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세석의 빈발봉과 계족봉 그리고 좌고대(170903)

도솔산인 2017. 9. 4. 03:32


세석의 빈발봉과 계족봉 그리고 좌고대(170903)

 


일 시 : 201709월 03

코 스 : 거림 - 세석 - 촛대봉 - 시루봉 안부 - 영신봉 - 좌고대

▣ 동 행 : 홀로

날 씨 : 맑음

 

 

점필재길을 졸업하고 관련된 선인들의 유산기를 읽다가, 추강 남효온 선생의 지리산일과에서 소년대와 빈발봉 그리고 계족봉에 대한 내용을 읽고, 새벽에(02시30분) 지리산으로 향했다. 이번 산행은 빈발봉과 계족봉 그리고 좌고대에 대한 선인들의 기록을 현장에서 다시 확인하고, 아울러 시루봉 안부 바위에 있는 각서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1487년 추강 남효온 선생은 지리산을 유람하고 지리산일과를 남겼는데, 다른 유산기에서 볼 수 없는 소년대, 빈발봉, 계족봉이 등장한다. 소년대는 연하봉, 빈발봉은 촛대봉, 계족봉은 영신봉으로 추정하고 남효온이 오른 계족봉이 바로 영신봉인 것이다. 빈발봉의 빈발마하가섭존자의 속명으로 마하가섭의 어머니가 산책 도중 보리수(pippala,빈발라나무)나무 아래에서 마하가섭을 낳아서 이름을 '비팔라야나'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떤 경전에는 마하카사파(마하가섭)의 청년시절 이름이 핏파리(혹은 피발라야나)로 나온다. 마하가섭존자의 이름이 한문으로 번역되면서 賓鉢(빈발)이 된 것이다.

 

 세석고원의 빈발봉과 계족봉을 푸는 열쇠는 頭陀第一 마하가섭존자(Mahakassapa 마하가사파)의 연보와 생애에 대한 자세한 고찰이 필요하고, 마하가섭존자에 대해 완전하게 이해한 연후에야 비로소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비해당 贊을 푸는 키워드는 가섭전에 있는 비해당 안평대군의 贊에서 설의계산이 눈덮인 계족산이니 계족산은 영신봉으로 짐작되고 안평대군이 영신대에 다녀간 것으로 추정된다. 비해당은 몽산화상의 가섭도를 贊한 것이 아니고, 가섭존자의 영혼이 영신봉(계족산)의 바위 석가섭에 깃들어, 석가세존의 가사를 미래의 佛 미륵부처에게 전해주기 위해 기다리는 마하가섭존자를 찬양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蒙山畫幀迦葉圖贊



                     匪懈堂 李瑢


  頭陁第一。是爲抖擻。: 마하가섭존자(大迦葉)께서는 두타 수행을 바르게 행하시어
  外已遠塵。內已離垢。: 밖으로 이미 번뇌를 멀리하시고, 안으로 마음의 때를 벗으셨네
  得道居先。入滅於後。: 앞서 道(아라한과)를 얻으시고, 뒤에는 적멸의 경지에 드셨으니
  雪衣雞山。千秋不朽。: 눈 덮인 계족산에서, 천추에 사라지지 않고 길이 전하리라.


 * 몽산 : 원나라 고승 몽산화상. * 贊(讚) : 다른 사람의 書畵를 기리는 글. * 匪懈堂 : 안평대군의 호, 三絶 ; 시서화.  * 頭陁第一 : 마하가섭존자(마하카사파, Mahakassapa, 大迦葉),  * 塵垢 : 마음 괴롭히는 욕망이나 분노 따위 모든 망념() 이르는 . * 적멸 : 번뇌의 세상을 완전히 벗어난 높은 경지. * 道 : 阿羅漢果 : 아라한과, 깨달음의 경지, 聖者의 지위, 聲聞四果의 가장 윗자리. * 雪衣雞山 : 눈덮인 계족산(찬에 나오는 雪衣雞山과 유산기에 나오는 계족봉은 영신봉)


* 雞山(雞足山) : 인도에 있는 산. 唐 玄奘 <大唐西域記9> 莫訶河東入大林, 野行百餘里, 至屈屈吒播陀山, 唐言雞足.[단국대간 한한대자전], 계족산은 범어로는 꿋꾸따빠다산(Kukkuṭapāda-giri, 屈屈吒播陀山)또는 尊足山. 중인도 마가다국(摩揭陀國)에 있던 산. 3개의 봉우리가 있으며, 玄奘이 갔을 무렵에는 정상에 탑이 있었다고 한다. 가섭이 여기서 입적하였음.[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산스크리스트어와 힌디어에서 꿋꾸따(Kukkuṭa)는 닭이고 빠다(pāda)는 발, 기리(giri)는 山으로 결국 지리산의 어원도 가야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기리(giri)에서 온 것으로, 漢字로 옮기면서 地理(땅의 이치 즉 이치가 있는 땅), 智異(지혜가 달라지는 산)이 된 것으로 유추한다.


좌고대에 오르니 사방이 일망무제 360도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다가 1487년 남효온이 올랐다는 좌고대 옆에 있는 秋江바위에 올라 좌고대를 내려다보았다. 영신암에서 직접 좌고대가 보이지 않지만 조금 비켜서면 좌고대를 올려다 볼 수 있고, 영신암터에서 직접 좌고대로 올라오는 길도 확인했다. 선인들은 좌고대에서 영신암으로, 영신암에서 이 길을 통하여 좌고대로 오르내렸던 것이다. 빈발봉과 계족봉, 가섭전과 빈발암, 석가섭과 가섭도, 그리고 세석의 비밀이 들어있는 비해당이 쓴 가섭도의 贊은 세석고원이 불멸의 가섭존자 영혼이 깃들어 미륵 부처를 기다리는 불국의 땅이었던 것이다.


점필재길을 이해하면서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과 유두류기행시가 교과서가 되었다면, 다른 분들의 두류산 유산기와 기행시가 훌륭한 부교재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錦溪(금계) 황준량(1517∼1563)의 유두류기행편으로 석가섭을, 玉溪 盧禛(노진1518~1578)의 '夜宿地藏庵(밤에 지장암에서 자다)' 라는 산시로 지장사터를 고증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한시는 통상적으로 선경후정으로 '사물을 글로 자세하게 그려낸 압축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압축된 시어를 풀수 있느냐 없느냐는 유산시를 지은 현장을 직접 답사하는 방법밖에 없다.

 

10년 전 섣불리 선인들의 유산기에 손을 대고, 선인들의 유람길에 발을 헛 디뎌 진퇴양난한 일이 여러 번이었으나, 다행히 소통하는 분들이 있어 유산기를 함께 읽으며 토론을 통하여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끝으로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後生이 可畏라,'라고 하였으니, 나의 유두류록 현장 답사 해석이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이 길을 후답하시는 분들에 의해 하나하나 바로잡혀지길 기대한다.  끝.






1611년 어우당 유몽인 선생의 유산기에 나오는 사자봉(촛대봉 조망바위)


 



촛대봉

 

1472년 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甑峰(증봉), 1487년 추강 남효온 선생은 賓鉢峰(빈발봉), 1611년 어우당 유몽인 선생은 獅子峰(사자봉), 1851년 사농와(士農窩) 하익범 선생은 中峰(중봉), 1879년 연재(淵齋) 송병선 선생은 燭峰(촉봉)으로 기록하고 있다. 현재의 촛대봉 이름은 1879년 송병선의 유산기 기록과 같다.

 



시루봉 안부 기도터 바위 刻書


生의 소전체
 












광주알파인클럽



서울 권태하님 일행


좌고대 상단

 

좌고대에 오르면 지리산 사방이 다 보인다.







* 1463 8월 <이륙>선생의 [유지리산록]

後峯有奇石削立如檣. 北臨萬丈. 復戴小石如床. 向般若峯稍低. 人有攀緣而登. 四向拜者. 以爲根性. 然其能之者. 千百僅有一二.


뒤쪽의 봉우리에는 기이한 바위가 돛대처럼 솟아 있는데 북쪽으로 만 길이나 되는 벼랑에 맞닿아 있고 상처럼 생긴 돌을 그 위에 또 이고서 반야봉을 향해 조금 기울어져 있다. 부여잡고 올라 사방을 향해 절하는 자는 근기가 잘 잡혀 있다고 여겨지는데 해낼 수 있는 자는 천 명 중에 한 두 명이 있을까 말까할 정도이다.


*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迦葉殿之北峯有二巖突立所謂坐高臺其一上尖頭戴方石闊纔一尺浮屠者言有能禮佛於其上得證果


[08월17일] 가섭전 북쪽 봉우리에는 두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이른바 좌고대라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밑은 둥글게 서리었고 위는 뾰족한 데다 꼭대기에 방석(네모난 돌)이 얹혀져서 그 넓이가 겨우 한 자 정도였는데, 중의 말에 의하면, 그 위에 올라가서 예불을 하는 자가 있으면 증과를 얻는다고 한다.


* 1487년 추강 남효온의 [두류산일과]

余從伽葉殿後攀枝仰上一山. 名曰坐高臺. 有上中下三層. 余止上中層. 心神驚悸. 不得加上. 臺後有一危石高於坐高臺. 余登其石. 俯視臺上. 亦奇玩也. 義文坐臺下. 恐懼不得上. 是日之西面淸明. 倍於曩日. 西海及鷄龍諸山.


[101일 정묘일]나는 가섭전 뒤쪽에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산의 한 봉우리를 올랐는데, 좌고대(坐高臺)라고 하였다. 거기에는 , , 3이 있었는데 나는 중층까지 올라가서 멈추었는데 심신이 놀라고 두근거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대의 뒤에는 위험한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좌고대보다 더 높았다. 나는 그 바위에 올라 좌고대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기이한 풍경이었다. 의문(義文)은 좌고대 아래에 앉아서 두려워하면서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였다. 이 날 서쪽 방면은 전날보다 훨씬 청명하여, 서해와 계룡산 등의 여러 산을 두루 분별할 수 있었다.


* 의문(義文) : 남효온을 안내한 승려. * 일경(一囧) : 향적암(香積庵) 승려로 향적암에서 천왕봉까지 동행함.

 

* 1489<김일손>선생의 [속두류록(續頭流錄)]

後有坐高臺. 突起千仞. 登而目可及遠. : 뒤에는 좌고대가 있는데, 천 길이나 솟아 있어 올라가면 눈으로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촛대봉을 김종직은 증봉, 남효온은 빈발봉, 유몽인은 사자봉, 하달홍은 중봉, 송병선은 燭峰이라고 했다.


 산천재

 



* 참고자료 : 남효온의 지리산일과

* 한국문화콘텐츠 닷컴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cp0535&index_id=cp05351094&content_id=cp053510940001&search_left_menu=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