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화개면 운수리 내원수행처 1박 2일(200711~12)

도솔산인 2020. 7. 12. 15:10

화개면 운수리 내원수행처 1박 2일(200711~12)

 

 

▣ 일 시 : 2020년 07월 11일(토)~12일(일)

▣ 코 스 : 쌍계사-내원수행처

▣ 인 원 : 홀로

▣ 날 씨 : 흐리고 비

 

 

아래로 내려와 청학동 하류에 도착하니 수석(水石)이 더욱 기이하여 정신이 상쾌해짐을 갑절이나 깨달았다. 계곡 주위를 배회하다가 [갑자기 시 한 수가 바위 사이]에 있음을 보았다.

 

장원암(狀元巖)-오핵 [吳翮], (1615~1653)

 

청학봉 앞 길을 따라 내려가니 / 靑鶴峯前路

맑은 연못에는 비취빛 삼나무 그림자 / 澄潭影翠杉

羽仙이 경치 좋아 찾은 곳이라고 / 羽仙探勝處

장원암(狀元巖)이라고 부른다네 / 仍號狀元巖

 

 

이 시는 계부(季父 : 오핵)께서 직접 쓰신 시이다. 그리고 우선(羽仙 : 오숙)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호이다. 선인(先人 : 돌아가신 아버지인 오숙)께서 숭정(崇禎) 신미(辛未, 1631)에 남쪽에 관찰사로 계시면서 이곳에 유람한 적이 있으며, 그리고 작은 숙부도 또한 병술년(丙戌, 1646)에 장원급제하여 두루 구경을 다니러 왔다가 떠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시에 나타난 내용이 그런 것이다. (출처 : 1651년 오두인의 두류산기)

 

☞ 여기에서 청학봉은 지금의 비로봉(백학봉)이다. 불출암과 쌍계사 사이에 있었다는 장원암은 어디인지...

 

* 오두인 吳斗寅, (16241689)의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원징(元徵), 호는 양곡(陽谷). 증조부는 병마절도사 오정방(吳定邦)이고, 할아버지는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된 오사겸(士謙)이며, 아버지는 이조판서 오상(吳翔)이다. 어머니는 병조 참판(兵曹參判) 이성길(李成吉)의 딸이다. 며느리는 조선 제18대 왕 현종의 딸인 명안공주(明安公主).[1] 1649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경기도관찰사, 공조판서(工曹判書), 한성 판윤(漢城判尹),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오두인(吳斗寅, 1624~1689)의 유람 일정은 1651년 11월 1일 진주 관아를 출발하여 옥계사에서 자고, 11월 2일 악양을 거쳐 쌍계사에 도착, 11월 3일 불일암과 불일폭포 일원을 둘러보고 쌍계사 적묵당에서 자고, 11월 4일 아침에 쌍계사를 출발하여 거석교-홍류교(삼신동 각자)-신흥사터-능파대(세이사)-사자곡을 지나 기담(妓潭)에서 쉰 후, 능인사(能仁寺)에서 점심을 먹는다. 저녁 무렵에 능인사(能仁寺)를 출발하여 은정대(隱井臺)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11월 5일 은정대(隱井臺)를 출발하여 수국현(水國峴)넘어서 거림으로 내려가 남대사를 거쳐 신계촌에서 유숙하고, 11월 6일 신계를 출발하여 덕천서원에 들렀다가 진주 관아로 돌아갔다. 이때 오두인과 동유(同遊)한 일행인 진주 소촌 찰방 김정(金釘), 진주 목사 이상일(李尙逸), 하동 태수 이진필(李震馝), 오두인(吳斗寅), 곤양 소모장(召募將) 김집(金緝)의 이름을 은정대(隱井臺)은정(隱井)의 바위벽에 새겼다. 이 성명의 석각이 '지리산국립공원 역사문화조사단'에 의해 368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