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 석천암 침석(枕石) 수천(漱泉) 석각
▣ 일 시 : 2020년 07월 25일(토)~26일(일)
▣ 코 스 : 수락리-수락폭포-낙조산장-낙조대-석천암-수락리
▣ 인 원 : 2명(조박사님)
▣ 날 씨 : 안개비
대둔산 석천암에 샘(石泉)이 있는 암굴(巖窟) 상단 중앙에 '일엄(一广)'이라는 석각이 있다. 일엄(一广)은 조선 후기 영조와 순조 때에 충남 연산에 살았던 사계(沙溪) 김장생(1548~1631)의 6대손인 김상일(金相日, 1756~1822)의 호(號)이다. 김상일(金相日)의 문집 일엄유고(一广遺稿) 권지삼(卷之三) 부록(附錄) 묘지문(墓誌文)에 1805년(순조 5년) '일엄(一广)'의 나이 50세에 '大芚山에 一广枕石漱泉濯纓仁智라는 열 글자를 새겼다.‘라는 기록이 있다. 枕石·漱泉(침석·수천)은 '돌을 베개로 삼고 샘물로 양치질한다.'라는 의미로 '山水를 벗 삼아 자연에서 살아간다.'라는 뜻이다. 枕石(침석)과 漱泉(수천)의 석각이 우암(尤菴)의 필획이라고 하는 것은 와전(訛傳)된 것이고, 一广(일엄) 김상일(金相日, 1756~1822)의 필획이다.
[원문] 一广遺稿 卷之三 附錄 墓誌文 : 弱冠遊金剛。晩年刻一广枕石漱泉濯纓仁智十字於大芚。(출처 : 고전번역원 일엄유고)
* 김상일[金相日, 1756년(영조 32)~1822년(순조 22)] 자는 자산(子山), 호는 일엄(一广) 또는 농수(聾叟). 충청남도 연산 출신. 김장생(金長生)의 6대손이며, 아버지는 기택(箕澤)이다.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뜻을 두고 『심경(心經)』·『근사록』 등을 탐독하여 「문견록(聞見錄)」을 지었다. 산수를 좋아하였으며 시문에 뛰어났다. 저서로는 『일엄유고』 2권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1805년(순조 5년) '일엄(一广)'의 나이 50세에 '大芚山에 一广枕石漱泉濯纓仁智라는 열 글자를 새겼다.(一广遺稿)
석천암의 枕石(침석)과 漱泉(수천) 석각은 송시열의 필획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조용헌 박사의 「숨어 공부하기 딱 좋은 ‘한국의 靈地’, 대둔산 석천암… 주역 33번째 괘와 맞아」에서 우암 송시열(1607~1689)의 글씨로 소개되면서 온라인에서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금년 4월 20일 조용헌 박사를 석천암에서 만나 그 내용을 전했고, 일주일 뒤인 4월 27일 '[조용헌 살롱] [1242] 세상과 떨어져 있을 때'에 일엄(一广) 김상일(金相日, 1756~1822)의 필획으로 정정한 조선일보 칼럼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 [조용헌 살롱] [1242] 세상과 떨어져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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