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지리동부 영랑대&중봉골II(160208~0210)

도솔산인 2016. 2. 11. 00:46

 

지리동부 영랑대&중봉골II(160208~0210)

 

 

▣ 일   시 : 2016년 02월 08일 ~ 02월 10일

▣ 코   스 : 새재 - 치밭목산장 - 영랑대 - 중봉 - 중봉골 - 중산리 

▣ 인   원 : 3명(송연목님, 최정호님) 치밭목에서 동행 정삼승님(하봉헬기장 원점회귀)

▣ 날   씨 : 최저기온 영하10.2도, 영하3.5도

 

 

 

畵鶴(그림 속의 鶴)

 

 

                      李達(1539~1612)

 

외로운 학 한마리 먼 허공을 바라보며

밤이 차가운지 다리 하나를 들고 있네

 

서풍이 불어와 대 숲은 괴로워하는데

나는 온몸 가득 秋露(술)에 젖었다오

 

 

 

서예가 지원 박양준 선생書

 

蓀谷은 삼당 시인의 한 사람으로 허난설헌과 교산 허균의 스승이다.

서얼이라는 신분의 벽에 가로 막혀 평생 狂人으로 살다간 천재였다.

허난설헌의 시에 등장하는 情人은 혹 스승 蓀谷 李達은 아니었을까.

지원 선생은 화장품 后 로고를 쓴 분입니다. 

 

 

 

1. 지리의 외인구단

 

지난 해 구정 때에 치밭목산장에 가서 만난 사람 <宋連穆>씨

85년부터 약 4년간 <민대장>님과 치밭목 산장에 있었다고 한다.

하루 더 묵어가라는 <連穆>씨의 권유에 비를 흠뻑 맞고 덕산으로 내려와

지리산 흑돼지 고기를 사가지고 올라가 수육을 삶아 하룻밤을 더 묵은 일이 있다.

 

사업차 1년이면 대부분 외국에 나가 있고 국내에 들어와 있는 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데

지난 신정 때에도 치밭목에서 만나 2박3일 송*신년 산행을 함께했고 이번에도 함께할 수 있었다.

 

덕산에 차를 한 대 놓고 막 출발했는데 <최정호>씨에게 덕산에 있다는 갓독이 들어왔다.

회차를 하여 덕산에 내려와 <최정호>씨를 태우고 새재로 올라갔다.(16:00)

<최정호>씨는 80년대 중반 뱀사골 산장에서 4년간 산장지기를 했던 친구다.

 

덕산에서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오는 상봉과 중봉, 써리봉능선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산행 코스도 정하지 않았지만 산행이란 본래 묵시적 동의 행위라고나 힐까.

홀로 지리에 들어 동부의 외인구단은 급조되었지만 산행에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두류산 양단수(矢川과 薩川)가 합류하여 덕산 앞을 흐르는 내(川)를 덕천강이라고 한다.

江이라고 하는 연유는 잘 모르지만 작은 냇물을 江이라고 불러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그것은 이곳에 卜居하여 지리산을 올려다 본 남명 선생의 발자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산천재를 둘러보고 南冥梅도 만났고 새로 다시 제작한 詩榜에 붙어있는 남명의 詩도 읽어보았다.

입춘이 지났지만 남명매는 푸른 이끼 도포를 걸치고 덕천강의 찬바람에 꽃망울을 움추리고 있었다.

 

 

 

 

 

 

 

 

 

해거름에 도착한 치밭목산장, 密村(노상규씨)은 우리를 반갑게 맞았고 모처럼 저녁을 함께하며 덕담을 나누었다.

이곳을 자주 지나지만 1년에 고작해야 한두 번밖에 거의 머무는 일이 없으니 나는 늘 신세만 지는 과객일 뿐이다.

나는 집에서 가지고간 명절 음식과 반건조 조기새끼와 실갈치를 내놓았다.

 

아침에 일어나 취사장에 나가니 새벽에 올라온 잠자리 눈곱만한 <정삼승>씨가 홀로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카스에서 '지리동부에 가느냐?'고 물어왔고 마침내 밤을 새워 버스를 타고 내려와 꼭두새벽에 나타난 것이다.

 

산행에 합류하겠다는 거의 일방적인 요청을 하였으니 '참 당돌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느 여산객에게도 물을 지게하지 않은 일이 없으니 조개골 상류에서 4.5리터나 지고 올라갔고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다음날 아침에는 급기야 吐하기까지 하여 물탱크라는 놀림을 하였다.

아무튼 지리 꼬마 여장군은 컨디션 난조로 헬기장에서 中脫하고야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2. 지리동부에서 만난 사람들

 

영랑대에 도착하니 잠시 후 청이당쪽에서 <pk산장>님팀, <그리고>님 부부가 올라왔고

큰 조개골로 <이장>님 부부가 올라왔는데 <사평역>님에게 선두 러셀까지 시켰다고 하니

부부간 금슬치고는 색 다르다고 아니할 수가 없다. 산에서 앞세우면 애인이 아닌가?

 

여하튼 두 분이 나이를 먹으면 색 다른 추억이 많아 102살을 채우고도 수명이 모자랄 것이다.

부부가 취미를 같이하는 것은 또 다른 세상 하나를 함께 공유하며 사는 것이니

나도 흑염소를 헬스클럽 보내고 트레이닝을 시켜 설산의 길잡이를 시킬까보다.  

 

일몰 시간이 지나고 <pk산장>님 쉘터에 가서 인사도 나누고 술도 얻어마시고

동계 말미 지리동부에서 만난 사람들과 풋풋한 산정을 나누었는데

기필코 아침에 떡국을 대접한다고 하시어 번거롭다고 사양을 하니

떡국의 풀재료(떡, 육수, 고명, 양념)를 주셔서 중봉골 내려오는 하산 길에

떡첨 반 고명 반 고관대작이나 먹을 수 있는 특급 떡국을 먹었으니 정초부터 산복과 식복을 겸전하였다고 말할만하다.

 

 

 

 

 

 

 

 

 

廣居亭II

 

 

산도 울고 나무도 울고 바람도 우는 거센 파도소리가 들리는 영랑島에서 깊은 밤에 젤트에 등불을 켜고 노니는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다.

홑겹 젤트는 부드러움으로 거센 바람도 이겨내나니 바람 소리는 오히려 마음을 잔잔하게하고 나는 이곳에서 삶의 지혜와 용기를 배우는 것이다.

나는 일행들에게 '산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는 공자님 말씀을 인용하였다.

 

찬란한 태양이 지고 떠오르는 천혜의 조망터인 이곳에 얼마나 더 올런지는 장담할 수 없다.

10년의 산 파트너 <미산>선생님은 '산에 가자고 전화를 해도 되냐?'고 먼저 전화한 다음에

 'ㅇㅋ' 답이 떨어진 뒤에 전화를 하라고 하시니 세월 앞에 미래를 장담할 자는 아무도 없다.

 

시간의 흐름에는 명예와 이익은 티끌 만도 못한 것이니 그래서 부지런히 산을 찾는 것이다.

나 또한 산에 들어 산이 얼마나 세속적이고 통속적인 것인가를 논할 자격이 없지만,

산도 사람의 일이라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희노애락애오욕과 貪瞋痴가 가득하다.

 

날이 새기 전에 일행들을 깨워 산에서 속세로 떠날 준비를 서두르는 것 자체가 얼마나 세속적인가?

우리는 紅塵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자신을 시간에 얽어매어 미리 집에 도착할 시간을 헤아리고 있지 않은가?

 

일출 시간 우리는 이미 식사를 마쳤고 <pk산장>팀이 올라오셔서 차를 한 잔씩 타드렸다.

산에 관한한 조국의 건달들은 참으로 부지런하기도 하다.

 

 

 

 

 

 

 

 

 

 

 

<pk산장>님 일행

 

 

 

 

 

 

 

 

 

 

 

 

<사평역>님

 

 

 

 

 

 

 

 

 

 

 

3. 잠시 만나고 머물고 떠나고

 

지난 신정 때 함께 산행한 <이장>님 부부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산에서 여러 번  만났다.

하봉 헬기장에서 중봉까지 함께 올라왔고 온길로 다시 내려간다고 하시니 아무튼 우리를 중봉까지 배웅을 나오신 셈이다.

산행기야! <이장>님 부부에게 감사하다고 전해라. 또한 <그리고>님 부부에게도...

 

산에서 만나고 머물고 떠나는 일이 아무리 다반사지만

<이장>님 일행은 중봉에서 산우를 만나 하봉쪽으로 내려갔고

우리 또한 아쉬움을 남기고 한 발 제겨 디딜 곳이 없는 중봉골로 내려섰다.

중봉에서 <사평역>님이 주신 복분자 술을 마셔서 몸이 흔들렸다.

 

우리는 보조 자일도 없고 <최정호>씨가 가지고 온 슬링 하나뿐, 나는 아이젠도 없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위험 천만한 놀이에 나를 던지고 생명을 걸고 놀아보자는 것이다.

빙벽구간 지난 주 러셀을 따르지 않고 적당히 크러스트된 설벽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은 summit에서 체력을 다 소진하였을 때처럼 사점의 희열은 없어도

마치 지게를 지고 동시에 물동이를 이는 것과 같아서 정신줄을 놓아서는 곤란하다. 

 

사진을 찍는 사이 <최정호>씨가 앞에 섰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났다.

설사면에 내동댕이 쳐져 쳐박혀 있었고 쓰러진 고사목에 아래 끼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날이 선 고사목 가지가 왼쪽 가슴을 찔러 옷이 찢어졌고 몸을 추스리는데 시간이 걸렸다.

출혈 유무를 확인하고 '팔을 움직여보라.'고 하니 겨우 움직였다.

순간 우람한 체격을 지고 내려갈 일을 생각하니 깜깜했는데 다행이었다.

 

아름다운 빙폭은 찢어진 가슴도 낫게하는지 표정이 밝아지고

'가슴에 보형물이 들어있었다면 아마 터졌을 것이다.'라는 농담을 하니

호탕하게 웃더라.

 

 

 

 

 

 

최정호씨 가슴을 찢어놓은 고사목

 

 

 

 

 

 

 

 

 

 

 

 

 

 

 

 

 

 

 

 

 

 

 

 

 

 

 

 

4. 속세로 나가는 길

 

위험한 빙폭구간이 끝나고 슬랩 암반 아래 작은 와소에서 <pk산장>님이 주신 떡국을 끓이는 사이

가슴과 다리에 타박상을 입은 <최정호>씨는 얼음을 깨고 沼에 몸을 담그더니 불끈 두 주먹을 쥐고 화이팅을 외쳤다.

 

온천물에 부상당한 학이 몸을 치유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냉찜질의 요법은 바라보는 사람까지 오한이 들더라.

아무튼 근육이 놀라서 오그라들었는지 잠시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고 하더니 뜨거운 떡국을 순식간에 흡입하더라.

말라죽은 산죽길을 지나고 동릉 사면길을 돌아 목책을 넘어 시치미를 뚝 떼고 정규등로로 나왔다.

순두류 승강장에 내려오니 버스는 대기(16:00)하고 있었고 지난 주보다 한 시간이나 빨랐다.   

 

 

 

 

택시를 타고 덕산으로 나와 차량을 회수하러 새재에 올라가서 <이장>님 팀과 <pk산장>님 팀을 다시 만났다.

감사의 표시로 청결미 한 포대(?)씩 드리고 작별을 하고 덕산에 나와 일행과 저녁식사를 하고 덕산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고 올라왔다.

참고로 청결미는 현대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면 주는 간척지 쌀로 80kg이 아니고 800g이니 오해하지 마시라.

 

올라오는 길에 꼬마 여장군에게 문자가 들어왔는데

'선생님! 잘 하산하셨나요? '

산행 中脫者에게 묵묵부답하려다가 문자로 사진 세 장을 보내주었다.

 

 

 

5. 에필로그

 

사진을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주고 혼자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오더라.

박산행에서 1박에 최소 자기량 물 기본 2리터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보란듯이 4.5리터를 지고 올라가 파도치는 영랑號 배멀미에 밥맛을 완전히 잃었고

하루 저녁 산중 요양을 하고 내려간 물탱크 간호사를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