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매와 지리동부 영랑대(160227~0228)
▣ 일 시 : 2016년 02월 27일 ~ 28일
▣ 코 스 : 산천재 - 새재 - 치밭목 - 영랑대 - 치밭목 - 새재
▣ 인 원 : 6명(송연목, 이범구, 산학동자+1, 청송녹죽)
▣ 날 씨 : 최저 기온 영하 3도 첫날 갬, 눈과 비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脫俗의 길, 대진고속도로를 달렸다.
살아내는 동안 나의 탁한 영혼은 삶 자체가 고뇌이고 고행이다.
나는 교직이라는 직업의 탈을 쓰고 참 힘들게 살아왔다.
지금까지도 버텨왔고 앞으로도 몇 년간은 살아낼 것이다.
작년 1년 동안 학교에 신관 봉사관 校舍 한 동을 신축했고
기존 교사 건물의 리모델링 공사로 71일간 긴 방학을 했다.
26일 출근해서 여러 곳에 쌓아놓은 집기들을 사무실로 옮기는데
1년간 同室同居할 동료들은 무관심하게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내 일을 남 일처럼 하는 것이 몸에 밴 우리 교직의 속성이다.
아침 여덟시에 시작한 일이 4시가 되어 미완의 마무리를 했다.
교사의 사명은 守口如甁하고 집에 돌아와 배낭을 차에 실었다.
생초 나들목을 지나는데 동녘에 보름달 같은 해가 떠오르더니
날씨도 흐림에서 갬으로 전환하고 마음속 상념도 내려 놓았다.
산천재 남명매
덕산을 지나며 불쑥 산천재에 들어가니 남명매가 피었다.
어림 잡아 450년 老軀의 몸으로 온몸에 깁스를 하고도
검푸른 도포를 걸치고 덕천강을 바라보며 호령하고 있었다.
남명매는 꽃이 아니고 남명의 化身이로다. 하고 禮를 表했다.
아침 식사를 하러 기사 식당에서 거제<뽓때>님 일행을 만났는데
<옥국장>님이 膾 한 도시락을 주셔서 고마움에 感泣할 따름이다.
지난 가을 지리동부에서 만났을 때 '膾를 꼭 대접하겠다.'고 하였는데
지나가는 말을 食言하지 않고 실행하는 것을 보니 뽓때一諾이 아닌가?
아무튼 치밭목에서 여러사람들이 모두들 <巨濟의 季布>라고 칭송하였다.
무제치기폭포
새재를 출발하여 3km 기점의 갈림 길에서 <도편락>씨 일행을 만났고
치밭목에는 지난 밤에 올라온 <송연목>씨가 밥을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청송녹죽>님은 새벽 4시에 출발해서 11시에 치밭목에 도착했다고 한다.
산에 들어 縮地法축지법을 쓰는 고수들은 江湖에 許多하지만
산길의 주름을 펴서 時空을 넘는 延長地法을 쓰는 高手가 있다.
<민대장>님과 대화를 하다가 의문이 들면 한양에 올라가서 찾아보고
다음 주에 다시 내려와 '틀렸다.'고 하면서 반드시 是非를 가린다고 한다.
거창의 할배 건달 <민대장>님이 '예천 할매한테 졌다.'고 선언하셨으니 말이다.
은근히 은인자중하며 호시탐탐 지리동부의 주인 자리를 노리더니
지리 은자가 어깨가 아파서 잠시 동부을 비운 틈에 마침내 뜻을 이룬 것 같다.
아무튼 두 명이 출발해서 치밭목 산장에서 일행이 여섯 명으로 불어났다.
흑염소 濯足之㪽
지리산천 <굴암산>님 일행
사진<굴암산>님
지리동부 영랑대
일몰
아침에 생초에서 만난 보름달 같은 해를 영랑대에서 다시 만났다.
같은 해지만 속세와 선계가 다른 것은 이곳은 下心의 시간을 잠시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선계는 아직 한겨울이고 오늘은 내 마음 또한 쓸쓸하고 추운 겨울이라...
산에서 놀고 먹는 즐거움이 예전만 못하니 세월 탓이 아니고 마음의 탓인가 보다..
가문비나무 숲 막영지에 <갈간>팀이 있어 <산학동자>팀 셋은
하봉 동릉 초입 무덤까지 내려가서 아침에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새벽에는 눈 내리는 영랑대를 연출했다.
하늘에서 하얀 散骨이 휘날려 뼈 가루가 영랑대에 드리우더니
어지럽게 흩어져 잴트 위에 쌓였다가 눈물이 되어 젤트 안으로 떨어졌다.
아침을 하고 국을 끓여 놓고 두 시간이나 기다려도 오지 않아
<이범구>씨가 두 번이나 내려가서 속세로 돌아갈 것을 독촉했다.
<범구>씨에게 미안해서 같이 내려가다가 <하대장>을 만나 해장술을 마셨다.
'갈 때까지 간다.'는 <갈간>팀
<하대장> 일행이 영랑대로 올라와 술과 차도 나누고 河數多에 넋을 놓았다.
언변이 유여하고 남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니 늘 주변에 산 사람들이 많다.
어쨌든 산에서 금주가 원칙이고 술을 절제하는 것이 기본인데
나의 산행 수칙은 <하대장> 배낭의 酒有所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시간을 지체해서 치밭목에서 출발할 시간이 되어서 일어났으니
외인구단 산행에서는 離席 시간을 맞추기가 참으로 어렵다.ㅠㅠ
치밭목 산장에서 아주 늦은 점심을 먹었고
<청송녹죽>님은 치밭목에 남았고 다섯시 쯤 출발한 것 같다.
싸락눈은 내려오면서 주룩 비로 변했고 한 시간 정도 비를 맞은 것 같다.
마지막 고개 계단을 내려오면서 다리가 풀리자 계단이 벌떡 일어나 내 눈을 때렸다.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고 음주 산행을 한 나에게 내린 경고의 메세지는 매서웠다.
어둠이 내리기 전 새재에 도착하여 개울에서 온몸에 묻은 흙을 씻어내고
덕산 보현식당에서 세수를 하는데 코피가 흘러 세면대가 붉게 물들었다.
지난 늦가을 흑염소가 생일 선물로 사준 라스포티바 네팔 큐브君과
12번이나 동계 산행을 했고 17박을 하면서 29일을 산에서 머물렀다.
지리에서만 10회 15박 25일이니 큐브군의 노고에도 감사를 전한다.
이 계획적인 고행과 치밀한 방황의 과정을 통해서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勿論 현재를 覺省하고 미래로 나아가야한다.
최근 경색된 흑염소와도 '그가 무엇을 고칠 것인가?'를 기대하기보다
'어떻게 관대하게 이해하고 너그럽게 적응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마음의 평화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이 아니고 내가 만드는 것이다. 끝.
라스포티바 네팔에보孃 중량 2.2kg
2005년부터 신었던 네팔에보 창갈이를 한 후
안으로 물이 들어와 현역에서 명퇴를 하였다
라스포티바 네팔큐브 중량 : 1.85kg
에보에 Mink Oil왁스을 발라도 될 것을 350g줄이려고 흑염소 돈썼다.
여자와 신발은 키가 크고 목이 길고 발목이 가늘고 가벼운 것이 좋다.
붓을 놓지 않았으면 이 짓도 못해보고 죽었을터
벼루 바닥을 뚫는 대신 등산화를 여러 번 창갈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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