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박여량 길 중봉에서 상류암까지(200829~30)

도솔산인 2020. 8. 30. 21:49

박여량 길 중봉에서 상류암까지(200829~30)

 

 

▣ 일 시 : 2020년 08월 29일(토)~30일(일)

▣ 코 스 : 새재미을-치밭목대피소-중봉-영랑대-청이당-상류암터-새재마을

▣ 인 원 : 2명(산영 조박사님)

▣ 날 씨 : 비, 맑음

 

 

泉(샘천)의 해서체를 해자(解字)하면 흰백(맑을백, 白)과 물수(水)가 결합한 글자이다. '从白也. 从水也'라고 설명할 수 있다. 여기에서 白(흰백, 맑을백)의 자원도 물이 흐르면서 생기는 하얀 포말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글자이다. 물이 2개가 결합한 二水의 형상이다. 泉(샘천)의 소전체 또한 땅 속에서 물이 솟아 나오는 모양이다. 선인들의 유람록을 답사하면서 샘(泉)에 대한 흥미로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샘은 산길에서 식수 공급과 휴식처는 물론 이정표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샘(泉)은 예나 지금이나 생명의 원천이고,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필수 조건이다. 산길은 마을에서 마을로, 집에서 집으로, 절에서 절로, 전답에서 전답으로, 숯가마에서 숯가마로, 기도터에서 기도터로, 산막에서 산막으로, 무덤에서 무덤으로, 고개에서 고개로, 이정목에서 이정목으로, 바위에서 바위로, 산죽밭에서 산죽밭으로, 샘에서 샘으로 서로 호환을 하며 작용한다.

 

산영님과 중봉 정상에 있는 와편과 도기 편에 대해 '중봉에 건물이 있었다면, 분명 가까운 곳에 샘이 있었을 것이다. 현 중봉 샘을 이용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박사님은 이미 중봉 동남 사면으로 동절기에는 얼지 않고, 갈수기에도 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봉골 사태 지역에서 능선으로 직등하여 중봉 정상 직전에서 우측으로 돌아, 물이 흐르는 폭포와 막영터(?)를 확인하고, 중봉 마지막 계단 아래로 나왔다고 한다. 박 꾼들에게 고지대의 샘터는 가장 중요한 산행 정보이다. 샘터를 주제로 산행 약속이 잡혔고, 새재에 도착하니 박무에 안개비가 내린다. 정규 등로로 올라가 치밭목 산장에서 물을 취수하지 않고, 중봉 최상단에서 물을 취수하기로 하였다.

 

치밭목 대피소에 이른 점심을 먹고 중봉으로 오르는 길, 이곳은 많은 추억이 서려있다. 동계에 치밭목에서 물을 취수하여 중봉에 올라갔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살을 에는 바람, 중간에 마땅히 쉴 곳도 없고, 단번에 중봉까지 오르려면, 입에서 큰 숨을 몇 번 토해내고서야 중봉에 도달한다. 오늘 써리봉에 오르니 중봉과 상봉은 운무 속에서 모습을 감추고 안개비가 내린다. 써리봉을 지나 중봉으로 오르는 길은 짧지만 강렬하다. 마지막 계단 초입에서 숲에 배낭을 내려놓고 미역 덩굴로 진입하면, 등고선을 따라 얼마 가지 않아 물이 흐르는 계곡(?)을 만난다. 중봉으로 올라가 바라보면, 취수한 곳이 바로 지척이다. 아마 저 인근에 중봉을 우회하는 길과 마르지 않는 샘이 있을 것이다.

 

중봉에서 비는 그치지 않았고,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다. 바람이 불지 않는 것이 중봉다운 모습은 아니지만, 숲속의 정령들이 울부짖는 굉음과 광풍이 불어야 제맛인데, 오히려 평온하기만 하다. 가는 세월을 어찌 잡을 수 있을까. 저녁을 먹고 피곤하여 잠시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산영님은 지리 공부에 열중이다. 만약 이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점필재 길은 아직도 미궁(迷宮)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단숨에 청이당에서 상류암까지 직선 길을 찾았고, 상류암에서 초령 길도 연결하였다. 초령 길은 상류암 전망대에서 옹암과 새봉 사이 안부를 넘어 통천문(문바위)에서 사립재로 이어지는 직선 길을 만나게 된다. 지도에서 보면 상류암에서 초령은 직선으로 연결된다. 점필재의 아홉 모랭이 길과 소림 선방, 방장문은 전광석화처럼 전격전에 가까웠다. 

 

지나온 시간들이 책장이 넘어가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산 인연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산천재에 드나든 지10여 년이 되었는데, 남명선생의 13대 후손인 조박사님을 만나 지리 동부에서 선인들의 유람록 길 복원을 이루었다. 새벽에 잠시 잠이 들었다가 깨어 젤트(Zelt) 문을 여니 동방이 차츰 밝아오고 있었다. 아니 이를 어찌할까. 오늘의 일출 장면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더니, 미동도 할 수 없이 온몸이 굳어지고 얼어붙었다. 우리는 오늘 중봉에서 아무도 누릴 수 없는 장엄한 일출을 함께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선인들은 천왕봉의 장엄한 일출을 보기 위해 천왕봉에 올랐다. 1610년 감수재 박여량은 두류산일록에 장엄한 일출 장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61196일 정미일 맑음, 새벽에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고, 추로(秋露 : 맑은 술)를 한두 잔 마셨다. 따라온 사람들이 또 동방이 이미 밝아옵니다.라고 하여, 나는 여러 사람들과 동쪽 바위 위에 올라가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검은 구름과 붉은 구름이 동쪽 하늘가에 드리웠는데, 어제저녁 해가 질 때의 모양과 같았다. 해가 솟아오를수록 구름 기운이 점차 흩어졌다. 온 하늘 아래는 찬란한 빛이 밝게 퍼져, 마치 임금이 임어할 때 등불이 찬란하고 궁궐이 삼엄하며, 오색구름이 영롱하고 온갖 관리들이 옹립해 호위하며, 아랫사람들이 제자리에 서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감히 거만하지 않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것과 같았다.

 

중봉에서 내려와 선암(船巖)에서 잠시 쉬었다. 하봉 헬기장에는 작업용 마대 자루에 보도블록 등 건축자재와 식수, 캔 용기의 식량 등이 가득 담겨있었다. 이맘때쯤이면 동자꽃이 지천인데, 동자꽃이 한쪽으로 밀려나고 군락(群落)을 이룬 다른 식물 종들이 침입하여 자라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중봉은 운무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하봉에 오르니 영랑대도 보이지 않았다. 영랑대에 올랐지만 시계가 제로다. 영랑대 아래의 무덤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이 무덤은 영랑대에 오르는 마지막 길목에 있다. 산영님은 미리 준비해온 조선낫을 꺼내서 벌초를 시작했다. 이곳을 지나는 산객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하는 무덤의 주인에게 고마움을 表하기 위함이다.

 

마암에서 감수재 선생에게 물으니 여기가 행랑굴이라고 한다. 여기에 샘이 있는데... 마암 아래 다락같은 석굴에 올라가 점심을 먹었다니, 한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하봉 옛길 능선을 내려서니 샘터가 하나 보인다. 길가에 거대한 이정목이 있다. 이미 고사된 이정목들이 청이당터까지 사열하듯 늘어서 있다. 청이당터 앞 점필재가 쉬어간 계석에서 하봉 옛길 방향으로 몇 걸음 옮기면 좌측에도 샘터가 또 있다. 옛사람들은 계곡물을 절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청이당에서 철모 삼거리로 내려서지 않고, 등고선을 따라 상류암터로 향했다. 사면 길을 따라 숯가마터가 있는 지능선을 넘어 상류암 샘에 닿았다. 촉스톤 아래를 살펴보니 달곰이가 다녀간 듯 어지럽다. 상류암 서쪽 대에 잠시 들렀다가, 칠점사가 일광욕을 하는 것을 보고 조용히 새재로 내려섰다. 샘(泉)에 대한 생각에 골몰(汨沒)하니 용왕(龍王)님이 아셨는지, 갑자기 천둥이 치면서 국지성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끝. 

 

 

산천재
조개골
무제치기 폭포
선암
하봉 옛길 샘터
이정목
이정목II
이정목III
청이당 터
청이당 계석
상류암 샘터

중봉 일출(20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