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한시모음

有所思(생각이 있어)-(黃五)

도솔산인 2012. 11. 6. 14:49

 

 

             有所思(유소사) : 생각이 있어

 

 

                                      황오(黃五·1816~?)

 

悤悤四十六(총총사십육) : 허둥지둥 달려온 마흔여섯 세월

磊落未全消(뇌락미전소) : 거친 꿈은 아직 식지 않았는데

 

秋色生千里(추색생천리) : 가을빛은 천리 멀리 밀려오고

夕陽照九霄(석양조구소) : 석양은 높은 하늘에서 내리 비치네

 

江湖弟子在(강호제자재) : 강호의 곳곳에는 아우들이 있고

風雨友生遙(풍우우생요) : 비바람 속 벗들은 곁을 떠나네.

 

獨夜終南月(독야종남월) : 남산의 달빛 아래 홀로 섰나니(밤새도록 남산 달빛 아래 홀로 있나니)

蛛絲古木條(주사고목조) : 고목 나무 가지에서 거미가 줄을 치누나.

 

 

 

 

* 悤悤 : 바쁠총. 급한 모양. 磊落 : 많이 쌓여 있는 모양. 산이 높고 큰 모양.  풍채가 좋고 헌걸찬 모양. 소리가 우렁찬 모양 마음에 거리낌 없음. 대범함. 밝은 모양. 또렷한 모양. 잘 구르는 모양. 원활한 모양. 九霄 = 九天 높은 하늘. 友生 : 친구, 우인, 같은 문하생

 

19세기 조선의 기이한 시인인 녹차거사(綠此居士) 황오(黃五)의 작품이다. 사십도 중반을 넘긴 중년 남자의 뒤숭숭한 마음자리가 쓸쓸하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온 중년도 막바지다. 젊은 날의 호쾌한 꿈을 접을 때는 아직 아니다. 천지를 단풍으로 물들이며 밀려오는 가을빛과 석양을 붉게 물들인 노을은 이번 생(生)의 마지막 기회인 양 찬란하다.

 

그러나 세상에는 벌써 동생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내 또래들은 세파에 밀려 하나둘씩 주변에서 사라진다. 나라고 별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달빛 아래 홀로 서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고목(古木)의 나뭇가지 사이로 거미란 놈이 열심히 거미줄을 친다. 헛된 꿈에서 깨어 시들어가는 몸과 나이를 받아들이라고 충고하는 걸까? 중년 남자의 허전한 심사는 그렇게 어둠에 묻혀간다.  출처 : [가슴으로 읽는 한시] 생각이 있어[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 황오(黃五1816~?)에 대하여

 

  조선 후기의 유랑시인 본관은 長水 자는 四彦사언 호는 綠此居士녹차거사 漢案한안 東海樵夷동해초이 綠一녹일 경남 함양 출생 교유한 문인으로 秋史 金正喜, 趙斗淳, 김립 金炳淵, 金炳學, 申錫雨, 朴珪壽, 趙在應 등 당대 내놓아라는 문인과 교유하며 압록 이남에서 따를 사람이 없다는 압록강의 녹(綠)자와 이차(此)자를 써서 綠此 (녹차)라는 자호를 쓸 만큼 대단한 문학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분이다. 20세에 한양에 올라가 십여년을 지내고 30대에는 강산을 두루 유람하다가 40대 후반에 상주 모동 중모 수동으로 내려왔다. 만여 권의 책을 독파 하고도 유랑의 길을 택했던 분으로 상주 모동 꽂받모리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묵은 묘지에 잠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