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산천재와 지리동부 영랑대(160423~0424)

도솔산인 2016. 4. 25. 05:47

 

산천재와 지리동부 영랑대(160423~0424)

 

   

▣ 일   시 : 2016년 04월 23일 ~ 24일

▣ 코   스 : 산천재 - 영랑대 - 산천재

▣ 인   원 : 2명(이범구)

▣ 날   씨 : 첫날 흐리고, 다음날 갬

 

 

 

# 1. 치밭목에도 봄은 오는가?

 

<지리은자>에게 자연산 黑花菰 판매 소식을 접한 후

거울을 보고 얼굴에 핀 검버섯을 흑화고라고 생각하였으니

生角과 상상의 유희 또한 나의 자유다.

 

數罟촉고는 '촘촘한 그물'이라는 뜻이다.

한 줄기 빛이 數罟 속으로 들어와 검은 그물에 갖혔다.

최소한 지리 산행 결심을 하는 순간부터

저절로 永朗齋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치밭목에도 봄은 오는지...

畏敬스러운 30년 외길 인생 <민대장>은 어느 해보다 다른 봄을 보내고 계셨다.

밑둥이 잘려진 신갈나무는 붉은 페인트로 臭田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었다.

 

다들 치밭목이 살아남길 염원하지만 소멸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본디 事物은 本末이 있고 일은 始終이 있으니 可否는 논할 바가 아니다.

 

내 念力이 神通할지 旁通할지는 미지수지만

<閔대장>님이 계속 치밭목에 남아계실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기사 내 일도 잘 모르는데 하물며 <閔대장>님 일이야.... 

 

아무튼 봄이 이미 무제치기 문턱까지 올라와 있으니

다음 주면 치밭의 언덕까지 한 걸음에 치닫을 것이다.

그리고 머지 않아 헬리콥터 轟音으로 騷亂할 것이다.

 

2월 말 두 번 검푸른 道袍를 두른 南冥梅를 만났고

두 달만에 정확히 8주만이라 몸이 무척이나 무거웠다.

 

덕산 산천재에 잠시 멈추었다가 아침에 새재에서 <오만과 방자>를 만났다.

朝開골을 건너고 蟹逾嶺을 넘어 少年臺를 지나 영랑재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매화는 도리행화와 봄을 다투지 않는다(160221)

 

 

남명매와 영랑대(160228)

 

산천재의 뜨락

 

산천재

 

 

 

 

 

 

 

 

 

 

 

 

 

 

 

 

# 2. 지리동부 사람들

 

영랑대에는 <갈간>팀이 자리잡고 있었다.

갱상도 고성 사투리는 파장이 다른지 몰라도

특히 <하대장>목소리는 국가대표급이다.

 

間於齊楚라는 말이 있는데 신라와 백제라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생존을 위해 목소리가 발달된 것이 경상좌도 사람들의 기질이다.

목소리가 수km 밖에서도 들린다. 함양의 <사니조아>님도 그렇다.

 

역사적으로 중앙정부 집권세력에게 홀대를 받다가도

국난이 있을 때마다 그 기질을 발휘해 나라를 구했다.

암튼 洛東 新羅와 洛西 伽倻의 기질은 완전히 다르다.

 

초저녁 구름을 열치고 나타난 달이 허공에 노닐다가

가문비나무 깊숙한 숲으로 들어와 永朗齋 안을 엿보더니

밤이 깊어지자 파도소리가 거세지고 본색을 드러냈다. 

 

바람소리 장단에 나도 모르게 몸이 좌우로 흔들리더니

점필재의 '소나무 물결 달빛 아래 들끓는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어둠은 폭풍처럼 빠르게 흘러 등불을 끄니

파도소리가 크게 들리고 젤트에 비친 달 그림자만 아른아른...

나는 침낭속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 3. 영랑재의 아침

 

暴風怒濤의 밤이 가고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아침을 맞았다.

산책을 나가니 <갈간>팀은 자리를 잡고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에서의 일출은 부지기수지만 왕시루봉에 이어 두 달만이던가?

 

 

 

 

가문비나무숲의 여명

 

 

 

 

 

 

 

 

<갈간>팀

 

 

 

 

 

 

 

 

 

 

 

얼레지

 

 

 

 

 

 

 

 

# 4. 속세로 가는 길

 

새재에 내려와 조개골산장에서 <河대장>일행과 작별하고

덕산 산천재 툇마루에 잠시 앉아서 덕천강을 내려다 보았다.

 

아! 세월은 저 덕천강과 같으니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