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한시모음

作墨戲 題其額 贈姜國鈞

도솔산인 2020. 10. 8. 17:28

作墨戲 題其額 贈姜國鈞

 

 

화암(花巖)을 찾다가 사숙재 강희맹을 만났다. 강희맹은 만년에 함양군 유림면 화장산 아래 국계에 은거했다. 묵희(墨戲)는 신참 과거 급제자에게 선배 급제자들이 행하던 일종의 신고식으로 '붓으로 얼굴에 먹칠을 하던 놀이'이다. 선배가 후배 급제자에게 얼굴에 먹칠을 하고 강물 속에 달을 잡아오라고 시킨 듯하다. 선배는 얼굴에 먹칠을 한 후배를 원숭이라고 칭한다. 후배 급제자는 달을 잡는 흉내를 내고 선배 급제자는 포복절도한다. 읽다가 푸석 웃음이 나오는 내용이다. '胡孫捉江月'이란 제목을 달고 온라인 상에 떠도는 것을 원 제목을 붙였다. 얼굴에 먹칠을 한다는 어원이 묵희에서 나온 듯하다.

 

'원숭이가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 하니/물결 따라 달 그림자 조각조각 일렁이네./어라, 달이 다 부서져 버렸나?/팔을 뻗어 달 조각을 만져보려 하였네./물에 비친 달은 본디 비어있는 달이라/우습다. 너는 지금 헛것을 보는 게야./품었던 네 의심도 저절로 없어지리./한 줄기 휘파람 소리에 하늘은 드넓은데/소나무 늙은 등걸 비스듬히 누워 있네.'

 

 

作墨戲 題其額 贈姜國鈞

(묵희를 하며 얼굴에 먹칠하고 강국균에게 주다.)

 

                          강희맹(姜希孟, 1424~1483)

 

胡孫捉江月 : 원숭이가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 하니
波動影凌亂 : 물결 따라 달 그림자 조각조각 일렁이네.
飜疑月破碎 : 어라, 달이 다 부서져 버렸나?
引臂聊戱玩 : 팔을 뻗어 달 조각을 만져보려 하였네.
水月性本空 : 물에 비친 달은 본디 비어있는 달이라
笑爾起幻觀 : 우습다. 너는 지금 헛것을 보는 게야.
波定月應圓 : 물결이 가라앉으면 달은 다시 둥글 거고
爾亦疑思斷 : 품었던 네 의심도 저절로 없어지리.
長嘯天宇寬 : 한 줄기 휘파람 소리에 하늘은 드넓은데
松偃老龍幹 : 소나무 늙은 등걸 비스듬히 누워 있네.

 

                          <私淑齋集卷之三> 五言古詩

 

墨戲 : 신참과거급제자에게 선배 급제자들이 행하던 일종의 신고식 때 붓으로 얼굴에 먹칠을 하던 놀이.

☞ 姜子平(1430-1486)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국균(國鈞).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따르면 문과에 장원하여 두 번이나 승지가 되고 벼슬이 전라도 관찰사에 이름.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실제 살아가면서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경우를 맞닥뜨린다. 한 치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얼마 전 그런 분이 있어 필자가 조심스럽게 '조상신에게 가서 막걸리 한 잔 붓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라.'라는 전언을 넣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막아야겠다는 심정에서 꺼낸 비책이다. 신통하게도 다음날 그분이 선영에 다녀갔다고 한다. 한 고비를 넘긴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는 신들의 전쟁이다. 유교국가에서 조상신은 흙수저들에게 유일한 백이다. 아마도 탄수(灘叟) 공은 '그래도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낫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완벽한 삶은 없다. 때로는 얼굴에 먹칠을 하고 살아내는 인내도 필요하다. 묵희(墨戲)는 영광과 치욕의 상반된 의미를 내포한 어휘이다. 이태룡 박사에게 면암(勉庵)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 떠오른 단어가 묵희(墨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