸다. 堤川(제천) 召募將(소모장) 李華榮(이화영)이 부자인 吳進士(오진사)와 金都事(김도사)를 잡아서 곧 앞서거니 곧 뒤서거니 하니 내 마음이 즐겁지 못했다. 먼저 출발하여 松面(송면)에 도착했다. 松面(송면) 근방에는 한사람의 인적도 없었고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 먼저 도착한 10여명의 무리를 찾아서 잡으려 했으나 어느 곳 사람인지도 모르고 이름도 없으나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집에서 벌하여 내 쫓고 돈이나 물품을 억지로 취하니 가히 놀랄만한 일이라 중영에 분부하여 잡도록 하였으나 잡지 못하였다. 또한 尙州(상주) 首吏(수리)와 申守令(원님)을  殺(총살)하였다고 中房(중방)이 말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다. 전진하여 先遊洞(선유동)에서 묵었다.

 

▶丙申年(1896년) 四月 初四日
 初四日 與二侄裝束將歸 只一空褓短杖而已 緩步下山之際 忽有 聲四起 必是敵兵來 追義陣不可以已 辭而恬然獨退四視 陣處將卒 皆登山矣 往餞于葛嶺而還


 사월 초사일 두 명의 조카와 옷차림을 하고 장차 돌아가려 하였는데 다만 빈 봇짐에 短杖(단장)뿐이었다. 느린 걸음으로 산을 내려올 때에 문득(갑자기) 총성이 사방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있었다. 필시 적병이 와서 義陣(의진)을 추격한 것은 용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인사를 하고 편안하게 홀로 물러나 사방을 둘러보니 진을 친 곳에서 將卒(장졸)들이 다 산을 오르고 있었다. 葛嶺(갈령)에 가서 전별을 하고 錦川으로 돌아왔다.

 

갈령이 지산유고에 나오는군요.

1896년 2월 황악산 직지사에서 창의하여 김천을 점령하고 무주, 황간, 영동, 보은, 상주를 근거로 일본에 저항한 기록이 저희 집안에 있어서 몇년전 번역을 했고, 1993년 독립유공자 애족장을 받았습니다.

1896년 창의를 하여 1912년 증조부 사촌 종형제 네분이 죽음을 당하고 결국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한문을 하는 것이 필연인지....

그 분의 문집을 틈틈이 번역을하고 있습니다. 

출처 : 소박하고 단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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