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마야계곡&통신골 이야기(08_0215-17)

도솔산인 2013. 2. 16. 01:28

 

마야계곡&통신골 이야기(08_0215-17)

 

 

▣ 일 시 : 2008년 2월 15일 - 17일(2박 3일)

▣ 산행지 : 지리산

▣ 인 원 : 4명(윤, 윤+1, 청량, 余)

▣ 코 스 : 중산리 - 순두류아트 - 마야계곡 - 중봉 - 천왕봉 - 통신골 - 중산리

 

 

 

 

♣ 1일차(080216)

 

 

15일 밤 중산리 주차장에서 눈을 붙인 후 '순두류아트' 에서 마야계곡으로 스며들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계곡이지만 '마야 摩耶(Māyā)계곡'보다는 '마魔의계곡'이 어울렸다.

 

마야계곡 초입에서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크램폰을 착용한 후에

슬링 하나로 협곡의 폭포와 소를 우회하지 않고 거침 없이 직등했다.

 

얼마 뒤에 황금능선이 시작되는 우뚝 선 암봉 위에 사람이 멀리서 바라보였다.

 

 

마야계곡

 

 

 

 

 

 

 

 

 

 

 

 

 

 

 

 

 

 

 

 

 

 

 

 

 

 

청량이 물에 빠진 沼

 

 

 

 

 

얼음 상태가 불안했는데 청량이 그만 소沼에 빠지고 말았다.

 

급히 벗어서 물기를 짰지만 여분 바지를 가져온 사람은 없으니

이 상태로 진행하기는 어려워 올라가는데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오후가 되면서 온도가 영하 10도 이하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써리봉골로 들어서며 중봉골이라 하니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다.

.

매년 동계 훈련 등반 들어오는 사람이 나를 우롱하고 있었다.

따라가지 않으니 제풀에 지쳐 다시 나오는데 시간을 지체했다.

 

 

 

 

 

 

 

막탕에서 취수하려고해도 물이 있다고 하여 가보니 눈물만큼 흘렀다.

 

중봉골에 접어들어 고드름을 녹여 점심을 할 때

내가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가 막탕에서 5리터를 취수하였다.

 

 

의견이 엇갈리더니 이제는 최악의 상황 심설이 앞을 가로막았다.

 

선두가 허리까지 들어가는 심설과 사투를 벌였으나 1시간에 고도 100m를 치지 못했다.

及其也 내가 앞에서 짐승처럼 네 발로 두 시간 가까이 기어 오르니 중봉샘이 나타났다.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은 파김치가 되었는데 나는 아직 체력이 남아있었다.

 

 

 

 

중봉샘에서 바라본 황금능선과 마야계곡

 

 

 

그러나 11시간 만에 마야계곡을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극도의 피로감이 밀려왔다.

중봉에 오르니 어둠 속에서 <소혼>이 먼저 나타나고 <미산>님이 뒤에 올라왔다.

 

하필이면 칼바람 부는 헬기장에 텐트를 치는지 알지 못할 일이다.

입에서 욕이 막 나오고 어둠도 보기 어려운 듯 금방 사위를 감췄다.

 

온도계를 보니 영하 18도 이정도는 문제가 없다

 

미산루에서 저녁 먹으러 오라는 전갈을 받았지만 가지 못했다.

 

청량에게 오버트러우저를 빌려다 입히고 버너를 켜서 몸을 녹인 후에,

술을 한 잔 하니 식사할 생각이 없을 정도로 체력이 고갈되어 있었다.

 

9시경 미산루로 가다가 바람이 거세어 다시 텐트로 돌아왔다.

 

정상이면 중봉의 바람소리 안주삼아 밤을 보내련만

불편한 마음에 사람과 산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침낭 속에서 손과 발을 움직이며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다 잠이 들었다.

 

 

 

♣ 2일차(080217)

 

 

텐트의 온도가 영하 15도 밖의 온도는 잴수 없었다.

 

어제 한 밥을 밥솥에 데웠지만 반은 밥이고 반은 얼음이었다.

오뎅국을 데워 밥을 녹여 아침을 먹고 미산루에 인사를 갔다.

 

어제 밤 허벅지까지 빠지며 눈길을 내놓은

<소혼>의 배려가 아침 햇살에 붉게 드러났다.

 

<미산>님은 우릴 위해 술을 남겼는데, 우린 기운이 없어서 술이 남았다.

<소혼>에게 오버트러우저와 베이컨을 주고 인사를 하고 중봉을 떠났다.

 

 

 

 

 

마야계곡

 

 

 

 

 

 

 

 

날이 밝아지니 바람은 그래도 견딜만하다.

천왕봉에서 하산 길을 결정하는데 난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윤대장이 먼저 통신골 초입 크러스트 된 눈과 경사를 밟고 내려섰다.

아무도 밟지 않은 곳을 골라 얼어 붙은 숫눈의 표면에 나의 발자국을 찍었다.

스틱과 발의 무게를 분산하지 않으면 중심을 잃고 온 몸이 빨려 들어가기 일쑤다.

 

 

올라오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위험하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빙벽 구간 두 발만을 믿을 수 밖에....

 

 

 

 

 

 

 

 

 

 

 

 

 

 

 

 

 

 

 

 

 

 

 

 

 

 

 

 

 

 

 

 

 

 

 

 

 

 

 

 

 

 

 

 

 

 

 

 

 

 

 

 

우회하지 않고 무사히 직강했다는 성취감에는 생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합수부 못미쳐 沼에서 점심을 먹고 천왕봉의 위용을 다시 한 번 올려다 보았다.

 

오랫동안 고락을 함께했는데 이것이 그와 마지막 지리산행이 되었다.

이제는 한때 산파트너였던 친구와 좋았던 기억들을 많이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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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산행을 마치고 새재산장에서 <기쁜인연>님을 마주쳤는데,

내가 고의로 피한 것 같아서 후에 달궁에서 정중히 인사를 했다.

 

'산행 파트너는 언젠가 어떤 이유로든 함께할 수 없다.'는

<기쁜인연>님의 산행 파트너에 대한 글을 읽고 공감한 일이 있다.

 

 

* 배낭 중량  余 : 23.5kg, 청량 : 21.6kg, 윤 : 17.5kg, 윤+1 : 15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