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은재&샛골능선과 표고버섯
▣ 일 시 : 2024년 10월 05일(토)
▣ 코 스 : 백무동-곧은재-칠선봉-샛골능선-백무동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
조선총독부는 지리산에 마천을 중심으로 하는 북쪽은 경도제국대학(이하 경도대), 지리산 하동쪽은 구주제국대학, 구례 쪽은 동경제국대학에 대학 부설 연습림이라는 명목 아래 운영 독점권을 주었다. 경도대가 총독부로부터 1912년 12월 1일 이후 향후 80년간 무상 대부(貸付) 형식으로 독점 운영권을 받는다. 지리산의 범위는 천왕봉과 장터목 노고단을 중심으로 북쪽에 해당된다. 경남 산청군 금서면, 함양군 휴천면, 마천면, 석복면, 남원군 산내면, 동면, 운봉면, 주천면 등 2개 도 3개 군 8개 면을 아우르는 면적이었다.
경도제국대는 1917년 함양군 석복면(현 함양읍 백연리)에 ‘경도대 조선 연습림(朝鮮演習林)’사무소 건립하면서 산골 주민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산골 주민들이 대대로 자유롭게 지리산의 많은 특산물, 구황식물과 목재를 자유롭게 채취했던 것을 통제하였으며, 화전 및 벌목 등을 금지하여 흉년이 드는 해에는 마천면의 주민들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지리산은 만백성을 넉넉히 품어주는 산에서 일제에 의한 수탈의 산으로 바뀌게 되었다. 지리산 현장관리를 위해 마천 출장소(목기 제작), 백무동 작업장(표고재배, 숯 생산), 산청 시천면 중산리 출장소(숯 생산, 약초 수집), 장터목 돌담 산장(산관리 대피소)을 두었다.
함양군 마천면 당흥마을에는 경도대 연습림 마천 출장소를 두고 2~3명(宮人嘉伊平, 서흥달, 1921년 10월 박영철의 ‘지리산 탐험기’ 지리산 산행에 동행)의 기수와 직원을 둬서 지리산으로 먹고 살아가는 마천면 주민들을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들은 산불 원인의 이유가 된다는 이유로 지리산 산골 주민(화전민)을 강제 이주시켰고, 이들 중에서 작업장의 인부로 삼았다. 일제의 경도대를 통한 수탈과 그로 인한 마천 주민들의 참상이 주요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조선일보 1926년 5월 15일 기사에는 「지리산 부근(智異山附近) 수십만 주민(數十萬住民)의 참상(慘狀)」이란 제목에 ‘경도제대 연습림(京都帝大練習林)이 된 후(後)로 일초일목을 손에 못 대어 생활의 길이 전면 막혔다.’라고 하였다.
공예용(工藝用) 재목에 대하야는 많은 값을 밧는 고로 여간해서 이익을 볼 수 업스며 기타 제반 불편이 많은 중 특히 표고(票古)는 그 산중의 유명한 산물로 연액 수만 원에 달하던 것이 현금에도 사기가 쉽지 않다. 그 원인은 재벌을 엄금할 뿐 아나라 산품은 시가의 반액으로 그 연습림보호소에서 강제로 사드렸기 때문이다. 만일 사사로이 매매한 형적이 잇스면 전부 압수함으로 부근 주민의 살길이 막이게 되었다. 년래로 산골 주민들의 곤란이 막심하더니 작년에는 더구나 흉년이 들엇든 까닭에 주민들은 얼굴이 누러케 떠서 나물 캐여 생명을 연명하고 있는데 그 참상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업다더라.(조선일보 1926년 5월 15일 기사)
출처 : 『지리산 마천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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