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열암에서 아홉모롱이를 돌아 영랑대 가는 길
▣ 일 시 : 2021년 05월 06일(목)~08(토)
▣ 코 스 : 송대-선녀굴-의논대-고열암-미타봉-향로봉-구롱길-방장문-청이당-영랑대-방장문-석상용장군묘-얼음터
▣ 인 원 : 3명(김산님, 양민호님)
▣ 날 씨 : 맑고 흐림
月夜聞子規(달밤 두견새 울음소리를 듣고)
이규보(李奎報, 1168~1241)
寂寞殘宵月似派 : 적막한 밤 달빛은 물결처럼 잔잔한데
空山啼遍奈明何 : 텅 빈 산 곳곳에서 두견새 울음소리 날이 새면 어이하나
十年痛哭窮途淚 : 십 년을 통곡한 궁한 자(*)의 눈물
與爾朱脣血孰多 : 그대의 붉은 입술과 핏빛 중에 어느 것이 짙은가.
☞ 殘宵 = 殘夜 새벽녘, 새벽 4시경. 遍 ; 두루, 온통, 곳곳 窮途 : 끊긴 길. 막다른 길, 곤궁한 처지. 곤경에 처한 사람.
(*)옛날 중국 촉(蜀) 나라의 임금 망제(望帝)는 이름을 두우(杜宇)라 하였다. 위(魏) 나라에 망한 후 그는 도망하여 복위를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어 그 넋이 두견새가 되었다고 한다. 진달래를 다른 말로 두견화라고도 함. 진달래 필 무렵 두견새가 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대형 숯가마터 앞 케른에서 50m 거리에 사철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
세 모롱이 바위에서 위로 오르면 사립재로 이어지고 세 모롱이를 돌면 일강으로 이어지는 삼거리이다.
☞ 석상용(1870~1920) : 마천면 추성리 출신 의병장. 일본은 1907년 강제로 정미 7 조약을 맺고 조선 관군을 해산시켰다. 일본군이 전국 각지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실상사에 주둔하고 있던 왜병을 석상용(石祥龍) 장군이 의병과 화전민을 규합하여 1908년 음력 3월 27일 그믐 어두움을 타고 기습하였다. 지리산을 은신처로 하며 쑥밭재 전투, 벽소령 전투, 성삼재 등에서 기습작전을 하였다. 1912년 왜군에게 잡혀 진주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치르고 고문의 여독(餘毒)으로 고생하다가 50세의 아까운 나이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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