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한시모음

매화는 도리행화와 봄을 다투지 않는다.[梅不與挑李杏爭春]

도솔산인 2024. 1. 27. 03:30

■ 당경(唐庚)이 장무진(張無盡)에게 준 시

 

二月見梅 : 이월에 매화를 보고

 

                        唐庚(1070~1120)

 

桃花能紅李能白 : 복숭아꽃 붉고 오얏꽃 희니

春深何處無顔色 : 봄이 깊으면 어느 곳에 아름다운 꽃 없겠는가.

不應尙有一枝梅 : 다만 매화꽃은 한 가지에도 남아 있지 않으니

可是東君苦留客 : 봄의 신도 억지로 그를 붙잡아 두기 어려웠음이리라.

向來開處當嚴冬 : 이전에 피었을 때에는 엄동설한 이어서

白者未白紅未紅 : 오얏꽃은 희지 못하고 복숭아꽃도 붉지 않았다오.

只今已是丈人行 : 지금은 이미 손윗 자리가 되었으니

肯與年少爭春風 : 어찌 젊은이들과 봄바람을 다투려 들겠는가.

 

출처 고문진보

 

注 唐庚(1070~1120) : 북송시대 시인. 東君 : 절기로 보면 봄철이 이미 지났다는 말이다. 동군은 봄을 맡은 신 이름이다. 동제(東帝)ㆍ동황(東皇)ㆍ청황(靑皇)ㆍ청제(靑帝)라고도 한다. 참고로 목은(牧隱)의 시에 병들고 나니 어떤 일도 한가함보다는 못한데, 동군이 깃발 거두고 돌아감을 또 보겠네.病餘萬事不如閑 又見東君卷旆還라는 구절이 보인다. 牧隱藁 卷21 柳巷樓上: 어찌긍. 年少桃李를 의미함.

 

 

■ 성호사설 제5/ 만물문(萬物門) 梅花不入騷

 

성호사설 제5권 / 만물문(萬物門) 梅花不入騷

 

梅花不入離騷 古今以為㤪 退溪莭友社詩云 松菊陶園伴竹三 梅兄胡奈不同叅 又自題云 三徑梅獨見遺 此事亦無人說出不 但離騷為欠典也 昔鄭寒岡多植梅 號百梅園 崔守愚甞過之 索斧盡斫之 為其晩開也 今觀梅性 非煖屋飬護者 必與桃李並開 凡春花 皆不得與扵騷中 則梅之不取必以此也 守愚淸髙 覺得最深

 

매화가 이소(離騷)에 들지 못한 것을 고금이 모두 원망스럽게 여겼다.

퇴계(退溪)는 그의 절우사시(節友社詩)에서,

 

솔ㆍ국화 또 대나무까지 있는 도연명의 삼경에 / 松菊陶園伴竹三

이 고운 매화는 왜 함께 섞이지 못했는지 / 梅兄胡奈不同叅

 

라고 한 다음, 또 스스로 밑에 쓰기를, “도연명의 삼경에도 유독 매화만이 빠졌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꼬집어 말한 사람이 없으니 다만 이소(離騷)만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옛날 정한강(鄭寒岡)은 매화를 많이 심고 동산 이름을 백매원(百梅園)이라고 했는데, 최수우(崔守愚)가 거기를 지나다가 도끼를 구해서 다 베어버렸다. 그 매화가 늦게 피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지금 매화의 성질을 살펴보니, 따로 집에다 잘 길러서 보호하지 않으면 반드시 복숭아ㆍ오얏꽃 따위와 함께 피게 된다. 무릇 봄에 피는 꽃은 모두 이소(離騷) 속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굴원(屈原)이 이소를 지을 때 매화를 취하지 않은 것도 반드시 이런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수우는 사람됨이 청고(淸高)했던 까닭에 이 매화의 이치를 깊이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注 梅花不入騷 : 매화가 이소경(離騷經)에 들지 않았음. 이소경에 다른 초목들은 모두 열거되었는데 매화만이 빠졌다.

離騷 : 이소경(離騷經)을 말함. 전국 시대 초() 나라 굴원(屈原)이 간신(奸臣)의 참소로 그의 임금에게 신임을 받지 못하자, 이 이소란 글을 지어 소회를 서술하였음.

三徑 : () 나라 장허(蔣詡)가 정원에 세 갈래로 길을 내고 솔ㆍ국화ㆍ대나무를 심었다는 데에서 유래한 말. () 나라 도연명(陶淵明)이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을 때 이 말을 인용하여, “삼경이 쓸쓸하게 되었으나 솔과 국화는 오히려 있다.”라고 하였음.

鄭寒岡 : 퇴계(退溪)의 문인 정구(鄭逑)의 호. 자는 도가(道可), 시호는 문목(文穆).

崔守愚 : 수우는 최영경(崔永慶)의 호. 자는 효원(孝元). 조식(曹植)의 문인으로 학행이 뛰어나고 기절을 숭상했음.

 

출처 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