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학습원·황금능선·느진목재·물가름
▣ 일 시 : 2024년 09월 30일(월)
▣ 코 스 : 순두류 자연학습원-국사봉-황금능선-느진목재-물가름-순두류
▣ 날 씨 : 맑음
■ 1877년 허유의 두류록 [천왕봉-늦은목이-안내원]
○ 8월 11일 해가 뜨기 전에 (사자령) 언덕에 올라가 해돋이를 보면서 치수[致受, 물천勿川 김진호金鎭祜(1845~1910)의 字]와 더불어 ‘성경일제(聖敬日躋 : ’성스러움과 공경함이 날마다 올라간다.’는 뜻으로 은(殷)왕조를 세운 탕(湯)임금은 그 덕이 날마다 증진되었음을 찬양하는 말이다.)’의 뜻에 대하여 논하였다. 밥을 먹은 뒤에 길을 떠났다. 여러 사람들이 깊은 숲 속으로 달려 들어가 지팡이를 구해왔는데, 명원[鳴遠,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의 字] 이 청려목(靑藜木 : 청시닥나무로 추정함) 한 자루를 나에게 주었다. 10리 남짓 가서 면 옷을 풀어 헤치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술동이가 바닥이 나도록 술을 마셨다.
신선적(神仙磧, 신선너덜)에 이르니 그 아래로 맑은 냇물이 폭포처럼 흐르고 갖가지 돌들이 숲처럼 서 있었다. 마침내 멈추어서 점심을 먹었다. 숲의 나무 너머로 아직도 천왕봉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명원(鳴遠)이 은거[殷巨, 약천約軒 하용제河龍濟(1854~1919)의 字] 에게 청하여 솟은 바위에 ‘앙미대(仰彌臺)’라고 쓰게 하였는데, 노(魯)나라의 논(論 : 『논어』를 가리킨다.)에서 따온 것이다.[『논어』에 공자의 덕을 찬양하는 ‘뚫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더 단단해지고, 우러러보면 볼수록 더욱더 높아진다.[鑽之彌堅 仰之彌高]’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또 물속에 있는 돌에는 ‘은여탄(銀餘灘)’이라고 쓰게 하였는데, 명옹(冥翁)의 시에서 ‘10리나 되는 은하수를 다 마시고도 남음이 있다.[銀河十里喫有餘]’는 구절의 뜻을 갖다 쓴 것이다. 냇물을 따라 내려오는데 사죽(莎竹)이 가득 차 있어서(황금능선의 산죽) 사람이 걸어가는데 어깨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 옛날 화전(火田)을 일구던 곳이라고 한다. 숲을 헤치고 5리쯤 가니 큰 고개가 앞에 있는데, ‘국수봉(菊首峰)’이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국수(菊首)’라는 이름은 별 뜻이 없으니, 아마도 ‘국사(國士 : 나라의 큰 선비)’가 잘못 전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라고 하였다.
고개는 몹시 험준하고 가파르고, 풀에 묻혀 길이 없으며, 나무가 구름처럼 울창하였다. 느릿느릿 걸어서 갔는데, 서너번 쉰 뒤에야 고개에 오를 수 있었다. 여기부터는 지세가 조금 평탄하고 길 또한 갈수록 열려서 괴로움에서 벗어나 쾌활한 상태로 들어가니 기뻐할 만하였다. 처음 여러 사람들이 산에 오를 때에는 극히 험난한 곳을 지나가면서도 한 사람도 차질을 빚은 이가 없었는데, 발 가는대로 편안하게 걸어갈 수 있는 평탄한 곳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마음이 풀어져서 발을 헛디뎌 뒤에 오던 이가 앞서 가기도 하고, 앞서 가던 이가 뒤처지기도 하였으니, 이로써 험난하고 평탄한 곳에서 마음을 다잡는 것과 풀어진 것이 다름을 알 수 있었다.
내원(內源)에 이르니 냇가에 흩어져 있는 온갖 바위들이 곳곳마다 사랑스럽고, 냇가의 버드나무는 푸른 빛깔이 시들며, 산의 감나무는 점점이 붉게 물드는데, 들판에 우거진 풀 사이로는 종종 홀로 외로이 서 있는 탑(외탑마을)이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이곳이 옛날 절터였음을 알게 해주었다.
20리쯤 가서 만폭동(萬瀑洞, 덕산사입구)을 지났는데, 만폭동 어귀에는 정명암[鄭明菴, 정식鄭拭(1683-1746) 문집으로 『명암집(明菴集)』이 있다.)의 명홍대(冥鴻臺)가 있다. 이 대는 바위인데, 위에는 몇 자 높이의 외로운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대 아래에는 물이 빙빙 돌면서 흘러가니 술잔을 흘려보낼 만하며 경치 또한 뛰어나다. 명암은 나의 외가쪽 선조인데, 명나라가 망한 뒤 벼슬자리에 나아가려 하지를 않고, 자연 속에서 방랑하며 생애를 마쳤다. 그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유명한 산과 큰 물가에는 명암이 글자를 새겨 넣은 돌이 없는 곳이 없다고들 한다.
옮긴이 : 박해당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객원연구원(출처 지리99)
※ 허 유(許愈 1833-1904) 합천군 가회면 오도리에서 태어났다. 자 퇴이(退而), 호 후산(后山) 남려(南黎), 본관은 김해이며, 한말의 대표적인 유학자 가운데 한 명인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문인으로서, 학풍이 깊고 덕망이 높아 합천은 물론 인근 성주.산청.함양 등지의 각 서당과 서원에서 강독을 하여 후배양성에 힘을 쓰면서 남명집 교정에도 참여를 한 재야 선비이다. 박치복(朴致馥), 곽종석(郭鍾錫), 이승희(李承熙) 등과 교유하였다. 가회면에 후학들이 세운 후산서당이 있다. 저서로 『후산선생문집(后山先生文集)』과 『후산선생문집속(后山先生文集續)』이 있다.
■ 시루뻔버섯(학명 : Inonotus hispidus (Bull.) Karst.)
• 형태
균모의 측면이 넓게 기물에 부착한다. 모양은 반원상, 선반형이며 전후 6~20cm, 좌우 10~30cm, 두께 3~10cm 정도, 어릴때는 포도주 적색. 표면은 다소 울퉁불퉁하다. 나중에는 1cm 정도의 적갈색 거친 털이 밀생하고 흑갈색이 되다가 오래되면 털이 없어진다. 가장자리는 어릴 때 유황색, 곧 갈색. 살은 방사상으로 섬유상, 어릴때는 유연하고 스펀지 모양이며 즙이 많다. 관공의 길이는 1~3cm, 유황색이다가 연한 황토색을 거쳐 흑갈색이 되며 흔히 관공에 물방울이 맺힌다. 구멍은 2~3개/mm로 원형-다각형. 포자는 7~10×6~7.5μm, 난형, 표면은 매끈하고, 갈색. 벽은 두껍고, 기름방울이 있다. 담자기는 27~33×7~10μm, 곤봉형, 4-포자성. 기부에 꺽쇠는 없으며 낭상체도 없다. 강모체는 20~30×9~10μm, 송곳형, 갈색, 벽이 두껍다.
• 생태
여름~가을 / 사과나무 호두나무, 단풍나무 등에 기생하며 살아있는 나무 줄기, 가지에 생기기도 한다. 참나무류 그루터기 등에 군생하기도 한다. 드문 종.
• 분포
한국, 중국, 일본, 북반구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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