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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열부김해김씨사적비(孝烈婦金海金氏事蹟碑)

효열부김해김씨사적비(孝烈婦金海金氏事蹟碑)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陽丁마을(삼정리 산 35-5번지) 행적자 : 김해김씨 연대 : 1978년 [개요] 부군이 생감을 먹다가 급체로 죽음에 부인께서 부군을 따라간다고 목을 매어 죽는다고 몇 차례 하였음. 이 비석은 효부 열녀의 행실을 귀감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1929년 당시 각 유림단체에서 인정하는 포창완의문(褒彰完議文)에 의해서 건립한 것이다. 孝烈婦金海金氏事蹟碑 謹按經學院表彰文에 孝烈婦 金海金氏가 있으니 부인은 文敏公 후손 휘 익손의 맏따님으로 平山人 장절공 후손 申龍會 호 松雲의 처이다. 부인이 시부모에세 정성으로 효양하고 이웃에게 돈후하니 이웃간에 모두 賢婦임을 칭찬하였다. 부인이 28세 때 부군께서 생감을 자시고 急滯로 逝去함에 갑작스..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 선유정에서 부자암 가는 길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 선유정에서 부자암 가는 길 ▣ 일 시 : 2021년 10월 28일(목)~29일(금) ▣ 코 스 : 부연정-선유정-음정-벽소령-봉산정계(封山定界) 금표 석각-부자암(父子岩)-선비샘-음정-구시쏘(槽沼) ▣ 인 원 : 2명(백승철님) ▣ 날 씨 : 맑음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三丁里) 하정(下丁) 마을에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 마을에는 선유정(仙遊亭)이 있는데,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에서 선유정(仙遊亭)이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 선유정(仙遊亭) 입구의 바위에 석문암(石門巖) 석각과 그 아래에 '선녀가 승천한 바위'라고 하여 선녀승천유지(仙女昇天遺址)를 암각한 명문이 있다. 또한 선녀가 목욕하였다는 구시쏘(槽沼)가 있다. 마천면 삼정리에 살았던 송암(松菴) 정창학(鄭昌..

의병장석상용지송공비(義兵將石祥龍之頌功碑)

의병장석상용지송공비(義兵將石祥龍之頌功碑)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 6번지 두류암(頭流巖) 행적자 : 의병장 석상용 연대 : 일제강점기 입석시기 : 1921년 1월 10일 세움 [개요] 일체 치하에서 그의 셋째 아우 채용(彩龍)씨가 대담하게도 장군의 공을 기린 33자의 글을 써서 비를 세웠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의병활동 공적비는 전국에서 하나뿐이라고 史學家들은 말하고 있다. 의병장 석상용지송공비 공의 자는 용현(龍見)이다. 세칭 비호장군이라 칭한다. 장군은 용기와 힘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 국가가 위망(危亡)에 처한 것을 보고서, 지리산 중에서 의병(義旅)을 일으켜 왜병을 참(斬)한 것이 매우 많았다. 마침내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5년이 지난 후 석방되어 돌아왔다. 이로 인하여..

부자암(父子岩)과 비리내(飛離奶)골 이야기

부자암(父子岩)과 비리내(飛離奶)골 이야기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三丁里) 하정(下丁) 마을에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 마을에는 선유정(仙遊亭)이 있는데,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에서 선유정(仙遊亭)이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 선유정(仙遊亭) 입구의 바위에 석문암(石門巖) 석각과 그 아래에 '선녀가 승천한 바위'라고 하여 선녀승천유지(仙女昇天遺址)를 암각한 명문이 있다. 또한 선녀가 목욕하였다는 구시쏘(槽沼)가 있다. 1976년 송암(松菴) 정창학(鄭昌學) 선생의 선유정기(仙遊亭記)에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옛날 삼정리 하정마을에 사는 나무꾼 인걸(人傑)이 선녀들이 구시쏘(槽沼)에서 목욕하는 것을 엿보다가 아미(阿美) 선녀의 날개옷을 훔쳤다. 선녀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恥菴自矜韵(치암자긍운)외

恥菴自矜韵(치암자긍운) 頭流北麓自生鄕 : 두류의 북록은 我生의 고을이요 獨擅豪華八十霜 : 독천으로 호화로이 팔순이 되었네 宏壑瀑潭雄鼓笛 : 큰골의 폭담은 북소리 웅장하고 竹林禽譟奏笙簧 : 죽림의 새소리는 생황의 연주로세 春園寂寞鶯歌囀 : 춘원은 적막한데 앵가를 울리고 秋景美風畵幅張 : 가을 경치 고운 단풍 화폭을 펼쳤네 莫道書生骨相薄 : 서생의 골상이 박하다 말을 마오 自矜淸福享無量 : 자신의 자랑 청복 누림이 무량하오 槍岩山將軍大坐訣(창암산장군대좌결) 方壺屹立脉流連 : 방호산 높이 서서 맥이 흘러 연했고 淑氣灵棱壙席圓 : 맑은 기운 신령스런 능맥 천광 자리 둥글다. 縱閱滄桑猶不変 : 비록 창상을 겪었으나 오히려 변함이 없고 槍岩大坐孰能穿 : 창암산 장군대좌 누가 능히 찾으리 甑蛮庚兌三峯揖 : 시루봉은 ..

1593년 진주성 함락과 의병장 변사정의 부장 이잠(李潛)

1593년 진주성 함락과 의병장 변사정의 부장 이잠(李潛) 1. 燃藜室記述卷之十六 宣祖朝 晉州城陷阴兵撤還 ○ 二十九日賊陷晋州。倡義使金千鎰與其子象乾。慶尙右兵使崔慶會。忠淸兵使黃進。(以上三人三忠祠于晉陽) 全羅復讎大將高從厚。右義兵副將高得賚。左義兵副將張潤。義兵副將李潛。靈光義將沈友信。泰仁義將閔汝雲。海南義將任希進。陶灘伏兵將姜希甫。義兵將李繼璉。金海府使李宗仁。泗川縣監金俊民。藍浦縣令宋悌。本州府使徐禮元。義兵將姜熙說。金海縣令曹慶亨。判官崔琦弼。佐郞梁山璹(숙)。主簿柳復立等。皆死之。(忠淸守令之從兵使死者多不記) 1593년 6월 29일(음) 왜적이 진주성을 함락하였다.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1537-1593)과 그의 아들 김상건(金象乾), 경상도우병사 최경회(崔慶會, 1532-1593), 충청병사 황진(黃進, 1550-1593), ..

1686년 정시한 산중일기의 묘적암 전대(前臺)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묘적암 전대(前臺)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은 상헌수필(橡軒隨筆)에서 '만물을 잘 관찰하는 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만물이 없다.(善觀物者 無物不爲助)'라고 하였다. 유람록 답사는 암자터와 암자터, 샘터와 샘터, 돌포장과 축대, 숯굴과 숯굴을 연결하는 퍼즐 맞추기 놀이이다. 1686년 9월 2일 정시한은 무주암에서 아침 식사 후에 아들 도항(道恒)이와 혜철(惠哲) 수좌와 함께 묘적암으로 가는 도중에 계학(戒學) 스님을 만나 서암(西庵) 터에 들른다. 여기에서 서암은 서동고암터를 가리키는 듯하고, 묘적암터는 회암당 승탑터로 추정한다. 정시한은 무주암에서 서암(西庵) 터를 다녀온 후 묘적암으로 돌아와 묘적암 전대에 올라갔다가 방으로 들어간다. 선..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영신사-의신사)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영신사-의신사) ▣ 일 시 : 2021년 10월 09일(토)~10일(일) ▣ 코 스 : 의신-대성마을-대승암터-대성폭포-영신대-칠선봉-선비샘-덕평마을터(천우동)-의신사 ▣ 인 원 : 3명(일정 민병태님, 정혜종님) ▣ 날 씨 : 맑음 1611년 4월 5일 향적암을 출발하여 영신암에서 의신사에 이르는 유몽인의 일정이다. 10여 년 전 선비샘에서 의신으로 하산한 일이 있으나, 당시는 유람록을 모르고 발이 산행하던 시절이라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얼마전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한국농어민신문, 2021.08.24 18:22)'를 읽고 하산길에 의문이 있어 답사를 하게 되었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비탈길’, ‘마치 푸른 하늘에서 황천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라는 길의 묘사를 보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