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6년 성여신의 방장산선유일기에 나오는 설봉과 숙묵암
화개동천(花開洞天) 초입에서 바라보면 12시 방향으로 가장 높이 보이는 봉우리가 있다. 1301봉으로 이름이 없다. 정상에 헬기장이 있고, 빨치산 토벌을 위해 국군이 돌로 쌓은 참호가 있으며, 인위적으로 쌓은 석축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쌍계사 주차장에서 올려다보면 雪峰(설봉)으로 추정되는 1301봉이 보인다. 1301봉 남동 편에 하동 독바위가 있다.
지난주 산학동자(도필락)님에게 '설봉에 다녀온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雪峰(설봉) 관련 자료를 공유하였고, 산행 후 성여신의 유람록 국역 부분을 물어왔다. 1616년 성여신의 「방장산선유일기」에서 " 번천동(樊川洞)을 지나 숙묵암(宿黙菴)을 거쳐서 설봉(雪峰)을 넘어 불일암(佛日菴)에서 묵었다.[仍過樊川洞 越宿默菴 踰雪峰 宿佛日菴 ]"라는 문구이다. "묵암(默菴)은 묵계암(黙契菴)을 뜻하고, 덕산에서 불일암까지 가면서 묵계암에서 하룻밤 묵어간(宿) 것이 아니냐? 덕산에서 불일암까지 거리를 감안하면 하룻만에 당도하기는 힘들다고 본다."라는 것이 도필락님의 견해이다. 산학동자님 의견을 좇아 '越宿默菴'을 '묵계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로 국역하니 비로소 납득이 간다. 숙묵암(宿黙菴)은 오류인 듯하다.
仍過樊川洞 越宿默菴 踰雪峰 宿佛日菴 : 이어서 번천동(樊川洞)을 지나 묵계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설봉(雪峰)을 넘어 불일암(佛日菴)에서 묵었다.
注 越宿 :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지새우다. 밤을 넘기다. 『맹자집주』 '공손추하(公孫丑下) 11'에 '齊宿, 齊戒越宿也. 재숙(齊宿)은 재계하고(齊戒) 밤을(宿) 넘김이다(越也)'라는 용례가 있다. 고전번역원에서는 '越宿'이 45건의 용례가 보인다. 의미는 같다. 越宿은 '(하룻)밤을 보내다(묵다).'로 국역하는 것이 맞는 듯하다.
▶ 선인들의 유람록과 문헌에 나오는 설봉
순 | 유람록과 문헌 | 설봉 | 비고 |
1 | 1616년 성여신 방장산선유일기 | 雪峰(설봉) | |
2 | 1699년 明安의 상불암기 | 雪峰(설봉) | |
3 | 1823년 김선신 두류전지 | 雪峰(설봉) |
가. 1616년 성여신의 방장산선유일기에 나오는 설봉(雪峰)
○ 10월 1일 무술(戊戌) <중략> 또 정묘년(1567년) 가을에 최순흠(崔舜欽) 여일(汝一), 권세인(權世仁) 경초(景初), 유장(柳璋) 여옥(汝玉), 하천주(河天澍) 해숙(解叔) 등과 응석사(凝石寺,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정평리 집현산 기슭에 있는 사찰)에서 출발하여 걸어서 광제사(廣濟寺)∙단속사(斷俗寺)∙덕산사(德山寺) 등을 두루 탐방하였다. 그리고 남명 선생을 뵈려고 했는데, 선생이 김해(金海)로 가시어 뵙지 못하였다. 시냇가에 초정이 있었는데 정자 기둥에는 선생이 손수 쓰신 시 한 수가 있었다.
[원문] ○ 十月 一日 戊戌 <중략> 又於丁卯秋 與崔舜欽汝一·權世仁景初·柳璋汝玉·河天澍解叔等 步自凝石寺 歷探廣濟·斷俗·德山等寺 欲謁南冥先生 先生往金海 未拜 溪上有草亭之柱 有先生手題一絶曰
請看千石鐘 : 천 석이나 되는 큰 종을 보게나
非大扣無聲 : 크게 치지 않으면 울리지 않는다네
爭似頭流山 : 어찌하면 나도 저 두류산처럼
天鳴猶不鳴 :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게 될까
우리들이 처음에는 그 뜻을 알지 못하였는데, 읊조리고 음미한 한참 만에 그 뜻을 조금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 서로 탄식하며 말하기를 “선생의 모습을 뵙지는 못했으나, 선생의 역량은 이 시를 통해 상상할 수 있겠네. 이번 걸음이 어찌 큰 다행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드디어 도천(桃川, 지금의 덕천서원) 가를 거닐다가 번천동(樊川洞)을 지나 '숙묵암(宿黙菴)을 거처서' 수정 → '묵암(묵계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越宿)' 설봉(雪峰)을 넘어 불일암(佛日菴)에서 묵었다. 쌍계사로 내려가 겨울 석 달 동안 역사서를 읽고, 다음 해 봄에 산을 나왔다. 아! 을축년과 정묘년의 일이 벌써 50년이나 지났고, 그때 함께 노닐던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세상 사람들이 이른바 ‘어찌 신선술을 배우지 않아 무덤만이 즐비한가.’라고 한 격이다. 난리와 많은 전쟁으로 사찰은 모두 잿더미가 되었고, 지금 새로 지은 절에 나 홀로 다시 와 옛터를 둘러보니, 이른바 ‘늙은 신선 죽지 않고 흥망을 다 보았네.’라는 격이었다.
* 번천동(樊川洞) : 현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반천리(反川里)를 가리킨다. 일명 ‘번내’라고도 함. 정묘년(1567년) 가을 성여신의 일정 : 산천재-도천(덕천서원 터)-번천동-숙묵암(숙)-설봉-불일암(숙)-쌍계사(숙)
[원문] 吾等初未識其意. 撫翫沈吟. 良久. 乃得小寤. 仍竊相嘆曰.先生儀形. 遂未得拜. 先生力量. 憑此可想. 豈非今行之一大幸乎. 遂散步於桃川上(卽今書院基也). 仍過樊川洞. 越宿默菴. 踰雪峰. 宿佛日菴. 下雙磎. 讀三冬史. 翌年春. 出山焉. 噫. 乙丑 丁卯等年. 已過五十歲. 而當日同遊人. 皆不在世. 所謂何不學仙塚累累者也. 亂離百戰. 寺刹皆入灰燼. 而今乃新營. 翁獨重來而訪舊. 所謂老仙不死閱興亡者也.
나. 1699년 상불암기에 나오는 설봉(雪峰)
지리산의 한 줄기가 남으로 우뚝 솟아 하늘에 가까이 간 것이 설봉(雪峰)이다. 이 봉우리의 서쪽에 옛 사람이 숨어 쉬던 터가 있는데, 그 이름을 잃어버린 것이 몇 년이나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강희(康熙) 정축(丁丑 1697)년에 승단(僧團)에서 형 동생이 되는 호영(浩影) 도인 해기(海機)와 사민(思敏) 선사가 일찍이 청학동 대은암에서 함께 선업을 닦다가 문득 그 거처가 깊지 않은 것을 싫어해서 대매(大梅)가 집을 옮긴 일을 우러러 좇아 이곳으로 옮겨 들어와 집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한 해가 지나지 않아 완성되었다. 이곳이 불일암(佛日庵)의 위에 있기 때문에 ‘상불(上佛)’이라고 편액을 붙였다.
[원문] 上佛庵記 智異之一支 南而斗之而近天者 卽雪峰 峰之西 有古人隱休之地而墟 失其名者 不知幾年也 康熙丁丑 浩影道人海機與思敏禪 爲法門昆仲 嘗居靑鶴洞大隱庵 同修白業 忽厭其居之不深 仰追大梅之移舍 乃轉入此 庇工幹事 不年成之 由其在佛日之上 以上佛扁焉
☞ 대매(大梅, 741∼808) 성은 정씨. 이름은 법상. 대매는 호. 또는 매자. 마조도일의 제자. 처음 마조를 참알하고 묻기를 「어떤 것이 佛입니까.」 馬祖「곧 마음이 부처다.」한데서 크게 깨침. 당 덕종 때 대매산에 호성사를 짓고 크게 종풍을 떨치다. 808년 6월 9일 나이 88세로 입적함.
다. 1823년 김선신의 두류전지에 나오는 설봉(雪峰)
설봉(雪峰): 악양 북쪽에 있다.[류씨견문록] 살펴보건데, 설봉(雪峰)은 지금 솔봉(松峰)이라고 부른다. 봉우리에 여러 그루의 소나무가 있으므로 그렇게 일컫는다. 그렇지만 실제로 '솔松'의 방언 발음은 '설雪'자의 발음과 비슷하다. 따라서 계속 잘못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원문] 按. 雪峰. 今喚松峰. 峰有數松. 故云. 然而其實松之方音. 與雪之子音相近. 故訛傳相襲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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