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철굴암터와 도덕봉의 검각(劒閣)을 찾아서
▣ 일 시 : 2021년 12월 18일(토)~19일(일)
▣ 코 스 : 용화정사-중철굴암-상철굴암-파란움막터-만국기터-도덕봉-의신
▣ 인 원 : 4명(도필락님, 김자준님, 곰돌이님)
▣ 날 씨 : 맑음(영하4도)
처음 설산(雪山)을 찾은 것은 2020년 1월 7일이다. 그날 밤 자연스럽게 중철굴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설산 토굴 아래 암자터(중철굴암)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당시는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라 이해하지 못하여 그 이야기는 거기에서 멈추었다. 말의 요지는 설산 토굴이 중철굴암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작년과 금년은 점필재의 구롱길과 유몽인 길에 매달려 거의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지난 12월 4일~5일에 벽소령의 봉산금표 조사를 위해 오리정골로 올라가 상철굴암과 설산 토굴을 지나 삼정으로 하산을 하였다. 지금 설산 토굴은 화재가 나서 흔적만 남아있다.
중철굴암의 탄생 스토리는 이렇다. 「무천 선생이 이곳에서 밀레라빠고(인도의 수행법)를 수행하고 계실 때, 한 무리의 산객들이 지리 99라고 소속을 밝히면서 '이곳이 '중철굴암터'가 아니냐?'라고 물어왔고, 무천 선생은 수행중이라 그들과 대화를 섞고 싶지 않아 '그렇다.'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엉겁결에 '중철굴암터'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런 연유도 모르고 대부분 사람들은 설산 토굴을 중철굴암터로 알고 있다.」 답사를 마치고 내려와 두 분에게 다시 확인을 하니 설산 토굴과 중철굴암의 내력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지리산길 지도에 표기된 중철굴암터도 확인되지 않은 자료를 오발하여 홍심(紅心)에서 한참 벗어났다. 三철굴암은 서산대사의 청허당집(淸虛堂集)에 나오지 않는구전으로 전하는 암자터이다.
의신에서 태어난 완폭대님과 내원골 김산(金山)님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설산(雪山) 토굴은 사철 물이 나오기 때문에 본래 논이었다. 약 40년 전 정처사 현무 선생과 칠불사 초은 스님이 설산에 들어와 스님은 습지 주변에 토굴을 짓고, 현무 선생은 설산 토굴 자리의 논에 석축을 쌓고 성토를 하여 토굴을 지었다고 한다. 현무 선생은 이곳에서 20여 년을 수행[위빠사나(Vipassana), 호흡법&좌선]한 후에 이곳을 떠났고, 현재는 경남 양산 모처의 토굴에 계신다고 한다. 이후 무천 선생이 이곳에 들어와서 15년 공부(?)를 하고, 근년에는 지리산 산길따라 김산(金山) 님이 이곳에서 3년간 머물렀다. 설산(雪山) 또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지명으로 의신사 주변이 용맹정진하는 수행자의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중철굴암터를 답사하기 위해 산학동자님이 단톡방에 산행 계획을 올렸다. 산학동자님은 금요일 내원골에 들어가 김산(金山)님을 만났고, 나는 천왕봉 일월대(日月臺) 석각 죽헌 정태현 선생의 후손을 개평마을에서 만난 후 마천에서 산행 준비를 하였다. 산행 전날 순천산님이 선답한 답사 사진과 설명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순천산님의 말씀은 '토굴터 오른쪽 위에 중철굴암 추정터가 있다.'라는 내용이다. 이번 산행은 중철굴암터에서 상철굴암터의 옛길을 잇고, 유몽인이 촉도난의 검각이라고 표현한 도덕봉에서 의신사까지의 하산길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암자터에 대한 식견도 없거니와 기록이 없는 암자터에는 크게 관심도 없다. 중철굴암처럼 디자인이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없으니 인문학이라는 용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유람록 답사는 또한 겨우 취미 수준에 불과하다. 모르는 것이 많다보니 자연히 답사 횟수도 잦다. 인월에서 덕자님 차로 옮겨타고 출발하여 용화정사 입구에서 뜻밖에 순천산님을 만나 산행 안내를 받았다. 용화정사 앞에서 토굴터로 바로 올라갔다. 토굴터에서 오른쪽 위로 잠시 오르면 석축이 보이는데, 이곳이 구전으로 전하는 중철굴암터이다. 통바위 위에 석축을 구축하여 터를 닦아 놓았고 왼쪽 너덜 계곡에는 건기에도 물이 흐른다. 이곳에서 사면을 치고 올라가면 숯가마터가 있다. 안부 모랭이를 지나 같은 고도를 유지하면서 사면으로 옛길의 흔적이 남아있다. 조금 내려서면 숯가마터가 나타난다. 계곡을 건너서 올라서면 상철굴암터이다. 암자와 암자, 숯가마터와 숯가마터, 샘터와 샘터로 길은 연결된다.
상철굴암터에서 석축이 있는 파란 움막터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가 만국기터에 닿았다. 도덕봉 검각까지는 지척에 있으나 심한 너덜 구간이다. 오늘 산행을 안내한 순천산님은 도덕봉에서 의신으로 내려가시고 우리는 샘터에서 물을 받았다. 도덕봉 주변은 한마디로 천혜의 요새이다. 겹겹 성곽으로 에워싼 듯 암봉은 망루가 되어 안당재와 화개천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곳이 왜 염소막터인지는 모르겠다. 내 눈에는 샘터 주변에 남아있는 석축은 한말 의병들이 머물렀던 막사터로 보인다. 팩트는 1908년 2월 항일 의병들이 의신마을에 설을 쇠러 내려왔다가 몰살을 당하였다는 것이다. 대성골 초입 30인의 의총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해가 질 무렵에야 산학동자님과 곰돌이님이 도착을 하였다. 지난해 10월 영남알프스에서 만났으니 1년이 넘었다. 조용하던 도덕봉에 바람이 불고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도덕봉에 촉도난의 검각을 세우고 오늘 연결한 중철굴암에서 상철굴암 길을 복기하였다. 유람록을 복원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토론이다. 함께 답사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산에 들면 시간이 가는 것을 잊는다. 허리길, 등고선 산행, 모랭이와 이정목, 암자터와 샘터, 숯가마터, 돌포장길, 집터 등이 산길을 찾는 시그널이다. 허리길은 사람의 발길이 끊어져도 짐승들이 그 길을 이용한다. 그 길이 가장 편안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 독산 능력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내가 최고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라는 생각은 독약이다.
한밤중에 달이 잠시 보이더니 다음날 아침 눈발이 가늘게 바람에 날렸다. 우리는 도덕봉에 올라 사위를 둘러보고 하산해야 할 능선을 바라보았다. 날이 좋으면 여기에서 좌고대도 보인다. 의신 마을은 바로 발 아래에 있다. 미련없이 돌아서서 유몽인이 기술한 촉도난의 검각을 지났다. 우리는 의신으로 내려가는 능선 갈림길을 찾아 천천히 내려섰다. 능선길 초입은 조림한 낙엽송 군락이 있으나 길 찾기가 매우 애매하다. 이곳은 황천으로 떨어지는 느낌의 급경사길이다. 108번 굽이친 형세가 아니라 수직으로 떨어지는 비탈길이다. 몇 번을 이런 급경사길을 반복한 후에야 비로소 능선길이 완만해진다. 점필재 하산길의 곧은재처럼 도덕봉에서 의신으로 이어지는 곧게 뻗은 능선길이다. 고사리밭 울타리를 지나 능선을 따라 내려오니 철골에서 내려오는 등로와 만난다. 당산나무를 지나 법해당 승탑과 의신사터를 둘러보고 의신마을로 내려왔다. 자료를 공유하고 산행을 함께하신 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끝.
☞ 1611년 4월 5일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영신암에서 40리쯤 내려갔는데 산세가 검각(劒閣)보다 더 험하였다. 108번 굽이친 형세가 아니라 수직으로 떨어지는 비탈길이었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은 마치 푸른 하늘에서 황천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넝쿨을 부여잡고 끈을 잡아당기며 이른 아침부터 저녁 무렵까지 걷고 또 걸었다. 푸른 나무숲 틈새로 내려다보았는데, 어두컴컴하여 아래가 보이지 않아 이맛살을 찌푸리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손가락을 깨물며 정신을 차린 뒤에 내려가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대나무 숲을 헤치고 의신사(義神寺)를 찾아 들어가 묵었다. 밤에 두견새 우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개울물 소리가 베갯머리에 맴돌았다. 그제야 우리의 유람이 인간 세상에 가까워졌음을 알았다.
自靈神行四十里許. 山之嶄絶. 過於釰閣. 而風磴直下. 不作百八盤之勢. 緣而下者. 如自靑天落黃泉. 牽蘿引繩. 自卯至申. 而俯瞰繁綠之隙. 猶黯黯然不見底. 深矉太息. 幾乎齰指而垂戒矣. 然後下入幽谷. 披高竹㝷義神寺而宿. 夜聞杜宇亂啼. 溪聲繞榻. 始覺吾遊逸乎人間世矣.<1611년 4월 5일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注 釰閣 : 중국 장안(長安)에서 촉(蜀)으로 가는 길에 있는 대검(大劍)ㆍ소검(小劍)의 두 산의 요해처(要害處)임. 지세가 험난해서 소수의 병력으로도 굳게 지킬 수 있는 요새를 말한다.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에 “검각이 험난하게 우뚝 솟아 버티고 있으니, 한 사나이가 관문을 지키면 만 명이 공격해도 열지 못할 것이다.〔劍閣崢嶸崔嵬 一夫當關 萬夫莫開〕”라는 표현이 나온다.
※ 주의 : 개인적인 견해로 오류의 위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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