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작업실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장정동(長亭洞)과 삼정(三丁)

도솔산인 2022. 12. 1. 15:37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장정동(長亭洞)과 삼정(三丁)

 

 

  마천면 삼정리(三丁里)의 옛 이름은 천령지(1656년 편찬, 1888년 간행)와 함양군지(1956)에 정장(亭庄)으로 기록하고 있다. 1994년 마천애향회에서 편찬한 마천면지에는 삼정(三丁) 마을의 유래를 '정쟁이' 또는 '정재이'로 한자로 정장(丁莊, 일꾼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정(下丁) 마을 선유정 상량문(仙遊亭上梁文, 1976)에는 "진(秦)나라 혜문공(惠文公)이 촉도(蜀道)를 뚫으려고 거짓으로 금우(金牛)를 변경에 설치했으니 그 당시 다섯 역사(力士)가 쓰던 도끼로 삼정(三丁) 마을을 개척하였네."라고 하였다. 이렇게 기록마다 한자의 표기가 다르다.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 장정동(長亭洞)이 나오는데, 정황상 삼정(三丁)을 가리키는 듯하나 명확하지 않다. 장정(長亭)을 검색해보니 '진나라 때 10리마다 정(亭)을 설치하여 정장(亭長, 하급관리)을 두고 여행객을 관리하며 치안을 유지하고 민사를 처리하게 하였다.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劉邦)사수군(泗水郡) 패현(沛縣)의 정장(亭長) 출신이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장정(長亭)은 10리마다 설치한 행인들의 휴게소로 검문소 역할을 하는 길목에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마천에서 벽소령과 영원령으로 가는 갈림길인 삼정(三丁) 마을에 장정(長亭)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注 1. 장정(長亭) : 정(亭)은 여행 중에 먹고 쉬고 자거나,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연락하기 위하여 시설한 건물로, 우정(郵亭), 역정(驛亭), 돈대(墩臺) 등이 있는데, 보통 5리마다 단정(短亭)을 설치하고, 10리마다 장정을 설치하였다. 장정동(長亭洞)은 장정(長亭)이 있는 마을을 뜻한다. 2. 정(亭)은 정자(亭子), 역참(驛站)이 있는 마을, 여인숙(旅人宿), 주막(酒幕), 초소(哨所) 등의 뜻이 있다. 3. 장(庄)은 장(莊)의 속자로 시골 마을, 시골집, 농막, 별저(別邸), 별장(別莊) 등의 의미이다.

 

 

1. 1580년 변사정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영원암(靈源菴)

 

 6일에 아침밥을 급히 먹고 큰 내를 건너서 6, 7리를 가니 물이 콸콸 흐르고 산은 우뚝 솟아 있었다. 월락동(月落洞)을 거쳐 황혼동(黃昏洞)을 지나 작은 시내를 건너서 가는데 고기잡이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인사를 하였다. 살펴보니 일찍이 안면이 있는 자였다. 열 마리나 되는 물고기로 우리를 대접하겠다며 말하기를, “이 물고기는 산중의 진귀한 물건이 될 수 있으니, 이것을 여러 어른들께 대접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길을 안내하며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군회 정염이 말하기를, “다만 물고기를 대접한데서가 아니라 그의 말이 참으로 가상하다.”라고 하였다. 곧 그를 따라 몇 리를 가니 계곡 안에 인가가 두세 집 있었다. 닭이 울고 개가 짖으며 푸른 나무 사이로 흰 구름이 나오니 또한 절경이었다.

 

오후엔 옥련동(玉蓮洞)에 올라 영원암(靈源菴)에 이르렀다. 산이 깊어 세속과는 단절되었는데, 푸른 회나무와 초록빛 단풍이 비단 날개를 펼친 듯 사람을 가로질러 있었다. 여기서 조금 쉬었다가 날이 저물어 장정동(長亭洞) 김씨가 우거하는 집에서 투숙하였다.

 

 

2.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영원암(靈源菴)

 

4 2일 신미일. <중략> 해가 뜰 때부터 등산을 시작하여 정오 무렵에 비로소 갈월령(葛越嶺)을 넘었다. 갈월령은 반야봉(般若峯)의 세 번째 기슭이다. 가느다란 대나무가 밭을 이루고 몇 리나 펼쳐져 있었지만, 그사이에 다른 나무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사람이 개간하여 대나무를 심어놓은 듯하였다. 다시 지친 걸음을 옮겨 영원암(靈源菴)에 이르렀는데 영원암은 고요한 곳이면서 시원하게 탁 트인 높은 터에 있어서, 눈 앞에 펼쳐진 나무숲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왕대나무를 잘라다 샘물을 끌어왔는데, 옥 구르는 소리를 내며 나무통 속으로 흘러들었다. 물이 맑고 깨끗하여 갈증을 풀 수 있었다. 암자는 자그마하여 기둥이 서너 개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깨끗하고 외진 것이 사랑할 만하였다. 이곳은 남쪽으로는 마이봉(馬耳峯)을 마주하고, 동쪽으로는 천왕봉을 바라보고, 북쪽으로는 상무주암을 등지고 있다. 이 암자에 사는 이름난 승려 선수(善修)가 제자들을 거느리고 불경을 풀어내어 사방의 승려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그는 순지와 퍽 친한 사이여서 우리에게 송편과 인삼 떡, 팔미다탕(八味茶湯)을 대접하였다. 이 산에는 대나무 열매와 감과 밤 등이 많이 나서 매년 가을 이런 과실을 따다 빻아 식량을 만든다고 한다. 해가 기울자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오고, 앞산 봉우리에 구름이 모여들어 비가 올 징조가 보였다. 우리는 서둘러 떠나 사자항(獅子項)을 돌아 장정동(長亭洞)으로 내려갔다. 긴 넝쿨을 잡고서 가파른 돌길을 곧장 내려가 실덕리(實德里)를 지났다. 그제야 들녘의 논이 보였는데 처음으로 물을 대는 도랑에 맑은 물이 콸콸 흘러내렸다. 저물녘에 군자사(君子寺)로 들어가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