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지리 동북부 노장대골 폐암자터

도솔산인 2021. 4. 30. 09:16

지리 동북부 노장대골 폐암자터

 

▣ 일 시 : 2021년 04월 23일(금)

▣ 코 스 : 진지밭골-암자터A-능선 기와편-박쥐굴-지장사터A-암자터B-암자터C-지장사터B-적조암-용유담-의중마을

▣ 인 원 : 2명

▣ 날 씨 : 맑고 흐림

 

 

지장사에 관한 기록은 김종직의 유두류록과 옥계 노진의 '야숙지장암(夜宿地藏庵)' 시가 유일하다. 지난 산행에서 상대날등에서 독녀암의 형상을 확인하였다. 독녀암(노장대)의 지명도 이제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렇듯 지명에 대한 고증을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헛 발품을 팔아야 한다. 이번 산행은 선답자들을 따라 진지밭골로 진입하였다. 능선 아래 암자터 A에서 능선에 오르니 찌그러진 숫기와와 와편을 모아 놓았다. 아래로 내려서니 점토를 채토한 흔적이 있다. 사면 길로 접어들어 박쥐굴로 향한다. 박쥐굴에서 진행하면 지리산길 지도의 지장사터가 나타나고, 샘터를 지나 암자터 B(넓은터)에서 암자터 C로 이어진다. 같은 고도에서 등고를 최소화하고 가장 짧은 거리이다. 중간에 샘터도 있고 숯굴도 있다. 조금 더 진행하면 선열암에서 내려와 묘정암과 지장사 갈림길 삼거리이다. 금낭굴 아래 첫 모랭이에서 묘정암(금낭굴 방향)과 지장사로 갈라진다. 지장사터 B에서 지장사터 A(박쥐굴 방향)까지 평탄한 길이다. 암자터에서 암자터로 길이 모두 연결된다. 옥계 노진의 시에 '바위틈의 샘물 소리가 새벽 단꿈을 놀래 깨우는 곳'은 어디일까.

 

1472년 8월 14일 늦은 오후 묘정암 승려 법종이 점필재에게 독녀암에 대한 유래를 이렇게 설명한다. 「제가 들으니, 한 부인(婦人)이 바위 사이에 돌을 쌓아 놓고 홀로 그 안에 거처하면서 도(道)를 연마하여 하늘로 올라갔으므로 독녀라 호칭한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상대날등에서 바라본 노장대는 하늘로 승천하는 여인의 형상이다. 그렇다면 묘정암 스님들이 이 바위의 형상을 보고 독녀암이라고 이름한 것은 아닐는지. 묘정암의 단서가 이 문장과 독녀암의 형상에 들어있는 듯하다.

 

※ 묘정암에 대한 기록

가. 그 곁에 돌이 많은 비탈길이 있어, 등덩굴〔藤蔓〕 한 가닥을 나무에 매어 놓고 그것을 부여잡고 오르내려서 묘정암(妙貞菴)지장사(地藏寺)를 왕래하였다.

나. 해공은 군자사로 가고, 법종은 묘정사(妙貞寺)로 가고, 조태허, 유극기, 한백원은 용유담(龍游潭)으로 유람하러 가고, 나는 등구재(登龜岾)를 넘어 바로 군재(郡齋)로 돌아왔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선인들의 유람록 복원을 하면서 '나 아니면 안 된다.'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유람록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길도 아닌 곳에 시그널 몇 개 매달아놓고 인문학을 云云한다. 내가 보기에는 산길을 안내하는 것이 아닌 영역 표시로 보인다. 결정적인 것은 산행의 이력(履歷)을 입증할만한 이렇다 할 산행기가 없다는 점이다. 하필(何必)이면 그런 분이 나에게 '병풍에 그린 닭'도 모자라, 북두재의 소나무를 고사(枯死)시킨 '병충해'에 빗댔을까.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기록이든 정확성이 그 생명이다. 오류가 5%를 넘으면 신뢰 받지 못한다. 유람록 복원은 항상 보완과 수정을 거듭해야 하는 진행형이다. 당동벌이(黨同伐異)의 편협한 사고로는 완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류는 누구나 있을 수 있다. 오류를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고치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일례로 함양 독바위와 향로봉(상내봉)이 그렇다. 노장대골을 내려오면서 북두재의 소나무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끝.

 

 

 

독녀암
북두재 소나무(210405)
지도 : 조박사님

 

 

1. 김종직의 유두류록(지장사 부분 발췌)

 

14, 무인일. 덕봉사(德峯寺)의 승려 해공(解空)이 와서 그에게 길을 안내하게 하였고, 또 한백원(韓百源)이 따라가기를 요청하였다. 마침내 그들과 함께 출발하여 엄천(嚴川)을 지나 화암(花巖)에서 쉬고 있는데, 승려 법종(法宗)이 뒤따라왔다. 그에게 지나온 곳을 물어보니 험준함과 꼬불꼬불한 형세를 매우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또한 길을 인도하게 하여 지장사 갈림길에 이르러(亦令導行。至地藏寺路岐) 말에서 내려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짚고 오르는데, 숲과 구렁이 깊고 그윽하여 벌써 경치가 뛰어남을 깨닫게 되었다. <중략>그 곁에 돌이 많은 비탈길이 있어, 등덩굴藤蔓한 가닥을 나무에 매어 놓고 그것을 부여잡고 오르내려서 묘정암(妙貞菴)지장사(地藏寺)를 왕래하였다.

 

 

2. 옥계 노진의 야숙지장암(夜宿地藏庵)

 

夜宿地藏庵 - 노진(盧禛)[1518~1578]

山中無俗物 : 산중이라 세속의 잡된 일 없어
煮茗聊自飮 : 차 끓여 심심찮게 따라 마시며
坐愛佛燈明 : 앉아서 환한 불등 고이 보다가
深宵始成寢 : 깊은 밤 가까스로 잠이 들었지
還有石泉響 : 헌데 또 바위틈의 샘물 소리가
冷然驚曉枕 : 돌연 새벽 단꿈을 놀래 깨우네

 

<玉溪集>

 

 

진지밭골 계곡 건너는 지점
암자터A
샘터
석축
암자터A
암자터A 석축
능선의 기와편
점토가 나오는 곳
박쥐굴
박쥐굴 내부
박쥐굴→지장사터 중간 샘터
화전의 흔적
지장사터 석축
기와편
주춧돌이 있는 곳
채토한 흔적
암자터 B
암자터B 석축
암자터 C
암자터C
팻말 지장사터
팻말 지장사터

직선으로 다래 덩굴을 통과하면 박쥐굴까지 평탄한 숨은 길이 열려있다.

 

 

세신대
삼송정 터
겁없을 만인지 늦을 만인지 모르겠다.
삼정산 능선이 남두육성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