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1) 鍾閣興天大鍾辨證說
鍾鼎者。一國之大器也。不知其原可乎。謹按我太祖四年乙亥。鑄大鍾。建閣通衢而懸之。晨昏撞擊。嚴人民作息之限。權陽村近撰銘2)。
종정(鍾鼎)은 한 나라의 큰 기물(器物)이다. 그 근원을 알지 못한다면 말이 되겠는가?(옳은 것인가?) 삼가 상고하건대(살펴보건대)[按] 우리 태조 4년 을해(1395)에 큰 종(鐘)을 주조(鑄造)하여, 번화한 거리에 누각을 지어 (종을) 달아매고는 새벽과 저녁에 종을 울리게 하여, 백성들이 움직이고 쉬는 때를 엄정히 구분하였는데, 양촌(陽村) 권근(權近, 1352~1409)이 명(銘)을 지었다.
休窩任有後《野談》。貞陵。神德王后康氏陵也。初在敦義門內。陵有寺。 寺有兩大鍾。
휴와(休窩) 임유후(任有後, 1601~1673)3) 의 《야담(野談)》에 정릉(貞陵)은 신덕왕후강씨 능(陵)이다. 처음에는 돈의문(敦義門) 내에 있었으며 능(陵)에는 절이 있었는데, 절에는 2개의 큰 종이 있었다.
寺廢移圓覺寺。寺廢。金安老移置東大門。欲以鳴晨昏。安老敗。鍾未及懸。尙在焉。壬辰【宣祖二十五年】倭賊入寇。鍾路及光化門之鍾。皆燒融。
절(흥천사)이 폐사되자 (종을) 원각사(圓覺寺)로 옮겼다. 절(원각사)이 허물폐사되자 김안로(金安老, 1481~1537)4)가 동대문(東大門)으로 옮겨 두고, 새벽과 저녁에 울리고자 하였으나, 김안로가 죄(罪)로 죽자, 종(鐘)을 미처 매달지 못하여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임진년[1592] 왜적의 도둑 떼가 쳐들어와 종로(鐘路)와 광화문(光化門)의 종(鐘)은 모두 불타서 녹았다.
逮于還都後。 命懸南大門 【卽崇禮門】 鍾。 都人聞鍾音。 皆悲喜。
환도(還都) 후에 이르러, 남대문[숭례문]에 종(鐘)을 매달도록 명하였다. 경성(京城) 사람들이 종(鐘)소리를 듣고 모두 기뻐하면서도 마음 아파하였다.
及丁酉。 【宣祖三十年】 經理5)移于明禮坊苧洞峴云。 今在雲從街。作樓而懸之。名興天大鍾。昏撞二十八通。名曰人定6)。晨撞三十三通。名曰罷邏7)。聲震數十里。
정유년[선조30년, 1597]에 이르러 명나라 장수 양호(楊鎬)[경리(經理)]가 명례방(明禮坊) 저동(苧洞) 고갯마루로 옮겼다고 한다. 지금은 운종가(雲從街, 종로)에 있는데, 누각을 지어 매달아 놓았다. 종 이름은 흥천사(興天寺) 대종(大鐘)이다. 저녁에 종(鐘)을 28번 쳐서 알리는 것은, 이름하여 '인정(人定)'이라고 하고, 새벽에 종(鐘)을 33번 쳐서 알리는 것은, 이름하여 '파라(罷邏)'라고 하였는데, 종소리는 몇십 리까지 진동하였다.
此鍾或丁酉改鑄而懸之者歟。款識似鐫于鍾。而四隅設棨戟8)。不可闌入9)。
이 종(鐘)을 어떤 이는 정유년에 다시 주조(鑄造)하여 매단 것이라고 한다. 관지(款識)10)가 종에 똑같이 새겨져 있고, (종각의) 네 모퉁이에 계극(棨戟)을 설치하여, (종각에) 허가 없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自外看之。則鍾體款佛像。則似是貞陵鍾。而移懸于苧峴者。又移懸于此也。以俟後考。
밖에서 보면 종의 몸체[鍾體]에 불상을 새긴 것은 정릉의 종[貞陵鍾]인 듯하나 저동(苧洞)의 고갯마루에 옮겨서 매단 것을 다시 여기에 옮겨서 매단 것이니, 후일의 상고(詳考)를 기다린다.
今上三年丁酉。淸道光十六年也。三月旬後。鍾上追蠡11)缺折12)。漸下垂地。擊而難鳴。
금상(今上, 철종) 3년 정유년(1837)은, 청나라 도광(道光)13) 16년이다. 3월 10일 이후에 종(鐘) 위의 꼭지 부분[追蠡]이 파손되어[缺折] (종이) 점점 내려져서 땅에 드리우니, (종을) 쳐도 소리를 울리기 어려웠다.
望後改懸如舊。時予旅于京城。躬進見其修懸。都下景福宮西南牆後有雙鍾。
보름 뒤에 고쳐서 예전과 같이 매달았다. 그때 내가 경성(京城)에 여행을 하여 몸소 가서 그것을 수리하여 매다는 것을 보았다. 도성 안 경복궁 서남쪽 담장 뒤에 한 쌍의 종이 있다.
比諸鍾街所懸鍾甚小。建閣庇之。東大門內植木所14)城下。有一古鍾。
종가(鐘街)에 매달려 있는 종(鐘)에 비하여 매우 작은데, 종각(鐘閣)을 세워 보호하였다. 동대문 식목소(植木所) 성 아래에 하나의 오래된 종이 있는데,
而如景福宮牆下鍾。建閣覆之。鍾體半埋土中。俗稱疥鍾者。人若手摩。則體生疥瘡故名云。又聞崇禮門內。水閣橋某家廳下。有鍾仄埋地中。其狀甚鉅云。然乃是傳說也。
경복궁 담장 아래의 종과 같이 누각을 세워 지붕을 덮었는데, 종(鐘)의 형체가 흙 속에 반쯤 매몰되었다. 속칭 옴병종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만약 손으로 문지르면 몸에 개창(疥瘡)15)이 생기는 까닭으로 이름하였다고 한다.
또 들으니 숭례문 안에 수각교(水閣橋) 아무개 집 대청(大廳)마루 아래에, 종(鐘)이 기울어져 땅속에 매몰된 것이 있는데, 그 모양이 매우 크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그저 전해오는 이야기이다.
更不知何故瘞在閭巷軒底也。興天大鍾者。恐是貞陵齋宮興天寺鍾也。姑記之以俟後考云爾。
또한 무슨 까닭으로 여항(閭巷)의 대청 아래[軒底]에 묻혀 있는지를 알지 못하겠다. 흥천사 대종(大鐘)은 아마도 정릉(貞陵) 재궁(齋宮)의 흥천사 종(鐘)이다. 잠시 기록하여 후세 사람의 고찰을 기다린다고 이를 뿐이다.
【안설(按設)《문헌비고(文獻備考)》。태조사년을해주종(太祖四年乙亥鑄鍾)。권근제명(權近製銘)。 銘曰。
於穆我王。受命淸朝。聿來新邑。于漢之陽。昔在松都。國都斯蹙。我王化之。除虐以德。民不見兵。會朝淸明。賢智效力。躋于太平。遠近如歸。旣庶旣繁。乃鑄厥鍾。乃聲晨昏。我功我烈。是勒是鐫。鎭于神都。於千萬年。
【<문헌비고>에 의하면 태조4년 을해년에 종을 주조하고 권근이 명을 지었다. 명(銘)에 이르기를
“아 아름다우신 우리 임금께서 깨끗한 조정에서 명을 받아 이에 와서 한수의 북쪽에 새 도읍을 세웠다. 옛날 송도(松都)에 있을 때에 국운(國運)이 모두 줄어들었는데, 우리 임금이 그것을 교화하여 덕으로 포학을 제거하니, 백성이 전쟁을 만나지 아니하고, 일조에 맑고 밝은 세상을 만나고,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힘을 바쳐서 태평한 세상을 이루었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돌아오니 이미 많아졌고 번창해졌다. 이에 저 종을 주조하여 새벽과 저녁에 울리게 하고, 나의 뛰어난 공적(功烈)을 이에 새겨 천만년동안 신령한 도읍(新都)에 가득하게 하리라.”
世祖己丑。定鼓鉦報漏法。一更三點。撞鍾二十八。名人定。五更三點。撞鍾三十三。爲罷漏。
세조 기축년(1469)에 북과 징으로 (물시계에 의하여) 시각을 알리는 법을 정(定)하였다. 1경 3점에 종을 28번 치면 사람의 통행을 금지하고, 5경 3점에 33번 종을 치면 순찰을 멈춘다.】
注 1)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조선과 청나라의 여러 책들의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사전. 백과사전으로 필사본 60권 60책이 전해지나 원래 더 거질(巨帙)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명(銘) : 금석(金石), 기물(器物), 비석(碑石) 따위에 남의 공적(功績)을 찬양(讚揚)하는 내용(內容)이나 사물(事物)의 내력(來歷)을 새김. 또는 그런 문구(文句). 흔히 한문(漢文) 문체(文體) 형식(形式)으로 하는데, 대개(大槪) 운(韻)을 넣어 넉 자(字)가 한 짝이 되어 구(句)를 이루게 한다.
3) 임유후(任有後) : 본관 풍천(豐川). 자는 효백(孝伯). 호는 만휴(萬休) 휴와(休窩)이다. 임윤(任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서 임국로(任國老)이고, 아버지는 홍문관교리 임수정(任守正)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김안로(金安老, 1481~1537) : 조선전기 이조판서, 도총관, 대제학,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5) 경리(經理) :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경리조선군무(經理朝鮮軍務)라는 직책을 띠고 우리나라에 구원병으로 왔던 명나라 군사의 책임자 양호(楊鎬).
6) 인정(人定) : 조선(朝鮮) 시대(時代)에, 밤에 통행(通行)을 금지(禁止)하기 위하여 종을 치던 일. 매일(每日) 일경 삼 점(一更三點)에 28번을 쳤는데 이에 따라 성문(城門)을 닫았다.
7) 파라(罷邏) : 새벽(5경 3점)에 종(鐘)을 33번 쳐서 순라(巡邏)의 마침과 통행(通行) 금지(禁止) 해제를 알리는 종소리. 파루(罷漏)라고도 함.
8) 계극(棨戟) : 관리가 밖에 나다닐 때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의장용의 나무로 만든 창. 비단으로 싸거나 칠을 한, 나무로 만든 창이다. 고대에 관리들이 사용했던 의장(儀仗)으로 출행할 때에 이 창을 들고 전도(前導)하였다가 당도한 뒤에는 문정(門庭)에 세워 놓았다. (고전번역원 DB)
9) 난입(闌入) : 허가(許可) 없이 함부로 뛰어듦.
10) 관지(款識) : 옛날 종(鐘), 솥, 그릇 따위에 새긴 표지나 글씨를 말한다. (고전번역원 DB)
11) 퇴려(追蠡) : 종의 꼭지. 용뉴(龍鈕).
12) 결절(缺折) : 파손(破损)
13) 도광(道光) 16년 : 도광 16년은 정유년이 아닌 병신으로, 도광 17년의 오기임.
14) 식목소(植木所) : 조선시대, 어영청(御營廳)에 딸린 관아의 하나. 도성 내외의 산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을 담당하였다. (네이버 한자사전)
15) 개창(疥瘡) : 전염성 피부병인 옴을 한방에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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