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석각을 쓴 화산(花山) 권륜(權倫)은 누구인가.
'崇禎六甲子秋七月壬子朏 罔僕遺民 孤竹墨熙撰 花山權倫書'는 천왕봉 석각의 마지막 문구이다. 숭정(崇禎)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毅宗, 숭정제 崇禎帝)의 연호이다. 여섯 갑자(六甲子)는 1924년 가을 칠월 임자일 비(朏)는 초승달비로 초하루를 뜻한다. 만세력을 보니 1924년 7월 1일(양력 8월 1일)이다. '망국 유민 고죽인(孤竹人) 묵희(墨熙)가 찬(撰)하고 화산인(花山人, 안동인) 권륜(權倫)이 쓰다(書).'이다. 묵희의 자료는 고성문화원과 고성군청에서 받았으나 권륜은 찾을 수 없었다.
注 罔僕 : 망국의 신하가 새 왕조의 신복이 되지 않으려는 절개를 가리킴. 묵희(墨熙, 1875~1942) : 본관은 고죽(孤竹), 자는 정회(正晦), 호는 경산(敬山), 일명 묵근자(墨根子),구절산인(九節山人). 노백헌(老白軒)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문인. 경남 거제 장목면 출신으로 고성군 동해면에 살았던 유명한 서예가
7월 19일 산청문화원에서 『산청석각명문총람(2018)』을 저술하신 권유현 선생님을 찾아뵙고 권상순 공의 손자 권맹호(權孟虎, 1941년생) 씨가 소장하고 있는 『청하일감(淸河日鑑)』과 『명원정사향사록(明源精舍享祀錄)』에서 권륜(權倫)의 이름을 확인하였다. 7월 20일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리는 날 장터목에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려 천왕봉 석각을 답사하였다. 물에 젖은 '花山權倫書' 문구가 확연히 내 눈 안으로 들어왔다. 화산은 안동의 옛 이름으로 '안동인 권륜이 쓰다.'로 읽어진다. 비계를 철거하기 전 8월 1일~2일과 발판을 철거한 후 8월 17일에도 천왕봉을 다시 다녀왔다.
화산인 권륜은 누구인가. 『명원정사향사록(明源精舍享祀錄)』에 권륜의 이름이 여러번 나온다. 1922년(임술) 9월부터 1931년 3월까지 10년간 명원정사(明源精舍)에서 봄과 가을에 향사(享事)를 지냈는데, 그 대상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병한 명나라 13대 황제 신종(神宗) 만력제(萬曆帝, 1573~1620 재위)와 마지막 16대 황제 의종(毅宗) 숭정제(崇禎帝, 1628~1644 재위)이다. 첫 향사는 1922년(임술) 9월에 권병국(權秉局), 권륜(權倫), 권경(權經) 세 사람이 향사를 지냈다. 권병국(權秉局)은 향사록에 9회, 권륜(權倫)은 13회, 권경(權經)은 17회 나온다. 명(明)에서 청(淸)으로 왕조가 바뀌고, 1912년 중화민국이 건국되었는데도, 숭정(崇禎) 연호를 쓰면서 명나라 황제의 향사를 지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ㅠㅠ 8월 15일에는 내원골 횡하대와 명원정사 터를 답사하였다.
안동권씨 서령공파(署令公派) 세보를 확인하니 권상순(權相舜, 1876~1931) 공은 아들 둘이 있다. 1子는 권태식(權泰式, 1899~1967)이고, 2子는 권태용(權泰庸, 1906~1977)이다. 『명원정사향사록(明源精舍享祀錄)』의 권병국(權秉局), 권륜(權倫), 권경(權經)과는 이름이 다르다. 앞으로 추가 조사와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산청석각명문총람(권유현, 2018)』의 내원골 석각 관련 권상순 공에 대한 조사 기록을 보면, 권상순(權相舜, 1876~1931)은 권병국(權秉局)과 동일인물로 추정된다. 권상순 공의 손자 권맹호(1941년생) 선생이 『청하일감(淸河日鑑』과 『명원정사향사록(明源精舍享祀錄)』 원본을 소장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이다. 『청하일감(淸河日鑑』에는 권병국이 장자인 권륜에게 주는 「경도문(警導文)」이 있다. 아버지 권병국이 아들 권륜을 '깨우쳐 가르치는 글'이다. 권병국과 권상순이 동일인물이면 권륜(權倫)은 권상순의 아들이다. 천왕봉 석각은 권상순의 벗 고죽인(孤竹人) 묵희(墨熙)가 찬(撰)하고, 권상순의 아들 권륜(權倫)이 쓴 것이 된다. 그러나 권상순과 권병국이 동일인물임을 밝히지 못했다. 끝.
注 『청하일감(淸河日鑑)』의 묵희(墨熙, 1875~1942)가 쓴 「淸河號敍(청하호서)」에 “淸河以號之者 吾友權君秉局也[청하를 호로 삼은 사람은 나의 벗 권군 병국이다.]
■ 권상순(權相舜, 1876~1931) - 권병국(權秉局)
1자 권태식(權泰式, 1899~1967) - 권륜(權倫)
1자 元吉(1917~1964)
2자 明吉(1919~1964)
3자 允吉(1933~?) 1자 鎭佑(1966~ ), 2자 倍嵩(1973~ ) 삼장면 평촌리에 거주함.
4자 孟虎(1941~ )
2자 권태용(權泰庸, 1906~1977) - 권경(權經)
자 文吉(1922~1977)-1자 玉圭(1947)
출처 : 안동권씨 서령공파(署令公派) 세보
※ 참고문헌
1. 『청하일감(淸河日鑑)』
2. 『명원정사향사록(明源精舍享祀錄)』
3. 『산청석각명문총람(권유현, 2018)』
4. 『안동권씨 서령공파(署令公派) 세보』
■ 권병국(權秉局)이 아들 권륜(權倫)에게 준 「警導文」
警導文
倫也受之 惟皇上帝降衷下民1) 落席之初 人无不善 誰能保其天衷2) 恒修溫良恭儉3)於日用動靜 不失其正 以循其初者哉 汝多讀聖經賢傳4) 学古人之糟粕5) 察於三綱五倫 修其爲人之方 又博聞廣見 通古今達事変 以成大人之業也 大人者 必求其道德之要 潛心6)玩索 乾乾自强7) 而造次不離 以能立身揚名 以顯父母 此則人子之道也 且夫人子不可无事君之忠也 亦不可无濟物之仁也 且識其王伯8)華夷之略也 以立其本末 克其終始 則大人之事得矣 汝受此書 敬而誦之 藏之中心 以日征月邁 篤守聖人之心法9)焉 庶幾斯言 自不落於暴棄之地也 嗟汝勉夫
아들 륜(倫)을 깨우쳐 가르치는 글
윤(倫)은 (경도문을) 받거라. 훌륭하신 상제께서 하민(下民)들에게 착한 마음(衷)을 내려주셨다. 자리에 누운 처음에는 사람이 착하지 않음이 없으니, 누가 능히 본연의 선의(善意)를 지키고, 항상 일상생활에서 온화하고 순량하고 공손하고 검소한 성품을 닦아서, 그 정도(正道)를 잃지 않고 초심(初心)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너는 경전(聖經賢傳)을 많이 읽고 옛사람의 언행이 담긴 서책(古人之糟粕)을 공부하여,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알고 사람이 되는 방법을 닦아서, 또한 널리 듣고 널리 보고(博聞廣見) 고금의 사변을 달통해야 대인의 업을 이룰 수 있다. 대인은 반드시 그 도덕의 요체를 구하고 마음을 가라앉혀서 글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찾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강불식(自强不息)하여 잠시도 자리를 떠나지 않아야 입신양명하여 부모의 이름을 드러낼 수 있다. 이것이 곧 사람의 자식 된 도리이다.
한편 사람의 자식이 임금을 섬기는 충성이 없을 수 없고, 또한 남을 구제하는 어진 마음이 없을 수 없다. 장차 그 왕도와 패도(王伯) 중화와 오랑캐의 경계를 알아서 그 본말(本末)을 세우고 그 시종(始終, 시종여일)을 이루면 대인의 일을 얻을 것이다. 너는 이 글을 받고 삼가 외워서 마음속에 간직하여 날마다 나아가고 달마다 매진하여 성인의 심법을 돈독히 지켜라. 이 말에 가까우면 스스로 포기하는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 아! 너는 힘쓸지어다.
注
1) 《서경》 〈탕고(湯誥)〉에 “훌륭하신 상제께서 하민들에게 충(衷)을 내려주셨다.〔惟皇上帝降衷下民〕 ”하민은 벼슬을 하지 않은 일반 평민.
2) 天衷:하늘의 뜻. 본연의 양심
3) 溫良恭儉:온순하고 어질고 공손하고 검소함.
4) 聖經賢傳:성현(聖賢)이 지은 여러 가지 책. 성인(聖人)의 글을 경(經)이라고 하고, 현인(賢人)의 글을 전(傳)이라고 한다.
5) 古人之糟粕:고인의 언행이 담긴 서책을 가리킴. 《莊子 天道》
6) 潛心:어떤 일에 대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이 생각함. 玩索:1. 글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생각하여 찾음. 2. 읽으면서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생각하여 찾다.
7) 乾乾自强:부지런히 쉼없이 노력하다. 乾乾:자강불식(自强不息)하는 모양.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양.
8) 王伯(왕패):왕도(王道)와 패도(覇道). 伯:우두머리패(覇)
9) 心法: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색과 심으로 나누었을 때, 의식 작용의 본체인 심왕(心王)과 심소(心所)를 이르는 말.
'♣ 六友堂記 > ♧작업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원정사향사록(明源精舍享祀錄) (0) | 2024.10.18 |
---|---|
自警[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함] (0) | 2024.09.09 |
관포(灌圃)의 독녀심선(獨女尋仙)에 나오는 독녀성 (0) | 2024.07.31 |
『고성의 얼(고성문화원, 2021)』에 소개된 묵희墨熙 (0) | 2024.07.25 |
만수천(萬水川)의 옛 이름 황류천(黃流川)와 황계(黃溪) (0) | 2024.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