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5년 김지백의 「유두류산기」에 나오는 파근사 II
▣ 일 시 : 2023년 04월 일(일)
▣ 코 스 : 선유폭포-오강바위-월계재-상허리길-암자터1,2-파근사터-암자터-광속단-1401봉-암자터-차돌바위-대장간터-선유폭포
▣ 인 원 : 5명(답사팀)
▣ 날 씨 : 맑음
1655년 10월 8일 김지백은 원천원(元川院, 현 지리산둘레길 남원 주천 안내 센터)에서 일행들을 만나 용추(龍湫)를 거쳐 파근사에서 묵고, 10월 11일까지 나흘간 화개동천 일원을 유람한다. 나흘간의 유람에서 일행들이 지은 100여 편의 한시를 1권의 시집으로 만들면서 김지백이 기문(유두류산기)을 짓는다. 용추동(용호구곡)에서 파근사로 가는 길은 ① 제1곡 松瀝洞(송력동)에서 제9곡 교룡담(交龍潭)까지 협곡으로 가는 길, ② 제6곡 지주대(砥柱坮)에서 7, 8곡을 거치지 않고 코재로 직접 올라가제 9곡 교룡담(交龍潭)을 둘러보고 내기마을을 경유하는 길, ③ 제1곡(曲) 송력동(松瀝洞)에서 송림사를 경유하여 능선으로 올라가 물방아골→파근사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내기마을 사람들이 주천場을 보러 갈 때, 주로 ② 길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김지백은 세 길 중 하나를 선택했을 것이다.
이번 파근사 답사는 황령암에서 개령암(정령치)을 거쳐 파근사를 잇는 옛길을 찾는 것과, 파근사에서 견두지맥을 넘어 수락폭포를 잇는 것이다. 김지백의 유람 일정은 원천원(元川院, 남원 주천면 장안리)을 출발하여 용추동(龍湫洞)→파근사(波根寺)→폭포(수락폭포)→구례 화엄사(華嚴寺)→연곡사(燕谷寺)→화개 쌍계사(雙磎寺)→불일암(佛日庵)→신흥동→칠불암(七佛庵)에 들러 옥부대(玉釜臺)를 둘러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선인들의 유람록길은 같은 기록을 보고 함께 답사를 해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혼자만의 생각은 자기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1박 2일, 또는 2박 3일 답사를 하는 이유도 답사팀이 충분히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함께한다는 점이다.
선유폭포에서 오른쪽 능선길을 잡아 견두지맥으로 올라섰다. 능선에 올라서니 만복대에서 산줄기가 북으로 흘러 천복대에서 서북쪽으로 견두지맥이 갈라진다. 능선을 타고 내려서서 오강바위를 지나니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에서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 월계마을 잇는 고개가 나온다. 지도상에 다름재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월계재의 오류인 듯하다. 카카오 위성지도에 다름재골은 구례군 산동면 수기리 수락저수지 위에 있다. 일단은 파근사에서 허리길로 광속단을 경유하여 1041.6봉에서 솔봉능선을 타고 수락폭포로 내려가는 초입을 확인하였다. 안드로이드 GPS에서 제작한 지도에는 1041.6봉을 다름재로 표기하고 있다. 다름재는 지도마다 위치가 다르고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 그래서 다름재인가. 이렇듯 인문 산행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산행을 마치고 육모정으로 내려와 주천면 호경리에 사는 노국환(盧國煥, 1944년생) 님을 만났다. 옥계(玉溪) 노진(盧禛, 1518∼1578) 선생의 후손으로 지리산 국립공원과 전북 도청에 근무하시다가 정년퇴직 후에 귀향하신 분이다. 노국환님이 난사(蘭史) 김사문(金思汶, 1889∼1978)의 「용호구곡경승안내(龍湖九曲景勝案內, 1940)」 필사본을 소장하고 계셨다. 용호구곡의 이름은 일제 강점기에 원동향약계(源洞鄕約契)에 소속된 유림의 선비 영송(嶺松) 김재홍(金在洪, 1867~1939)이 지었다. 용호서원 목간당(木澗堂) 게판된 용호구곡십영(龍湖九曲十詠)의 낙관(嶺松, 遂吾齋)으로 이를 알 수 있다. 용호구곡 각석 시기 또한 용호서원이 건립된 시기(1927년) 전후로 추정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용호구곡의 유래와 유선대의 바둑판 바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유선대의 바둑판 바위는 1960년 태풍 카르멘(CARMEN)의 수해 때 뒤집어졌다고 한다. 끝.
☞ 난사 김사문의 「용호구곡경승안내」 : https://lyg4533.tistory.com/16488916
■ 1655년 김지백의 「유두류산기」
○ 10월 8일, 남원부 동쪽 원천원(元川院, 주천면 장안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니, 바로 을미년(1655) 10월 8일 무오일이다. 자원(子遠) 이문재(李文載)와 한여근(韓汝謹) 또한 기약이나 한 듯 함께 왔고, 중도까지 전송한 자로 또 노운경(盧雲卿)이 있다. 이 네 벗은 모두 나와 같은 해에 나란히 과거에 급제하였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서국익에게 서대숙(徐大叔)이라는 아우가 있는데, 또한 서국익과 함께 왔으니, 우리의 행차가 더욱 외롭지 않았다. 이에 용추(龍湫)를 거쳐 대흥사(大興寺, 파근사)에서 묵고, 거세게 흘러내리는 폭포(수락폭포)를 구경하고, 감로사(甘露寺, 천은사)를 지나 화엄사(華嚴寺)에 이르러 웅대한 불당(佛堂)을 구경하였다. 다시 구불구불한 강 언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니 쌍계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번이나 굽이돌아 시내 건너 골짜기를 찾아 저물녘에 연곡사(燕谷寺)에 이르러 묵었다.
注 원천원(元川院) : 조선시대 관에서 운영하는 숙소로 현재 '지리산둘레길 남원 주천 안내 센터'가 있다.(전북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259-1) 「유두류산기(遊頭流山記)」 : 김지백의 『담허재집(澹虛齋集)』 권5에 수록되어 있다. 김지백(金之白, 1623~1671) : 자는 자성(子成), 호는 담허재(澹虛齋), 본관은 부안(扶安)이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의 문인이며, 오이정(吳以井, 1619~1655),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송준길(宋浚吉, 1606~1672) 등과 교유하였다. 1658년(효종 9) 천거를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고 평생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저술로 『담허재집』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주의 :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오류가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지적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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