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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묘적암과 서동고암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묘적암과 서동고암  ▣ 일 시 : 2024년 07월 21(일)▣ 코 스 : 영원사-빗기재-묘적암터-서동고암-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도마마을▣ 인 원 : 4명▣ 날 씨 : 오전 비, 오후 흐림  https://lyg4533.tistory.com/16488627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암자터를 찾아서III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암자터를 찾아서III ▣ 일 시 : 2021년 09월 26일(일) ▣ 코 스 : 무량굴-샘터-상무주암-서동고암-회암당승탑-암자터-석굴암자터-정자(?)터-샘터-상무주암-문수암-lyg4533.tistory.com

내원골 횡하대(橫河䑓) 건너편 석각

내원골 횡하대(橫河䑓) 건너편 석각   橫河䑓(횡하대)                        淸河 權相舜(1876~1931)  臺出天高体 : 대는 하늘 높이 형상을 드러내고沄如垂漢流 : 세찬 물길은 은하수를 드리운듯 흐르네 . 意味這中得 : 청하(淸河)의 의미를 이 안에서 얻었으니我愛此一區 : 나는 이 곳(한 구역)을 좋아한다네. 注 『청하일감(淸河日鑑)』 원문에는 1구 臺는 坮,  4구 '愛'는 '怜(사랑할련 : 憐)'으로 되어있다. 안동권씨 서령공파 세보에 生丙子(1876년)  卒辛未(1931年)으로  '산청석각명문총람(1권 489쪽)'의 생년 1865년을 1876년으로 수정했다.      PS :  남이 해놓은 것은 쉬워도 내가 알기는 어렵다.

烏石行春[오석(烏石)에 봄나들이를 가다.]

烏石行春[오석(烏石)에 봄나들이를 가다.]   縣西十里有黑石村 余效王半山改爲烏石  [현의 서쪽 10리에 흑석촌(黑石村)이 있는데 내가 왕반산(王半山, 왕안석의 호)의 過外弟飮(외사촌 집에 들러 술을 마시며)>1) 3구에 나오는 시어 오석강(烏石岡)을 본받아 고쳐서 오석(烏石)이라고 하였다.] 茅屋皆臨水 : 띠집은 모두 계곡에 접해있고桃花盡掩門 : 복사꽃이 피어 다 문을 가렸네.籃輿烏石逕 : 남여를 타고 오석으로 가는 길은擬入武陵村 :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듯하네.   출처 : 어득강의 산음12영 중 제2수 注 1) 반산(半山)은 송나라의 문인이자 정치가인 왕안석(王安石)의 호이다. 그의 〈과외제음(過外弟飮)〉이라는 시에 “모르겠어라 오석강 길을, 늙을 때까지 서로 찾아갈 일 몇 번일런고.[不知烏石岡邊路,..

동상의몽 산행 「유두류록」의 아홉모랭이길

동상의몽 산행 「유두류록」의 아홉모랭이길  ▣ 일 시 : 2024년 07월 13(토)▣ 코 스 : 송대-은병암-고열암-일강-미타봉-주막터-방장문-청이당-어름터-광점동▣ 인 원 : 5명▣ 날 씨 : 흐림    옛 문헌을 상고하여 현재의 지명을 고증하는 일은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독녀성도 그렇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시간에 따라 생각도 바뀐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구롱(九隴)을 아홉모롱이(용龍처럼 구불구불한 언덕阜)길로 이해하는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대화할 사람도 없다.    최근 천왕봉 「孤竹墨熙撰 花山權倫書」 석각의 권륜(權倫)이라는 인물을 찾기 위해 『산청석각명문총람』을 저술하신 권유현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선생님께서 독녀암과 독녀성에 대한 의견을 정리하여 보내..

만수천(萬水川)의 옛 이름 황류천(黃流川)와 황계(黃溪)

만수천(萬水川)의 옛 이름 황류천(黃流川)와 황계(黃溪)    옛 기록을 상고하여 현재의 지명을 고증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3년 전 어우당 유몽인길을 답사하면서 황계(黃溪)에 대한 의문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조경남의 『난중잡록』을 좇아 용추와 파근사 거쳐 정령치를 넘어, 서산대사의 황령암기에 나오는 황령암에 이르기까지 손끝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속 걸어왔다. 황계의 유일한 단서는 옛 문헌에 나오는 황류동(黃流洞)과 황령암(黃嶺庵)이다.   조경남의 『난중잡록』에 "황류동(黃流洞)은 지리산의 황령사(黃嶺寺, 황령암)와 향로봉의 사이에 있는데, 수원(水源)은 반야봉(般若峯)에서 나와 삼기수(三岐水: 세 갈래 물줄기)가 묘봉(眇峯)을 두루 돌아서 내려온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뒤 문장은 황류천..

1586년 양대박의 「두류산기행록」에 나오는 두모담(頭毛潭)

1586년 양대박의 「두류산기행록」에 나오는 두모담(頭毛潭)    양대박은 4회에 거쳐 지리산을 유람한다. 1560년(경신) 봄에는 화개동천의 일원인 쌍계사·청학동 및 신흥사·의신사(擬神寺)를, 1565년(을축) 가을에는 운성(雲城, 운봉)을 거쳐 황산(荒山)을 돌아 백장사(百丈寺)에 투숙하고 천왕봉을 유람한다. 1580년(경진) 가을에는 연곡사(燕谷寺) 일원을, 1586년(병술) 가을 9월 2일부터 12일까지 10박 11일 천왕봉을 유람하고 「두류산기행록」을 남긴다.   1586년 양대박의「두류산기행록」 9월 4일 일정(백장사→변사정 구거지→도탄→실상사→두모담→군자사)에서 두모담(頭毛潭)을 지나간다. 「두류산기행록」에 "바위 가운데는 절구처럼 우묵하게 들어간 것도 있고, 가마솥처럼 움푹 팬 것도 있었다..

지리동부 영랑대의 백아절현(伯牙絶絃) 이야기

지리동부 영랑대와 백아절현(伯牙絶絃) 이야기  ▣ 일 시 : 2024년 06월 23(일)▣ 코 스 : 광점동-두류능선-영랑대-초암능선-두지터-추성▣ 인 원 : 10명(광점동 출발 3명, 새재 출발 7명)▣ 날 씨 : 흐리고 안개비    나를 알아주는 벗을 잃은 슬픔... 춘추시대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가 생각납니다.  『열자(列子)』 「탕문(湯問)」편에 나오는데, 자기를 알아주는 벗[종자기(鍾子期)]이 죽은 후,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은 데서 유래했습니다. 지난 일요일 산친들과 지리동부 영랑대 모처에 칠성님 혼백을 모셨습니다.  ☞ 伯牙絶絃(백아절현) : 백아(伯牙)가 거문고 줄을 끊다.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을 잃은 슬픔을 비유하는 말이다.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연주했..

지리동부 영랑대와 두류능선에서 노닐다.

지리동부 영랑대와 두류능선에서 노닐다. ▣ 일 시 : 2024년 06월 15일(토)~16(일)▣ 코 스 : 광점동-어름터-방장문-청이당-영랑대-말봉-국골4거리-두류봉-영룡봉-광점동▣ 인 원 : 3명▣ 날 씨 : 흐리고 맑음    지난주 삼신봉에 이어 이번 주에도 영랑대와 두류봉에서 브로켄의 요괴를 만났다. 아침에 잠시 하늘이 열리더니 운무쇼가 펼쳐졌다. 브로켄이 잠시 다녀간 영랑대에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뿐이다... 풍편에 산유화님의 유고 소식을 들었다. '대나무는 꽃이 피면 죽고, 소라는 새끼를 낳면 죽고, 사람은 병들면 죽는다.'라는 삼필사설(三必死說)이 문득 떠오른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3년 전인 2021년 05월 22일 사립재골 구롱 길에서 잠시 스쳐 지나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雙磎石門(쌍계석문) 석각 탁본(240612)

雙磎石門(쌍계석문) 석문 탁본(240612)    ■ 雙磎石門(쌍계석문) 관련 유람록과 기행시 1. 1463년 8월 청파 이륙 선생의 유지리산록   쌍계사(雙磎寺)는 신라의 문사 고운(孤雲) 최치원이 글을 읽던 곳이다. 뜰에 백 아름 정도 되는 늙은 회화나무가 있는데 그 뿌리가 북쪽으로 작은 시내에 뻗어 넘어간지라 다리처럼 반석에다 묶어 놓고 절의 승려들이 다리로 삼아 왕래한다. 세속에서 전하기를, “고운이 손수 심은 것이다.”라고 한다. 골짜기 입구에 바위 두 개가 문처럼 서 있는데 ‘쌍계석문(雙磎石門)’ 네 글자를 크게 써놓았고 절 앞에도 오래된 비가 있는데 모두 최치원이 쓴 것이고 비문도 그가 직접 지은 것이다. 이 절은 섬진강과 가까워 이곳 승려들은 절 서쪽에 있는 최공(崔公)의 서루(書樓)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