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实踐人文

智異山 天王峯의 偉容

도솔산인 2020. 1. 9. 06:53

국한문 혼용체로 문단을 끊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음. 깊은강님에게 카톡으로 받은 자료입니다.

 

智異山 天王峯의 偉容 

 

 

 

출처 : 네이버 블로그 깊은강님

 


※1933년 07월호 신동아에 수록된 "조선의 오대 명산 최고봉 등척기" 다섯 꼭지 중 하나

 

石顚沙門(석전사문)

 

  北山(북산)의 盤據(반거)는 嶺湖間(영호간)에 九郡(구군)의 지역이 相沿(상연) 하얏고 특히 雲峰(운봉)의 六面(육면)되는 一郡(일군)이 山內(내산)에 藏點(장점)하였다. 然(연)한데 內山(내산)의 水는 般若奉(반야봉)과 天王奉底(천왕봉저)에 源出(원출)하야 流愈汎(점유유범)하야 山淸(산청)의 換鵝亭(환아정)을 들러 丹城 赤(단성 적벽)인 白馬江(백마강)을 滙成(회성)하고 西谷(서곡)의 德山(덕산)과 新川(신천)이 合流(합류)하야 晉陽矗石褸(진양촉석루)를 衝激(충격)하야 藍江(람강) 즉 南江(남강)이되야 三千浦(삼천포)로 入海(입해)한다.

 

  外山(외산)의 水는 老姑底(노고단저)와 文殊洞(문수동)과 泉隱寺(천은사)와 華嚴寺(화엄사) 西洞(서동)을 것서 南原烟波汀水(남원연파정수)와 合流하야 長興天冠山(장흥천관산) 밋테서 發源(발원) 以東逆流(이동역류)江數百里下(강수백리하)는 河東(하동)의 蟾津江(섬진강)으로 入流하야 岳陽(악양)의 瀟湘(소상)과 洞庭(동정)을 經由(경유)하고 河東灣(하동만)으로 入하야 光陽代印島(광양대인도)에 低(저)하는 同時에 南海大洋(남해대양)으로 變化(변화)하였다.

 

  此山(차산)의 範圍(범위)는 朝鮮里數(조선리수)로 八百餘里(팔백여리)라하니 濟州一島(제주일도)에 培廣(배광)하고 椒頂(초정)의 高가 海拔(해발) 六千二百餘(육천이백여)척이라 한즉 白頭山(백두산) 高 九千五十四尺(구천오십사척)과 妙香山高(묘향산고) 七千餘尺(칠천여척)과 漢拏山(한라산) 高 六千七百餘尺(육천칠백여척)에 比하면 梢低(초저)하고 金剛山毘盧峰高(금강산비로봉고) 五千九百餘尺(오천구백여척)에 比하면 얼마큼 高峻(고준)하다.

 

  그러한데 天王峰과 般若峰과의 相距數十里間(상거수십리간)에 其高(기고)가 相等(상등)하것만은 天王峰의 峰脊(봉척)이 더욱 峻偉(준위)하야 下峰과 中峰과 上峰과의 次第階級(차등계급)이 있고 究竟(구경)은 天門(천문)바위를 通出(통출)하야 日月臺(일월대)에 臨(임)하면 卽(즉) 天王峰임으로 누구던지 此山(차산)의 上峰首位(상봉수위)는 天王峰이 可하다 한다. 此山(차산)뿐 아니라 最上峰(최상봉)의 相當(상당)한 法度(법도)로 構造(구조)의 完成(완성)을 選品(선품)한다 하면 六大名山中(육대명산중)에 天王峰이 最長(최장)하다 하겠다.

 

  此山의 名稱(명칭)은 亦名地理山(역명지리산)이라 記(기)하엿스니 智異와 地理와는 엇던것이 訛傳(와전)인지 不知(부지)하며 二名의 意義(의의)는 多設(다설)이 難在(난재)하나 아즉도 不分明(불분명)에 付(부)하고 말엇다. 一名(일명) 方丈(방장)은 前說(전설)과 如(여)하고 一名 頭流(두류)는 白頭山正幹(백두산정간)이 此(차)에 流하엿는 意旨(의지)로 與誌(여지)에 見하엿스니 그러면 海南(남해)의 頭輪山(두륜산)의 名도 白頭山의 終點(종점)이란것과 一稱(일칭)이라 한다.

 

  此山(차산)도 金剛山과 一例(일례)로 內外山의 限界(한계)가 有하니 東으로 蓬田峙(봉전치)에 限하며 南으로 碧霄嶺(벽소령)을 限하며 西으로 九曲嶺(구곡령)을 限하며 北으로 女院峴(여원현)를 限하야 基內(기내)도는 內山이라 하고 其外는 外山이라 한다. 然側(則)嶺南(연측(즉)영남)의 咸陽城(함양군)과 湖南(호남)의 雲峰城(운봉성)은 모다 內山에 屬(속)하고 其外 七郡城(일군성)은 모다 外山에 屬(속)하엿다.

 

  山의 最勝處(최승처)는 內山에 天王峰의 日月臺와 中峰의 帝釋堂(제석당)과 般若峰의 上佛墓(상불묘) 下墓(하불묘)와 妙香臺(묘향대)의 톡기재와 雲峰 모듬이와 外山에서 細石平田(세석평전)과 靑鶴峰(청학봉) 白鶴峰(백학봉)과 老姑壇(노도단) 等地(등지)가 絶勝(절승)하고 山瀑(산폭)의 有名地(유명지)는 百巫洞上(백무동상)의 가내소와 雙溪石文(쌍계석문) 佛日瀑布(불일폭포)와 新興溪(신흥계)의 洗耳巖(세이암)과 深源(심원)달궁 沿溪(연계)와 山內馬川(산내마천) 淸溪(청계)와 潺水江以東蟾津江(잔수강이동섬진강) 치들이다.

 

  傳說(전설)에 有하되 中國四川省內(중국사천성내) 巫俠建平(무협건평)에 所産(소산)인 猿猴(원후)를 活致(활치)하야 靑邱(청구)의 名山大川(명산대천)에 周遊(주유)식키되 猿猴(원후)가 緘口不鳴(함구불명)하다가 東으로 頭眉月溪峽路(두미월계협로)에 入한즉 一鳴(일명)하고 南으로 岳陽 花開間(악양 화개간)에 入한즉 又鳴(우명)하였다 하나 猿鳴(원명)의 與否(여부)는 確知(확지)키 不能(불능)하나 兩處(양처)가 俱是絶勝江峽(구시절승강협)이 蜀中三峽(촉중삼협)과 伯仲間(백중간)인만 것슨 實境(실경)이다.

 

  寺菴(사암)의 屈指(굴지)할 곳은 內山의 上無主菴(상무주암)은 高麗普照國師(고려보조국사)가 讚曰(찬왈) 申天下名所(신천하명소)라 하엿고 其後(기후)를 嗣(사)한 覺雲禪師(각운선사)의 拈頌說話落稿(염송설화락고)하는 筆端(필단)에서 舍利(사리)가 現出(현출)하였다 하여 數層塔(수층탑)이 至今庭除(지금정제)에 巋然(규연)하다. 또한 四大名刹(사대명찰)이 有하니 靈源.碧松.金臺.安國(영원,벽송,금대,안국)이 羅列(나리)하야 至今(지금)에 모다 稱寺(칭사)라 하지만은 古代(고대)에는 땅벌안에 君子寺(군자사)에 屬(속)한 庵子(암자)다. 君子寺의 遺墟(유허)만 麥穗離(맥수리)하다.

 

  黃溪渡頭(황계도두)에 實相寺(실상사) 浮屠庵(부도암)은 壽哲國師(수철국사)의 道場(도장)이다. 背山臨流(배산임수)에 午鍾(오종)이 淸應(청응)한다. 外山에 雄刹(웅찰)은 華嚴寺(화엄사) 泉隱寺(천은사) 燕谷寺(연곡사)와 河東雙溪寺(하동쌍계사)와 國師庵(국사암) 六祖頂相塔下(육조정상탑하)의 東方丈(동방장) 西方丈(서방장)과 二十里를 上去(상거)하면 七佛庵(칠불암) 亞字房(아자방)은 東國第一禪院(동국제일선원)이 될만하다. 七佛의 名稱(명칭)은 傳說(전설)에 云(운)하대 駕洛國首露王(가락국수로왕)의 十子中(십자중)에 長子(장자)는 國統(국통)을 繼承(계승)하고 二子는 許氏(허씨)로 蒙性(姓)(몽성)하고 其餘(기여) 七子는 此處(차처)에서 得道(득도) 하얐다하여 七佛庵이라한다.

 

  雙溪寺에서 東南으로 去하면 昆陽(곤양) 多率寺(다솔사)의 北庵(북암)이 最勝(최승)하고 中間에 彌勒庵(미륵암)이 奇絶(기절)하고 大源寺觀(대원사관) 드러가면 廣廈數百間(광하수백간)에 塔殿(탑전)이 宏偉(굉위)하고 松篁(송황)이 交翠中(교취중)에 金碧(금벽)이 交曜(교요)한 傑閣 天光殿(걸곽 천광전)은 朝鮮寺刹中(조선사찰중)에서 房舍偉?(방사위?)은 一指(일지)를 首屈(수굴)한다. 天王峰背景下(천왕봉배경하)에 巨川(거천)이 雲影樓(운영루)를 싸고 도라가는데 水島(수도)는 涎涎(연연)하고 錦麟(금린)은 自曜(자요)한다.

 

   數十年前(수십년전)에 石人(석인)이 講友數十輩(강우수십배)로 더부러 竹林方丈(죽림방장)에 論道講設(논도강설)이 昨日(작일)과 갓지만은 基時同遊者(기시동유자)를 回想(회상)하면 발서先天(선천)에 屬(속)한 것이라 자기의 星星髡髮(성성곤발)이 碩池(석지)에 照映(조영)함은 不覺(부각)하고 此山遊記(차산유기)를 쓰는 것이 自笑不巳(자소부사)한다. 山淸智谷寺(산청지곡사)의 歸墟(귀허)한 後에 花林(화림)과 深寂(심적)과의 兩刹(양찰)의 存在(존재)하고 深寂上方(심적상방)의 羅漢庵(나한암)이 奇古(기고)하다.

 

  栗谷(율곡) 正趣寺(정취사)는 不見(불견)하야도 無妨(무방)하고 嚴川溪邊(엄천계변)에 嚴川寺古址(엄천사고지)는 昔日(석일)에 嚴川和尙(엄천화상)의 法會(법회)가 盛旺(성왕)할제 千棟(천동)의 寺宇(사우)를 廣造(광조)하였다. 此和尙에 대한 傳說은 省略(성략)하랴한다. 노푼고개를 더우잡아 法華寺(법화사)를 上觀(상견)하니 泉聲(천성)이 凉活(양활)하고 거기서 登龜재(등구재) 高嶝(고등)을 올라보면 彼岸(피안)의 보이는것 天王峯頂 數千伋(천왕봉정 수천급)에 笙鶴(생학)이 翩然(편연)하고 人間煙火(인간연화)를 回願(회원)한즉 蟻垤蠢蠕(의질준연)에 佛果(불과)한 厭世相(염세상)이 忽生(홀생)한다.

 

  咸陽上谷(함양상곡)으로 드러가면 黙契(묵계)와 靈隱寺(영은사)의 別洞天(별동천)을 開하얏고 上白雲(상백운) 노푼곳에 白雲은 無心히出峀(출수)하니 只可自怡悅(비가자이열)이란 詩句(시구)나 朗唫(낭음)이 可하다한다.

 

  王子安(왕자안)이 有曰人傑(유왈인걸)은 地靈(지령)이라한 즉 超世(초세)의名士(명사)와 方外(방외)의 高僧(고승)이 此山中(차산중)에 맛당히 배출하엿슬 것이다. 與誌上登載(여지상등재) 한 것을 倉卒間(창졸간)에 記憶(기억)할 수 不能(불능)한故余(고여)의 平素記誦者(평소기송자)만 列擧(열거)하려한다.

 

  傳說에 新羅時(신라시) 玉寶高(옥보고)라는 仙人이 雲上寺(상운사) 즉 七佛庵에서 玄琴(현금)의 松風三十曲(송풍삼십곡)을 彈奏(탄주)하였더니 丹山玄鶴(단산현학)이 翩然飛來(편연비래)하엿다하며 其後에 貴金(귀금)이 玉寶高의 琴術(금술)을 傳受(전수)하야 智異山에 深入不見(심입부견)하엿거늘 羅王(나왕)이 琴道斷絶(금도단절)할가 憂慮(우려)하야 允興(윤흥)이란 名臣(명신)으로 南原公事(남원공사)를 委任(위임)케하야 貴金을 物色學琴(물색학금)하라한대 允興이 到官後(도관후)에 여러 가지方便(방편)으로 貴金에게 마츰내 飄風(표풍)등 三曲만 傳受(전수)하얏다한다.

 

  新羅末葉(신라말엽)에 孤雲先生崔致遠(고운선생 최치원)은 雙溪寺에 晩居(만거)하야 雙溪 四字의 筆跡(필적)이 尙存(상존)하며 顥源上人(호원상인)에 奇韻詩(기운시)가 傳在(전재)하얏는대 末聯(말련)에有曰(유왈) 呤魂(영혼)은 對景(대경)에 無?絆(무?반)이어늘 四海深機(사해심기)는 憶道安(억도안)이라 하엿다. 是故(시고)로 近古(근고)에 姜秋琴雙溪寺吟(강추금쌍계사음)에 有云(유운)한대 雙溪水活孤雲墨(쌍계수활고운묵)이오 二鶴峰 靑六朝心(이학봉청육조심)이라 써스니 眞境(진경)을 善畵(선화)한 것이다.

 

  高麗人(고려인) 韓惟漢(한유한)은 崔忠獻(최충헌)의 擅政賣官(천정매관)을 見하고 國難將作(국난장작)을 恐惧(공구)하야 妻子(처자)를다리고 智異山에 入하야 苦節(고절)을 淸修(청수)하거늘 時王(시왕)이聞之(문지)하고 遺使迎之(유사영지)한대 閉戶不出(폐호불출)커늘 使者棑戶以見(사자패호이견)한즉 壁上(벽상)에 一聯(일연)을 書하야曰 一片絲綸(일편사륜)이 來入洞(내입동)하야 始知名字落人間(시지명자낙인간)이로다 하고 北牖(북유)로서 逃去(도거)하얏다하니 宋人戴復古絶句(송인대복고절구)에曰 萬事無心只一竿(만사무심지일간)인데 三公不換此江山(삼공부환차강산)이로다. 평생에 誤識劉文叔(오식유문숙)키로 惹起虛名滿世間(야기허명만세간)이로다함과 逸趣(일취)가一般(일반)이다.

 

  우리나라 一蠹先生 鄭汝昌(일여선생 정여창)은 咸陽嘉坪鄭氏(함양가평정씨)의 先祖인데 戊午士禍(무오사화)로 慘死(참사)하엿다. 其後에 伸寃(신원)되야 文廟(문조)에從祀(종사)한先正으로 文獻可徵(문헌가징)할것슨 一節詩(일절시)뿐이라 한다. 風蒲獵獵弄輕柔(풍포엽엽농경유)하니 四月花開(사월화개)에 麥巳秋(맥사추)로다. 看盡頭流千萬壑(간진두류천만학)하고 孤丹又下大江流(고난우하대강류)로다. 비록 絶句(절구)이나 起床(기상)이 超遠(초원)하야 聖賢域(성현역)의 優入(우입)할것이 .보인다한다. 鄭先生과 次前(차전)인가 얼추 同時일까 曺南冥先生(조남명선생)은 天王峰 德山谷(덕산곡)에 卜居修道(복거수도)하엿다한다. 지금에도 山泉精舍(산천정사)와 古碑石(고비석)이 可考(고찰)할 만하다. 幽居時(유거시)에 有日春風低處(유일춘풍저처)에 無芳草(무방초)하랴만은 爲愛天王(위애천왕)이 近帝居(근제거)로다 白首歸來(백수귀래)에 何物食(하물식)고 銀河十里喫有餘(은하십리끽유여)라하엿다. 鄭詩에 相對하면 優劣(우열)을 難分(난분)이라한다.

 

  方外高僧(방외고승)으로는 新羅의 眞鑑國師(진감국사)는 入唐學禪(입당유학)하야 曺溪祖師(조계조사)의 玄孫(현손)이된 까닭에 六祖影堂(육조영당)을 雙溪寺 建設하고 魚山梵樂(어산범악)을 倣效(방효)하야 朝鮮僧侶(조선승려)의 梵音開祖(범음개조)가되얏다. 孤雲僎碑字(고운선비자)가 尙存(상재)하얏다. 南嶽(남악)의 洪陟國師(홍척국사)는 道義禪師(도의선사)와 同時入唐(동시입당)하야 藍官禪(남관선)을 傳受以遠(전수이원)하야 陟(척)은 實相道場(실상도량)에 開山(개산)하엿고 義(의)는 伽智山林(가지산림)에 普設(보설)하엿스니 東國曹溪宗(동국조계종)의 濫觴(남상)이라稱(칭)한다. 宋廣(송광)의 普照國師(보조국사)는 八空山(팔공산)으로 杖錫來此(장석내차)하야 上無住(상무주)에서 無住法門(무주법문)을 領悟(영오)하고 他山에 移錫(이석)하야 曹溪宗(조계종)의 中興祖(중흥조)가 되얏다한다.

 

  西山大師(서산대사) 즉 淸虛祖師(청허조사)는 安州簪縷家(안주잠루가)의 崔氏子로서 上舍庠(상사상)에 登第(등제)한後에 江湖(강호)에 南遊(남유)하얏다가 山水絶勝(산수절승)에 奪魄(탁백)하야 此山(차산)의 黃嶺寺崇仁長老(황령사숭인장로)에게 落髮得道(낙발득도)하얏다가 다시 禪科選(선과선)에 登階(등급)하엿다. 中古(중고)에 泉隱寺座主(천은사주지)인 龍潭大師(용담대사)와 靈源(영원)에 常住(상주)인 雪坡長老(설파장로)는 法門의 龍象(용상)이오 人天의 眼目(안목)으로서 佛法殘秋(불법잔추)에 際遇(제우)하야 己意(기의)를 莫伸(막신)하고 名稱(명칭)이 普聞(보문)치못하엿다. 近古(근고)에 至(지)하야 禪匠講伯(선장강백)이 代不乏人(대부핍인)하얏다. 그럼으로 漢陽末葉(한양말엽)에 一種名言(일종명언)이 流行(유행)하엿다. 人種은 兩百(양백)에 求(구)하고 穀種(곡종)은 兩豊(양농)에 求하라는것과 갓트며 佛種(불종)을 求하려면 智異山中에 必去(필거)하리라 하게되엿다.

 

  至今(지금)의 佛法(불법)의 現狀(현상)을 볼진대 智異山이 또한 荒蕪(황무)하엿다. 格外詩僧(격외시승)으로 五百年(오백년)끋장 막은이는 草嚴上人(초엄상인)이 最秀(최수)라한다. 晉州(진주) 玉泉寺(옥천사)에서 得道하엿고 靈源(영원)과 碧松間(벽송간)에 多居(다거)하엿다. 期文(기문)은 三嘉(삼가) 朴晩惺(박만성)에게 得學(득학)하엿고 基詩(기시)는 古懽(고환)姜緯(강위)에게 聞道(문도)하엿다. 一生에 書淫(서음:글쓰기를 지나치게 즐기는사람)이란 綽號(작호)를 받고 世上凡百(세상범백:여러가지사물)은 糊塗(호도)하다는보다 아주澠忘(민망)하엿다한다. 統制使申觀浩(통제사신관호)가 流用(유용)의 人材(인재)로 誤解(오해)하야 賈長江(가장강)을 만들려고도 하여보앗다. 然이나 天下國家(천하국가)에는 無用(무용)일 것이다.

 

  自述(자술)한 三花子傳(삼화자전)을 閱讀(검열)한즉 圓覺經(원각경)에 徹悟(철오)한 것이다. 萬境(만경)에 浮沈(부침)하야 無着無得(무착무득)하엿고 詩三昧(시삼매:잡념을버리고 한가지일에만 집중)에는 登地巳上(등지사상)의 地位를 得하엿으니 唐(당)의 晈然貫休(교연관휴)와 宋(송)의 參寥惠洪(참료혜홍)과 比肩上磨(비견상마:어께를나란히)할 것이다. 一絶九(일절구)를소개하려한다. 紅梅深院綠蕉傍(홍매심원녹초방)에 委地輕陰取次長(위지경음취차장)이라 細雨欲飛人仰短(세우욕비인앙단)하니 廬山一碧佛驅凉(여산일벽불구량)이라 하엿다.

 

  名物(명물)로는 百果(백과)가 玲瓏(영롱)하고 香草(향초)가 蔚美(위미)한 것은 南中諸山(남중제산)에 보통이거니와 靑玉菜紫玉菜(청옥채자옥채)와 香蕈石蕈松蕈(향심석심송심)이 此山中(차산중)에 特産(특산)이라한다. 造經刊板(조경간판)의 이용할 樺木(화목:자막나무)이 만코 鉢孟作成(발맹작성)하는 檀木(단목:박달나무)이 層生(층생)한다. 光潤(광윤)의 紫漆木(자칠목:옻나무)이 全鮮(전선:전조선)의 居甲(거갑:으뜸가는)이라한다. 巳上鉅梓木(사상거재목:가래나무)에 穀雨節(곡우절)에 맞추어 甘露汁(감로즙)이 瀉出(사출)하는고로 遠近士女(원근사녀:선비와부인)가 雲海霧集(운해무집)하야 한 동안에는 內外中山(내외중산)이 熱閙成市(열뇨성시)가 可憎(가증)이라 한다.

 

  智異山의 十餘日遊行(십여일유행)을 逐日述記(축일술기)가 아니라 追想(추상)으로 五六年前(오십년전)의 所見聞(소견문)의 種子(종자)를 藏識中含藏(장식중함장)하였다가 東林寺松窓下(동림사송창하)에 一梡茶(일완다)를마시고 閉晴一時(폐청일시)에 影像境(영상경)을 摸得(모득)하야 毛錐(모추)를命寫(명사)하니 一時積次第出(일시적차제출)이라 先後倒謬(선후도유)가 宣乎不免(선호부면)이라한다. 近日 一老先生(일노선생)이 理想楓岳(이상풍악)만 詠詩(영시)한다.

 

  仙寰佛地本無形(선환불지본무형)키로 纔動思來己舊境(재동사내기구경)을 河用覔尋眞面目(하용멱심진명목)가 自家胸裏萬峰靑(자가흉리만봉청)이라 하엿거늘 石顚沙門(석전사문)은 基意(기의)를反하야 實地(실지) 楓岳(풍악)을 頌(송)하야 曰 鐘籥河曾似日形(종약하증사일형)가 行人이 每笑座談經(매소좌담경)을 披藤踏破毘盧頂(피등답파비로정)하야샤 倒海群峰(도해군봉)이 跟低靑(근저청)을 하얏다. 然則此遊山記(연측차유산기)를 愛讀(애독)하거든 竹杖芒鞋(죽장망혜)로서 一步씩 一步를 前進(전진)하야 智異山天王峰頂日月臺(지리산천왕봉정일월대)에 依杖以立(의장이입)하야 扶桑(부상)의 日出을 俯觀(부관)을 敬告(경고)한다.

 

東林寺松窓下(동림사송창하)에서.

 

 

석전 박한영 스님을 아시나요? : http://blog.naver.com/jajuycj/100088360243

 

* 자료를 제공해주신 신강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