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周而不比/연소서재

사대부 소대헌, 호연재 부부의 한평생

도솔산인 2006. 11. 22. 10:43

■사대부 소대헌, 호연재 부부의 한평생

 

 · 허경진 지음
 · 푸른역사 
 · 2003-03-05

 · ISBN : ISBN : 8987787680
 · 292쪽 13,000원
 

 * 가족사에서 시대사로
<사대부 소대헌 호연재 부부의 한평생>은 그 어느 책보다도 발품, 손품이 많이 들어간 책이다. 책의 성격상 풍부한 자료 수집이 책의 수준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였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소대헌 종가뿐만 아니라 선비박물관, 박물관 창고 등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다음에야 비로소 책을 낼 엄두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소대헌, 호연재 부부 뿐만 아니라 10대에 걸친 이 집안 선조들의 유물과 자료를 아울러 정리한 것은 어쩌면 필수적인 작업이었다. 부부를 중심으로 그 앞뒤를 살았던 선조와 후손들의 삶까지 내용에 포함시켜야 부부의 일생을 시대의 역사로까지 확장시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의 증조부, 고조부는 누구였으며, 그들은 어떠한 유물과 가풍을 전수했고, 이렇게 이어진 것들이 후대에는 또 어떤 형태로 내림되었는지 살피다 보면 목침 하나, 서책 하나에 담긴 시대적 배경, 역사적 의미가 저절로 드러난다.

 
 * 오늘날보다 더 대등했던 부부 관계
이 책이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가 진정한 부부 관계에 대한 것이다. 당시 혼인은 한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 간의 결합이었다. 연애는커녕 혼인 첫날밤 처음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것이 당연했고, 이혼은커녕 비록 죽음이 둘 사이를 갈라놓더라도 (주로 여자들이) 수절해야 칭찬을 듣는 시대였다. 소대헌, 호연재 부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 부부의 사례는 조선시대 사대부가 부부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예측을 약간 비껴간다. 자신의 호(浩然)처럼 담담한 기개를 갖고 있었던 호연재 부인 때문이다. 매번 과거 시험에 낙방하는 남편 소대헌의 과시(科詩)를 보고 시험에 붙을지 떨어질지를 미리 알아 맞히는 시문 실력을 갖고 있었던 부인은 "남편이 나를 버린다면 나도 구태여 매달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당시 여인에게선 보기 드문 배짱과 자존심이었다. "나 또한 당당한 명문의 딸"인데 왜 자존심을 굽히느냐는 것이다. 호연재는 이렇듯 오늘날과 다름이 없는, 어쩌면 더 당당한 태도로 부부 관계에 임했기 때문에 남편 소대헌이 자신을 조금 소홀히 대하고, 집안살림을 등한시해도 거리낌없이 호탕한 시를 짓고, 멀리 떨어져 있는 시숙에게 당당히 곡식을 꾸어달라는 편지를 띄울 수 있었던 것이다.


 * 자부심과 자유로운 정신으로 눈길 끄는 안방마님 호연재
이처럼 이 책의 두 주인공 가운데 오늘날 우리의 관심을 더 끌어당기는 인물이 부인 호연재이다. 부인은 <자경편(自警篇)>이라는 계녀서(誡女書)를 직접 지었는데, 이 책은 글자 그대로 자신을 경계하여 쓴 글이지만 여성들의 인내와 순종을 강조한 이 시대의 다른 계녀서들과 많이 다르다. 우선 부부 관계라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밝혀놓았다. 호연재는 여성의 투기란 부끄러운 행실이지만 남성의 패덕 때문에 시작된 것이라며 남성을 은근히 비난하고,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이 직접 첩을 골라서 남편에게 추천하던 시대에 첩을 대놓고 적국(敵國)이라고 표현했다. 이뿐인가. 부인은 자신과 갈등 관계에 있는 주위 사람들을 '금수(禽獸)'라고 불렀다.
또한 호연재는 가끔씩 술을 통해 당시 여인들을 옥죄던 부녀자의 규범에서 잠시 벗어나기도 하고, 근심 걱정이 있을 때마다 담배로 마음을 달랬다. 물론 오늘날의 음주, 흡연과는 그 사회적 의미가 많이 다르지만, 호연재는 남자들이 주로 애용한 술과 담배를 직접 즐기고 이를 시문으로 표현한 자유로운 풍류 정신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 소대헌은 누구?
소대헌 송요화(宋堯和, 1682~1764)는 조선 중기에 대사헌을 지낸 동춘당 송준길의 증손으로, 학덕이 높아 후배 양성에 공을 남긴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특히 모친을 지극하게 섬긴 효자로 이름 높았으며, 1730년 영조 6년에 음사로 출사하여 의금부도사 등 여러 벼슬을 거쳐 내직으로 동지중추부사에까지 올랐고, 외직으로 청산현감, 진산군수, 선산부사, 광주목사를 지낸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이렇다할 업적이나 유명한 문집을 남기지 않은 탓에 오늘날 그 이름 석자를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 호연재는 누구?
소대헌의 부인 호연재(1681~1722) 김씨는 문집을 남기고 활발한 문학 활동으로 후손들에게 사랑받은 조선 후기의 여성문인이다. 호연재의 고조부는 병자호란 때 강화성이 함락되자 화약에 불을 질러 자결한 선원 김상용이다. 호연재는 열아홉 살에 소대헌과 혼인한 뒤 맏형의 임소를 따라다니며 어머니를 봉양한 소대헌 대신 집안 살림을 관리하며, 42세 때인 1722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많은 시문을 남겼다. 호연재가 지은 시는 지금까지 후손과 가까운 일가친척들에게만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17~18세기의 여성 문학사의 맥을 잇는 중요한 연구 자료로 떠오르고 있다.
이 책의 출발점이자 모태(母胎)는 대전 송촌동에 있는 소대헌, 호연재 부부의 옛집이다. 고전문학의 보물창고로, 알려진 이 집의 자료를 뒤지다 보니 한시 자료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사대부와 안방마님의 생활사 관련 자료들이 끝도 없이 나왔고,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한시 연구가 생활사 연구로 바뀌었다는 것이 <사대부 소대헌 호연재 부부의 한평생>의 저자 허경진 선생이 밝히 집필 배경이다. 여기에 부부의 유물을 보관 전시하는 선비박물관은 이 책의 든든한 밑거름이 었다.
이 책의주인공은 당연히 소대헌, 호연재 부부, 더 구체적으로는 이 부부가 남긴 유물과 기록들이다. 유물들은 거기에 구구절절 설명을 더하지 않아도 하나 하나가 한 폭의 '평생도(平生圖)'요, 사연 담뿍 담긴 생활 일기였다.

 
* 지은이 허경진
1952년 목포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랐다.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면서 시 <요나서>로 연세문학상을 받았고 <허균의 시 연구>로 연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허균평전>과 <조선위항문학사> <대전지역 누정문학 연구> 를 비롯해 여섯 권이 있다. 역서로는 <역대 한국한시시화>외에, <다산 정약용 시선>을 비롯한 '한국의 한시' 총서 40권, <삼국유사>와 <연암 박지원 소설집> <서유견문>을 비롯한 '고전산책' 열 권 등이 있다.
어려운 한문을 쉬운 한글로 옮기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으며,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이름을 들었던 고전 정도는 모두 한글로 옮겨져 일반 독자들이 읽어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한글 전용주의자이다. 연구실이나 논문집에만 갇혀 있는 한문학이 아니라 독자들과 함께하는 한문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향토 문중의 어른들과도 자주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