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작업실

마천지서장 하만수의 칠언절구 육이오동란

도솔산인 2022. 11. 24. 10:06

마천지서장 하만수의 칠언절구 육이오동란

 

 
六二五動亂 육이오동란
 

白頭風烈荒波動 : 백두산 바람은 매섭고 거친 물결이 이는데
北進軍兵攻擊越 : 북진하는 군병은 삼팔선을 넘어 공격하네
外勢當時千古恨 : 당시에 외세의 개입은 천고의 한이 되었고
胸中忿痛心流血 : 가슴속 분통함은 마음에 피가 되어 흐르네

 

대한민국경찰서부전투지휘함양경찰제칠중대장  퇴경 하만수

 

※ 지리산 마천면사 편찬위원회 문호성회장님이 발굴한 자료임.

 

▶ 함양경찰서 마천지서 경비주임 하만수 관련 기록(編)

 

  1.4후퇴로 북괴군이 지리산으로 들어와 빨치산이 기승을 부리자 마천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마천면에 통나무 목책을 쌓고 특공대를 조직했다. 당국에서 권유하기도 했지만, 17세 소년으로부터 50대의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참여했다. 또 봉쇄선 안으로 피란 온 다른 마을 청장년들도 특공대에 들어왔다. 당시 마천의 민간인 특공대(대장 곽인길)는 120∼130명 가량 되었다. 이 특공대는 여순반란 사건이 발생한 직후부터 6.25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있었던 '민보단(주민자치단체)'의 후신인 셈이었다.

 

  당시 마천면 경비 총책임자는 마천지서의 경비주임 하만수였다. 그는 원래 함양경찰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경찰들은 빨치산에 시달리는 마천지서 근무를 누구나 기피했다. 그래서 '마천지서 근무를 희망하면 계급을 올려준다.'라는 제안이 나왔고, 이때 하만수 혼자 손을 들어 마천지서에 부임한 것이다. 52 9 2일 남부군의 공세에 통나무 봉쇄선도 뚫리고 짚세기 부대도 최대의 희생자를 내게 된다. '빨치산 대부대의 기습공격을 받고 일시에 60여명이 죽음을 당하는 참극이었다.' 1994년 마천애향회에서 편찬한 '마천향토지'의 기록이다. 

 

출처: 우리들의 글동네 | '짚세기 부대'와 '하대포' - Daum 카페

 

※ 하만수의 기록을 찾아보니 최화수씨가 쓴 칼럼이 있습니다. <지리산 반세기>라는 책을 냈는데 1994년 마천애향회에서 편찬한 마천면지를 인용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