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불일폭포와 주변의 폐암자 터를 찾아서(210514~15)

도솔산인 2021. 5. 15. 14:31

불일폭포와 주변의 폐암자터를 찾아서(210514~15)

 

 

▣ 일 시 : 2021년 05월 14일(금)~15(토)

▣ 코 스 : 쌍계사-불출암터-대은암터-청학봉-불일암-불일폭포-지장암터-오암-불일 평전-백학봉-옥소암터-도솔암 터-영대암터-내원 수행촌-쌍계사

▣ 인 원 : 3명(김도사님, 양민호님)

▣ 날 씨 : 맑음 비

 

 

팽두이숙(烹頭耳熟)이라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머리를 삶으면 귀때기가 익는다.'라는 의미이다. 팽두이숙은 중요한 일이 잘되면 나머지 일도 따라서 저절로 해결됨을 비유한다. 2018년 어느 날 불일폭포에서 청학의 형상과 완폭대 석각의 발견은 지리산 역사문화 조사 활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선인들의 유람록에 등장하는 쌍계사 동쪽의 성불심원 옥소암과 영대암, 불출암 터를 필두로 남명 유두류록에 나오는 지장암, 대·소은암과 상불암(보조암) 터를 여러 차례 답사하였다. 2019년 3월 초에는 김선신의 두류전지에 나오는 고령암 터도 찾았다.

 

☞ 대·소은암 : 1744년 황박의 두류일록에 유일하게 등장함. 상불암 : 1487년 남효온 지리산일과에는 보주암(寶珠庵), 1632년 성여신 진양지에는 보조암, 1686년 정시한 산중일기 보조의 터, 1699明安의 상불암기에는 상불암, 1708년 김창흡 영남일기에도 상불암, 1807년 남주헌 지리산행기에는 보조암으로 나옴.

 

나는 지난 3년 동안 스무 차례 가까이 불일폭포 주변을 배회(徘徊)하였다. 그 시발(始發)은 불일폭포에서 청학의 형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불일폭포를 완상(玩賞)할 때, '산을 보고 물을 보면 청학이 보이고, 청학이 보이면 청학을 탄 고운 선생이 보이고, 고운 선생이 보이면 청학동이 보인다.'라고 말한다. 폭포 아래의 거대한 석문은 청학동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며 석문 아래에는 학연(청학연)이 숨어있다. 오직 신선만이 청학을 타고 출입할 수 있다. 1899년 회봉(晦峰) 하겸진(河謙鎭,1870~1946) 선생도 불일폭포에서 학의 형상을 보았다. 「一一跳珠遙可數 : 알알이 튀어 오르는 구슬 멀리서 셀 수 있고/翩翩驕鶴近還非 : 훨훨 학이 날아다니는듯한데 가까이 가니 아니구나.」라고 읊었다. 이렇듯 청학동 설화는 불일폭포의 형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론한다.

 

 

 

불일폭포는 청학의 형상이다(170909~10)

 

불일폭포를 세 번이나 유람한 남명(南冥) 조식 선생은 유두류록에 이렇게 기술하였다. "그(학연) 안에 신선의 무리와 거령(巨靈), 큰 교룡(蛟龍), 작은 거북 등이 그 집에 몸을 웅크려 숨어서는 영원히 이곳을 지키며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不知其中隱有仙儔巨靈. 長蛟短龜. 屈藏其宅. 萬古呵護. 而使人不得近也.)" 여기에서 거령(巨靈) 물의 신으로 대화산(大華山)과 수양산(首陽山)을 큰 도끼로 찍어 두 산을 쪼개어 龍門을 열어 놓아 황하수를 흐르게 했다는 전설의 신인데, 남명 선생은 중국의 고사에 나오는 거령(巨靈)을 인용한 것이다.

 

남명(南冥) 선생은 '불일 협곡 또한 황하의 수신인 거령(巨靈)이 큰 도끼로 향로봉과 비로봉을 둘로 쪼개어 불일폭포와 협곡을 만들고, 학담과 학연을 통해 불일 협곡으로 폭포수를 거칠게 흐르게 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남명(南冥)의 청학동 시를 보면 불일폭포가 청학이 구름을 뚫고 천상계로 솟구치는 형상으로 보인듯하다.(獨鶴穿雲歸上界 : 학은 홀로 구름을 뚫고 천상계로 돌아갔고/一溪流玉走人間 : 골짜기 온 가득 구슬처럼 흘러 인간계로 흐르네) 학연으로 내려가 石門에서 올려다본 불일폭포는 거대한 바위 항아리 우주선 속으로 마치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듯 가히 장관이다.

 

* 巨靈 : 하신(河神, 물의 신·황하의 신). 큰 도끼로 大華山과 首陽山을 찍어 龍門을 열어 놓아 황하수를 통하게 했다고 함.

 

불일 평전의 봉명 산방 건물은 철거하였으나, 무슨 연유인지 공사가 중단되었다. 지장암 터에는 지장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지장암 터에서 계곡 건너편 사면으로 불일암 위에서 지장암으로 직접 오는 길이 있다. 1558년 남명의 유두류록에 「잠시 후에 (불일암) 뒤쪽 능선으로 올라 지장암을 찾아가니 모란이 활짝 피어 있었다. 한 송이가 한 말 됨직한 붉은 꽃이었다.」라고 지장암을 기술하고 있다. 완폭대, 조명사, 오암(㹳巖)의 홍연과 이언경 석각을 살펴보고, 다시 불일평전에서 백학봉을 지나 옥소암에서 영대암, 불출암터로 내려왔다.

 

금요일 밤 자정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토요일 아침 나머지 소은암과 고령암터, 상불암(보조암)터 답사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였다. 돌아오면서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남창(南倉)을 가늠하기 위해 구례군 토지면 용두리 용호정(龍湖亭)에 잠시 들렀다. 용호정 부근이 섬진강 나루터였을 것이다. 용두리에는 용호정과 토지면 넓은 들판을 연결하는 배들재가 있다.  끝. 

 

 

 

불출암 석축
불일폭포와 학담
靑鶴(청학) : 상상의 새로 사람의 몸에 새의 부리를 하고 있으며 날개가 8개로 신선이 타고 다님. 태평시절과 태평한 땅에서만 나타난다고 함.
학연 : 학담 아래로 여섯 개의 작은 소가 있는데 이곳은 사람이 접근할 수 없다.
발견 당시 완폭대 석각[photo by 조봉근(180421)]

☞ 불일폭포 완폭대 : https://blog.daum.net/lyg4533/16487935

 

불일폭포 翫瀑䑓(완폭대)의 立石及刻字(180417)

불일폭포 翫瀑䑓(완폭대)의 立石及刻字(180417) 지난 3월 25일 불일폭포 일원을 함께 답사한 <지리산국립공원 역사&문화 조사단> 팀장인 <조봉근>님이 翫瀑䑓 刻字 사진을 보내왔다. 내가 읽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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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간(金侃)

* 김간(金侃) [1653(효종 4)1735(영조 1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행(士行), 호는 죽봉(竹峯). 아버지는 김필신(金弼臣)이며, 어머니는 예안이씨로 통덕랑 이천표(李天標)의 딸. 이유장(李惟樟)의 문인.

 

 

조명사(趙明師)

☞ 1807 년 4월 4일(여정 3일째)  < 하익범 >과 불일암을 찾은 趙明師에 대한 기록이다.  바위 한 쪽에 조명사 (趙明師 , 조복 趙濮)가 이름을 새겼다.( 石面有趙明師題名)'<하익범>의 [遊頭流錄] 1787년 승정원 일기에 조명사를 장수 찰방으로 삼았다.(以趙明師爲長水察訪)라는 기록이 보인다.

 

 

지장암 터
지장암터 팻말
오암(㹳巖) : 원숭이 바위
洪淵(홍연), 李彦憬(이언경) 乙卯(1555년 명종 10년)

* 洪淵(생몰년 미상) : 조선 명종 때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덕원(德源). 1546년(명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551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 李彦憬(생몰년 미상) : 조선 명종 때의 문신. 본관은 연안(). 1544년(중종 3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548년(명종 3)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중략> 함경도어사, 여산군수(礪山郡守), 1557년 홍문관직제학, 이어서 예조참의, 동부승지, 호조참의, 좌부승지, 병조참지에 이어 이조참의를 차례로 역임하였고 1563년(명종 18)에는 전주부윤()이 되었음.

 

☞ 1558년 남명 조식 선생의 유두류록

 

큰 바위가 있어 ‘李彦憬(이언경)’, ‘洪淵(홍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오암(㹳巖)에 또한 ‘柿隱兄弟(시은형제)’라는 글자를 새겼으니, 아마도 썩지 않는 돌에 이름을 새겨 억만년토록 전하려 한 것이리라. 대장부의 이름은 마치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아서, 사관이 책에 기록해두고 넓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입에 거론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구차하게 원숭이와 너구리가 사는 숲 속 덤불의 돌에 이름을 새겨 영원히 썩지 않기를 구한다. 이는 나는 새의 그림자만도 못해, 후세 사람들이 날아간 새가 과연 무슨 새인 줄 어떻게 알겠는가?

 

 

도성암(영대암터로 추정함)
사관원(옥소암 터로 추정함)
내원수행촌

敭海東故眞鑑禪師碑(당해동고진감선사비) 篆額(전액) : https://blog.daum.net/lyg4533/16488156

 

敭海東故眞鑑禪師碑(당해동고진감선사비) 篆額(전액)

최치원(崔致遠)의 필적 <진감선사비(眞鑑禪師碑)>의 전액(篆額)  진감선사비 전액 첫 글자인 敭[昜(양)+矢(시)]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사뭇 다르다. 裵吉基는 이 자를 '敭'으로 보아 '揚'의

blog.daum.net

 

용호정

 

※ 선인들의 유람록 관련 자료

 

1. 조식 선생의 불일폭포와 학연에 대한 기록

 

가. 남명 조식의 청학동과 청학폭포 시

 

靑鶴洞[청학동] - 曺植[조식]

 

獨鶴穿雲歸上界[독학천운귀상계] : 학은 홀로 구름을 뚫고 천상계로 돌아갔고

一溪流玉走人間[일계류옥주인간] : 골짜기 온가득 구슬처럼 흘러 인간계로 흐르네

從知無累飜爲累[종지무루번위누] : 累가 없는 것이 도리어 누가 됨을 알기에

心地山河語不看[심지산하어불간] : 산하를 마음의 본바탕에 느끼고 보지 못했다 말하리라

 

* 靑鶴[청학] : 사람의 몸에 새의 부리를 하고 있으며 날개가 8개로 신선이 타고 다님. 태평시절과 태평한 땅에서만 나타난다고 함.

 

 

詠靑鶴洞瀑布[영청학동폭포] - 曺植[조식]

 

勅敵層崖當[칙적층애당] : 견고하게 맞선 층진 낭떨어지를 맞이하니

舂撞鬪未休[용당투미휴] : 쏟아져 부딪히며 싸우길 멈추지 않는구나

却嫌堯抵璧[각혐요저벽] : 도리어 요임금이 구슬 던져버린것을 싫어하니

茹吐不曾休[여토부증휴] : 마시고 토하기를 거듭하여 멈추지 못하네.

 

勅: 조서 칙, 견고함. 敵: 원수 적, 맞서다. 春: 봄 춘, 움직일 준. 撞: 칠 당, 부딪히다. 抵: 막을 저, 던져버리다. 茹: 먹을여, 마실려. 요 임금이 구슬을 버린 것 尺壁非寶[척벽비보]요 寸陰是競[촌음시경]이라. 한 자 되는 구슬이 귀하게 여길 보배가 아니라, 한 치의 짧은 촌음을 다투어 아껴야 한다. 요 임금의 치수사업을 곤과 그의 아들 우임금에게 맡긴 일화에서 인용함.

 

나. 1558년 남명 조식 선생의 유두류록

 

[가정(嘉靖) 무오년(1558) 6월(?)19일] 下有鶴淵. 黝暗無底. 左右上下.絶壁環匝. 層層又層. 倏回倏合. 翳薈蒙欝. 魚鳥亦不得往來. 不啻弱水千里也. 風雷交闘. 地闔天開. 不晝不夜. 便不分水石. 不知其中隱有仙儔巨靈. 長蛟短龜. 屈藏其宅. 萬古呵護. 而使人不得近也. 或有好事者. 斷木爲橋. 僅入初面. 刮摸苔石. 則有三仙洞三字. 亦不知何年代也. [남명집(p362~p366)]

 

(불일암) 아래에는 학연(鶴淵)이 있는데 컴컴하고 어두워서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좌우 상하에는 절벽이 고리처럼 둘러서서 겹겹으로 쌓인 위에 한층이 더 있고 문득 도는가 하면 문득 합치기도 하였다. 그 위에는 초목이 무성하니 우거져 다보록하니 물고기나 새도 오르내릴 수 없었다. 천리나 멀리 떨어져 있는 약수보다도 더 아득해 보였다. 바람과 우레 같은 폭포소리가 뒤얽혀 아우성치니, 마치 천지가 개벽하려는 듯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상태가 되어 문득 물과 바위를 구별할 수 없었다. 그 안에 신선의 무리와 거령, 큰 교룡, 작은 거북 등이 그집에 몸을 웅크려 숨어서는 영원히 이곳을 지키며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호사가가 나무를 베어 다리를 만들어, 겨우 학연(鶴淵) 입구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이끼를 걷어내고 벽면을 살펴보니 ‘三仙洞’이라는 세 글자가 있는데, 어느 시대에 새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2. 유람록에 나타난 심불성원 옥소암 영대암 불출암

 

가. 1618년 <조위한>의 [遊頭流山錄]

 

* 불일암(4월 14일)

 

불일암에 도착하니 절은 오래 되었는데 승려는 없고 단청은 떨어져 나가 있으며 빈 감실(龕室)은 고요하고 창문은 영롱(구멍이 뚫리다)하였다. 오른쪽에 청학봉(靑鶴峯)을 마주하고 있는데 구름을 끼고서 푸른 절벽이 뾰족하게 서 있었다.

 

到佛日. 則寺古無僧. 金碧散落. 虛龕寂歷. 窓壁玲瓏. 右對靑鶴峯. 上切雲天. 蒼壁削立.

 

<중략>

 

시 몇 편을 짓고 왔던 길을 되짚어 가다가 한 가닥 좁은 길을 찾아내서 풀을 헤치고 덩굴을 제치며 곧장 몇 리를 내려가 옥소암(玉簫庵)에 닿았다. 암자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있는데 절벽을 뚫고 허공에다가 기둥을 세우고 난간을 설치해서 아득하게 허공에 떠서 새가 나래를 펴고 있는 것 같아, 마치 그림 속에 있는 듯해서 일반적인 승방이나 절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승려가 말하기를, “이 암자는 담양 선비 이성국(李聖國)이 이 산에 들어와 이십 년 동안 도를 닦다가 재산을 다 털어 절에 시주해서 지은 것입니다.”라고 한다. 옷을 벗어 놓고 피곤해 누워 시를 짓고 돌아와 가마 타고 곧장 내려가니 마치 구덩이나 우물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수백 걸음 가서 영대암(靈臺庵)에 닿았고 수백 걸음 더 가서 불출암(佛出庵)에 이르렀다. 이 두 암자는 모두 험한 골짜기 위에 있어서 한 점 속세의 먼지가 없었으나 옥소암에 비한다면 풍격이 한참 못 미쳤다. 불출암에서 또 1 리쯤 가서 쌍계로 돌아와 묵었다.

 

賦詩數篇. 還向歸路. 而別尋一線鳥道. 穿蘿觸藤. 直下數里. 到玉簫庵. 庵在斷巘絶壁上. 鑿崖凌虛而架棟設檻. 縹渺浮空. 翬飛鳥翼. 有若畫圖之中. 殆非尋常僧房佛屋之比也. 僧云. 此庵. 乃潭陽士人李聖國者入此山修道二十年. 破產傾財. 作大施主. 構之云. 脫衣困臥. 賦詩而還. 乘輿直下. 如墮坑入井. 行數百步. 歷靈臺庵. 又行數百步. 歷佛出庵. 玆二庵俱在絶壑上. 無一點塵垢. 而比玉簫則風斯 下矣. 自佛出. 又行一里許. 還到雙溪宿焉.

 

* 風斯在下 [풍사재하]새가 높이 날 때는 바람은 그 밑에 있다는 뜻으로,높은 곳에 오름을 이르는 말[장자]

 

 

나. 1651년 <오두인>의 [두류산기(頭流山記)]

 

11월 3일

 

폭포가 흘러가는 곳에서 시작하여 양봉(兩峯 : 향로봉과 청학봉) 남쪽이 학연(鶴淵)이며, 바로 그곳이 쌍계 좌측 물줄기의 근원이다. 다시 청학봉을 넘어 봉우리 남쪽 기슭에 당도하니 두 세 개의 작은 암자가 있다. 어떤 암자는 남아 있고, 어떤 암자는 허물어져 없다. 옥소암영대암(玉簫靈臺)은 그 명칭이고, 성불심원(成佛深院)은 그 터전이다. 불일암에는 스님 한 분이, 옥소암, 영대암에는 스님 세 분이 계셨는데 모두 곡기(穀氣)를 끊고 수도에 전념하는 부류의 스님이다.

 

 

다. 1655년 <김지백>의 [유두류산기]

 

10월 8일 무오일 출발 불일암과 폭포를 구경하다

 

다음날 비를 만나 그대로 머물며 날이 개기를 기다렸다가, 견여(肩輿)를 타고 출발하였다. 타다가 걷다가 하면서 불일암(佛日庵)에 거의 다 도착하니, 바위 벼랑이 입을 벌린 듯 가운데가 찢어져 있고, 건너지른 나무〔架木〕가 사다리가 되어, 겨우 인적이 통할 만하였다. 아래로는 깊이가 만여 길이나 될 듯한데,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고 발만 믿고 걸으니, 혼이 떨리고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붙잡고 올라 불일암에 이르니, 암자 밖에 작은 석대(石臺)가 있는데, 완폭대(翫瀑臺)라고 부르는 것이다. 천신(天紳)수백 길이 향로봉(香爐峰)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바라보노라니, 그 형세가 마치 무지개가 일어나고 번개 치는 듯하여, 다만 여산(廬山) 폭포와 박연(博淵) 폭포만이 서로 견줄 수 있다. 전날 용추를 구경했던 사람들 또한 이 완폭대 아래에서 바람을 쐬었다. 날리는 물방울이 찬 기운을 만들어 내고 그늘진 골짜기가 서늘한 기운을 불러일으켜 몹시 추워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산 막걸리를 두어 잔 데워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청학봉(靑鶴峯, 비로봉을 가리킴)에서 지팡이 잡고 쉬면서 학 둥지를 엿보고, 내려와 옥소암(玉簫菴)에 들어가 이름을 쓰고, 다시 쌍계사로 돌아와 묵었다.

 

[원문]

翌日. 遇雨仍畱. 遂待晴. 肩輿而作. 或乘或步. 幾至佛日庵. 石崖呀然中裂. 架木為棧. 纔通人跡. 其下深可萬餘丈. 側身信足. 魂悸髮竪. 乃躋攀到菴菴. 外有小石臺. 所號翫瀑者. 望見天紳數百丈. 掛流香爐之側. 勢若虹起電掣. 直與廬山慱淵上下. 往日龍湫之所賞者. 亦風斯下矣. 飛淙釀寒. 陰谷動爽. 凛乎不可乆畱. 遂煖進山醪數杯. 仍復路憇杖靑鶴峯. 窺鶴巢而下. 題名玉簫菴. 復還䨇溪宿.

 

☞ 김지백(金之白) [1623~1670]은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평생 명리를 구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한 인물로, 사부일기류인 『유두류산기(遊頭流山記)』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담허재집』 [澹虛齋集]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청학봉(靑鶴峯) : 여기에서 청학봉은 비로봉을 가리킴.

 

유산기출처 : 한국문화콘텐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